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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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최근연재일 :
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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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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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UMMY

6



시간이 꽤나 흘렀다. 투명한 그림자는 노을의 주황빛과 더불어 무척이나 진해졌다.


수레는 물결이 얕은 개울을 지나서 언덕이 드문드문 펼쳐진 지대에 들어섰다. 언덕마다 화살촉 모양으로 솟은 침엽수가 하나에서 둘 정도 자라 있었다.


흙에 가까운 빛깔로 변색한 덤불과 억세풀 같은 것들이 조금의 틈도 없이 대지를 뒤덮은 채 하늘거렸다. 바람의 기세에 눌려 곱사등이처럼 굽어 자란 모습들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달리 위험한 사람들과는 마주하지 않았네요. 좋아요. 아주 좋아요.”


“···아침에 만난 사람들은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고?”


“잘렸잖아요. 잘렸으면 더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죠.”


여하튼 소녀의 일시적인 합류로 인하여 불경함의 면면이 훨씬 풍성해졌다.


뭔진 모르겠다만 굉장히 미심쩍은 것을 운반하는 행상인 하나, 불법으로 규정된 마법에 의해 육신을 개조당한 여자애 하나, 그리고 회이던 섬칼리고드.


교회 기사들이 척살하고 싶어 혈안이 될 소모임이다.


그러나 코멜루의 말대로 잘린 사람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 교회 기사라 해도 전기톱이 한 번 울어대면 그만이다.


회이던은 언덕 아래 어디쯤, 적당히 나무가 자라 그늘이 덮인 곳으로 수레를 인도했다. 슬슬 날이 저물고 있으니 짐을 풀어 야영을 준비하려는 생각이었다.


“쉬어가기엔 조금 이른 시간 아닌가요?”


“애가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요.”


“아, 수레가 조금 많이 덜컹거리긴 했죠.”


“뭣 좀 넉넉하게 맥이고 재웁시다. 그쪽은 불을 피운 뒤에 스튜 재료들을 준비해 주십쇼. 나는 섭취할 수 있는 생물을 찾아 언덕을 헤맬 테니깐.”


“넵. 맡겨만 주세요.”


회이던은 야영지를 홀로 벗어났다. 전기톱은 보따리 속에 싸매어 수레 위에 얹어 놓고, 손에는 장검 한 자루만 달랑 달렸다.


언덕의 비탈을 쭉 올라간 그는 봉우리 위를 한동안 걸었다. 가시풀이 한적하게 흔들거렸다.


회이던은 등산하는 여행객이 지팡이 휘두르듯 칼날을 슉슉 휘두르며 잡초를 물렸다.


그러다가 적당한 위치에 멈춰 섰다. 그는 갑자기 등을 쪼그리더니 무릎을 굽혔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풀더미를 가만 응시하는데, 그건 풍류를 즐기는 것처럼도 보였다.


하나 그런 미온적인 해석을 비웃듯, 장검을 쥔 그의 손이 눈 깜짝할 새 허공을 그었다. 가시풀 더미가 깔끔하게 양단되며 그 안에서 작은 생물이 죽는소리가 났다.


여우 울음소리였다. 회이던은 풀더미 새에서 죽은 짐승의 뒷다리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셋이서 먹을 양은 되겠구만.”


회이던은 앉은 자리에서 가죽을 벗겼다. 해체한 여우는 허리춤에 매달렸다.


유유자적한 주황빛의 하늘은 서서히 남색을 향해 나아갔다.


덩달아 왔던 길을 거슬러 가는 회이던도 유유자적했다. 허리에 매달린 동물 사체가 흐느적거리는 모양도 그러했다.


석양 받은 가시풀이 흔들거리는 건 바닥에 들러붙어 자글거리는 잔불처럼 보였다. 언덕 아래 내려다보이는 야영지의 모닥불은 짙은 나무 그늘 아래서 붉게 너울거렸다.


눈에 무척이나 잘 띄었다. 뒤늦게 풍류에 젖을 수도 있었다.


“···이상한데.”


회이던은 눈을 가늘게 하며 붉은 너울거림을 응시했다. 소녀는 수레 위에 있을 것이며, 코멜루는 스튜의 밑재료들을 준비하는 중일 것이다.


