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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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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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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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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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20



“자··· 자세히라면 어떻게···.”


“지옥의 색채를 보았을 때 자매님의 마음에 떠오른 번민에 대하여. 말 풀어내는 방식은 재량에 맡기겠습니다.”


“이런 젠장, 뭔 속셈이냐?”


“속셈은 방금 소상하게 말씀드렸을 텐데요. 지옥불의 현현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다. 그뿐입니다.”


노인의 표정에 감정은 없었다. 회이던을 향해 맹렬히 증오를 불태우고 있을 텐데도 눈썹 사이에는 찌푸린 주름살 하나 보이지 않았다.


회이던의 등짝에 땀줄기가 일었다. 저 미친 영감이 당최 뭔 속셈인지 알 수 없었다.


나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어. 근데 당신 너무 강해서 이길 수가 없어. 그래서 그냥 분탕이나 칠래. 뭐 이런 심산인가 싶었다.


인질까지 붙잡고 요구하는 것이 고작 재미있는 이야기 더 해 주십쇼라니, 농이라 해도 별 재미 없다.


회이던의 눈동자는 카에키 목에 들이밀린 칼끝에 걸쳤다. 노려보는 눈초리가 날붙이를 부숴버릴 듯하였다.


칼끝이 조금이라도 수상히 떨리면 곧장 달려들 생각이었다. 노력과 운이 따른다면 얕게 찔리는 수준에서 저지할 수 있을 테다. 얕게 찔린다 하여도 중상에 달하겠지만, 그러하다.


그러나 회이던과는 상반된 얼굴의 조날루는 그의 생각을 모두 꿰고 있다는 듯하였다.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말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섬칼리고드, 섣부른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운과 노력이 따른다면 얕게 찔리는 선에서 여자아이를 구해낼 수 있다 생각하시겠지요. 그러나 두꺼운 갑옷 걸치지 않은 당신의 근육은 관찰하기 쉽습니다. 아이의 명운을 운에 맡기는 우를 범하지 않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놈을 봤나.”


“우선 그 마검의 울음소리를 진정시키십시오. 이야기를 듣는 데 방해가 됩니다.”


“임의로 잠재우는 법은 모른다. 시간 지나면 조용해질 거야.”


카에키는 제법 그렁그렁하게 회이던을 응시하였다. 으르렁거리던 회이던은 돌연 표정을 바꾸어, 확신이 실린 눈으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돈 받은 만큼은 일해야지. 물론 네가 낸 만큼 진작에 일했고, 지금은 초과 근무이긴 하다만 그래도 할 건 해야지···.


그러나 확신 담은 눈은 거짓이었다. 회이던은 솔직히 별 확신이 없었다.


카에키가 목 찔려 죽으면 화가 날 것 같았다. 근 며칠간 함께 다니며 대화다운 대화도 조금 나누었고, 심지어 그것은 한쪽이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기에 조금 더 많이 기억에 남았다.


발롬니 공의 시신을 보았던 순간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화는 날 것 같았다.


한편 무대의 중심이 된 나프는 애간장을 태우며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안달 난 눈은 회이던을 향해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것 같았다.


뭘 어쩌긴 어쩝니까. 이야기 원한다잖아요. 다 듣고 나면 이야 이것 참 괜찮은 이야기였습니다 실례 많았습니다 좋은 밤 되십쇼 하며 해코지 안 끼치고 떠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어서 입을 열어. 회이던은 그런 뜻을 담은 눈빛으로 회답했다.


카에키와 같이 지내다 보니 이런 게 문제가 되었다. 눈빛에 뜻 전부를 심을 수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세심한 표현력을 담기에 회이던 얼굴 조형은 지나치게 삭막하여 별 효력이 없었다.


결국 뭐라 말 덧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말 좀 들어보고 싶다잖아요. 뭐라도 말하십쇼.”


