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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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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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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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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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DUMMY

18



임시로 부를 이름은 카에키로 정해졌다.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고개 휘저음이 있었다. 회이던은 수많은 이름을 떠올려 하나씩 내뱉었다. 자서스, 디베이스, 헬세스···.


그러한 인고 끝, 카에키라는 이름을 읊은 순간이었다. 듣고만 있던 여자애의 얼굴이 돌연 환해졌다.


회이던은 소녀가 저런 표정 짓는 걸 처음 보았다. 얼굴이 환해진 뒤로도 고개를 끄덕이기까지는 다소 유예가 있었다. 회이던이 직접 반응을 묻기 전까지는 빙긋 웃고만 있었다.


어쩌면 곁다리로 짚어 부른 이름이 그녀의 실제 이름일지도 모른다. 알 수 없다. 여하튼 회이던과 카에키는 하룻밤 야영을 한 뒤 다시 길을 떠났다.


그 뒤로 별다른 사건 없이 며칠이 지났다. 광경은 훅훅 지나가며 쉽사리 변했다. 그렇게 스러져 가는 광경들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저 숲의 이름이 뭔지 아니.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외이연 숲이라 부른다. 유래는 딱히 영웅적이지 않지. 옛날 반란을 선동하였던 화클룬드 외이연이란 사람이 저 숲속에서 수세에 몰려 자결했지.


대충 이런 종류의 몰라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사실 이야기를 나눈 것이라고 할 순 없다. 회이던 혼자 미주알고주알 오랫동안 떠들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대화가 대충 통하는 것만 같았다. 카에키의 눈빛과 몸짓만으로도 그러했다.


밥으로는 하찮은 잡탕만 제공되었다. 그나마 좋은 포도주가 회이던의 쓰레기 같은 요리 솜씨를 가려 주었다. 그렇게 또 이틀가량이 지났다.


지평선에서 시작한 산맥이 점차 가까이 다가왔다. 발롬니 공이 언급하였던 진정한 북방, 그곳에 닿는 길을 가로막는 천연의 수문장이다.


회이던은 지금은 불태워진 그림 한 점을 본 적 있었다. 눈앞의 거인들, 북풍의 장벽을 묘사한 작품이었다. 당시엔 붓의 획에만 감탄하였다.


지금에서야 새삼 당시의 감상법이 참 지엽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활하게 끝없이 펼쳐진 산맥은 흡사 동물의 등뼈 같았다. 살거죽 위로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위엄이 서린 봉우리들.


깎아지른 듯한 험준함이 보는 사람 막막하게 만들어, 흡사 사악함을 품은 광경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등성이가 아래로 푹 꺼지는 지점이 하나 있다. 유일하다시피 한 통과로였다. 마차는 그곳으로 진입해 얼마간 굴러갔다. 경사가 상당한 부분이 중간중간 기습적으로 펼쳐졌지만 산맥의 다른 부분에 비하면 평탄한 편이었다.


“홰··· 횃불의 이름으로, 멈추세요···! 멈춰요!”


“땟부레 이르므로~ 하하, 지랄하네.”


바퀴는 덜덜거리며 별 탈 없이 굴러가는데, 난데없이 옆쪽의 삼림에서 사람 셋 정도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회이던은 뭔 일인가 싶어 소리 들리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나무와 나무의 틈새에서 강한 섬광이 일었다. 눈 깜빡이지도 못한 회이던의 눈은 그만 익어버리고 말았다.


“크아악!”


“으아악! 이 망할 것이!”


“끄아아악!”


셋 중 하나는 회이던이 내지른 탄성이다. 시력이 제대로 돌아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삼림 속에서 들리는 소리들은 점차 과격해졌다. 그냥 가볍게 몸 풀듯이 드잡이질하는 것은 아닌 성싶었다.


“홰, 홰홰 횃불께서 노하실 겁니다! 용서받지 못할 선은 넘지 말아요···!”


“지이이이이랄 하네. 우리는 사람 살갗을 얇게 저미는 것을 즐긴단다. 왜냐하면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이지.”


“지옥이란 게 있으면 와 보라고 해! 그때까지 이 짓을 절대 멈추지 않을 테다. 겸사겸사 돈도 좀 벌면서 말이야. 크헤헤헤 에헤 에헤 에헤헤 에헤헤헤헤헤.”