그런데 불길 옆으로 꾸물거리는 인영은 둘보다 많았다.


“허어, 너무너무 이상한데.”


겅중거리는 발걸음이 언덕을 순식간에 휩쓸고 내려왔다. 모닥불 앞에 앉아 있는 낯선 등짝 셋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회이던은 그들에게 말을 붙였다. 적개심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셋 모두 왕국군에게 지급되는 갑옷을 입고 있었으며, 그중 하나는 검은색 갑옷 위에 검은색 망토를 둘렀음에도 그러했다.


“당신들은 또 뉘신지?”


“아, 저기 행상인이 말한 동행이란 게 그쪽인가 보군.”


검은색 망토 두른 놈은 검은망토라 불리는 왕국군의 정예이다. 저잣거리에서 망토를 한껏 휘날리며 위세를 부린다 해서 그런 이름으로 불렸다.


왕국군 소속이라곤 하나, 반쪽짜리가 되어 제구실 못 하는 왕권보다는 교단의 권위에 더 휘둘리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니 교단 측 세력의 비교적 덜 충직한 개라 보아도 무방하다.


“뭘 그리 멀뚱하게 서 있어? 앉아, 앉으라니깐.”


대접받는 인간이 대접하는 사람처럼 말을 건네 왔다.


그대의 못 배워먹음을 수치화한다면 1과 100 사이에서 어느 정도가 적절하다 보십니까? 그런 질문이 회이던 목청 아래까지 들끓어 올랐다.


“여우를 한 마리 잡아 왔습니다. 손님들께서 계실 줄 알았다면 한 마리 더 잡아 왔을 텐데요.”


해명을 바라는 듯한 눈빛이 코멜루에게 쏟아졌다.


그는 겉모습만은 상당히 태연해 보였는데 목소리는 그에 못 미쳤다. 아주 약간 떨리는 목소리가 회이던 눈빛에 화답하였다.


“어, 검은망토이신 조한트 님과 그분의 직속 수하분들이십니다. 일대 어딘가에서 발발한 악마의 소란을 저지한 뒤 귀환하는 길이라 하시네요.”


“이거, 민생의 안정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 주셔서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뭘,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인데.”


억양만으로 반어법이 가능하다. 회이던은 민생의 안전, 그리고 감사 부분에 유독 힘을 주어 눌러 말했다.


조한트란 이름의 검은망토는 그 얄팍한 경멸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허름한 야영지엔 무슨 볼일입니까?”


“우리가 빨리 사라져 주길 바라나?”


“그럴 리가요. 힘없는 행상인 둘이서 험난한 야생의 밤을 나는 게 무서운 참이었습니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어차피 우리 셋도 야영을 해야 하는데, 이미 차려 놓은 야영지가 있다면 합치는 게 낫잖아?”


조한트는 회이던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대답했다. 앞에 놓인 사람이 최우선 말살 대상인 회이던 섬칼리고드라곤 생각하지 못하는 듯하였다.


이와 같은 경우가 왕왕 있었다. 회이던의 악명은 그 기다란 범죄 이력과 흉측한 위용을 지닌 전기톱으로 대표되었다.


그렇기에 비교적 덜 강렬한 회이던의 외모는 추적에 있어 간과되곤 했다.


“뭘 그리 멀뚱히 있냐니깐? 어서 앉아. 오늘 죽인 악마가 얼마나 지랄맞았는지 빨리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고.”


여우의 고기를 받아 든 코멜루는 손질을 시작했다. 그러는 손은 조금씩 떨렸다.


하지만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조한트와 그 부하들은 저들끼리 흥취에 젖어 눈치채지 못하였다.


회이던은 수레로 이동해 포도주를 두 병 꺼내었다. 소녀는 그 옆에 몸을 오므린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거칠고 꺼슬꺼슬한 손이 여린 몸 위에다 모포를 끌어 올려 덮었다.


이타적이고 따듯한 행위로 보이는데, 사실 냉혈한 체온이 저들에게 들통나면 곤란해지기에 그런 것이었다.


회이던은 그런 뒤에 모닥불 앞으로 돌아왔다. 포도주 뚜껑을 따더니 냄비에 훌훌 부으며 코멜루에게 눈짓했다. 동요하지 마십쇼. 코멜루는 고갤 천천히 끄덕였다.


