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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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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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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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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DUMMY

19



능선을 무난히 따라간 마차는 어느덧 등성이의 정상 부근이었다. 회이던은 야영을 위한 평탄한 땅을 수색한 뒤 모닥불 피울 채비를 했다.


“불 피우는 건 제가 할게요.”


나프는 나무 부스러기 모아 놓은 지점에 두 손을 모아 가져다 댔다. 화륵 하는 소리와 함께 빈 곳으로부터 작은 불길이 일었다. 쉽사리 옮겨붙은 불은 점차 몸집을 불리더니 모닥불만 하게 타올랐다.


회이던은 얼음 부수어 가득 채워 넣은 항아리 속에서 생고기를 꺼냈다. 오늘도 초라한 잡탕이 제공될 것이다. 심심하게 우울한 사실이다.


회이던이 조리를 위한 밑 준비를 하는 동안, 나프는 자기가 피워 놓은 불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번질거리는 주황빛이 비치는 눈동자의 얇은 막에 무언가 알 수 없는 생각이 맺힌 듯했다. 적막으로부터 감흥을 찾는 모습은 아녔다.


“교단 마법··· 아니, 권능이란 게 이럴 땐 정말 편하군요.”


“예? 아아, 그렇지요. 그러네요.”


회이던은 잔부스 학살의 밤 이후로 문명의 권역에는 통 가까워진 적이 없었다. 정신적으로 그러하였지만, 물리적으로도 그러했다. 그래서 본인의 악명이 어떠한 방식으로 나래를 펼쳐 와전되었는지도 잘 모른다.


어쩌면 인육을 즐겨 섭취한다든가 하는 얼토당토않은 헛소문이 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교단 측에서 날조와 호도를 자제했을 리 없다. 아주 푸짐하게 해댔을 테다. 그러나 나프가 회이던 대하는 태도에서는 그러한 맥락을 읽어낼 수 없었다.


그녀는 눈앞의 궁핍한 남자가 천하의 상놈 섬칼리고드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도 비교적 태연했다. 회이던을 악마 숭배자, 추기경 살해자마냥 대하지 않았다. 그저 입질을 미친 듯이 해대는 동네 고양이처럼, 약간은 껄끄럽고 어색한 존재 대하듯 했을 뿐이었다.


카에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프는 몸에서 냉기를 뿜어대는 여자애를 그저 연민 섞인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불법 마법의 잔재는 척결되어야만 합니다 자 이리 오세요, 이런 말은 없었다. 저런 많이 힘드셨겠어요, 이렇듯 정상적인 말이나 남기는 것이었다.


“이단입니까?”


결국 또 뇌를 거치지 않고 말이 튀어나오고 만다.


“자, 자꾸 그런 말씀 하시네요···. 아니에요.”


“왜죠?”


“왜··· 왜냐뇨···.”


어째 놀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나 신앙에 독실한 사람이란 자고로 놀림을 당해도 싸다는 생각에 입각하여, 회이던은 미안하다는 마음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 도와드릴게요···.”


“그러실 필요 없는데. 그냥 가만 앉아 계셔도 됩니다.”


“아뇨···.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나프는 어깨에 두른 혁대의 주머니 속에서 허브 같은 것을 꺼냈다. 그런 잡다한 것들로 회이던이 잡탕 망치는 것을 방해했다. 분주하게 손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그녀는, 그러면서도 카에키 있는 방향을 힐끔거리거나 했다.


카에키는 첫 만남부터 이따금 나프를 흘겼다. 서늘하기 그지없는 반감을 품은 눈빛이었고, 어수룩한 나프는 어쩌다 시선이 맞물릴 때마다 절로 주눅이 들었다. 가끔 시선이 느껴져 간담이 서늘할 때면, 어김없이 등 뒤에서 싸늘한 시선이 꽂히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러했다. 카에키는 모닥불과는 조금 떨어진 위치, 쓰러진 통나무 위에 무릎 감싼 채 홀로 앉아 있었다. 그 상태로 흘기는 눈빛은 무슨 어둠 속 맹수의 눈깔마냥 희번덕였다.


“카, 카에키 양은 저를 계속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시네요···.”


“아, 그렇습니까.”