횃불 운운하는 것을 듣자 하니 불의의 일을 당하는 쪽은 성직자인 모양이었다. 그러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도 마음에 아무런 부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회이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고삐를 천천히 당겨 말들을 멈춰 세우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흙바닥에 내려섰다.


정의감이 갑작스레 불타오르며 징악을 통해 번뇌를 덜고자 하는 욕구가 솟아오른 것은 아니었다. 강도 새끼의 웃음소리가 심대한 짜증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저 따위로 웃음소리 내는 사람은 어떻게든 수정을 가해야 한다. 그게 안 먹히면 오랫동안 줘 패서 강제로 개조하던가 해야 한다.


수풀과 가지를 적당히 헤치며 나아가니 깨나 몸집 있는 남자 두 명이서 성직자 복장의 여자 한 명을 둘러싸고 있었다. 둘 모두 한손검을 주무장으로 들었고, 다른 쪽 손에는 각자 원형의 방패 하나와 단검을 들고 있었다.


“뭔 일이요?”


뒤태만으로 험상궂은 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웃는 얼굴은 추악한 모양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궁핍한 남자, 그리고 꽁지머리 한 소녀를 가소로이 여기는 듯했다.


“형씨는 뭐야. 그쪽도 재미 좀 보려고?”


“뭔 일이냐고만 물었잖아. 왜 네 글자밖에 안 되는 간단한 문장에서 그리 많은 함의를 찾아내려 하는 거지?”


“뭐라는 거야, 시발. 너도 뒈지고 싶어?”


“문명화된 사람답게 대화부터 가진 뒤에 뒈짐을 보태든지 말든지 합시다. 뭔 일이냐고.”


“도굴꾼들이에요! 무덤에 안치된 부장품을 훔치려 하고 있어요!”


수세에 몰려 있던 성직자가 다급히 외쳤다.


회이던보다는 나이가 적어 보이고, 카에키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챙 넓은 모자 아래로 기다랗고 푸석푸석한 금발이 드러나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직사각형 모양 협소한 건축물이 하나 보였다.


벽돌을 쌓아 만든 것으로, 오랜 세월을 탄 그 틈새마다 이끼가 잔뜩 껴 있었다. 덩굴은 아예 건물의 윤곽을 뒤덮다시피 해 지붕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미 뒈진 놈이 값비싼 물건은 뭐 하러 필요하다고, 흐흐.”


“마, 마, 망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세요···!”


“그러는 네년은 왜 우리에게 예의를 안 갖추지? 화나네? 분노가 치솟네? 강력한 우리의 힘을 맛보여 줘야겠지?”


두 무뢰배는 그들의 무기를 위협적으로 쳐들어 올렸다.


보기 좋은 광경은 영 아니었다. 지랄은 여기까지다 이 쌍놈들아, 그런 함성을 외치며 전기톱을 신나게 휘두르기에는 실로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회이던은 다소 유보적인 태도만을 취했다.


“아, 아. 가져갈 거면 그냥 가져가. 사람은 죽이지 마.”


“지랄하네, 너도 죽여주마.”


기껏 베푼 아량이 철저하게 짓밟혔다. 당연하게도 미친개에게는 교섭이 먹히지 않는다.


결국 성직자는 양손에 꽉 붙든 지팡이를 높게 치켜올리는데, 또 반짝거리는 마법을 사용할 심산인 듯했다. 회이던은 급히 손 휘두르며 제지했다.


“아, 아! 그거 하지 마! 하지 마요. 그냥 가만히 계십쇼.”


“예··· 예에?”


제지하기 위해 휘두르던 손에 무언가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요란하게 외치지 않아도 의지에 감응하는 듯, 극히 미세한 입자들이 조립되고 조립되었다.


불분명하게 일렁이던 것은 이내 전기톱의 형체를 갖추어 살벌한 자태를 드러내었다. 흡사 마검과 같은 모습에 도굴꾼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마검이 아니라고 주장할 기력이 더는 들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들 공포에 떠십쇼. 이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성직자도 파리해진 얼굴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슬슬 기나긴 업적의 나열이 들이닥칠 것이다.


배교자, 기사 학살자, 추기경 암살자 어쩌구···. 당신 회이던 섬칼리고드로군요 당신을 죽여 횃불께 예쁨받으렵니다 어쩌구···. 그따위 망발을 일삼는다 해도 덩달아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회이던은 쇠줄을 당겨 그르렁거리는 울음소리를 일으켰다. 천천히 다가오는 허름한 남자와 그 손에 들려 사정 봐주지 않고 회전하는 톱날이 무뢰배들을 뒷걸음질 치게 했다.


