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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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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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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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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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DUMMY

22



“가능한 빠른 속도로 벌판을 통과합시다. 그 바글거리는 것들은 불붙으면 죽기야 하나 보군요. 벌판이 끝날 때까지 그걸 임시방편으로 삼으면 되겠죠.”


“저기···.”


나프는 속에 무언가 담아둔 생각이 있는 얼굴이었다. 회이던은 마부석 위에 올라타려다 말고 멈칫하였다.


“물 엎지른 꼬마애가 지을 법한 표정이네요. 달리 뾰족한 생각이라도?”


“그 악마들이 활개 치게 놔둬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당장에야 저 식탐이 장벽 바깥쪽에 머무르고 있지만, 산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마을 몇 개는 멸망하겠죠. 도시 규모라면 잘 모르겠다만, 하여튼 눈 뜨고 보기 힘든 꼴이 되겠네요.”


“예엡···. 제 말이 그거예요.”


회이던이라고 대재앙을 방조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상대하고자 하는 존재에 대해 마땅한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의협심에 기대고픈 마음도 없었다.


바꿔 말하자면 갈가리 찢겨 죽을 확률이 더 높다 판단한 것이었다.


“여러 가설을 세워 봤는데요. 군체를 수족으로 부리는 본체가 따로 있을 것 같아요. 군체 자체를 전투 능력으로 삼은 거죠···.”


“근거는?”


“그··· 회이던 씨께서 잔인하게 갈아버린 형제님의 말씀이요.”


“제게서 죄악감을 이끌어내려는 단어 선정이신지?”


“예?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신경 안 씁니다. 계속하시죠.”


“네에, 돌아가신 형제님께선 군체들을 불태워 죽였는데도 새로운 것들이 홀연히 나타났고, 그것들을 다시 말살하였음에도 또다시 모습 드러냈다 하셨잖아요? 군체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개체라면 그렇게 순차적으로 나타날 리 없어요. 그 무리를 생산하고 통제하는 본체가 존재할 거예요···.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회이던은 군체 자체를 전투 능력으로 삼은 악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 존재는 전투 능력이 부재할 것이다. 전투 능력이 부재한 존재는 저항 수단 부재한 풀을 뜯어 먹지 않는 하에야 양분의 보충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나 말, 그 외 육신 가진 생물들을 깔끔히 분쇄한 군체가 어디로 향할지 유추할 수 있었다. 수집한 양분을 보급하기 위하여 어딘가에 숨어 있을 본체에게 향할 것이다.


가설 자체는 그럴듯했다. 문제는 군체를 무슨 수로 쫓느냐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하늘에 있다. 그런데 카에키와 나프, 그리고 그 외 기타 등등이 서 있는 여기 대지는 위로 솟은 것 하나 없이 평탄함의 연속이다.


몸 숨겨 은밀히 추적할 수 있을 만한 환경이 아녔다. 회이던은 대충 그런 뜻을 갈무리하여 나프에게 전달했다.


“그 점을 우리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또 뭔 말이죠?”


“온 사방이 뚫려 있다면, 전투 능력이 없는 본체로서도 위협에 노출된 것과 다름이 없어요···. 그 점을 고려하면 본체가 자리 잡고 있을 만한 곳을 유추해 볼 수 있겠죠···.”


“숲, 동굴, 폐허···. 어디가 되었건 이 벌판 바깥이려나 싶군요.”


회이던은 교회 기사가 남긴 말을 떠올렸다. 금역이 우리에게 보낸 앙갚음인가.


그 말에 편의주의적인 해석을 곁들여 보자면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 금역이 위치한 곳은 여기서 정확히 북쪽인 만큼, 군체가 모습을 드러낸 방향 역시 그러하리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 모든 추측 가운데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은 이미 확충된 뒤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저 알량한 자신감 따위가 아닙니다. 저 돈 받고 일하는 중이라서요.”


“예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 지금 돈 받고 사람 지키는 일 하고 있잖아. 근데 막 자처해서 위험 속으로 뛰어들 순 없다 이거죠.”


“에··· 전 괜찮아요. 제 자신의 안위보다는···.”


“자매님 얘기하는 거 아닌데. 지금 카에키 얘기하고 있습니다만.”