“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조날루는 대답 없이 그저 말하는 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회이던도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카에키도 당연히 대답 없었다.


“그··· 환시인지 뭔지, 지옥불 색깔을 목격한 건 제가 피워낸 불꽃 속에서잖아요? 바로 이거요···.”


나프는 영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바닥 위에 불꽃을 일으켰다. 살갗과 조금 떨어진 위에서 촛불처럼 맹렬하지 않게 일렁였다.


“다들 이것을 권능이라 불러요. 자애로우신 횃불께서 내려 주신 축복의 은혜. 그런데 지옥불의 색깔이 그 신성한 불꽃 안에서 일렁였죠···.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중 하나는 제 안에 어찌할 나위가 없는 악의 구렁텅이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


나프는 그녀 손바닥 위 작은 불빛에서 시선을 떼어 놓지 않았다. 어딘가에 정신을 맡겨놓은 듯 혼이 빠진 얼굴이었다. 공기 연소시키며 물줄기처럼 얇은 연기가 끊김 없이 떠올랐다.


“수녀원에서 저를 교육하신 주임 사제님께선 악이 내재하였기에 구제할 도리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셨어요. 심문관의 역할은 그런 사람들을 솎아내는 것이라면서요. 말씀대로라면 제가 그 예시에 부합하는 인간이 되겠죠···.”


“세뇌 교육 맞네요. 방금 발언으로 확정입니다.”


“에··· 그런가요?”


“그게 지금 중요합니까? 저 인간 원하는 말이나 마저 해요.”


그러나 회이던은 다음에 이어질 나프의 말을 알 것도 같았다. 언젠가 회이던 자신도 다른 누군가의 앞에서 그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성한 불꽃 속에서 그와 대척되는 악의 흔적을 읽었다는 사실 그 자체···. 그 사실이 선사하는 충격과 공포와 무력감 그 자체예요.”


조날루의 눈살이 심히 일그러졌다. 회이던이 숨 내쉬듯 범하던 모독과는 무게감 자체를 달리하는 모독.


나프의 추측은 신성이 악을 내재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그 발언 자체가 일가족을 비롯 그 자손과 자손들의 생명까지 축출해 서로 다른 초야에 파묻어야만 하는 중죄이다.


나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도 조날루와 다를 바 없는 교인이다. 그러나 여전히 신실함을 간직하고 있기에 그녀 말의 무게를 허투루 여길 리 없다.


“그렇게 세 개의 의구심이 떠올랐죠. 하나는 저의 눈과 마음을 향한 의구심. 심문관이 되기엔 너무나 유약하여 그만 헛것을 보고 만 두뇌의 부적격함에 대하여. 다른 하나는 저의 본성을 향한 의구심. 결국 악마 숭배의 운명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악한 천성에 대하여.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른 하나는 좆같은 교단 새끼들이 현 세태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겠지.”


회이던은 대뜸 말을 가로막으며 끼어들었다. 발롬니 공으로부터 함양 받은 교육 수준은 어디로 갔는가.


대체 어디서 비롯된 싸가지인지 알 수 없다. 오직 천성적인 쌍놈만이 적절히 교육받은 수준을 지니고도 저 정도의 싸가지를 발휘할 수 있다. 조날루의 얼굴에 빗금이 하나 더 생겼다.


“횃불께서 영광된 일에 사용하라고 불꽃을 내려 주셨다면 그에 걸맞게 인간다운 쓰임새로 활용해야지, 왜 악마들처럼 인간들 불태우는 데 사용하느냔 말야. 이거 아닙니까?”


“어··· 그렇게 막 과격하진 않은데 비슷하긴 하네요···. 어쨌든 그 때문에 도망을 택한 거였어요. 셋 중 어느 가능성이 들어맞아도 죽음에 준하는 고초를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저 개인적으로도 해답을 갈망하였기에···.”


나프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 짜내던 얼굴에는 자신의 궁색한 신변을 어째서 그리 듣고 싶어 했는지 의문스러워하는 표정만이 남았다.


