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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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최근연재일 :
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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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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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DUMMY

23



“탑째로 불태워버리죠. 아예 찜통을 만들어, 그 안에서 푹 익은 채로 뒈지게 만들어 줍시다.”


“아, 안 돼요. 이 탑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거라구요···. 저기 조개껍데기 문양 보이시죠?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북방 기사단 중 하나의 표식이에요···.”


“으음! 그러네요! 그런데 그게 제 알 바입니까? 교단 것들은 문화재 잘만 불태우는데···.”


“세 도끼와 다섯 자루 창 기사단의 활동 시기는 교단이 지금처럼 과열되기 이전이었어요. 지금 우리가 퍼뜨리는 전횡과는 무관한 사람들이랍니다···.”


“이름 참 길기도 합니다.”


회이던의 마음은 쉽사리 움직였다.


그는 말 두 필을 종탑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 데려다 놓았다. 그 녀석들은 탑의 벽면과 흙바닥이 맞물리는 장소에 머리를 가져다 대어 맛없는 잡초를 질겅거리거나 했다.


“너희들, 일이 잘못되면 알아서 도망가야 한다.”


그제야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했다. 회이던의 더러운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카에키 뒷통수에 달린 꽁지도 휘날렸으며 나프의 푸석거리는 금발도 함께 휘날렸다. 말갈기도 휘날렸다. 종탑 꼭대기 부근을 빙글거리는 입자들도 불길하게 휘날렸다.


회이던은 쇠줄을 당겨 전기톱을 깨웠다. 카에키는 등 뒤에 세워 놓고선 꼭 붙어 있으라며 단단히 당부하였다.


암흑의 핵심과도 같은 탑 안쪽은 영 마음 놓이지 않았으나 그렇게 따지면 바깥도 도긴개긴이다. 암흑의 핵심이라 하여도, 살상력을 갖춘 두 어른 옆이 더 안전할 것이다.


“저, 저는 어떻게 할까요?”


살상력을 갖춘 어른 가운데 하나가 멍청한 목소리로 물었다. 회이던은 바람결에 떨리며 덜컹거리는 문짝을 가리켰다.


“자매님이 앞장서십쇼.”


“제가요?”


“자매님의 권능, 너무 강력하시던데요. 그걸로 우리 둘을 지켜 주십쇼.”


“제가요?”


실로 그랬다. 나프가 숱한 성직자들과 다를 바 없이 불통의 인간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 실력이라면 회이던과도 꽤 좋은 승부가 되었을 것이다.


수녀원에서 그녀를 심문관으로 길러내려 한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여자는 불통이고 자시고, 안쓰러울 정도로 쭈글거리는 모습뿐이었다.


회이던은 안쓰러움을 느끼기보단 그런 생각이나 했다. 이런 얼굴로 사람을 불태우는 미친놈이 되었다면 정말 섬뜩했겠어···.


나프는 지팡이 끝에 횃불을 지폈다. 그 상태로 어둑한 탑 안에 발을 들이니, 그녀 얼굴에 역력한 긴장도 강한 음영을 받아 더욱 도드라졌다.


우중충한 탑 내부는 오랫동안 관리 바깥이었기에 축축한 행주 냄새가 가득했다. 그 밖에도 유황의 악취가 만연하였다. 옛 기사들에 대한 모독이 실시간으로 가해지고 있었다.


“바깥에서 바라본 것보다 훨씬 협소하군요. 톱 다루는 데 약간의 지장이 따르겠는걸요.”


“불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저는 자매님을 믿습니다.”


“저는 저를 못 믿는데요···?”


“그건 자매님 내면의 나약함 문제고요. 저랑은 관계없으니 엮지 마세요.”


“네엡···.”


탑의 중심부에는 마찬가지로 벽돌을 쌓아 올린 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계단의 구조는 사각의 벽면을 나선 형태로 빙 두르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기에, 중앙의 축은 벽면의 역할이기도 했다.


탑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직각이었다. 때문에 계단 한 구획을 모두 오르고 나면 모퉁이를 꺾어야 했다.


그것은 곧 사각에 목숨을 내맡기는 것이기도 했다. 모퉁이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심히 위험했다.