“가족 분 아니셨나요?”


“아냐. 녀석에게 돈 받고 일하는 중입니다.”


나프의 시선이 카에키를 향했다. 카에키는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회이던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뜻을 표명하였다.


“진지한 거야? 방금 그 우물거리는 먹구름 같은 것 봤잖아. 그건 나라고 막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냐.”


“카에키 양은 지금 괜찮다고 하시는 건가요?”


카에키는 회이던의 힘과 기량을 믿는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녀석에게 신뢰받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야 주저할 요인은 없다. 회이던은 마부석에 올라타며, 그를 따라 뒷칸에 오르려 하는 두 여인을 제지했다.


“수레를 안전한 곳에다 숨겨 놓겠습니다. 눈에 덜 띄게 움직이고자 한다면 마차는 분리해 놓는 게 나아요.”


회이던은 마차를 무너진 막사 옆에 대어 놓고선 말들과 연결된 부속을 분리했다. 말들은 아직 밤이 되지도 않았는데 할 일이 벌써 끝났냐고 묻는 듯 섬세한 속눈썹을 깜빡였다.


회이던은 그런 녀석들의 옆구리를 부드럽게 탁탁 두들기고는 카에키와 나프 기다리는 곳으로 몰고 갔다.


“자매님, 말 모실 줄은 아십니까?”


“아뇨···.”


“카에키는 몰 줄 압니다. 그 녀석 뒤에 타십쇼. 허리 꽉 붙잡고요.”


“자, 잘 부탁드려요.”


사람 셋 태운 말 두 마리가 진지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카에키는 많이 몰아 본 솜씨로 말을 다루며 주변을 여유롭게 두리번거렸다. 여전히 구름 하나 끼어있지 않은 하늘 아래에 관측되는 것은 없었다.


잔잔하게나마 불며, 그와 상반되는 냉기를 피부에 강제로 쑤셔박던 바람은 어느새 완전히 그쳤다. 그러나 불지 않는 바람 대신에 공기 저항이 있었다. 말의 주파를 저지하고자 미약한 노력을 기울이는 공기 저항은 피부를 연신 때리며 서늘하게 했다.


카에키의 허리를 붙든 나프는 이빨을 딱딱거리며 부딪혔다. 그러나 그것마저 카에키의 이질적인 신체에 대한 결례가 될까 전전긍긍하며 억누르려 하는 모습이었다.


정작 카에키는 그녀에게 별다른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매섭게 살필 뿐이었다.


“전기톱. 미세한 벌레떼 같은 걸 타격할 수 있는 기능은 없나? 지난번에 고급 기능 어쩌구 있다고 했잖아.”


“미세한 크기의 적들을 퇴치하는 법에 대해 문의하셨군요! 광역으로 일으키는 전기 충격 기능은 어떠신지요? 손톱 크기의 생물체 정도는 문제없이 불태워 버릴 전류를 방출하는 기능이랍니다!”


“차감되는 점수의 양은?”


“회당 120점입니다! 추가로 100점을 더 차감하신다면 지정된 아군에게 전류가 닿지 않도록 하는 미세한 조정을 추가할 수 있지요!”


그럼 220점. 빠듯하지만 한 번 정돈 여유였다.


“좋아, 꺼져.”


전기톱은 입자화하며 흩어졌다. 뭔지 모를 무기의 뭔지 모를 목소리와 대화하는 회이던이 못내 꺼림칙한지, 그를 바라보는 나프의 표정은 긍정적인 지표가 아니었다.


“왜요. 제가 이상합니까?”


“에··· 그렇죠? 이상한 편이죠? 하지만 회이던 섬칼리고드라 하면 납득이 영 안 되는 모습은 아니고···.”


“세간에 어떤 모습으로 비치길래···.”


“아, 모르시는 편이 나아요.”


그러는 사이 카에키는 무언가 포착한 듯 먼 허공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거기에 검은 것들이 기둥과 같은 모양을 형성하며 하늘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늘에 구멍이 뚫린 모양이 되었다.


몽실거리는 움직임은 거리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회이던은 말의 속도를 늦추며 카에키에게도 신호를 보냈다.