사회화가 덜 된 고얀 놈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 삶의 굴곡을 고려하자면 저러는 것도 온당했다.


발롬니 공은 다른 우주 어딘가에 멀쩡히 잘 살아 계신다. 그래서 회이던은 끓어오르는 분노 위에 뚜껑을 덮을 수 있었다. 그런데 카에키의 아버지는 그런 것도 없다. 그냥 불타 죽었다. 그러니 뭐든 증오하고 싶을 것이다.


표본 되는 집단을 하나의 인격체로 묶어, 그 개성을 집단의 구성원 개개인에게 투영하는 것은 마음의 억하심정을 해소하는 데 무척이나 도움이 된다···. 그러한 인간의 마음은 어쩔 수 없고, 어쩔 수 있다 해도 회이던에게 그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카에키 양, 계속 그렇게 경계하실 필요 없어요···. 저 역시 카에키 양은 피해자이지, 죄인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프 자매님을 경계하기 때문에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아닐 겁니다.”


고깃덩이를 저며내기 시작한 회이던은 무심하게 나프의 말을 정정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 고기를 수상쩍게 여기지 않아 줬으면 하는데, 이런 괴랄한 생각이나 하고 앉았다.


“그러면 왜 저러시는 걸까요. 저 뭔가 잘못한 거라도···?”


“자매님께서 잘못한 건 없고···. 보니깐 자매님께선 건실한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사시는 것 같더만요.”


“에··· 그러면 왜···?”


“직접 물어 보십쇼.”


“저한테는 말을 안 하시는데···.”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오가는 문장들의 짤막한 내용이 너무나 멍청스러웠다. 두 사람을 힐끔거리던 카에키의 표정도 저 사람들 당최 뭔 얘기 나누는 건가, 이런 느낌으로 떨떠름하게 변했다.


“그럼 얘기 못 듣는 거죠. 녀석 과거는 전적으로 녀석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누가 궁금해한다고 해서, 그리고 녀석은 말을 못 하는데 저는 할 수 있다고 해서 막 떠벌리면 그건 존중이 결여된 쌍놈이죠. 카에키가 말하고 싶지 않다 하면 그냥 그런 거예요.”


“그, 그렇군요···. 그럼 저도 카에키 양의 무서운 눈빛을 감내할게요. 정확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두 사람 대화를 듣고만 있던 카에키는 별안간 목에서 웅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약간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옳소, 당신의 말이 백번 옳소, 이런 뜻을 담은 것은 아녔다. 나프에게 자신의 신변에 관해 말해도 괜찮다는 의미인 듯싶었다.


회이던은 냄비에 뚜껑을 덮은 뒤 모닥불 위에 걸터 놓은 쇠망에다 올려 놓았다. 그리고 그 앞에 걸터앉았다. 불씨는 바람 부는 방향대로 저항 없이 휘날렸고, 어느덧 한층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은 그 아래의 나뭇잎들의 색깔이 드높은 자신의 몸에 물들도록 했다.


그래서 결국은 나뭇잎이 하늘과 분간되지 않았다. 불씨처럼 바람에 저항하지 못하여 비 내리는 듯한 소리를 흘리면서 저들끼리 비비고 비볐다.


“카에키의 아버지는 교단 것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뭔 죄악을 저질러서 그렇게 된 게 아녜요. 납치당한 딸내미를 찾아 해매이느라 주일 기도 빼먹었다는 게 그 까닭이랩니다.”


말하는 투는 건조했다. 그에 반하여 듣는 나프의 낯빛은 점차 어두워졌다.


“주일 기도를 빼먹어서 불태웠답니다, 주일 예배를 빼먹어서···. 자매님께선 스스로를 이단이 아니라 결단코 주장하시는데, 그럼 카에키의 아버지가 당한 처사도 온당하다 보시는지?”


조금 날 선 말투, 약간은 탓하는 것처럼도 들렸다. 회이던도 인간의 마음을 지녔기에 어쩔 수 없다. 상술하였듯, 표본 되는 집단을 하나의 인격체로 묶어 개개인에게 투영한다면 마음속 억하심정이 시원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다···.