“시, 시시 시발! 오지 마! 미친 새끼야, 그거 들고 오지 마!”


“나 죽이겠다며 공약도 걸어 놓고선 왜 난리야. 이거 정당방위야. 재판까지 끌고 가면 참작할 만한 사항은 내 쪽이 더 많다고.”


전기톱은 우직하고 단순하게 상대를 내려찍었다. 가만 앉아 죽을 생각은 없다는 듯 들려 올라간 방패는 고작해야 가죽을 단단하게 덧댄 수준이었다.


날카로운 장검 정도는 얼마든지 퉁겨낼 수 있었겠지만, 회전에 관해선 조금 다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방패는 그 짧은 새에도 갉히고 또 갉혀, 혁대를 동여매 고정한 도굴꾼의 팔뚝까지 톱날을 허용하고 말았다. 상처는 생채기 이상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악!”


“개새애끼가!”


옆에서 욕설과 함께 쌍수로 휘둘리는 공격이 들어왔다.


회이던의 옆구리는 노리기 안락하게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화살이 정확하게 날아들어 공격자의 이마 한복판에 처박혔다.


“끄훼붹?!”


화살대가 부르르 떨리면 그 진동은 두개골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눈깔 뜬 모양도 그와 함께 멍청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회이던은 전기톱을 허릿심으로 강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비단 톱날만이 아닌 방패도 함께 휘둘리고, 그 방패에 단단히 묶어 고정해 놓은 팔뚝도 휘둘렸으며 그 팔뚝이 달린 어깨와 전신도 함께 휘둘렸다.


육중한 덩치가 화살 맞은 놈에게 날아들었다. 둘은 한 데 나동그라지며 얽히고설켜 우정을 과시하였다.


“끄하아악···!”


“께에엑.”


이마에 화살 꽂힌 채로도 힘차게 비명을 내지르는 기특한 모습이다. 그러나 눈 한쪽이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가 있는 것이 제 전력을 발휘할 상태는 아닌 듯 보였다.


카에키는 재빨리 시위에 화살 한 자루를 더 걸어 놓았다. 그 사이 회이던은 톱날의 방향을 아래쪽으로 수정한 뒤 무뢰배들 겹쳐 있는 위쪽으로 도약했다.


“시이이이이발···!”


날렵한 순발력이었다. 회이던이 아닌 무뢰배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두 개의 암기가 정확하게 노려 솟구쳐 오르는 것이 회이던의 눈에 들어왔다.


고양감에 눈멀어 있었다면 아주 약간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길 가다 벼락 맞는 게 위험한 것처럼 말이다.


“영특하네.”


암기 하나는 발로 쳐내었다. 다른 하나는 카에키가 쏘아붙인 화살을 맞고 튕겨 나갔다. 튕겨 나간 암기는 경우 좋게도 회이던을 조금 어슷하게 지나치기에, 그 옆에 있는 손으로 붙잡았다.


아래 향하며 내려꽂힌 톱날은 무뢰배 가운데 하나의 몸을 뚫으며 아주 그냥 완전히 작살내 버렸다. 그렇게 다짐육을 생성하는 사이, 손에 들린 암기는 이마에 박힌 화살 옆에 깊숙이 쑤셔 박혔다. 그걸로 끝.


“끼긱 끼기긱.”


전기톱이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미 죽은 시체의 입에 남아 있던 소리가 마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회이던은 전기톱이 뭐라 말을 시작하기 전, 급히 입자화하여 공중으로 흩뿌렸다.


고개 돌려 현장의 구석을 바라보니, 거기 우두커니 서 있는 성직자는 몸을 바들거리고 있었다.


일련의 도륙을 자세히 바라보며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도륙이 벌어지기 전부터 몸을 떨어대던 것의 연장인지는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눈동자는 몸을 따라 어찌할 나위 없이 흔들리며 흐리멍덩했다.


“다··· 당신···.”


재기발랄한 무용을 1열의 객석에서 목도한 감상은 어떨까. 뒤에 이어질 말이 뭘지 예측해 보는 재미가 있다.


당신 손에 들린 그거 마검인가요, 뭐 이렇게 말 이으면 그나마 무난한 수준일 테다. 역모를 꾸미는 반역자여 순순히 횃불의 오라를 받거라, 이 따위 말이 이어진다면 이미 한 번 집어넣은 전기톱을 번거롭게 다시 꺼내야 할 것이고 말이다.