걷는 둥 달리는 둥 하며 느릿하게 이동해야지, 무작정 파죽지세로 달렸다간 주의를 끌기 십상이다. 말의 빠른 기동성은 어디까지나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시력이 정말 좋으시네요. 저런 걸 어떻게 제일 먼저 찾아내시는지···.”


“애 아버님께서 사냥꾼이었다 말씀 드렸던가요. 그러니 녀석도 꽤나 훌륭한 사냥꾼인 모양입니다.”


하늘에 뚫린 구멍은 조금씩 움찔거리더니 어디론가 점진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해 뜬 위치로 가늠하니 역시나 북쪽이었다.


교회 기사가 남긴 말 곧이곧대로, 금역에서 여기까지 왔을 리는 없을 것이다. 가다 보면 무슨 숲 같은 게 나오려나 싶었다.


뒤편의 등진 곳에는 여전히 산맥의 긴 허리가 놓여 있으나, 그 반대편의 북녘은 아직까지도 눈에 들어오는 것 없이 텅 비었다. 느릿느릿하게 걷다시피 하는 말 위의 사람들은 시선을 먼 하늘에 고정해 놓았다.


비단 방향만이 아닌, 동태를 쫓기 위함이었다. 이 위치에서도 움찔거리는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면 달릴 채비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낌새가 없었다. 군체는 꾸물거리면서, 흡사 바람에 섞인 구름처럼 하늘을 유영했다.


멀리서 바라보자니 재앙보다는 한낱 현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자매님의 불태우는 권능을 이용할 겁니다. 괜찮으시겠죠?”


“어, 그뿐인가요?”


“저는 무계획으로 일관하는 편이라. 임기응변에 몸을 맞추는 걸 더 선호합니다.”


나프는 영 불안한지 고개 돌려 군집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그것들이 하늘을 흘러가는 속도는 변함없이 쭉 일정했다.


“자매님 행동만 지정해 놓죠. 불을 쏘아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 전에 불을 쏘셔야 합니다. 적절하다 싶은 순간에 행동을 시작한다면 그건 너무 늦어요.”


“며, 명심해 둘 게요.”


“두려우신가요?”


“아무래도요···? 인명을 위한 대의가 그런 잡념들까지 희석해 주진 못해서···. 게다가 제 목숨만 달려 있다면 모르겠는데, 다른 두 분의 목숨도 걸린 일이니 말예요···.”


그 뒤로는 나프도 입을 다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말들은 숨을 잔잔하게 내쉬며 편안해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해서 말들의 숨소리가 급격해졌다. 안장 위 회이던의 둔부에 불편한 삐걱거림이 닿았다. 말의 등이 조금 들썩이고 있었다.


말들 다음으로 징조를 눈치챈 것은 카에키였다. 그녀는 찡그린 눈으로 하늘의 구멍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군집은 어느샌가 유영을 멈추어, 공중 머무른 곳에 그냥 떠 있기만 했다.


카에키는 고개 돌려 회이던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뭔가 석연찮다는 듯, 고삐를 붙잡은 그녀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회이던은 말 대신 눈빛으로 뜻을 전하고자 카에키와 시선을 맞추려 했다. 그러나 시선은 아주 잠시간 그녀 얼굴 위에 머물렀을 뿐, 이내 다른 방향으로 빼앗기고 말았다.


하늘 속에서 웅얼거리는 군집의 형상이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아.”


두 사람의 마음속을 대변하여, 나프가 외마디를 내뱉었다. 가로로 길게 퍼진 타원 형체였던 군집은 세로로 길게 퍼진 타원 형상이 되었다.


이는 모양을 바꾼 것이 아니었다. 모양은 그대로이다. 향하는 방향만 틀었을 뿐이다.


“달려!”


카에키와 나프를 태운 말이 들판을 먼저 박차며 폭발적인 주력을 발휘했다. 회이던은 일부러 그들을 앞세워 보낸 뒤에야 고삐를 당겨 속력을 붙였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하늘의 한 부분에 고정해 놓았다.


그것들은 먼 공중에 떠 있기에 이동하는 속도가 고만고만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돌개바람이 숲의 나무 사이를 휩쓸고 반대편으로 빠져나오듯, 마음이 아득해지는 속력일 테다.


