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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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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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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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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DUMMY

31



움푹 솟더니 다시 들어가고, 다시 솟았다가 다시 들어가면서 너울진 대지가 지평선 끝까지 뻗어 있었다.


나무는 드물다. 길어야 사람 무릎 부근에 닿을 수풀만 무성하며, 그것들을 휘감는 바람이 없기에 흔들리지도 않는다.


하늘에는 파란 부분이 없다. 회색의 구름이 그 자리를 가득 메웠다. 아래 드리운 구름의 옅은 그림자가 푸른색이었고, 하늘보다는 오후의 바다 같은 색깔이었다.


가뜩이나 푸르스름한 구릉지는 지평선에 달할수록 더더욱 흐릿해졌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안개 탓에 더더욱 그랬다.


종말 앞에서 굳어버린 대양 같았다.


혹자는 이 광경을 두고 인간성이 조금도 읽히지 않는 광경, 공허로서 지옥의 현현이라 불렀다. 무덤의 계곡이라는 소회를 남긴 다른 누군가도 있었다.


그렇게 회이던과 카에키는 척파크 구릉지대에 입성하였다.


매우 멀다와 적당하게 가깝다의 중간 정도 지점, 불룩하게 솟은 고지가 길처럼 주욱 이어지며 평탄함을 자아낸 지형이 보였다. 그 위에 있는 것이 가나티 성채이다.


육각형의 성벽과 그 안쪽에 있는 육각형의 성벽, 각진 부분에는 감시탑이 설치되어 있었다.


바라보는 말 두 마리는 투레질하며 코로 희뿌연 김을 뿜었다.


“은화 세 닢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구나.”


시작은 코멜루가 선금으로 내건 은화 세 닢이었다. 그로부터 시작한, 길다면 길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을 나날이 이렇게 종막에 달하였다.


경호원이 아닌 보호자 노릇도 적당히 괜찮았다. 그것이 회이던의 짧은 소고이다.


경호란 것은 대개 대화가 일방향적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그간 카에키와의 대화는 쌍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말하기에 무리 없었다. 언제나 말하는 쪽은 회이던 뿐이었음에도 그러하다.


금역에서는 양심의 목소리를 거의 마주치지 못할 것이다. 대개 선천적으로 짐승인 존재 혹은 정신적으로 짐승인 존재만 수두룩하게 만날 테다.


다들 인사말보단 이빨과 칼날을 먼저 내밀 것이고, 그래서 대화라는 유용한 수단을 활용할 기회도 좀처럼 드물지 않을까 싶었다.


운이 좋으면 상상 친구를 하나 만들어 서로 즐겁게 대화 나눌 수 있을지도. 하여튼 뭐 그렇다.


“은화 세 닢 값어치는 아득히 뛰어넘지.”


카에키는 고개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볼 뿐 회이던의 말에 대꾸 않았다. 그런 그녀를 그냥 그대로 놔두었다.


작별의 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이 더 여린 쪽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작별을 통해 섭섭함을 느낀다면, 그리고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식이 일부러 박정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두는 편이 낫다.


언덕마다 솟은 수풀의 길이는 자로 재어 자른 듯, 강박적이라는 인상까지 받을 정도로 일정했다. 때문에 멀리서는 수풀의 길이가 느껴지지 않았으며, 그저 짧은 잔디가 덮인 지면으로만 보였다.


어째 자연의 비정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광경이다. 보다 보면 기분 묘했다.


육각형의 성채는 점차 더 가까워졌다. 스산한 안개 속, 푸르른 것을 넘어 시퍼런 땅 위에 우두커니 선 모습은 바라보는 이에게 기묘한 괴리감을 불러일으켰다.


주변에는 어떠한 인공물 없이, 오로지 가나티 성채뿐이다. 현실의 광경이라기보단 기이한 사조의 한 폭 그림 같았다.


건축 양식은 마우리아에서 본 것과 같았다. 벽돌을 이용하여 죄다 각진 형태로 곡면 없이 지었다. 지금은 파란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있는 벽돌의 암회색 표면은, 세월이 흐르고 때가 타도 그 견고한 색깔을 유지할 것만 같았다.


성벽 위에 토속적인 행색을 갖춘 몇몇 병졸들이 보였다. 주변에 농가는 보이지 않기에 징집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 잘포로스 공의 권솔들인 듯했다.


그들은 성채로 접근하는 마차를 멀리서부터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회이던은 그중 하나와 눈길을 겹쳤다.


“뉘신데 애까지 달고 이 험지까지 오셨슈!”


“잘포로스 공을 뵈러 왔습니다!”


거리가 수직으로 꽤나 떨어져 있어 바락바락 악을 쓰듯 외쳐야 대화가 성립되었다.