“손에 들린 그거··· 마검인가요···?”


무난한 수준이다. 막 김이 새거나 그러진 않았다.


“대답에 따라서 태도가 결정됩니까?”


“예? 아뇨, 그럴 리가···. 아, 감사 인사를 못 드렸네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성직자는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더니 허리를 숙였다. 상정의 범위 내에는 놓지 않았던 반응이다. 회이던은 할 말을 잊고는 두 눈을 천천히 끔뻑거리기나 했다.


“아니 뭐 감사할 것까지야. 나도 간만에 성취감을 좀 느낄 수 있어서 좋았으니깐···.”


“제 오지랖에 괜히 끼어드셔서 피를 보셨으니깐요···.”


성직자는 눈길을 어느 방향으로 옮겼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 그곳에 무덤 용도의 건축물이 있었다.


앞쪽에는 조각상이나 깨진 도자기 같은 것이 널렸는데 교단의 상징물 같진 않았다. 그보다는 교단이 척결하고자 공들이는 과거의 예술품들에 더 가까워 보였다.


이상한 일이다. 교단의 성직자라면 저런 것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쓸 까닭이 없다.


눈깔 까뒤집고 입에는 거품을 물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망치를 치켜들어 쳐부수는 것이 정상이다···. 물론 눈으로 보기에도, 행위가 품은 함의 측면에서도 지극히 비정상이지만 그게 주류가 된 세상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무슨 궁리였을까. 저것들은 시중에 유통되어선 안 됩니다. 제가 망치로 깨부술 수 있도록 어서 이리 내놓으세요. 이런 과정이었으려나 싶다. 그럴듯한 추측은 몇 가지밖에 도출되지 않았다.


“당신, 이단입니까?”


그렇게 뇌를 거치지 않은 무례함이 여과 없이 입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성직자는 손사래를 치며 허둥거렸다.


“예에? 무, 무슨 소릴···! 횃불 앞에 그 누구보다 신실한 사람이 저인 걸요···!”


“횃불에 진정 신실한 사람은 마검 사용자로 의심되는 양반을 눈앞에 놓으면 아주 지랄 발광을 해야 정상입니다. 그들은 저기 잡다하게 널려 있는 것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부류도 아니지요.”


“아, 아니에요. 목숨을 건 것까진 아니었어요. 여차하면 저도 수단이 있어서···.”


“지금 얘기에서 요점은 그게 아닌데.”


“신앙의 방식에 정상성은 없으니깐요···.”


이단 확정이다. 제아무리 교인이라 할지라도 저렇게 포용성을 발휘하는 발언을 했다간 그 즉시 쇠꼬챙이 행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직자는 몸에 묻은 흙을 털더니 무덤 건축물 근처로 몸을 옮겼다. 그 앞에 무릎을 꿇은 그녀는 흩어진 부장품들을 쓸어 담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무릎을 다시 꿇을 것이라면 몸에 묻은 흙은 대체 왜 털었는가. 그러는 모습이 썩 이색적이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였다.


회이던도 슬며시 옆에 다가가 거들었다. 하지만 틈을 타 무뢰배 이마에 꽂힌 화살을 뽑는 카에키는 영 마뜩잖은 표정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릇을 씻어야 식사가 완전히 끝나는 법이니깐요.”


“이상한 비유네요···.”


직사각형의 건축물 안쪽도 바깥면 못지않게 오래된 세월의 자취가 역력했다.


원래 벽돌이 깔려 있었을 단단한 바닥은 흙으로 뒤덮여 인위적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안쪽까지 침입한 덩굴은 비 내리는 날에 비친 유리창처럼 흘러내리는 형상이었다.


성직자는 도자기 파편을 고이 손바닥 위에 모아서 상 위에다 올려 놓았다. 원래 인골을 수납해 놓는 용도인 듯했지만 깨진 상태이니 별수 없다.


회이던은 그 위에다 인골들을 적당한 모양으로 흩뿌렸다. 이것저것 훼손되긴 했다만 얼추 무뢰배들의 침입 이전과 비슷한 모양새로 복원되긴 하였다.


성직자는 두 손을 모으더니 기도를 시작하였고, 회이던은 그런 그녀를 아연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무덤 바깥으로 나갔다.


한 5초 정도 하고 말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굳은 몸은 움직일 채비를 하지 않았다. 결국 45초가량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성직자는 모은 손을 풀고는 무덤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녀를 바라보는 카에키의 눈초리에는 더 미심쩍은 기색이 실리고야 말았다.