“자매님은 벽에 달라붙어 이동하시죠. 제가 모퉁이 너머를 확인한 뒤에 괜찮은지 아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엡.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셋이 줄지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광원은 지팡이 끝에 매달린 불꽃뿐이었다. 시시각각 그림자의 방향이 바뀌었고, 이는 벽면과 계단의 축뿐만 아닌 벽돌 사이의 홈과 같이 작고 미세한 부분에도 적용되었다.


그러나 광원의 아래 놓여 음영을 잃은 홈에도 검게 꿈틀거리는 것이 있었다. 미세하게 작은 틈 사이로 무언가 작은 것들이 기어다니는 것이었다.


돌 표면을 다듬는 소리는 마치 조그만 소년 소녀들이 속삭이는 음성 같았다. 그건 어느 한 군데서만 들리는 게 아니었다. 음성은 벽면 전체에서 전체로 이어졌다.


“음침한 분위기 말곤 뭐가 없네요···?”


“다음 모퉁이가 되면 모르죠.”


계단을 밟을 때마다 석조의 미끈거리는 감촉이 밑창 아래로 느껴졌다. 그 감각은 어째 회이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호로 쌍놈이 되어버린 회이던과 달리 그의 아버지는 적절한 수준으로 독실한 편이었다. 그런 당신께선 말썽꾸러기 아들놈 손을 붙잡고 교회로 향하곤 했다.


바닷가의 소도시 회이던의 아름다운 고향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교회가 하나 있었다. 그쪽까지 끌려가는 길바닥이 지금과 같이 미끌거렸다.


막상 교회에 도착한 회이던은 장의자에 얌전하게 앉아는 있었지만, 성직자의 설교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구석에 벽장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회이던은 교회에 머무는 종일의 시간을 그것 바라보는 데에 빼앗기곤 했다. 거미줄이 잔뜩 펼쳐져 있었고, 손잡이와 경첩에는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듯 먼지가 수북했다.


대부분의 것이 경건하게 정돈된 교회 속에서 그 벽장만이 홀로 을씨년스러웠다. 회이던은 그 안에 무언가 꺼림칙한 것이 들어있을 것만 같았다. 용기 내어 손잡이를 당기면, 그 안에서 무언가 대단히 끔찍한 것을 보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다고 공포에 질려 밤에 잠 못 드는 일은 없었다. 그냥 그 정도에 그치는 공상이었다.


회이던은 악몽에 시달리는 일도 없이 건강하게 지냈다. 어찌나 건강한지 자기보다 한참 나이 많은 형들도 패면서 돌아다녔다. 될성부른 쌍놈 같으니라고···.


“무, 무슨 생각 하고 계세요?”


“예? 예에?”


카에키는 회이던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자긴 이렇게 무서워 죽겠는데 멍하니 딴생각에 빠져 있을 여유가 있냐는 것이었다. 그녀의 차가운 두 손가락 사이가 몹시나 아렸다.


어느새 종탑의 중턱 정도였다. 속삭이는 듯 벽돌 사이 다듬는 소리는 점차 잦아들더니 들리지 않게 되었다.


왜 갑자기 그런 옛날 기억을 떠올렸느냐 하면, 나프의 지팡이 끝에 걸린 횃불이 어두침침한 벽을 비추었기 때문이다.


어딜 둘러보나 점박과도 같은 곰팡이가 빽빽하게 슬어 있었다. 곳곳에 피어 있는 곰팡이 점박은 마치 눈동자처럼 세 사람을 응시하였다.


빛이 새어 들어올 만한 것이라곤 세월이 벌려 놓은 벽돌의 틈뿐이고, 그마저도 뭔지 모를 우물거리는 검은색 물질에 틀어막혔다. 숨 쉬는 것마저 이 안에선 곤란했다.


어린 회이던은 어느 날 밤 집을 몰래 빠져나갔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교회의 문은 열려 있었고, 슬며시 열어 확인하니 안쪽에 사람은 없었다. 대신 불붙은 촛대가 어둑한 실내를 비추며 은은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경건함의 구석, 촛불마저 닿지 않아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듯한 그림자 속에 벽장이 놓여 있었다.


회이던은 초 하나를 뽑아 들고는 그 앞에 섰다. 이상하게도 거미줄이 죄다 걷어진 채였다. 먼지가 잔뜩 묻어나 있던 손잡이에는 손가락 자국이 보였다.


