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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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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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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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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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DUMMY

12



남자를 앞장세워 내려간 지하실에는 대장간 시설이 펼쳐져 있었다.


곳곳에 뚫린 환기구는 유황 악취를 품은 불가마의 열기를 내보내기엔 부족했다. 따라 내려온 여자애 덕에 찜통 신세만은 면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방구석에는 뭔지 모를 금속 주괴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칠흑빛 위에 열이 감도는 듯한 붉은 선이 패각 무늬로 은은했다.


유황 냄새만으로 짐작한 바였다. 여긴 악마제 금속을 주조하는 시설이다.


그간 교단의 사람 불태워 죽이는 취미에 대해선 과하게 설명했으니, 악마의 물건을 취득한 사람들이 어떤 운명에 놓이는지는 따로 서술하지 않기로 한다.


“악마들의 무기를 빼돌려서 녹이는 시설이로구만. 왜 이런 짓거리를 하는 건데?”


회이던은 구태여 상대의 멱살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뾰족하게 돋친 말투만으로도 비슷한 효과가 연출되었다. 남자가 뻘뻘 흘리는 구슬땀은 그 전부가 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 독단적으로 벌이는 일이 아냐, 난 중간책이라고!”


“언성 높이지 마쇼. 뭘 잘했다고···.”


회이던은 나무 상자를 들추었다. 아직 녹여서 단조하지 않은 악마들의 무구가 몇 개 남아 있었다. 그걸 본 미간이 잔뜩 좁아졌다.


“사람들 참 대단해. 하다 하다 악마들 물건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네.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그, 그러는 당신도 마검 소지하고 있구만! 깨끗한 척 나 지적할 자격이 있어?!”


남자는 회이던이 등에 멘 전기톱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 말을 들은 회이던은 낮게 웃었다. 재미있어서 웃는 건 아니고 즐거워서 웃는 것도 아니었다.


“허허허···. 정말로 보이는 대로 믿는 사람이네. 이거 마검 아냐. 성검이야.”


“그런 흉측한 게 위대하신 횃불께서 내려 주신 성물일 리 없잖아!”


“악마의 물건 다루는 놈이 횃불에게 존칭을 쓰네. 참으로 이색적인 혼종이구나.”


꽉 다문 주먹이 남자의 대가리를 한 대 더 쥐어박았다. 꿉꿉한 지하실에 매끈한 옥석 두 개가 부딪히듯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언성 높이지 마. 내가 같은 말 여러 번 할수록 네놈 죄도 더 쌓인다···.”


회이던은 등 뒤에 서 있는 소녀를 돌아보았다. 이 악마적인 광경에 큰 인상을 받은 것 같진 않았지만, 마을에 들어설 적부터 급격히 어두워진 표정은 그대로였다.


“위에 올라가 있거라. 여기 빛도 안 들고 냄새도 별로잖아.”


“자, 잠깐! 애를 왜 위로 보내는데! 나에게 뭔 짓을 할 셈이야!”


“아, 시끄러.”


회이던은 남자를 한 대 더 쥐어박았다.


“언성 높이지 말라고. 이번이 세 번째다. 네놈 기억력은 사람과 붕어 사이 어느 지점에 있냐?”


회이던은 여자애에게 어서 올라가라며 손짓했다. 소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단을 타고 올랐다.


열기를 한층 낮추는 한기가 사라지자 지하실은 완전한 찜통이 되었다.


남자는 맹렬한 더위 속에서도 추운 것처럼 몸을 떨어댔다. 딱히 죽일 생각은 없고, 소녀를 위에 올려다 보낸 것은 정말로 상기한 이유가 전부였기에 그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웠다.


“주, 죽이지 마. 다 말할게. 공급책이 악마들 쓰던 무기를 어디서 가져오면 그걸 녹여서 주괴로 만들어. 그리고 전달책이 찾아오면 다시 넘길 뿐이야. 어디다 쓰이는지, 그 사람들이 누군지는 정말 몰라. 난 그냥 중간책에 불과하다고···.”


남자는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불어댔다. 회이던은 도중에 끊지도 않으며 건성스러운 표정으로 묵묵히 들었다.