나프는 머뭇거리며 카에키를 바라보고, 그 뒤 회이던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결국 그녀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다시 모닥불의 일렁임이 되었다. 나프는 입 열어 뭐라 말하기를 주저했다.


“자꾸 이단이냐 물어보시는 것 저도 이해해요. 제 모습이 일반적인 교인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 조금 많이 이상하단 것을 저도 인지하고 있거든요···.”


“대화의 요점은 그게 아닌데···.”


“어···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그래도 말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이상함이란 것에 대해서도 재정의가 필요한 것 같긴 합니다. 근래는 포용성이란 게 죄악으로 비치지요. 악마들의 침입 앞에서 인간의 단결을 이루어야만 하는 과업을 감안하여도, 그 행하는 방식이 너무나 압제적이라고.”


이하 발롬니 공과 나누었던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재수가 나쁘면 이야기 들은 자들도 덩달아 처형당할 수 있는 민감한 주제이다. 그런 측면에서 회이던은 정말 줘 패고 싶으리만치 재수 없는 인간상이라 할 수 있겠다.


“대부분 생물이 포용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산길의 짐승들, 바닷속 꽃게들까지도 다른 개체에게 포용을 발휘하곤 하지. 심지어 악마들도 그렇습니다. 제 동족을 의도적으로 상잔하는 악마에 관해선 들어본 적도 없고, 눈으로 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 왜 인간들만 이 따위일까요?”


“변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상황의 특수성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러한 정신을 요해야만 한다고 판단할 수는 있다 생각해요. 정도가 심하지만···.”


“그런 마음가짐들 덕분에 이상함이란 것이 이상하게 정의되어 버렸습니다. 다시 재정의해야 한다니깐···.”


줄줄 읊은 말은 어쩌다 보니 연설처럼 되었다. 글로 읽으면 그렇게 느껴지기야 한 텐데, 읊는 말투가 별 감흥 없이 시시껄렁했기에 술 취한 인간이 넋두리하는 것처럼 들릴 뿐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그 속에 품은 뜻뿐만 아니라 전달력도 중요하단 거다···.


하지만 들리는 말투가 실없이 느껴졌다 해서, 그 뜻마저 그렇게 여겨지진 않았다. 나프와 카에키 둘 모두에게 그러했다. 말끝을 흐린 회이던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하여 잠시간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카에키는 여전히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아 있기를 고수했다. 조금 전과 같이 나프를 계속 흘기진 않았다. 뭔가 생각에 잠긴 것 같기도, 혹은 무념에 이른 것처럼도 보였다.


회이던은 가끔 냄비 뚜껑을 열어 휘휘 젓거나 했다. 뜨거운 김이 차갑고 촉촉한 맨살에 닿으며 기이한 고양감을 불러일으켰다. 궁핍한 잡탕을 먹을 이들의 궁핍한 운명을 떠올리면, 그런 고양감 느끼는 것 자체가 기만이었다.


그리고 나프는 역시나 가만 앉은 채 타오르는 모닥불을 응시하거나 했다. 시시때때로 미묘하게 변화를 갖는 색깔들 안쪽에 무언가 들어 있는 마냥 그러했다. 그녀가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조금 뒤였다.


“저··· 원래는 수녀원에서 지냈거든요. 거기서 올바른 교인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이것저것 교육받았어요.”


“세뇌 교육 식입니까?”


“모르겠네요···. 그건 바깥에서 바라봐야만 판별할 수 있다 생각해요. 그 안에 속해 있던 저로선 제대로 분간할 수가···.”


세뇌 교육 운운은 약간의 비아냥조를 담아 농을 던진 것이었다. 진지한 답이 나올 거라 생각하진 않았던 회이던이기에 약간은 뻘쭘함을 느꼈다.


“그렇군요. 유용한 정보입니다. 계속하십쇼.”


“저는 횃불께서 내려 주신 권능을 다루는 데 있어 다른 동기들보다 능했어요.”


“그러셨군요.”


“그래서 심문관의 역할을 배정받았죠. 이수 받은 교육은 대부분 마음가짐에 대한 것이었어요. 마음가짐만 충족된다면, 일 하는 법은 절로 따라오게 될 거라면서···.”