형상이 꾸물거리는 게 서서히 눈에 띄는 것이 그 방증이었다.


“어, 어디로 가야 할까요?!”


“북쪽입니다! 북쪽으로 쭉 따르죠!”


하늘엔 장애물이 없다. 그러니 군집은 일직선으로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앞서 세워 놓았던 가설이 모두 망상에 불과한 게 아닌 한에야, 방향만 맞추어 쭉 달리면 본체 있는 곳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시야 속의 군집은 점차 크기가 불어났다. 거리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제 형상도 점차 옆으로 벌어지며 넓어지고 있었다.


내부에서 저들끼리 흔들리고 뒤섞이는 형상도 점차 완연해졌다.


“자매님! 지팡이 준비하세요! 마법 사용하셔야 합니다!”


“네, 네네 네엣···!”


불 권능 다루기 꺼리던 나프였다. 그러나 그때 산맥의 중턱에서 직접 말하였듯, 여차하는 순간에는 얼마든지 발휘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특히 인간이 아닌 악마 척결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녀 머릿속의 불길한 기억을 꺼리는 강박에는 융통성이 있었다.


그리고 하늘의 구멍은 태양의 아래를 지나쳤다. 말 타고 달리는 일행의 위에 아주 잠깐 작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 그림자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준비하십쇼! 준비해! 자매님 판단에 맡깁니다! 카에키 목숨도 자매님 손에 들려 있어!”


“어, 어, 어, 어떻게든 해 볼게요···!”


공포는 소리의 형질을 띤 채 가장 먼저 닿았다.


전기톱이 공기 갈아대는 소리는 좌중을 압도하는데, 바글거리는 군집이 내는 굉음도 그와 똑같은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리만치 기괴했다. 마치 수천 마리의 박쥐가 우는 듯했다.


군집은 지면으로 하강하였다. 먼저 노리는 것은 뒤처져 있는 회이던인 듯했다.


회이던이 따로 더 채근하지 않아도, 웅얼거리는 소음에 겁먹은 말 스스로가 달리는 속도를 더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카에키가 탄 말과 나란히 달리는 모양새였다.


웅얼거리는 소음 외에도 풀이 절삭되는 소리 등, 신경을 쫄깃하게 만들어 줄 요소는 다채로웠다. 위로 솟은 수풀의 높낮이는 고르지 않았고, 이에 조금이라도 돌출된 부분은 사납게 절삭되어 흔적도 남지 않았다.


군집은 그만큼이나 지면과 접 붙어 있었다. 회이던은 달리는 것을 말이 지닌 공포의 본능에 맡겼다. 그 자신은 전방을 주시하지 않으며 나프의 모습을, 그리고 군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가까이 놓인 군집의 모습은 벌레떼 따위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전기톱이 내뿜는 잡음을 시각화한 듯한 모습이었다. 세상 그 어떠한 생물이나 현상, 혹은 묘사마저도 저 이질적인 모습을 재현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흡사 어둠이다. 인간에게 무력감을 불러일으키는 광경 그 자체였다. 심지어 그 입자 하나하나마다 포식을 향한 의지가 실려, 일종의 집요함마저 읽혔다.


“지그음···!”


나프의 지팡이가 빛을 발한 것은 그때였다. 그녀의 허름한 지팡이 끝에서 작은 불꽃이 일었다. 지팡이와 그녀 자신의 보잘것없는 행색과 같이, 그 끝에 맺힌 불꽃도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미약했다.


그러나 불꽃은 이내 세 개의 선으로 갈라지고, 거침과 야성이라곤 읽히지 않으며 완전히 그 대척에 있는 유려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통해 나선 모양으로 얽혔다.


얽히고 얽히며 앞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천천히 나아갈수록 그 끄트머리가 굵어졌다. 짙푸른 하늘 아래의 모든 것이 불길한 푸르름을 품고 있었던가.


그러나 너무나 눈부신, 노랑을 넘어 하양에 이른 섬광이 번쩍거렸다. 군집을 이루는 하나의 축에 옮겨붙은 나프의 불꽃은 화마와 같이 거대했으나, 화마라고는 부를 수 없는 형상이었다.