“응? 내가 무슨 악마 숭배자는 아니잖아. 나 이런 일 하는 주제에 제법 신실한 삶을 살아. 예배에도 꼬박꼬박 출석하고 식사 전후로 빼먹지 않고 횃불께 기도를 드린다니깐.”


“그것 참 이색적이네. 뭐 알겠다.”


그의 말처럼 악마제 금속을 주조한다 해서 악마 숭배자라곤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런 거다. 향정신성 약물을 제조해서 사회에 해악을 배포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신앙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거다···. 이 역시 회이던이 알 바는 아니다.


“하지만 네가 열심히 말한 내용들은 별로 궁금한 게 아니었단다. 그보다, 내 눈에 막 인과 같은 게 들어오고 있는데 너는 그렇지 않니? 마을 사람들에게 악마병이 발현한 인과 말이야.”


남자는 회이던의 말에 흠칫하더니 몸 떠는 것을 멈추었다. 그 역시 마음속에 켕기는 것이 있다는 의미였다.


“아··· 악마병 창궐이 내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아무래도 그렇지. 발병 원인이 명확히 밝혀진 바 없긴 하다만 현 상황에 비추어 보면 네 직업 활동 말곤 인과라 할 만한 게 없잖냐.”


“성직자들께서 말씀하시길 악마병의 원인은···.”


회이던은 팔을 마구 휘저으며 말을 강제로 끊었다. 하찮은 놈들의 하찮은 잠언을 일일이 짚으며 입씨름하고 싶지 않았다.


“성직자들은 지구가 평평하다 믿어. 그놈들은 신앙을 통해 논리를 몇 단계나 건너뛰고서도 결론을 제작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을 지녔거든. 교회에서 사람 똥이 건강식이라 공표하면 그게 맞는 말이 되냐?”


“나 때문에 악마병이 발병한 거라면, 정작 악마들 무기를 녹인 나는 어째서 멀쩡한 건데!”


“감히 내 논리의 결함을 지적해? 너를 흠씬 때려주마.”


남자는 반사적으로 정수리에 팔을 쳐들었다. 하지만 회이던은 남자를 더 패려고 들진 않았다. 대신 대장간 시설을 한 바퀴 둘러보며 의미 없다는 얼굴을 띄우고 말 뿐이었다.


“나는 내 어깨 위에 책임감 더하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 별로 상관도 없는 이 일에 더 깊이 관여할 생각은 없고, 그래서 판결을 내리겠다느니 단죄하겠다느니 억울한 넋을 달래겠다느니 하는 개소리 뱉을 생각도 없다.”


남자는 입을 열어 뭐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쳐들린 회이던의 손바닥에 가로막혔다.


“아, 아. 말하지 마. 내 말 끝까지 듣기나 하쇼. 귀 제대로 세우고 잘 들어. 당신 오늘의 사건을 운이 없었던 기묘한 날 정도로 기억하지 마. 시무룩한 실책과 부끄러운 죄악감으로 오늘을 떠올리라고. 그게 섭리에 맞는 거잖아? 설교 끝.”


남자는 말이 없었다. 회이던의 말을 깊이 통감하는 것 같진 않고, 여전히 자신에게 가해진 날 선 말 그 무엇도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막 열이 뻗치진 않았다. 열이 뻗친다면 이런 더위와 악취의 한복판에 최소한의 구제 장치도 없이 방치된 스스로의 처지뿐인지라···.


“당신 알아서 하쇼. 어차피 교단에서도 진상 파악하고자 성직자들을 여기에 보낼 텐데.”


회이던은 손을 휘저으며 출구를 향했다. 그때 위에서 쾅쾅거리며 계단 밟는 소리가 들렸다. 올려다보면 상기된 얼굴의 소녀가 다급한 잰걸음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발병자들이 더 튀어나왔어?”


소녀는 회이던 뒤에 숨더니 떨리는 손가락으로 계단 위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향한 곳에는 두 개의 그림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가옥 바깥으로부터 유입된 빛을 등짝으로 막아내며, 검정으로 덮인 얼굴로 회이던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이던 섬칼리고드!”


늙었으나 힘과 위엄이 서린 목소리가 우렁찼다. 회이던은 대답 않으며 소녀를 뒤로 더 물렸다. 그리고 어깨에 메어 놓은 전기톱을 두 손 위에 올려다 놓았다.