회이던의 어깨가 움찔거리더니 한 번 들썩였다. 심문관, 어감부터 불길하고 음험한 그 직종은 실제 하는 일도 그만큼이나 음험하다.


그들은 고문을 통해 미리 염두에 둔 답을 받아내는 사람들이다. 쇠꼬챙이를 설치하고 죄인을 걸어놓은 뒤 불붙이는 것도 그들이다. 교단 광기의 선봉에 선 미치광이들.


말 자주 더듬으며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는 이 여자도 그런 미치광이의 일종일까. 나프는 다른 데 시선을 놓지 않고 모닥불을 계속해 들여다보려 하였다. 그런 모습은 신비함 이상의 것, 예컨대 어떤 종류의 섬뜩함마저 불러일으켰다.


“첫 일은 사람을 매달아 놓고 불태우는 것이었어요.”


“이런 젠장.”


“불태워야 하는 사람은 어느 도공이었죠.”


“그래야만 하는 까닭이 뭐였습니까?”


“도자기에 파란색 염료를 이용해 꽃을 그려 넣었다네요···. 그건 아버지 생신을 맞아 준비한 선물이었구요···.”


“듣기 거북하군요.”


“제가 불을 붙여야만 했어요. 권능을 사용해서요. 그때 쇠꼬챙이에 매달려 있던 도공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죠···.”


그때 냄비 실린 쇠망 아래의 모닥불이 강하게 일렁였다. 냄비 안쪽은 부글 끓으며 뚜껑을 들썩이게 했다. 그러나 밥 생각은 진작에 사라져 버렸다. 안에서 들끓는 잡탕은 그저 표면적으로 들끓음이라는 의미만 지닐 뿐, 멍하니 있는 회이던에게 대처하는 행동을 도출시키진 못하였다.


“과정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정신을 차려 보니 쇠꼬챙이에 매달린 사람이 불타오르고 있었거든요. 저는 정신을 빼놓은 채 쇠꼬챙이에 매달린 화염을 멍하니 쳐다봤어요. 멍하니 쳐다보았는데, 갑자기···.”


“갑자기?”


모닥불을 바라보는 나프의 동공이 벌어졌다.


“불꽃의 색이 일순간, 아주 잠깐··· 이상하게 변했거든요. 지옥불의 색깔이 어떠한지 아시죠? 눈이 쨍할 정도로 섬뜩한 진홍빛깔, 바로 그 색깔로···.”


갑자기 이야기는 신성 모독에 관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평소 신성 모독을 몹시도 즐겨 하는 회이던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편치 못했다.


“그냥 환시에 불과했을지도 몰라요. 흔들리는 불길을 계속 바라보다가 최면에 빠진 걸지도 모르고요. 순간 놀라 정신을 차리니 다시 원래의 색깔대로였고, 주변 둘러보면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어요···.”


냄비 뚜껑 달각거리는 소리는 점차 사나워졌다. 회이던은 냄비를 들어 바닥에 내려놓은 뒤 쇠망도 거두었다. 바닥에 놓인 잡탕은 결국 식을 것이고, 그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입맛에 제법 알맞을 것이다.


“만난 지 몇 시간밖에 안 된 사람에게 듣기에는 좀 벅찬 내용인데요. 왜 저에게 이런 내용을 털어놓으시는 겁니까?”


“그쪽이··· 회이던 섬칼리고드라서···?”


“뭔 소리야. 방금 내용이 제가 저인 것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추기경 예하를 살해하셨잖아요.”


회이던은 멀뚱히 나프를 쳐다보았다. 지금 이 여자가 뭔 소릴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사 풀린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점을 감안하여도 그녀 정신 상태를 재고해야만 했다.


“그건 또 뭔 소립니까?”


“아무리 담이 큰 악한이라 하여도 교단의 고위직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건드리진 않아요. 그 행위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고들 있거든요···. 그런데도 섬칼리고드 님은 추기경 예하에 대한 암살을 감행하셨어요. 저는 이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회이던은 나프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을 떠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일련의 정신 나간 발언들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카에키와의 대화를 통해 사람 눈동자 분석에는 제법 숙달된 몸이다.