이미 냄비에는 각종 열매와 허브, 야생 채소 같은 것이 들어차 있었다. 애초에 셋만 먹을 것을 염두에 놓아 그런지 여섯에게는 모자라 보이는 양이었다.


그나마 훌훌 털어 넣은 포도주가 국물 역할이나 해 주길 바랐다. 스튜에 사용하기에 비싼 술이긴 하다.


한데 비싸다고 해서 특별한 순간에만 마시려 노력했다간, 어떠한 방식으로든 뒈지기 직전에서야 한 병 간신히 비울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 나날이란 게 도통 없는 나날이다.


“오, 그건 술인가? 한 잔씩 돌려 봐.”


“그러지요.”


나무 잔 셋을 건네받은 회이던은 안에다 포도주를 부어서 되돌려주었다. 조한트와 그 수하들은 냄새를 한번 맡더니 단번에 비웠다.


“끝내주는군. 한 잔 더.”


“분부대로.”


회이던은 좋은 술을 그저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들이키는 그들의 교양 없는 행각에 혀를 찼다.


그러는 본인도 고급 포도주를 고작 조리용으로 스튜에다 털어 넣은, 교양이라곤 쥐뿔도 없는 호로새끼 짓을 범하였다는 걸 생각조차 않는다.


실로 저 좋은 것만 취사적으로 기억하니 붕어와 같은 기억력이라 할 만하다.


여하튼 코멜루는 고기 손질을 마쳤다. 냄비에 여우 살코기와 내장이 더해져 모닥불 위에 올라갔다.


훌훌 젓다 보면 안에 든 건더기가 자작거리면서 익기 시작했다. 포도주 속 취하는 성분이 휘발되는 냄새가 대기에 고요히 퍼져 나갔다.


“크으···. 얼근하게 달아오르니 끝내주는구만. 이 술도 교역품인가?”


“아닙니다. 잠들기 전에 추운 몸을 뜨겁게 데우는 용도죠.”


“그럼 수레에 적재한 상자에는 무슨 물건이 들었는데?”


예리한 질문이 코멜루와 회이던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슬슬 나른하게 취기가 도는 검은망토의 얼굴에 실린 것이 장난인지 악의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질 좋은 양모와 아마포입니다요. 게퀴발그까지 운반하고 있지요.”


스튜 저어대는 손에 미세한 떨림이 있건만, 그럼에도 안면 근육을 서글서글하게 늘어뜨리는 코멜루는 거짓부렁 내뱉는 것에 막힘이 없었다.


동요하지 말라는 회이던 말에 감격을 받은 건 아닌 듯 보이고, 이와 같은 상황에 대응하는 절차라도 미리 주입받은 것인가.


“게퀴발그라. 거기 특산품이 산딸기 아닌가? 그걸로 과실주를 담가 마시면 끝내준다던데, 어떻던가?”


“마셔 본 적은 없네요. 술을 곧잘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술을 즐기지 않는다고?”


코멜루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만 앉아 모닥불을 바라보던 회이던의 시선이 스산하게 두 사람 사이로 쏠렸다.


“그럼 이 술은 뭐지? 자기 전에 몸을 데우려고 마신다 하지 않았나?”


“제 몫입니다. 저는 폭음을 즐기죠.”


회이던이 별 감정 없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급조한 변명은 먹혀든 모양이다. 조한트는 순순히 고개 끄덕이더니 그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게퀴발그는 조금 더 추운 지역이지? 양모 질이 좋다면야 벌이가 나쁘지 않겠네.”


“때로는 그쪽 특산품과 물물교환하기도 하지요. 방금 말씀하신 산딸기 같은 것 말예요.”


“우리도 가끔 이보다 더 윗지방에 파견을 나갈 때가 있거든. 눈이 내리는 곳 말야. 아주 고역이야. 항상 방온에 애를 먹어.”


“진짜, 뒈지게 춥다니깐요.”


게퀴발그 이야기를 하던 조한트는 갑자기 다른 쪽 주제로 물꼬를 텄다. 목소리가 선천적으로 천박한 그의 부하들도 저마다 비슷한 소리를 하며 맞장구쳤다.