“얼굴 보자 하시는 분이 누구라고 전해드릴깝쇼?!”


“발롬니 공 아래의 사람이라 전해 주십시오!”


발롬니 공의 이름이 나오자 병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면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병졸은 알겠다며 바락바락 외치고는 난간 너머로 사라졌다. 그 뒤로 얼마간 기다림을 보내야 했다.


다른 병졸들은 아무런 사건 없어 텅 빈 지평선의 물결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 굳이 악을 써가면서까지 이방인과의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성벽 어귀의 기다림은 몹시 지루했다.


카에키는 여기까지 오는 길 내내 회이던을 외면하더니, 이제야 눈길을 자연스럽게 여기저기 옮기거나 했다. 앞으로의 삶을 내맡기게 될 장소를 면밀히 살피는 것이었다. 그러는 눈동자엔 조금 근심이 실려 있었다.


회이던은 그런 생각을 했다. 만에 하나 잘포로스 공이 그녀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면, 혹은 그가 자신이 생각했건 종류의 의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다.


하지만 어쩌고 자시고, 애초에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잘 키워 주십쇼 하면서 애 하나 맡기려는 심산 자체가 양심을 엿 바꾸어 먹은 발상이란 걸 알아야 한다.


카에키가 딱한 사정이긴 하나, 그럼에도 그녀를 거부하는 것을 호로 쌍놈이라며 매도하고 저주할 수 있을까.


그렇진 않다. 오히려 호로 쌍놈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에도 빠지고 아주 오두발광의 자아 성찰이 펼쳐졌다. 애를 금역까지 데려갈 순 없다는 사실이 그나마의 방어 기제였다.


그건 그냥 그거다. 참신한 방법으로 꼬마애를 죽여 볼 테니 우레와 같은 함성과 각별한 기대를 전해 주십시오. 뭔가 확실히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지랄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잘포로스 공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더라도, 사정에 사정을 반복하여 카에키를 맡겨 놓는 게 나을 것이다. 그 뒤 그녀의 삶이 고달픈 핍박과 멸시에 여과 없이 노출된다 하여도 그편이 더 나을 것이다. 금역과 달리 최소한 몸만 안전할 테니 말이다.


“미안하다.”


회이던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나왔다. 카에키는 놀라기보단, 조금 서글픈 눈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발롬니 공의 제자, 회이던 섬칼리고드인가?!”


그때 위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기대만큼 강직한 목소리였다. 통성명도 전에 이름을 불릴 거라곤 예측도 못 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에! 제가 회이던 섬칼리고드입니다!”


“나는 가나티 성채의 성주, 엘곤 잘포로스일세! 발롬니 공의 제자인 자네가 여기엔 무슨 일인가!”


“귀공께 인사드립니다! 그것은 긴 이야기라, 안에서 직접 뵙고 말씀드리길 청하고 싶은데요!”


“알겠네! 잠시 기다리게나!”


본명을 불린 뒤 부풀린 범죄 이력을 나열하거나, 혹은 경멸하는 눈초리가 뒤를 잇지 않은 게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도르래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문이 천천히 들려 올라갔다. 내측 성벽의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회이던은 안쪽에 마차 바퀴를 들이며 급히 카에키에게 담요를 건네었다. 그녀가 몸을 꽁꽁 싸매어 냉기를 억제하는 사이 잘포로스 공이 성벽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회이던이 상상했던 강골한 무인의 인상과는 차이를 지닌 외모였다. 거뭇거뭇한 머리카락은 목 근처까지 내려왔고, 볼살은 움푹 팬 채 광대가 도드라졌다.


하지만 작위와는 어울리지 않게 소탈히 차려입은 옷 아래로 무인의 골격이 도사렸다. 위와 아래가 부조화를 일으켰다.


“발롬니 공에게 자네 이야기를 들은 적 있네. 몹시 아끼는 영특한 제자가 있다면서 말이지.”


“제 성정에 적잖은 포장이 들어갔군요. 저 영특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부끄럽지만 천박한 성격에 더 가깝지요.”


“아무렴 어떤가. 발롬니 공의 제자여, 이 황량한 가나티에 온 것을 환영하네. 자네 스승께선 이 어지러운 판국 속에서 여전히 무탈하게 지내시나?”


“교단 놈들에게 살해당하셨습니다.”


회이던은 표정 바꾸지도 않고 덤덤하게 말을 전하였다. 잘포로스 공과 그 옆 수행원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심지어 발롬니 공의 존재를 조금 전까지 알지 못하였던 카에키마저도 비슷한 얼굴빛이 되었다.


잘포로스 공은 입술을 깨물듯 꽉 다물며 눈썹을 뒤틀었다. 회이던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노기가 아른거렸다.