회이던은 벽장 문을 열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꺼먼 곰팡이 얼룩이 잔뜩 눌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그때 어린 회이던은 확신하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벽장 안에는 무언가 숨겨야만 하는 것이 들어 있었다. 그건 아마도 무척이나 꺼림칙하고 무척이나 비도덕적인 물건이었을 것이다.


회이던은 열린 문을 닫지도 않고 제 집으로 달려갔다.


물론 그 추측은 한낱 어린아이의 망상에 불과했다. 애당초 눈에 잘 띄는 곳에 은밀함 요하는 것을 집어넣을 리 없다.


그러나 당시 어렸던 회이던은, 어렸고 어리석었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이는 교단에 대한 의구심을 점등하기 충분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의구심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운 것이었는지 절로 깨닫게 된다.


그러나 시간은 더 흘러 지금이 되었고, 나이 삼십 줄을 넘긴 회이던도 지금처럼 되었다···.


“무슨 생각 하세요···?”


“자매님께서 하시는 생각이랑 똑같은 생각이요.”


나프의 목소리에는 슬슬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떨림이 가미되어 있었다. 종탑의 종막, 어느덧 가까워진 꼭대기 층계로부터 들려선 안 되는 것들이 흘러나와 귀에 닿았다.


사람 말소리, 하나도 아닌 여럿이서 왁자지껄하게 대화 나누는 음성이었다.


“···!”


“···.”


“···!”


“뭐라는지 들리십니까?”


“내용은 잘 들리지 않는데··· 어째 즐거운 것처럼 들려요···.”


“하하, 이것 참 개같네요.”


조잘대며 담소를 나누는 목소리들, 즐거움을 나누는 듯한 분위기는 물씬 심해지는 유황 냄새와 어울리지 않았다.


음색만 들어 보면 무슨 민가가 늘어선 거리의 해 질 녘이라 해도 되었다.


곳곳에서 솥을 떼는 희뿌연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며, 식기 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건물 벽과 벽 사이의 빨랫줄은 천천히 흐느적거린다.


모두가 저녁 식사, 고단한 하루의 마감을 준비하며 웃고 떠든다···.


그러나 여기 종탑은 그렇지 않다. 비단 악마에게 점거당하여 쇠락할 대로 쇠락하고 타락할 대로 타락한 지금에 한하지도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7월의 횃불로서 텅 빈 땅을 비추던 과거에도 그러했다.


카에키가 회이던의 옷자락을 꽉 부여잡았다. 돌아보니, 그녀 얼굴은 공포에 젖어 있지 않았다. 석상처럼 조금 굳어 있기야 했지만, 그간 겪은 일이 겪은 일이다 보니 담력도 어지간히 는 듯하였다.


회이던은 그녀 차가운 손등을 톡톡 두드려 주고는 다시 앞을 보았다.


점차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인지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더불어 한층 심해지는 유황 냄새도 마지막 층계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지표에 속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밥은 뭐야? 또 빌어먹을 염장 고기이기만 해 봐. 차라리 바깥에 사냥을 나가서···.”


“하하! 이 친구, 사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숲 나올 때까지 말 타고 달릴 셈이야? 차라리 염장 고기를 한 점 더 씹어!”


아침밥 이야기를 정오 부근 시간대에 하고 있다. 이건 미친 거다.


“개 흉내는 어떠십니까?”


“아니면 물방개 흉내도 낼 수 있습죠. 말만 해 주세요.”


회이던의 눈살이 급격하게 좁아졌다. 이제 보니 악마는 참으로 많은 재주를 보유하고 있다. 죽여 섭취한 이의 기억을 헤집으며 흉내도 내는가.


나프가 황급히 뒤돌아보았지만, 회이던은 손을 휘저으며 앞을 보라고 했다.


“미친 건가···.”


무심코 한 마디 내뱉은 그때였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문 너머, 들리던 온갖 즐거운 목소리들이 단번에 그쳤다.


그리고 남은 것은 동굴 속에서처럼 공기가 공명하며 귀를 울리는 소리, 그리고 문을 쿵쿵 두들기는 돌개바람 소리뿐이었다.


“자매님, 문은 제가 열겠습니다. 지팡이를 준비해 주세요.”