“악마 새끼들이야 입에서 불을 토해 내니 옆에 서면 뜨끈하지. 아니면 배율자 놈들을 매달아 놓고 불태워서 난로 삼을 수도 있어. 그런데 망할, 말 타고 이동할 때에는 너무 추워서 견디기 힘들다니깐.”


“고, 고충이 심하시겠네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취기가 오른 조한트의 얼굴에 다시 한번, 장난기인지 혹은 다른 무언가인지 모를 게 실렸다. 냄비 휘젓는 코멜루의 눈이 슬며시, 냄비 속 연못 위 검은망토에게 향하였다.


“이렇게 인적 드문 벽지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것도 좋은 인연 아닌가? 괜찮다면 그 쪽에게 양모를 좀 선물 받고 싶은데. 나와 내 부하들 것 해서 총 세 장만 말이야.”


“네에?”


“수레에 실려 있는 상자를 열어 봐도 될까?”


코멜루의 대답이 막혔다. 이와 같은 경우는 상정해 놓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조한트는 대답을 바라듯 코멜루의 얼굴에 눈길을 고정해 놓았다. 얼근하게 취한 기색도 없이, 한없이 투명하고 진지한 눈빛이었다.


“어, 그게···.”


“넵. 조금 있다 하나씩 드리겠습니다. 양모 세 장 따위, 피땀 흘리며 성전을 누비는 분들께는 조금도 아깝지 않죠.”


이번에도 회이던이 끼어들어 대신 답했다. 코멜루와 조한트의 시선이 그에게 동시에 쏠렸다.


“하하, 줄 수 있다고?”


“어려울 게 있나요. 그러나 지금은 식사부터 하는 게 어떠신지. 스튜 다 익었습니다. 각자 개인 식기는 들고 계시죠?”


사실 양모 같은 건 없으니, 어려울 게 있다.


그래서 회이던은 계속해 술이나 권할까 싶었다. 거듭되는 음주로 심신이 미약해졌을 때, 은화나 몇 닢 쥐여 주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런 의중을 알 리 없는 코멜루는 불안한 눈으로 회이던을 쳐다보거나 했다.


회이던은 따끔한 눈빛을 가하며 군인들 그릇에 건더기를 퍼 담았다. 동요하지 말라고. 눈빛 이상하게 하지 말라니깐.


그 뒤엔 여자애가 먹을 것도 퍼담았다. 수레 앞까지 다가가 모포에 싸인 몸을 흔드니, 그 안에서 꿈틀거렸다. 여자애 옆은 유독 더 추웠다.


“얘, 밥 먹어라. 밥 먹고 나서 마저 자든가 해.”


눈을 뜬 여자애가 부스스 일어섰다. 조금 비몽사몽하던 표정은 이내 빠르게 굳었다. 모닥불 앞, 웬 낯선 사람들의 합석을 보고 놀란 듯하였다.


병사 한 명이 외쳤다.


“뭐야, 여자애도 있었잖아? 데려와! 혼자 떨어진 곳에서 식사하게 하는 건 너무 매정하지!”


“죄송합니다. 애가 많이 아픕니다. 고열이 나서 힘들어하니 따로 식사하는 게 좋을 듯하네요.”


소녀는 힘없는 숟가락으로 스튜를 떠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회이던은 바구니에서 술을 한 병 더 챙기면서, 그녀 귀에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공직자의 옷을 입었다곤 하나,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좋은 사람들이 아니야. 네 상태를 들키면 상황이 곤란해질 거다. 그러니 여기 가만히 있어. 체온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모포를 꽉 두르고 있으라고. 알겠지?”


여자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이던은 여자애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말고는 돌아섰다. 모닥불 앞으로 돌아오니 입에 게걸스럽게 우물거리는 조한트가 목소리를 건네었다.


“방금 전 양모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해. 너무 대놓고 파렴치를 범했구만.”


회이던은 내색하지 않으며 그러겠다 답하였다.


네놈들이 파렴치란 걸 아는 작자들이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합석하지도 않았을 거다, 쌍놈들아. 그런 말들을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들 질척거림의 까닭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양모 따위를 탐하는 게 아니라면야 속내는 뻔하다.


하지만 상대의 시선이 이쪽에 붙박은 듯했다. 그래서 코멜루에게 신호를 전할 수도 없었다.