회이던은 분노의 창이 향하는 곳은 자신이 아님을 알고는 있으나, 그럼에도 영혼을 꿰뚫는 듯한 그 눈빛에 체모가 곤두섬을 느꼈다.


“예상치 못한 귀한 손님이 비보를 들고 왔군. 조의를 표하네. 자네 마음속 설움이 어떠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군.”


“추기경에게 직언을 한 죄목··· 죄목이라 하는 게 맞을까요. 그 밖의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니 그냥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어쨌든 그런 죄목으로 목이 잘려 돌아가셨습니다. 최소한 교단 것들이 그분을 불태우진 않으셨지요.”


“젠장.”


잘포로스 공은 단 한 마디 내뱉었다. 늙은 성주가 한껏 찡그린 얼굴 근육을 원복하는 데에는 조금의 시간과 침묵이 필요했다. 속에 응어리진 울분을 가까스로 다스리는 듯했다.


“발롬니 공의 제자인 자네에게는 해코지하지 않던가?”


“그게 말이죠. 저는 여기 온 적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회이던은 잘포로스 공에게 잔부스 학살의 밤과 그 뒤의 도피 행각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실타래에 매달린 신의 등장에 관해선 일부러 잘라내었다.


발롬니 공, 정확히는 데브루인과의 재회를 전부 까발릴 수는 없었다.


그게 스승의 죽음을 뒤로하고도 의연히 있을 수 있는 까닭인데, 외려 지나치게 의연하기에 더 위태로운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그러한 인식을 구태여 바로잡고 싶진 않았다.


다만 카에키가 연민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처지와 흡사하다 여긴 것인지 눈가도 조금씩 촉촉해지는 것이었다. 그녀 마음의 애수를 이용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때문에 저와 얽힌 것만으로 배교를 범한 것이 됩니다. 교단은 즉결 처형을 합법적으로 집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 제가 서 있는 것만으로 심대한 폐를 끼쳐 드리는 겁니다.”


회이던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잘포로스 공의 반응을 살폈다. 심각해 보이는 얼굴이긴 했다. 에구머니나 당장 여기서 꺼지도록 해 이런 응답을 각오하였다만, 문책하는 목소리는 뒤따르지 않았다.


“의를 지키기 위해 세상을 등졌군. 언젠가 자네 용기에 화답하는 세상이 오기를.”


그는 길을 터놓으며 내측 성벽의 문을 가리켰다. 회이던은 고개를 꾸벅이며 다시 마차에 올라타 그 안쪽으로 바퀴를 들였다. 상당히 엄혹해 보이는 건축 양식과는 달리 성벽 안쪽의 광경은 소탈했다.


가축들이 내는 소리가 제일 먼저 귀에 들어왔다. 닭과 돼지를 치는 축사와 그 옆에 자리를 내어놓은 마굿간에서 나는 소리였다.


우물 근처에는 호밀과 보리, 순무 들 내한성 작물들을 가꾸는 텃밭이 위치했다. 권솔들을 먹여 살릴 만한 규모는 되었다. 성주가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탑 옆으로는 이런저런 생활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예컨대 예배하는 작은 교회 같은 것 말이다.


두 겹 성벽에 둘러싸여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숨통 갑갑하진 않을 만큼 널찍했다. 외려 바깥의 인간성 결여된 언덕들을 오랫동안 내다보면 호흡 곤란이 오거나 할 것이다.


“도피를 위해서 여기 온 겐가? 자네와 옆에 여자아이를 숨길 만한 공간은 있다네. 여자아이는 자네 딸인가?”


회이던 나이에 이만한 딸이 있으려면 약관 몇 세에 이버지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사정이 조금 복잡하다며 얼버무렸다. 담요를 꽁꽁 싸매어 놓은 모습은 추위라는 지역적 특색에 의거해 그다지 의심을 사는 행색이 아닌 듯했다.


옆을 보면 카에키의 표정이 막 그리 밝진 않았다. 아버지가 상기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우울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여자아이에 관해 조심스레 논의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요. 다만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코멜루라는 행상인을 알고 계십니까?”


“코멜루?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로군. 나와 무슨 관계라도 있는 사람인 겐가?”


마차에서 도로 내려온 회이던은 뒷칸에 실린 나무상자를 탕탕 두들겼다.


“가나티 성채까지 물건들을 은밀히 배달하는 일감을 맡았다 하더군요. 다만 그 불쌍한 사람은 검은망토들에게 죽임당하였습니다.”


검은망토라는 말에 잘포로스 공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예감한 모양이었다.


“안에 있는 물건을 봤나?”