나프는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이던은 전기톱을 형상화했다. 그는 계단을 마저 타고 올라가, 앞에 나프의 등짝을 둔 채 손만 뻗었다.


녹이 잔뜩 들러붙어 우둘투둘한 문고리 표면에는 무언가 끈적거리는 재질도 함께 잡혔다. 그때였다.


“잠깐만요!”


나프가 회이던의 손을 뒤로 확 밀쳤다. 그의 몸이 갸우뚱 기울어 계단 아래로 떨어질 뻔하였다. 회이던은 벽돌 틈새 잡아 몸을 멈춰 세웠다 등쌀에 밀려 넘어질 뻔한 카에키의 어깨도 붙잡았다.


뭐냐고 물을 새도 없었다. 문짝이 부서졌다. 그 바깥쪽으로부터 온갖 바글거리는 칠흑이 부서진 나무 파편 사이사이를 통과하며 침범하였다.


나프에게 뭐라 말했더라, 이렇게 말했다. 불을 쏘아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 전에 쏘셔야 합니다. 적절하다 싶은 순간에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건 너무 늦어요···.


그녀의 살갗에 검은색이 덮이려 했다. 밀접한 상태에서야 그것들 형상이 어떠한지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은 둥그런 입, 입만으로 이루어진 작은 존재들이었다. 바늘만큼 얇고 날카로운 이빨이 그 자그마한 입안에 수십 개씩 들어차 딱딱거리는 이빨질을 반복했다.


나프의 살갗에 바로 그 이빨이 닿았다. 이제 곧 고통을 토해내는 절규가 뒤따를 것이다. 혹은···.


“뒈져라아아!”


“으갸악!”


진작부터 벌어져 있던 전기톱의 톱날 사이에서 번쩍거리는 섬광이 일었다. 횃불의 붉은 빛과 상반되는 짜릿한 빛깔, 푸른 빛이었다. 그리고 220점 어치의 빛이기도 했다.


푸른 섬광은 나뭇가지처럼 갈라지며 탑 내부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 카에키와 나프 그리고 회이던을 제외한 모든 것들에게 들러붙었다. 끓는 기름에 튀기는 듯한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리며 작은 폭발이 희게 번쩍거렸다.


검은 것들은 모조리 재가 되어선 바닥에 후두둑 쏟아졌다. 녹아내리면서 옆으로 퍼지고 퍼졌다. 나프는 부서진 문 바깥을 바라보며 숨을 헐떡거렸다.


“괜찮으십니까?”


“예? 예에? 저 아직··· 살아 있나요?”


카에키가 회이던의 옷자락을 흔들며 앞을 가리켰다. 문 바깥, 황동색 종에 무언가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어떤 인체 기관 같은 모양으로, 종과 그 아래 바닥을 끈끈히 연결하고 있었다.


얇디얇은 분홍빛 점막 아래로 녹색, 푸른색, 더 붉은색 등등이 울긋불긋하게 꿈틀거렸다. 마치 동물 심장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박동했다.


중앙 부근에 박혀 있는 커다란 눈동자는 닫힌 채로, 안쪽에 들어차 있을 사람 머리만 한 안구를 굴려댔다.


곳곳에 잘린 혈관을 연상케 하는 구멍 뚫린 관이 삐져나온 게 보였다. 거기서 후욱거리며 숨소리를 뱉는데, 사람의 신음이나 혹은 쇳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뭔지 모를 음성도 섞였다.


흉내 내는 음성은 거기서 빠져나오는 성싶었다.


“저··· 저게···.”


“저런 악마는 본 적도 없는데요. 다만 자매님 추측은 죄다 맞아떨어졌군요.”


회이던은 나프를 자신의 뒤로 물렸다. 톱날은 그 혐오스러운 형상을 정확하게 향했다.


살덩이 혹은 내장 기관, 그중 무엇이 되었건 흉측한 모습의 악마는 조금씩 몸을 움찔거렸다. 톱날이 살벌한 회전을 시작하자 그런 박동도 더 격해졌다.


“자, 잠깐만요···!”


“이런 시발···.”


숨소리 빠져나오는 관의 구멍 속에서 검은 색깔의 입자들이 조금씩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회이던은 작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하나 틀린 추측이 있다면, 그것은 전제부터가 안이한 것이었다. 본체의 공격 능력이 전무하다고 판단하였던 게 너무나 한가롭고 소홀한 생각이었다.