“게퀴발그 이야기나 더 해볼까. 그쪽 산지가 아름다운 걸로 정평이 나 있다던데.”


“아, 그렇다 하죠. 그 산 이름이 뭐였더라.”


대화를 이어받은 것은 코멜루였다. 회이던은 다시 입을 꾹 다문 채 얼마 남지 않은 건더기를 긁어 자기 그릇에 옮겨 담았다.


“우나, 우나라는 이름의 산이지. 정상 부근에만 녹지 않는 눈이 쌓여 있다더라고. 내가 지저분하게 내리는 눈을 싫어하긴 한다만 원래부터 설경이었던 광경은 다르거든. 올라가 본 적 있나?”


“없네요. 게퀴발그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 적은 없는지라···.”


“관광 차 다니는 건 아닐 테니 그러려나 싶군. 생업 때문에 바쁜가 봐. 나만 해도 죽기 전에 그쪽 땅 밟아볼 기회가 있으려나 싶어.”


“하하···. 게퀴발그에 대해 박식하시네요. 평소부터 관심을 두시던 지역인가 봅니다.”


회이던은 숟가락 입에 집어넣기나 할 뿐, 구태여 대화에 끼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코멜루가 알아서 잘 이어가는 듯 보였다. 최소한, 그런 것처럼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연막을 위해 둘러대는 이야기이다. 게퀴발그 이야기를 주욱 잇는 코멜루는 조금 벅차 보이는 기색이었다.


거짓부렁을 길게 늘이면 목을 옭아매는 올가미 모양이 된다.


일련의 대화가 잡스러운 신변잡기가 아님을 회이던과 코멜루 모두 알고 있었다. 조한트 양옆의 수하들은 별말 없이 조용했다.


대화 나누는 상대방을 감정 읽을 수 없는 눈동자로 지긋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친목 다지자고 담소 나누는 시간은 확실히 아녔다.


조한트는 조금 실실거리더니, 다 먹은 그릇을 바닥에 떨구었다. 가벼운 목재가 바닥에 부딪히며 댕그르르 굴렀다.


“당신들 출발지가 어디였는지는 모른다만··· 지금 여기만 해도 게퀴발그까지는 거리가 꽤 있지 않나?”


“예엡.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생업을 위한 활로 개척이죠. 아무래도 거리 문제 탓인지 교역이 활발하지 않으니깐요.”


“특이하네. 먼 거리를 잇는 것은 보통 대규모로 조직된 상단의 몫 아닌가?”


“인건비 탓이죠. 제가 사람들 여럿 동원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은 또 아니라···. 하하.”


“그런데도 굳이 위험한 경로를 택한 까닭은?”


대다수의 그릇은 이미 비어 있다. 회이던도 마지막 한 숟갈을 떴다. 숟가락이 그릇 긁으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모닥불 앞의 고요함을 거슬렀다.


“위험하잖나. 이런 벽지에서는 우리 같은 군인들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을 텐데 말야.”


회이던은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언제쯤 자리를 박차야 할지 속으로 쟀다.


전기톱은 보따리에 싸인 채 수레 위에 놓여 있다. 그런데 그건 별로 문제가 안 된다. 검은망토쯤이야 날 무딘 장검으로도 단칼이다.


문제라 할 만한 게 있다면, 언제쯤 자리를 박차는 게 적당할까 하는 것이었다···.


“큰 상단에 속하지 않고 혼자 다니는 행상인은 두 가지 분류로 나뉘거든. 뭔 말인지 알아?”


“예에···?”


“···.”


조한트는 과장된 몸짓으로 허리를 한 번 펴더니,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대수롭지 않게 코멜루의 말을 받아쳤다.


“그리고 굳이 인적이 드문 경로만 택해 다니는 행상인도 두 가지 분류로 나뉜다고. 그런데 당신네는 두 가지 유형 모두에 속하고, 맞닥뜨릴 리 없다 생각했을 군인을 때마침 마주하고 말았네?”


슬슬 코멜루의 낯빛도 파리해졌다. 완전히 저문 하늘 아래에 빛은 모닥불뿐이건만, 그 붉은 음영 아래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얼굴빛이었다.


조한트는 빈 포도주병을 들어 찰랑거렸다.