“이보쇼, 헤티치오. 결국 그런 거요. 나 전에도 이 얘기 누구에게 한 적 있는 것 같은데, 교단이나 악마나 그토록 숭상해 마지않는 불을 이용해 사람들을 불태워 죽이지. 어린애가 봐도 극명한 공통점인데 뭔가 시사점을 느낄 수 없나?”


“귀를 씻고 싶은 심정이로군요. 참담할 따름입니다.”


카에키의 목에 날카로운 칼끝이 한 번 더 닿았다. 표피를 찔러 뚫을 기세까지는 아니었으나 서늘한 위협 정도는 되었다. 회이던은 이빨을 뿌득 갈면서 으르렁거렸다.


“신과 마왕은 동일한 존재라는 식으로 논리를 비약할 생각은 없어. 말을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 교단이 제일 잘하는 게 표면을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잖아. 다른 뜻 없는 행위에서 억지로 배교의 의미를 발굴해 내면서 말이지.”


조날루의 철벽같은 눈매가 좁아졌다. 이를 갈아대며 던진 말이 마침 그의 역린이었나 보다.


“표면이라. 주제를 바꾸어 나의 주인이셨던 마테오크 윌딤 공의 최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죠. 성전의 선두에 서 계셨던 고결한 분께서 악마병에 젖은 추악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아직도 그 문제로 씨름하고 있어.”


“제겐 모든 것이라 말했을 텐데요. 표면이라는 잣대가 고결함의 추락, 윌딤 공의 최후에 대해서는 어떻게 작용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조날루는 분노를 가만히 침잠시키며 고요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결국 지옥불에 대한 논의란 여기 이 지점에 수렴하기 위해 선행되었던 것이다.


마테오크 윌딤이 그저 살해당하기만 하였다면 증오의 주체는 명확하다. 냉기가 어릴 만큼 갈아낸 칼날을 이용해 사도 살해자인 섬칼리고드를 베어 설욕하는 것으로, 간단명료하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 고결한 이는 가장 추악하고 불경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아 그의 시종마저 잊었다. 다른 추악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맥락 없는 살육에만 집착하며, 횃불의 따사로움 없는 축축한 지하에서 가장 추악하게 죽었다.


교단은 악마병의 발현 원인을 마음속 불신과 배반 탓으로 돌렸다. 성전의 으뜸인 횃불의 사도마저 마음속에 가장 사악한 죄악을 품고 있었다는 게 된다.


교단의 충실한 개로서, 그리고 사도의 명예를 보존하고자 하는 충직한 시종으로서 막다른 길에 몰리고 말았다.


사도를 향한 봉사는 시종의 오래된 삶에 남은 전부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조날루 헤티치오는 납득할 수 있는 해답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듯 악에 받친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건 그의 사정일 뿐이다. 회이던이 조력해 줄 까닭은 없다.


“내가 왜 당신 자아성찰 도와야 해?”


조날루는 회이던을 말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카에키의 목 근처에 실린 칼끝은 미동이 없었지만, 표정은 다양한 것을 암시했다. 회이던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좋아. 교단 식의 해석을 흉내 내면 다음과 같이 풀어낼 수 있을 것 같구만. 나 개인의 의견은 아니니 듣고 너무 분개하지 말라고.”


“들어는 보겠습니다.”


“사실 마테오크 윌딤 공은 고결한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정의를 행하고 있다 생각하였던 그는 사실 악마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지. 그리하여 마지막에 이르러선 추악한 악마로 화하여 마왕에게 보답받았다. 이게 교단 식으로 표면을 무시한 해석이야.”


제법 속을 박박 긁어놓을 내용이건만 조날루는 여전히 건조한 표정 그대로였다.


“혹은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있지. 마테오크 윌딤 공께선 운 없이 악마병에 휘말리셨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그러니 우리 모두 위생과 청결에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하자. 교단의 충실한 개인 당신은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나?”