나프는 회이던과 대화하면서도 주욱 모닥불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불빛을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음에도, 그녀 눈동자는 일렁이는 불꽃의 상이 반사되어 비칠 뿐 그 자체가 흔들리진 않았다.


정신 나간 사람이로군. 그런데 제법 보기 좋은 정신 나감이긴 했다. 최후에 맞이한 발롬니 공이 제법 미치광이처럼 보였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추기경은 자매님 몸담으신 곳의 높은 사람 아닙니까? 저를 용서하기 힘드실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자매님께 그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건 아니긴 하다만 뭐···.”


“교단도 사람들을 불태워 죽여요···. 그렇다면 교단의 사람들도 누군가에게 죽임당할 수 있다는 거지요. 사람을 죽이는 자는 언제든 다른 사람들에게 죽임당할 수 있어요. 제 곁의 사람들을 그 점을 망각하거나, 혹은 아예 존재할 수 없는 일처럼 여기죠···.”


“굉장히 파격적인 발언인걸요.”


“교단에서는 회이던 섬칼리고드가 악마 숭배의 본연을 발로하였다 공표했죠. 그런데 낮에 보았던 섬칼리고드 님의 모습은 그와 거리가 멀었거든요. 악마 숭배하는 분처럼 보이진 않았어요. 첫인상부터 그랬죠···.”


“외모로만 사람을 판단하시는군요.”


“에··· 외모는 잘 모르겠구요···. 하시는 행동, 말투, 전부 고려한 거예요. 그리고 행적에서 죄악시되는 부분은 모두 교단을 겨냥하고 있죠. 그래서 저는 섬칼리고드 님에게 단순 배교나 모독이 아닌 더 큰 뜻이 있으리라 믿어요. 그래서 제 하찮은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말씀드린 거예요···.”


나프는 회이던도 자신과 같이 의구심을 품은 사람일 것이라 재단한 것 같았다. 추기경 살해를 비롯 잔부스 학살의 밤에 있었던 사건과 그 이후의 사건들 모두, 교단의 추태를 향한 의구심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추측하는 듯했다.


어느 정도는 근접했다. 문제는 회이던 속을 가득 메운 것은 의구심이 아닌 반발심이란 것이었다. 반동한다는 측면에선 비슷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둘은 다른 갈래에 놓여 있다.


의구심은 합리를 추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반발심은 맹목에 의한 것이다. 그토록 혐오하는 교단의 권위주의와 흡사하게 변질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였다는 점이 의구심과 다르다.


나프가 교단의 사람들과 지닌 공통점이란 횃불을 신앙한다는 것뿐, 어쩌면 그녀보다는 회이던이 교단 것들과 더 많은 공통점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정신적인 구토가 정신적인 목구멍을 타고 올라올 것 같았다. 누가 면전에 대고 그런 소리 했다면 전기톱 쇠줄을 당겼을 거다. 조금 찡그린 회이던 표정을 본 나프는 자신이 너무 주제넘었나 싶어 얼굴이 파리해졌다.


“말씀대로 추기경 살해나 그 직후의 일이나, 모두 갑작스레 악마 숭배를 해야겠다는 충동에 휩싸여 저지른 일이 아니긴 합니다. 다만 자매님 추측처럼 거창한 뜻을 품고 이행한 것도 아니고요. 아주 오랫동안 쌓여 있었던 분노가 어느 순간에 달해 폭발한 것뿐이에요.”


“그··· 그것뿐인가요?”


“모르겠습니다. 미래에는 제 행위의 기저에 어떤 다른 의미를 부여하려 애쓸지도 모르죠. 그런데 당장은 정말 그것 뿐입니다.”


“정말 그것뿐입니까?”


“시발, 뭐야?!”


카에키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목소리를 다시 획득한 그녀가 정중한 어투로 끼어든 것이 아녔다. 혼자 동떨어져 있는 카에키의 등 뒤, 모닥불의 샛노란 빛깔이 덜 닿아 어둠이 뚜렷한 그곳에 덩치 실린 그림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조날루 헤티치오였다. 지면에 맺힌 그림자 속에서 솟아오른 것처럼, 사도의 시종은 다가왔다는 소리나 자취를 조금도 흘리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 위치에 서 있었다는 양 그러했다.


“헤티치오···!”