“이 술 말야, 내 혀가 민감하진 않아도 냄새 정돈 잘 맡아. 아주 좋은 술인데,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는 사람들이 이런 걸 밤마다 들이킨다고?”


“···양모는 필요 없다 하셨죠?”


대화에는 끼지 않고 내내 듣고만 있던 회이던의 입이 열렸다. 코멜루는 이제 다급해진 기색을 속이지도 않으며, 흡사 구원을 바라듯이 회이던을 돌아보았다.


“양모는 필요 없다 하셨지만, 이건 어떠신지···.”


회이던은 품에서 동전 주머니를 꺼내었다. 안에는 마법사의 천막에서 긁어모은 은화가 들었다.


조한트는 자신에게 들이밀린 주머니를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받았다. 액수를 확인한 그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나타났다.


코멜루는 그제야 대화의 맥락을 꿰찰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배교자로 의심을 받은 게 아니었다. 밀수꾼으로 오인당한 것이었다.


값비싼 종류의 술과 질 좋은 직물에는 높은 세율이 부과된다. 그렇기에 협잡꾼들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공직자들을 마주치지 않는 먼 길을 가로지른다.


그것 역시 큰 죄악임에는 변함이 없으나, 어째서인지 대놓고 배임을 행하는 것임에도 불구 배교로 간주되진 않았다.


상대가 교회 기사가 아닌 검은망토라면, 그리고 적당한 양의 뇌물을 지녔다면 징벌을 회피할 수 있었다.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되었다.


“아, 하하. 어떻게, 액수는 조금 마음에 드시나요?”


“들다마다. 들다마다지.”


눈감아줄 수 있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바라며 위압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던 것이다. 그곳에 정의감이란 처음부터 없었다. 오로지 잇속 챙기겠단 마음뿐이었다.


“방금 이야기들은 전부 못 들은 것으로 해. 그리고 재수 옴 붙었다는 생각도 말고. 우리 말고 교회 기사 나부랭이들을 마주쳤다고 생각해 봐. 그 꽉 박힌 것들이 이렇게 융통성 있는 대우를 해 줬을 것 같아?”


“어휴, 그러게나 말입니다. 감사드릴 따름이죠.”


눈치가 빠르다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임기응변이 좋다 해야 할지. 코멜루도 단번에 낯빛을 바꾸어 능청을 떨어댔다. 그렇게 완전히 밤이 되었다.



***



밤은 늦었고 거의 모두가 잠들었다. 회이던은 나무에 등을 기대어 놓고 눈 감은 채였는데, 실은 잠들어 있지 않았다.


불청객 가운데 누군가 나무 상자를 몰래 뜯어본다던가, 혹은 여자애를 추행하려 든다던가 하는 것을 걱정하는 게 아녔다.


그냥 적당한 때에 셋 다 죽여버리려는 생각으로 깨어 있는 것이었다.


웬만해선 죽이겠다는 마음에는 변동이 없을 예정이다. 돈을 뜯긴 게 원통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도망자로서 합리적으로 도착한 결론이었다.


조한트라는 검은망토가 본대에 합류한 이후의 상황을 떠올려 보자. 과분한 은전을 손바닥 위에 펼쳐 놓으며 떠들 것이다.


밀수하던 놈들을 만났지. 조금 을러댔을 뿐인데 지레 겁먹더니 주머니를 털어 주더군.


어, 그쪽은 회이던 섬칼리고드가 도망친 경로 아닌가. 자네가 만난 그 밀수업자, 실은 섬칼리고드 아냐? 놈은 이러이러한 생김새라네.


그리고 회이던의 외모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이어진다.


아, 비싼 술을 스튜에 처넣던 미친놈이 딱 그렇게 생겼어. 이런 젠장, 섬칼리고드였군. 그쪽 경로는 어느 지역으로 통하지?


지도를 확인한다. 척파크 구릉지대로 통하는 길이다. 옳다구나, 가니티의 성주가 악마 숭배자와 내통하는 모양이구나. 교회 기사들에게 알려.


그리고 애꿎은 가니티 성채가 함락되어 불탄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참수당한다.


그리고 겸사겸사, 회이던과 동행하였던 소녀와 그 가족들도 습격을 받아 꼬챙이에 매달릴 것이다···.


그러니 죽이는 게 맞다.