그들은 계단을 밟으며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느린 발걸음으로 밟히는 계단은 곧 부서질 듯 심하게 삐걱거렸다. 육중한 전투화의 사나운 합금 재질이 비단 계단뿐만 아닌 지하실 공간 전체에 진동을 일으켰다.


불가마의 희미한 빛이 교회 기사의 갑주를 비추었다. 새겨진 붉은 부조는 그가 횃불의 사도임을 알렸다.


위협적으로 쇠줄 당기길 반복하던 회이던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음습한 미소를 띄웠다.


“아, 우리 구면이죠. 추기경의 등대이신 마테오크 윌딤 공이시군. 그럼 같이 서 계신 할배는 윌딤 공의 시종이신 조날루 헤티치오인가. 두 분 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회이던 얼굴에 뻔뻔스레 실린 서글서글한 미소가 마테오크의 얼굴에 격노를 불러일으켰다. 조날루라는 이름으로 불린 시종은 언짢음을 애써 감추진 않았지만 자신의 주인보다는 침착했다.


“잔부스에서 여기까지 먼 길 납셨습니다.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오셨대.”


“당신 마검의 흔적은 너무 요란해요. 주의 깊게 쫓았지요. 그리고 어느 미천한 강도의 조력도 있었습니다.”


정황상 대로에 남겨놓고 온 도적단 수괴 놈을 말하는 것일 테다. 역시 죽여야 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쳤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상관없어. 그쪽 사도 분께선 대의의 명분이 아닌 개인적인 원한 아래 날 쫓고 계시잖아. 떨치기 위해선 죽이는 수밖에 없지. 당신 은사이신 추기경께서 어떻게 뒈졌는지 묘사해 줄까?”


마테오크 윌딤의 몸이 움찔거렸다.


“교단 측에서는 아마 숭고한 순교로 포장했겠지. 그런데 실제로 어땠는가 하면 숭고함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어. 폭포수처럼 오줌을 지리며 나의 바짓가랭이를 붙잡으시는데···.”


움찔거리는가 싶던 횃불의 사도의 몸은 아주 일순간, 극히 찰나의 순간 어그러지며 수축하는 것처럼 보였다.


본디 둔중해야 할 무게의 전투화는 폭발하듯 바닥을 튕겨냈다. 어느새 횃불의 사도와 그의 대검은 회이던 앞이었다.


“···목숨 구걸하는 말을 내뱉으셨지. 다른 누구도 아닌 배교자 섬칼리고드에게.”


휘둘린 대검에 톱날이 맞부딪혔다. 톱날은 회전하지 않으며 정적인 모양 그대로였다. 맞부딪힌 두 금속 덩이는 번쩍이는 번갯빛 불꽃을 터뜨리며 퉁겼다.


회이던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거두었다. 빈정거림도, 고약한 멸시도 그 얼굴 위에서는 모두 지워졌다.


오직 깊은 물에 침잠하듯 고요하고 위험한 분노만이 도사릴 뿐이었다.


“너희가 저지른 꼴을 봐. 난 네놈들이 본격적으로 미쳐 날뛸 때에도 입 꾹 닫고 살았어. 오히려 그리도 성스럽다는 횃불의 이름 달고 악마들을 수도 없이 쳐 죽였지···.”


“닥쳐라.”


마테오크의 발음 분명한 목소리는 청년 시기의 완고한 확신을 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연륜을 통해야만 습득할 수 있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고함이 아닌 읊조림에 불과함에도 쩌렁쩌렁 울리는 그 음성은 집주인 남자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도록 했다. 남자는 거의 무아에 빠져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확실한 것은 횃불의 사도가 휘두르는 영광스런 칼날에 곧 죽임당하리라는 사실뿐이었다. 이 장소가 영락없이 악마 숭배하는 시설로 비칠 것이다.


“너의 죽음으로 내 스승의 존엄을 달래겠다. 전염병처럼 퍼지는 네 악의 행사도 여기서 종막이다.”


“악이라···. 나 악의 상대성과 같이 고루한 주제로 토론하고 싶은 생각 없다. 그냥 모든 게 명확해. 나는 악이 아니야. 악의 편에 서 있는 것은 네놈들이지.”