“감사합니다. 괜히 노고를 끼쳐 드렸네요.”


“성취감 느껴졌으니 신경 쓸 필욘 없다니깐···.”


“저 혹시··· 산을 넘는 중이신가요?”


“이미 산 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 마나 한 질문 같습니다만. 그보다는 어느 쪽 방면으로 가는지 묻는 게 더 적당하지 않은가요.”


“아, 그러네요. 어느 쪽으로 가시는 길인가요?”


“진정한 북방으로.”


“가는 길이 겹치네요. 저도 그쪽 방향으로 가기 위해 산을 넘고 있었답니다···.”


대개는 진정한 북방으로 향하겠다 호언하는 것 자체가 미치광이의 행실로 비추어진다. 돌출된 것을 몹시도 혐오하는 교단은 해당 미치광이를 예의 주시하는 대상으로 삼기 마련이다.


그런데 예의 주시하다 보면 꼬투리 삼을 만한 게 최소한 하나쯤은 나올 수밖에 없다. 애초에 그런 것이 나올 때까지 예의 주시를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쇠꼬챙이 행.


그러나 성직자인 그녀는 번번하게 규범 바깥의 면모를 내비치는 회이던을 동네 고양이 다루듯 태연하게 대하였다. 역시 이단이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신실한 사람이라 자부하지 않았나요. 문명 속에서 교리 설법에만 애쓰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그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요.”


대답하는 성직자의 얼굴에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가 떠올랐다. 우물쭈물하는 인상에 금세 섞여 중화되었지만, 회이던은 찰나 동안 떠오른 그 낯빛을 분명하게 살필 수 있었다.


“마차에 자리 있습니다. 타시겠습니까?”


“아, 본업은 마부이신 거네요···?”


“아닌데요.”


“아, 죄송합니다···. 어쨌든 권해 주신다면야 마다할 까닭이 없죠. 정말 감사해요. 저는 콰엘하치드, 나프 콰엘하치드라고 합니다.”


“여기 이 꼬마애는 카에키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그쪽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잠시 후, 성직자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카에키는 그런 그녀를 내내 반감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카에키도 교단에 대한 반감이 회이던 못지않을 것이다. 성직자는 그런 두 사람을 조금은, 두려움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요지는, 조금은 그랬다는 것이다. 완전히 그런 게 아니라 조금만. 그 점이 이상했다.



***



슬슬 해 질 녘, 회이던과 카에키가 왔다 간 직사각형의 건축물 옆이 또다시 떠들썩해졌다.


기껏 정리해 놓은 부장품들은 더더욱 훼손된 채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애틋한 모습으로 함께 죽어 있는 무뢰배 옆에 여섯 명 정도가 서 있었다.


그들 모두 분노에 참 외마디를 내지르며 길길이 날뛰어댔다. 워낙에 살벌한 분위기라, 근처 지나는 사람 하나라도 보이면 다 같이 우루루 몰려들어 고문치사를 가할 것만 같은 낌새다.


“상처 모양 좀 보십쇼! 악마 짓거리가 틀림없습니다악!”


“이렇게 의로운 녀석들이 개처럼 죽임당하다니요! 시발, 산에 있는 악마 새끼들 다 죽여 버리죠!”


“멍청한 새끼들아, 사람이 한 짓거리야. 이마에 꽂힌 쇠붙이는 뭐 악마들 제품이냐?”


그들의 수괴로 보이는 작자는 열이 잔뜩 실린 콧김을 내뿜었다. 충실한 부하 두 명이 살해당한 슬픔을 차차 분노로 치환시키는 중이었다.


골진 형제는 참으로 의롭고 인정이 넘치는 녀석들이었다. 무고한 이들의 살갗을 찢어발기는 형제의 순수한 얼굴을 지켜보고 있으면 마음의 안정이 절로 찾아오곤 했다.


정말이지 순수하고 착한 녀석들인데, 이렇게 박복하게 죽어선 안 되었다···.


“누군진 몰라도, 용서는 절대 없다···.”


“두목! 여기 보십쇼! 마차 바퀴 자국입니다! 지나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무슨 근거로?”


“예? 모르겠네요. 그냥 그런 것 같아서요.”


수괴를 제외한 무리가 우루루 바퀴 자국으로 몰려갔다. 이리저리 살피거나 했다. 수괴는 죽은 형제들의 눈을 감겨 주고는 다시 한번 콧김을 내뿜었다.