“···.”


어느 쪽이건 마음에 들지 아니할 것이다. 마케오크 윌딤이 변이할 적 조날루가 외친 말이 있다.


회이던 섬칼리고드, 당신 무슨 짓을 한 겁니까? 그에게 있어 제 주인의 몰락은 회이던이 꾸민 흉계여야만 했다. 그게 주인의 명예를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악마 숭배하는 섬칼리고드에 맞서다 악마병에 휘말려버린 마테오크 윌딤 공, 그 숭고하며 덧없는 순교.


그러나 회이던은 마테오크 윌딤을 살해하였을 뿐 그밖에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답을 구하고자 몸부림치는 눈앞의 노인도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노려보는 눈빛만이 존재했다.


“카에키를 놓아줘. 밥 다 식었다. 이 쓰레기 같은 논쟁이 하도 썰렁해서 더 빨리 식었다고.”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뭐? 장난하나. 그쪽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무기를 내려놓기 전까진 협상도 없습니다.”


“교단의 개새끼들에겐 통하는 약도 없어. 그때 죽여 놔야 했는데···!”


그런데 왜 안 죽였을까. 작금의 상황을 교훈 삼아 다음번에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때 손에 들린 전기톱에서 지직거리는 잡음이 일더니 이내 명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뭔가 좋은 묘수라도 제안해 주려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스쳐 반가웠다. 그러나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미리 알기에 반가움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치환되고 말았다.


“분석 결과, 상당히 위중한 상황으로 사료되는 바입니다! 곤경에 처한 귀하를 위해 톱날을 발사하는 기능이 준비되어 있지요! 발사한 톱날은 회수할 필요 없이 전자기력으로 인해 자동으로 되돌아온답니다! 해당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 차감해야 하는 점수는···.”


“이런 미친, 제발 좀 닥쳐 주겠니. 톱날이고 자시고 애가 죽는다고. 분석력에 인간성이란 것을 좀 가미해 봐라.”


“당국에 봉사함에 있어 인간성은 불필요한 요소입니다!”


“미친 새끼들 이야기를 쌍으로 들어야만 하는 내가 너무 가엾다···.”


나프는 대뜸 말하는 무기를 보더니 한층 더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조날루 헤티치오는 그 무엇에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낯짝이었다. 뒤이어 전달받은 노인의 목소리는 부드럽기 그지없어, 분노로 인해 타오르는 마음을 싸늘하리만치 식혔다.


“섬칼리고드. 정 내키지 않으신다면 무기를 내려 놓으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그로 인한 결과를 목도한 뒤 저를 죽이시면 됩니다. 여자아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겠죠.”


회이던의 시선은 조날루가 아닌 그 아래의 얼굴, 카에키에게 닿았다. 두 사람의 눈길이 서로 맞물렸다.


그녀 눈에 실린 감정은 간절함이었을까, 생을 향한 간절함이 읽혀야만 했다.


그러나 어쩐지 편안해 보였다. 약간은 체념한 듯하여, 편한 눈빛.


그래선 안 되었다.


“이런 젠장. 당신 명을 따르지.”


회이던은 손가락에 들어간 힘을 모두 거두었다. 무거운 전기톱이 흙바닥 위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울렸다.


회이던은 옆에 서 있는 나프의 손도 탁 내리쳤다. 그녀 손에 들린 지팡이도 바닥에 떨어졌다.


벌거벗은 듯 무장이 완전히 해제되었다. 그 상태로 조날루를 노려보며 잠자코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머릿속으론 그가 어떻게 나올지에 관한 모의실험이 돌아갔다.


카에키를 냅다 던지고는 회이던에게 달려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회이던에게 편한 방향성이다. 자신의 고통을 느껴 보라며 카에키의 목을 베어버릴지도 모른다. 손에서 무기까지 떨어뜨린 회이던이 망연해하는 것을 살피려 들지도 모른다···.