다만 여자애 앞에서 사람 썰어대는 꼴 보이고 싶지 않아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까지 기다렸다.


가뜩이나 피폐해져 있을 소녀의 정서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 썰어대면서 웃곤 하는 작자가 그런 걱정을 한다는 게 좀 이상하긴 하다···. 그때 모닥불 앞에서 누군가 일어섰다.


조한트의 부하 중 한 명이었다. 놈은 코멜루가 누워 있는 모습을 살피며, 그가 잠들었는지 재차 확인하였다.


그 뒤 회이던에게도 다가왔다. 회이던은 슬며시 눈을 감으며 귀를 쫑긋 세웠다.


놈은 회이던의 앞에서도 계속해 서성거리는 소릴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신을 얻었는지, 등 돌리는 소리가 났다. 회이던은 뒤도는 발소리와 동시에 감은 눈을 열었다.


뒷모습은 상자 실린 수레를 향해 살금살금 걸어가고 있었다. 회이던은 바닥에 놓인 칼집을 소리 없이 집어 들었다.


칼을 뽑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소리 없었다. 역시나 소리 없이 몸을 일으키고, 그러는 사이 검은망토의 부하는 수레 앞에 서 있었다.


상자는 밀봉되어 있기에 소리 없이 열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놈은 다른 것부터 먼저 들추었다. 예컨대 전기톱 들어 있는 보따리라던가.


“이, 이건···.”


조용한 가운데, 놈의 입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낮게 빠져나왔다.


“대···!”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잘린 목은 하늘로 붕 떠올라 회이던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나머지 신체는 바닥에 풀썩 무릎을 꿇었다. 일련의 소음은 푹신한 풀밭이 가려 주었다.


회이던은 머리통을 바닥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그 뒤 보따리를 다시 여미었다. 그러는 와중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별 실속 없는 것들이었다.


‘대’라고 말한 뒤 죽었는데, 그다음에 이어질 말이 뭐였을까. 아마 ‘대장’이었을 것이다. 혹은 ‘대박’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대가리 잘리기 싫어” 였을지도···.


그 누구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회이던은 칼을 휘리릭 돌려 피를 털어낸 뒤, 검은망토와 그의 하나 남은 부하에게 소리 죽여 다가갔다. 그러려고 했다.


“빠아악!”


“미쳤나?”


“뭐야, 무슨 일이야!”


전기톱이 귀 찢어지는 소리를 울렸다.


귀 찢는 소리는 한적한 밤하늘 아래 메아리가 되었고, 온 풀밭이 싸르르 떨렸다. 그 위에 있는 모두가 어둠 속에서 몸이 굳은 회이던을 바라보았다.


회이던 손에 들린 장검은 모닥불이 아른거리는 옅은 빛을 받아 반짝였다. 조금의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밑에는 목뿐인 검은망토 부하가 눈을 부릅뜬 채, 아직 생기가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말 못 하는 여자애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뜬금 없이 살인을 한 회이던보다는, 그 앞에 있는 검은망토와 그의 하나 남은 부하들부터 살피는 모습이었다.


“무, 무슨 일인가요?!”


“미친, 뭔 짓거리야!”


코멜루와 조한트는 각자 다른 어투로 회이던에게 말을 던졌다. 검은망토의 부글거리는 눈초리가 아주 귀엽고 가증스러운 전기톱을 향하였다.


“도난을 방지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단 1000점에 영구적으로 도난 방지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답니다! 머더소우 모델 47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오직 귀하, 그리고 귀하가 봉사하는 당국뿐이니깐요!”


“너무 싫어. 너무 싫어서 나 미치겠어···.”


“이런 미친 새끼, 그냥 넘어가 주려 했더니!”


그러나 교리의 개와 섬칼리고드가 마주한다면, 어지간해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시피 하다. 이전부터 쭉 그래 왔다.


그러니 친히 넘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베풀듯 말하면 안 된다. 그건 소망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조한트와 그 부하는 칼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먼저 땅을 박차고 튕겨 나온 회이던이 그들 목을 쓸고 지나갔다.


칼보다 머리통이 먼저 뽑혔다. 모두가 잠에서 깨어났으니 허공에 떠오른 머리통 손바닥으로 받을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두 떨기의 꽃이 되어 풀 바닥에 둔탁하게 부딪히고 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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