“좋아! 이 새끼들아, 골진 형제의 억울한 넋을 풀어 주자! 이 짓거리를 한 놈을 찾아서, 뼈가 가루가 될 때까지 심한 짓을 멈추지 말자!”


“골진 형제를 위하여!”


“위하여!”


“이하여어!”


“하어어!”


다들 그렇게 동료의 죽음을 빌미 삼아 짜릿한 단결을 이루어 냈다. 그때 멀리서 다가오는 형체가 있었다. 지는 햇빛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워 그들 발치에 닿게 했다.


무뢰배들의 이목이 그림자 주인 쪽으로 쏠렸다. 그들 모두 상기된 낯빛이 띠었다. 그러더니 입맛을 다시거나 혀로 윗입술을 핥거나 하면서, 조금 징그러운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원수를 갚는 것은 장기적인 과제이다. 골진 형제의 죽음이 슬픈 건 슬픈 거고, 할 건 해야 한다. 눈앞의 먹음직스러운 고기 인형을 그냥 통과시켜 주기엔 영 아쉬웠다.


“시체 좀 살피겠습니다.”


그러나 그림자 길게 드리우고, 그 면상에도 그림자 덮인 노인은 낯빛 한번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한 자태로 그들 사이를 통과해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 당돌한 모습에 누군가는 헛웃음을 터뜨렸고, 누군가는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노인은 야차와 같이 한껏 일그러진 무뢰배 수괴를 지나쳐 골진 형제의 시신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허리를 숙여 유심히 바라보니, 명백히 톱날에 의해 새겨진 상흔이 눈에 완연히 띄었다.


“영감, 지금 뭐 하는 짓거리지?”


“시체의 상처 자국을 살피고 있습니다.”


“무슨 목적으로?”


“여기 죽어 있는 사람들, 귀하의 동료입니까?”


“하하, 그게 영감이랑 무슨 상관이야. 묻는 말에나 대답해, 이 시발놈아. 대가리 박살 낸 뒤에 저기 무덤 건물 안에 얹어 줄까?”


“원수를 갚을 생각이지요?”


“시발, 뭔 상관이냐고. 힘이라도 보태 줄 거냐? 엉?”


“그럴 생각이군요.”


“뭔 개소리야?”


말 마친 무뢰배 수괴의 목이 옆으로 슬쩍 기울었다. 기울어진 머리통은 그대로 바닥에 툭 떨어져 내렸다. 뒤이어 몸뚱아리가 털썩 무릎을 꿇으며, 거구 뒤편에 가려져 있던 조날루 헤티치오의 모습이 무뢰배들의 시야에도 들어왔다.


그의 칼에는 피가 조금밖에 묻어 있지 않았다.


“시, 시바알! 두목!”


“뭐, 뭐 하는 새끼야! 저 짓거리 한 새끼 동료냐?!”


“동료는 확실히 아닙니다.”


검날의 끝이 하늘에 뉘엿거리며 조금밖에 남지 않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다소의 곡성이 산길 옆쪽에 난 삼림을 가득 적셨는데, 거기 노인의 목소리는 단 한 소절도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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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24.09.02 13 0 17쪽
29 29 24.09.01 13 0 26쪽
28 28 24.08.31 10 0 16쪽
27 27 24.08.30 14 0 19쪽
26 26 24.08.29 12 0 16쪽
25 25 24.08.28 16 0 21쪽
24 24 24.08.27 11 0 22쪽
23 23 24.08.26 14 1 27쪽
22 22 24.08.25 49 0 19쪽
21 21 24.08.24 18 0 23쪽
20 20 24.08.23 16 0 18쪽
19 19 24.08.22 17 0 22쪽
» 18 24.08.21 16 0 22쪽
17 17 24.08.20 19 0 26쪽
16 16 24.08.19 19 1 21쪽
15 15 24.08.18 22 1 28쪽
14 14 24.08.17 21 1 17쪽
13 13 24.08.16 19 0 19쪽
12 12 24.08.15 18 0 18쪽
11 11 24.08.14 18 0 18쪽
10 10 24.08.13 22 0 20쪽
9 9 24.08.12 24 0 23쪽
8 8 24.08.11 30 0 19쪽
7 7 24.08.10 36 0 16쪽
6 6 24.08.09 35 0 26쪽
5 5 24.08.08 35 0 18쪽
4 4 24.08.07 52 0 23쪽
3 3 24.08.06 64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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