“좋습니다.”


조날루의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에키의 목을 감싼 굵은 팔뚝이 스르륵 풀렸다. 그뿐이었다. 회이던은 다소 아연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카에키는 급히 몸 을으켜 회이던에게 조르륵 달려갔다. 그대로 그의 등 뒤에 숨었다. 몸에 성에가 끼는 듯했지만 망연한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조날루 헤티치오는 장검을 칼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회이던은 지금이라도 전기톱을 들어 올려 노인을 공격할지 고민했다. 혹은 전자기 뭐시기 기능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처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얼빠진 말 한 마디 나오고 말 뿐이었다.


“뭐야, 끝이요?”


돌아오는 답 없었다. 조날루는 회이던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모습 그대로 멀어졌다.


천천히 뒤로 걷던 그의 몸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그럼에도 회이던을 바라보며 빛나는 안구의 번득임만은 오랫동안 관측할 수 있었다.


그것마저 보이지 않게 될 때야 회이던은 고개 돌려 카에키를 바라볼 수 있었다. 목부터 살폈는데, 굵은 팔뚝에 오래 붙들려 있던 것 치곤 자국이 남아 있지 않았다.


“괜찮아?”


카에키는 약간씩 기침을 할 뿐 괜찮아 보였다. 회이던을 슬며시 올려다보는 눈빛에는 면목 없어 하는 기색이 읽혔다.


회이던은 괜찮다며 그녀 어깨를 토닥였다. 면목 없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돈 받고도 의무 이행하지 못할 뻔한 자기 자신이다. 물론 지금은 돈 받은 만큼 전부 일했고 초과 근무에 달하였지만···.


나프는 조날루가 사라진 어둠에서 눈을 떼질 못하였다. 여전히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저, 저 사람 뭐래요? 말하는 걸 보면 섬칼리고드 님께 무슨 원한을 품은 것 같던데···.”


“저에게 원한 가진 사람만 해도 수레 몇 대 분량은 나올 겁니다.”


“아, 그렇겠네요···.”


회이던은 바닥에 연신 침을 뱉는 카에키를 자기 앉아 있던 자리 옆에 앉혀 놓았다.


카에키는 자신의 몸이 내뿜는 한기를 부끄러이 여기는지 혹은 그것을 감내하는 타인에게 미안함을 느끼는지, 의도적으로 거리를 벌려 앉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나 북방으로 더 올라갈수록 추위는 강해질 것이다. 거기에 더 얹는다 한들 죽기야 할까. 익숙해지면 그만일 테다.


회이던은 아랑곳 앉고 여자애 옆에 앉으며 쇠망과 냄비를 모닥불 위에 올렸다.


“식사는?”


카에키는 고개를 저었다.


“물음표를 붙이긴 했다만 의사를 물어본 건 아니야. 잘 거면 먹고 자.”


시간 지나자 냄비 속 물질들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회이던은 국자로 한 그릇씩 퍼 올리며 조날루 헤티치오에 대해 생각했다.


죽일 수 있었지만 이번에도 그러지 않았다. 이 어리석음이 훗날 목덜미를 가르는 칼날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그럼에도 어째 친히 자비를 베풀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 신성 모독에 일가견이 있으신가 봐요. 말씀을 물 흐르듯 하시던걸요. 회이던 섬칼리고드에 대해 들은 악명이 전부 꾸며낸 것만은 아닌가 봐요···.”


“칭찬 감사합니다. 그쪽 지옥불 일화도 사람들 마음에 경종을 울릴 만한 이야기던데요. 신성 모독계의 될성부른 떡잎입니다. 그것을 움트게 하고자 저를 본받고 싶으시겠죠.”


“예···? 아뇨···. 전혀···.”


밤은 깊어갔다. 걷잡으려는 나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잡탕은 쓰레기 같은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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