“섬칼리고드. 우리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 말씀드렸지요.”


조날루는 회이던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 두꺼운 팔뚝으로 카에키의 목을 감싸 일으켜 세웠다. 유려할 뿐 거친 몸동작은 섞여 있지 않았다. 스산하게 소리를 내며 뽑힌 칼날이 모닥불의 빛을 반사시키는 것에도 오직 유려함만이 섞여 있을 뿐이었다.


“망할, 재회가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지.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선 적당히 잊힐 쯤에 얼굴 내밀어 기억 환기해 주는 게 일반적이라고.”


“일반적인 삶이란 것을 본인 손으로 팽개치셨잖습니까.”


“미친, 내가 시작한 일인가? 가만히 있는 검은망토들 내가 먼저 썰어 죽였나?”


번득이는 칼날은 카에키의 목 근처에 들이닥쳤다. 날카로운 끄트머리가 그녀 살갗을 가볍게 툭 건드렸다. 그녀를 구속한 몸은 살을 에는 듯한 냉기에 흔들릴 법도 하건만, 조날루는 그런 것이 관심 바깥이라는 듯 의연했다.


카에키는 의연하지 못하여 몸이 잔뜩 굳어버렸다. 크게 뜬 눈동자는 회이던에게 고정되어 눈꺼풀 깜빡이는 것도 없었다. 응시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애는 놔 줘. 망할, 애는 죄가 없다고. 죄인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면 그 역시 죄인이라는 교단식 개소리는 하지 마.”


“교단식 헛소리가 아닙니다. 죄인의 조력자가 죄인이 아니었던 순간은 인류의 발족 이후 역사를 통틀어 단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아요.”


“닥쳐. 아직 세상 때도 덜 묻은 꼬마에게 그 따위 망발 덧씌우지 마.”


나프는 갑작스런 국면의 전환에 눈앞이 핑핑 돌았다. 낯선 노인이 교단의 관계자라는 사실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건 결코 이롭지 않다. 의무를 저버리고 도망을 택한 그녀 역시 배교자로서 처단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잡탕은 식어만 갔다. 조날루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는 데에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하나 표정만은 불안과 번민에 젖어 있었고, 윤기 없이 딱딱한 노인의 얼굴에는 조금의 변동도 없었다.


으르렁거리며 전기톱 불러낸 회이던은 쇠줄을 위협적으로 당기거나 했다. 그러나 위협적일 뿐, 실제 위협은 되지 못하였다. 조날루와 칼을 한 번 맞대본 경험으로 추론하여, 노인의 반사신경은 톱날을 피하진 못할지언정 카에키의 목은 깨끗이 관통할 것이다.


“자매님, 지팡이에서 빛 쏘는 것 말이죠···.”


“예에···! 언제라도···.”


“아뇨, 그거 쓰지 마십쇼. 그러면 애가 죽어요.”


평형추를 부수어선 안 된다. 빛이 발하는 그 순간, 어떻게든 행동이 강제된다. 그리고 조날루가 택할 수 있는 행동이란 단 하나밖에 없다···.


조날루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하였다. 천천히 입을 연 그가 내뱉은 말의 대상은, 회이던이 아닌 나프였다.


“조금 전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 보시죠.”


“예에···?”


“지옥불 색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노인의 얼굴은 공허했다. 드리운 그림자가 있긴 하였으나, 그 그림자마저 공허의 위압에 먹혀 희미한 듯했다. 그러면 남은 것은 두꺼운 살갗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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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 24.08.20 19 0 26쪽
16 16 24.08.19 19 1 21쪽
15 15 24.08.18 22 1 28쪽
14 14 24.08.17 21 1 17쪽
13 13 24.08.16 19 0 19쪽
12 12 24.08.15 18 0 18쪽
11 11 24.08.14 18 0 18쪽
10 10 24.08.13 22 0 20쪽
9 9 24.08.12 24 0 23쪽
8 8 24.08.11 30 0 19쪽
7 7 24.08.10 36 0 16쪽
6 6 24.08.09 35 0 26쪽
5 5 24.08.08 35 0 18쪽
4 4 24.08.07 52 0 23쪽
3 3 24.08.06 64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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