무감정한 얼굴로 악마제 무기와 주괴들을 둘러보던 조날루도 칼을 뽑았다.


커다랄 것 없이 평범한 칼날이나, 오래 사용하며 벤 만큼의 피와 영혼으로 벼려내어 광기와 위협이 엉겨 있었다.


“아니. 섬칼리고드, 당신이 악입니다. 당신의 발이 딛는 곳마다 마왕을 찬미하는 저주 어린 함성이 울리지 않나요. 이 공간을 둘러보시죠. 여기 즐비한 악의 도구들을 외면하며 말하지 마십시오.”


“제 거 아닙니다만.”


“조날루, 뒤에 빠져 있거라. 복수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마테오크는 그의 시종에게 말했다. 회이던에게 고정해 놓은 증오의 눈초리는 한시도 거두어지지 않았다.


안구의 번질거림은 기름을 흩뿌려 놓은 듯했으며, 횃불이 그 위에 불을 옮겨 붙였다. 제어할 수 없는 화염의 소용돌이가 눈동자 속에서 용솟음쳤다.


회이던은 너털거리며 웃었다. 그에게는 교회 기사들의 일관적인 우직함이 허세로밖에 느껴지지 않아, 항상 유쾌한 웃음을 안겨다 주었다.


제아무리 횃불의 사도와 그 시종이라 한들 그 둘 동시에 상대하는 것이 무리까진 아녔다.


다만 뒤에 딸린 소녀를 수호하며 상대하긴 조금 난해하다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무얼 위한 것인지 종교인은 스스로의 발목에 족쇄를 걸어놓지 않는가.


수호의 대상에 속하지 않는 집주인 남자는 회이던을 미친 사람 보듯 쳐다보았다. 횃불의 사도를 앞에다 두고 막 웃는다. 미친 사람이 분명하다.


그러나 곧 죽임당할 그 자신도 미칠 지경이었기에 차라리 따라 웃고 싶었다.


“뒤로 빠져 있으렴. 최대한 너 보호하며 싸우마.”


회이던은 소녀를 최대한 뒤로 물려 놓았다. 시련이 잘 날도 없이 계속해 이어져 바들거리는 그녀 몸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 여자아이는 죄지은 사냥꾼의 딸입니까?”


와중에 조날루가 말을 툭 던졌다. 회이던과 소녀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악을 숭상하는 자들은 역시 한데 뭉치기 마련이지요. 섬칼리고드, 당신이 퍼뜨리는 간악의 포자가 너무나 두렵습니다.”


“···같은 말을 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회이던은 소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는 눈도 깜빡이지 않으며, 시선으로는 그것이 향하는 끝이 아닌 허공의 어느 흐릿한 지점을 응시했다. 차가운 그녀 몸처럼 분노도 냉랭하고 소리 없었다.


“나 이 사회가 너무너무 싫어.”


회이던은 누구에게 던지는지 모를 말을 멍하니 뱉었다. 전기톱 레버에 그의 손가락이 올라갔다. 마테오크 윌딤도 붉게 달아오른 검날에 불길을 일으켰다.


화염과 회전이 동시에 부딪혔다. 충격을 뒤늦게 이은 불티가 그들의 얼굴에 튀었다.


불붙은 대검의 육중한 무게는 날렵하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휘둘렸다. 아래, 위, 가운데와 왼쪽. 검격은 분노를 담아 무자비하게 퍼부어졌다.


검날에 들러붙어 타오르는 불길은 그저 휘두르는 방향으로 휘날리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공중에 얼마간 남아 타오르기를 지속했다.


간단한 검격은 허공에 불타는 죽음을 한 차례씩 새겼으며, 맹렬하게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열기가 가득 찬 실내는 그 자체가 불가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회이던은 자연히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그러나 기세 면에서 우위를 내어준 것은 아녔다. 방어적인 태세 일관이었으나 난공불락으로, 흠결이 없었다.


그의 고속으로 회전하는 안구는 대검의 날이 아닌 마테오크 윌딤의 어깨, 상완을 뚫어져라 응시하였다.


두꺼운 갑주로 감싸 놓아 근육의 미세한 움찔거림을 분간할 순 없으나, 그럼에도 이어지는 공격의 방향을 미리 예지할 수 있었다. 그것을 막는 것은 전부 감각의 영역이었다.