어루만지듯 너무나 상냥한 자태였다. 죽이기 위함이 아닌 치유하기 위함이라 착각하게 될 정도였다.


“오, 이런 시발···.”


“하, 하아···!”


불꽃이 옮겨붙은 군집은 그 자리에 부유한 채로 멈춰 섰다. 그러나 불길은 더 나아갔고, 더 굵어졌으며 끊임없이 군집을 불살랐다.


웅얼거리는 소음의 집합은 이제 균일한 모양도 이루지 못한 채 발악하고 떨리고 활개 치고, 그러다 공중에서 사하였다. 바닥에 닿는 잿가루도 남기지 못했다. 그러는 새에도 지팡이 끝에서 뿜는 불꽃은 멎을 낌새가 없었다.


나프를 싣고 달리는 카에키는 그 뜨거움이 너무나 괴로운 듯 이빨을 꽉 깨물고 눈은 반쯤 흐릿하게 닫은 채 계속해 말을 몰았다.


입이 없기에 비명소리를 내지 못하는 군집은, 다만 발작적으로 들썩이며 수천 마리 박쥐의 날갯짓 소리를 흉내 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과반을 훌쩍 넘은 입자들이 타올랐다. 그나마 성한 입자들은 볼품없이 쪼그라든 군집을 형성해 하늘 높이 도약했다.


“됐습니다! 멈추세요!”


“예에···? 예···!”


“그나마 남은 양분만이라도 본체에게 공급하려는 것이겠죠. 저희는 저걸 따라 달리기만 하면 됩니다.”


군집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말보다 빠른 속력이지만 따라가다 놓칠 정도로 빠르진 않았다.


이대로 불편한 동행을 계속하다 보면 본체의 위치를 안내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프의 얼굴에는 땀이 맺혀 있지 않았다. 아마 카에키의 몸이 내뿜는 한기가 열기를 상쇄해 주었을 것이다.


회이던은 조금 전 목도하였던 지극히 상냥한 불꽃의 권능을 다시 눈 위에 되새겨 보았다.


교회 기사들이 사용하는 권능은 불의 형태이나 성질은 돌로 이루어진 듯 권위적이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나프의 권능은 달랐다.


눈에 보이는 것은 확실히 달랐는데, 본질이 다른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멀리에 하늘을 향해 솟은 하나의 형상이 보였다. 직사각형의 기둥, 회백색의 벽돌이 쌓인 집합이었다.


아래와 위를 가득 메운 푸르름에 갇히고 말아, 결국은 물들어버리고 만 듯 그림자 없는 광경 속에서도 어둑해 보였다.


“저건···.”


“종탑 같은데요. 망할, 허허벌판에 종탑은 왜 세워 놓은 거야.”


하늘을 나는 군집은 줄지어 빨려 들어가듯 종탑을 향했다.


아직은 먼 위치라 카에키와 나프 그리고 기타 등등은 관측할 수 없었지만, 종탑의 높은 벽면에는 조개껍데기 속에 담긴 바위취꽃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는 세 도끼와 다섯 자루 창 기사단의 표식이었다. 종탑은 신성 아래 단결하였던 옛 기사단에 헌납된 것이었다.


진정한 북방을 수호하던 그들 대부분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죽은 채 어디 초야를 뒹굴고 있다. 헌납된 탑도 악마에게 먹히고 말았다.


종탑은 본디 횃불의 대축일인 7월 중순경이 되면 떠오르는 해가 그 위에 드리우도록, 그렇게 하나의 횃불처럼 보이게끔 건축되었다.


하지만 그 영광스러운 건축 의도는 검은색 찌꺼기들에 뒤덮여 사라졌다.


벽돌 사이마다 꾸물거리는 검은색의 무언가가 끼어 있었다. 바퀴벌레나 좀벌레, 쥐며느리, 그런 것이라면 정말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보다 더 불길한 것이었다. 양분을 품은 군집은 종탑의 정상을 박쥐 떼처럼 휘감으며 빙빙 돌았다. 그러다 작게 뚫린 창문 안으로 사라졌다.


회이던은 전기톱을 다시 형상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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