회이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망토 건은 걱정하지 마시죠. 어차피 놈들은 안에 든 물건이 뭔지도 모른 채 죽었습니다.”


“천만다행이군, 살해당한 행상인에게 안식이 있기를, 따라오게나.”


잘포로스 공은 회이던에게 손짓하며 중앙의 큰 탑을 향해 걸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수행원은 텃밭에서 농작물 가꾸던 몇 권솔들을 불러 모아 나무 상자를 힘 합쳐 들도록 지시했다. 탑의 어두운 내부로 따르는 회이던과 카에키 뒤로 그들이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탑의 1층은 서재가 딸린 공간이었다. 무채색의 양탄자 위로 책장이 사각의 벽면을 둘러싼 형상이다. 책장에는 전투 교범이나 성직자들의 필사본 같은 것이 빼곡하게 꽂혀 있을 뿐, 그 밖의 서적은 없었다.


상자를 운반하던 권솔 가운데 두 사람이 책장 옆에 서더니 있는 힘껏 밀었다. 측면으로 밀려난 공간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감춰져 있었다.


“예술품들을 이 안에다 은닉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교리 적힌 책들 뒷편에 이런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니 참으로 흥취를 돋구는군요.”


계단 내려간 공간은 천연의 어둠이었다. 권솔에게서 횃불을 건네어 받은 잘포로스 공은 그것을 걸대에 걸쳐 놓았다. 주르륵 늘어선 선반들의 그림자가 으시시하게 비쳤다.


“오늘은 어째선지 이 아래가 유독 더 서늘하군 그래.”


아마 카에키 탓일 테다. 회이던은 모르는 척, 그것에 관해서도 나중에 설명하기로 마음먹으며 함구했다.


선반에는 수십 점은 족히 될 그림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수집을 취미 삼은 것이라 해도 대단한 수준에 속하는 보관량이었다.


반대쪽 벽면에는 조각상들이 즐비했다. 먼지가 내려앉지 않도록 천으로 덮어 놓은 채였다.


그 밖에도 금서로 분류된 서적이나 금지곡의 악보, 도자기와 의류 등 다각적으로 탄압받는 예술품들이 눈에 띄었다. 인류 역사의 한 축이라 칭할 만한 게 여기 지하실에 잠들어 있는 셈이다.


“세상에, 이런 것들은 대체 어떻게 다 모으신 겁니까?”


“교단의 퇴행에 의해 세상이 표백으로 일관되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는 무리가 있다네. 지하에서 암약하는 그들의 도움이 따랐지.”


권솔들이 분주히 새로운 예술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회이던과 잘포로스 공, 그리고 카에키는 가만 서서 그러는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자네 스승인 발롬니 공의 조력도 있었다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지.”


“발롬니 공께서 이런 일에도 몸담으셨는지는 몰랐습니다.”


멍청한 놈의 눈에는 교단의 전횡에 침묵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태풍 같은 분노를 억누른 채 피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감싸 놓았던 것이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그런가 하면 어떤 의문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관찰자로서의 규율이란 인형의 몸을 담은 사회에 개입하지 않으며 관망하는 것일진대, 문화재 보존에 어떻게 조력을 보낼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회이던에게 베푼 방식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발롬니 공, 데브루인은 그저 뜻 모를 신뢰와 그를 뒷받침하는 자본으로 회이던을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사람이 된 회이던은 사회를 뒤집어 놓았다. 그 뜻모를 신뢰와 자본의 베풂이, 결과적으로는 철저히 사회에 대한 개입이었던 것이다.


대놓고 예술품 밀수를 획책하진 않았을 것이다. 규율의 감시 아래 조금 더 교묘한 방식으로 조력이 이루어졌으려나 싶었다.


“오늘따라 유별나게 서늘하군. 손님 대접하는 예우가 아니지. 내 집무실에 올라가 이야기 나누는 건 어떤가?”


“좋습니다. 한데 외람되고 무리한 청을 하나 드려도 괜찮으실까요.”


“뭔가?”


“운반해 온 것 가운데 파도를 묘사한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어째 제 고향 생각이 나는 그림이더군요.”


“원하는가? 가져도 좋다네.”


“예? 정말이십니까?”


너무나 간단히 응한 잘포로스 공의 답변이 회이던을 조금 당황스럽게 하였다.


몰염치한 놈 발롬니 공의 제자라 하여 나의 불편을 무릅쓰고 안에 들여보내 줬더니 나중엔 감투도 내놓으라 하겠어 제발 좀 수치심이란 것을 알거라, 뭐 이런 답변을 미리 대비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게들! 파도를 묘사한 그림이 있으면 따로 분류해서 내 집무실 앞에 가져다 놓게나!”


“파도가 뭡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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