분명 군체를 공격 수단이라 정의하였는데, 그렇다면 본체 자체의 공격 능력이 전무하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회이던은 악마의 살갗을 찢었다. 회전하는 톱날이 시계 방향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찢어버림의 수준을 아득히 상회한 파열을 가하였다.


군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숨구멍에서 찢어질 듯한 사람 비명이 울렸다. 수십 명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진 듯한 굉음이었다.


이미 얼굴이 피범벅인 회이던의 노력에도 불구, 흘러나온 입자의 양만 해도 작은 구름 수준이었다. 그것들은 당장의 위협인 회이던을 그대로 지나쳐버렸다.


“이런 썅, 자매님···!”


불을 쏘세요. 그러나 쏘아야 하는 순간에 쏘고자 하면, 그건 너무나 늦은 것이며··· 회이던이 고개 돌리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솟구친 칠흑의 군체는 전투마처럼 나프를 가격하였고···.


“자매님!”


“이힉···?”


아주 짧은 새, 나프는 공중에 머문 것처럼 보였다. 회이던과 그녀는 종탑 아래로 추락하기 전까지 쭉 눈을 맞추었다.


금발의 성직자는 난간 없는 아래로 추락하며 하반신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상반신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이윽고 얼굴도 완전히 그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때까지도 두 사람은 눈을 맞추고 있었다. 회이던은 순간과 순간 사이의 조각을 인지하며, 그에 맞춰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나프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게 길게 뻗은 구호의 손을 그녀는 붙잡지 못했으며, 아래에서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군집의 입자들은 넓게 퍼져 얇은 막을 형성한 채 회이던과 카에키를 에워쌌다. 바글거리며 살아 있는 감옥에 놓인 형국이었다. 차츰 좁아지기 시작하여, 그렇게 두 사람을 갉아 먹을 작정인 듯했다.


회이던은 지체 없이 톱날을 팽개치며 카에키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를 덮치다시피 넘어뜨려, 그녀의 체구보다 훨씬 면적이 넓은 자신의 몸을 포개듯 덮었다.


까닭은 애매했다. 어쩌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 안이한 생각이나 머릿속에 떠올렸다.


죽음의 위기를 그토록 많이 극복해 왔는데, 심지어 수완이 좋고 솜씨도 좋았지. 그러면 이번에도 어찌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 당국인지 뭔지를 향한 유구한 봉사에 감사드린다며, 선심 쓴 전기톱이 점수를 대출해 주진 않을까···.


날카로운 이빨질이 등에 닿는 게 느껴졌다. 카에키 얼굴 표정은 피와 살점으로 젖은 회이던 얼굴이 드리워 놓은 그림자에 뒤덮여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녀 몸이 내뿜는 냉기, 역설적이게도 지극히 차갑기에 활발하다 할 수 있는 생명의 징후만이 전해졌다. 냉기는 그녀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와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에 섞여 전해졌다.


등짝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고통이 느껴진 뒤로 1초의 반 정도가 지났다.


1초가 완전히 흐른다면, 그때는 이미 등뼈가 드러난 상태일 것이고···. 그렇게 등짝에 뜨거운 기운이 일었다. 아마도 분수처럼 콸콸 쏟아져 내리는 피의 열기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 체온이 이렇게 뜨거웠던가요. 아닌데. 체온이 이렇게 뜨거우면 그건 악마 새끼지 사람 새끼가 아니잖아.


회이던은 눈꺼풀 위쪽에서 밝게 빛나는 눈부심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사람 체온보다 훨씬 뜨거운, 결국 카에키의 냉기마저 상쇄시키고 마는 고열이 엎드려 포개어진 두 사람과 둘을 둘러싼 입자들을 둘러쌌다.


구의 형태로 소용돌이치는 불길은 사악한 불기둥과는 달리 자애로운 모습이었다. 종탑 바깥에서 바라보면 불로 이루어진 반구가 지붕을 덮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회이던의 등짝을 갉아 먹던 입자들은 휘말려 잿가루도 남기지 못했다.


“자매님?”