톱날의 회전은 일방적인 공격을 매우 쉽게 튕겨냈다. 회이던이 노리는 것은 흐름과 흐름이 맞물리는 와중의 어긋남, 찰나의 찰나에 지나지 않을 빈틈이었다.


지켜야 하는 사람이 있는 만큼 전투의 흥취를 온전히 만끽할 생각일랑 없었다. 끈기는 오래 지속될 것이나, 끝나는 것은 한순간에 불과할 것이다.


“얄팍한 생각이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투명한 물처럼, 전부 들여다보이는구나.”


회이던이 퉁겨낸 대검은 수직으로 솟구치더니 반듯하게 정면을 가르며 내려꽂히려 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톱날을 가져다 대어 막을 것이다···.


‘이건···.’


아직 젊어 전부 만개하지 않은 횃불의 사도가 휘두른 검격에는, 백전노장이 최후의 숨결을 실어 휘두르는 듯한 힘이 실렸다.


회이던은 막아내기를 포기하며 급히 몸의 무게를 뒤로 힘껏 실었다.


칼날은 바닥을 내려찍었다. 그 궤적대로 맹렬한 불길이 한번 화륵거리더니, 뒤늦게 지하실 공간 전체에 큰 진동이 일었다.


“눈 감아!”


회이던이 날카롭게 고함쳤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개의 천장을 아득히 넘어 먼 하늘로부터 번쩍하며 굉음이 일었다.


그다음 벌어진 일은 순식간이었다. 닿은 것을 산산이 분해하는 빛기둥이 일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존재했다. 궤적에 실려 하늘로부터 낙하한 것이 아니라, 먼 하늘 끝과 지극한 땅바닥 아래에 동시에 존재했다.


조금 전까지 회이던이 서 있던 위치는 철저하게 분해되며 깊은 구멍이 되었다. 불가마의 더운 빛과 마테오크의 검불에 의존하던 어둑한 지하는 눈이 멀 듯한 광채에 휩싸였다.


“끝이다.”


빛기둥이 사그라듦과 동시에 칼날이 정직하게 휘둘렸다.


그러나 눈부심의 너머이기에 사각에서의 일격과 같았다. 회이던은 밀려오는 공기가 피부에 닿는 살벌한 감촉을 통해, 칼날이 그의 신체에 닿기 전 미리 감아 놓은 눈을 떴다.


검격에는 황금의 유리 빛깔로 영롱한 빛결이 둘러져 있었다. 회이던은 뇌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는 몸을 날려, 뒤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여자아이를 덮쳐 넘어뜨렸다.


광대한 참격이 비스듬하게 공간을 휩쓸어 벽면과 불가마와 주괴들과 지반을 절단하고 뒤틀고 내려앉게 했다. 지하실의 천장이 낮아졌다.


마찬가지로 어쩔 줄 몰라 하던, 괴물들의 향연에 넋을 놓고 있던 집주인 남자의 몸도 절반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즉시 불타며 순식간에 숯이 되어버렸다. 끽소리 못 하고 절명한 그는 바싹 마른 소리를 내며 바닥에 가볍게 부딪혔다.


회이던은 품속을 차갑게 식히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거의 무아지경이다. 하염없이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돈 받았으니 받은 만큼은 해야지.”


왜 싸울 때마다 입꼬리가 위로 번질까. 태생부터 글러 먹어서 그런다. 회이던은 남에게 상처와 고통과 해악을 끼치기를, 혹은 거기까지의 고단한 인내를 즐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 받은 만큼은 해야 한다. 피가 솟으며 마테오크 윌딤의 왼쪽 팔뚝이 낮아진 천장에 부딪혔다. 굳게 들려 있던 대검은 바닥에 떨어져, 들러붙은 화염이 얕아졌다.


“커하악···!”


“무슨···!”


조날루는 모든 과정을 새기며 분명하게 바라보던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움직임, 묘사할 가치도 없이 그저 둔탁했을 뿐인 단 일격에 어찌할 나위 없이 주인의 팔이 잘려 나갔다.


“처 웃어댈 예정 없다. 다음은 네놈 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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