어찌나 상냥한 형상으로 소용돌이치는지, 불꽃 지글거리는 소리마저 없이 조용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얼빠진 회이던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카에키를 일으켜 주었다. 그녀는 괜찮아 보였다.


비록 회이던 자신은 등짝이 걸레짝이 되어 피를 줄줄 흘려대고 있긴 하다만, 삯 지불한 소녀의 몸에는 상처가 조금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이제야 들여다 보이는 얼굴, 그림자 덮인 구석 하나도 없는 카에키의 얼굴은 예와 같이 무언가에 북받친 듯한 표정이었다.


뭐라 눈빛으로 화답이나 할까 싶구만. 그러나 그럴 만한 상황은 아니다. 회이던은 전기톱을 집어 들며 쇠줄을 다시 한번 집어 당겼다.


고고한 불의 반구 속에서 대비되는 야수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용돌이치는 화염의 반구는 점차 겹과 겹 사이의 간격이 벌어졌다.


틈 사이로 온 하늘이 보였다. 불똥이 미친 듯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두가 불이 들러붙은 검은 입자들이었다.


또한 황동색 종에 매달린 악마의 모습도 보였다. 몸에 꺼지지 않는 불이 붙은 채 들썩이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를 들이마시며 정신 차리지 못하는 숨구멍에서는 헛소리들이 배출되었다.


“그리하여···! 어쨌든 우리 모두···. 횃불께서는 그분이 어느 존재이신지···!”


“뭐라는 거야···.”


회이던은 불꽃의 반구 너머로 전기톱을 휘둘렀다. 말끔한 톱날에 불길이 휘감겼다.


소용돌이치는 불길을 두른 톱날의 회전이 악마의 신체를 훑고 지나가며, 그 자국을 통해 녹색 황색 파란색 장기가 쏟아져 내렸다. 울컥거리며 터져 나온 피는 그 위에 불꽃을 일으켰다.


회이던의 얼굴에는 음영이 없었다. 온 사방이 불꽃인 환경 속에서 그의 낯은 필요 이상으로 하얬다. 그는 크게 도약하며 여전히 소용돌이치는 불꽃의 반구를 뛰어넘었다.


불에 닿는 면적은 최소화하여, 그리고 넘어가는 동작 자체도 무척이나 순식간이고, 그 덕에 접촉은 거의 존재하지 아니하였으며, 그렇기에 화상도 일절 입지 않은 채, 그러나 톱날에 들러붙어 회전하는 불꽃은 여전히 선명하고, 그렇기에 섬찟함을 발휘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어째 교회 기사들의 모습처럼 보일지도 몰라 약간의 불쾌감을 느끼며···.


악마의 몸은 정확하게 양분되었다.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신체가 끊어지며, 그와 함께 잔여한 내장들도 모조리 쏟아져 내렸다.


매달려 있던 황동색 종이 흔들리며 텅 빈 하늘과 땅에 근엄한 소리를 전하였다.


“아마도··· 끄으읕···. 시발···.”


여전히 종에 매달려 있는 악마 몸체의 일부도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람 머리 크기만 한 두 안구는 회이던을 고요히 쳐다보다 스르륵 감겼다. 눈두덩이 자국마저 불길에 사로잡히고, 결국 타오르는 번제의 현장만이 남았다.


그때 회이던은 똑똑히 보았다.


악마의 몸을 태우는 화염은 성스럽고 자애롭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일순간, 아주 일순간 색깔이 변한 듯했다.


그것은 눈이 아플 정도로 쨍한 진홍빛, 지옥불의 색으로 타오르는가 싶더니, 언제 그러하였냐는 듯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갔다.


회이던은 고개 돌려 카에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다만 그녀는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많이는 아니고, 약간 정도로만.


“···너, 괜찮아?”


카에키는 옆에 다가와 회이던의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그의 등짝을 가리켰다. 심하게 도려내어진 상흔은 여전히 피가 멎지 않은 상태였다.


“난 괜찮아. 아니, 사실 별로 안 괜찮은 것 같긴 한데···.”


회이던은 카에키 머리를 쓰다듬었다. 좀 진정시키며, 마지막 순간에 성실한 자신에게 닥친 기적을 돌이켜보려 했다.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나프 콰엘하치드 자매를 향해, 환시를 제공해 준 뒤 떠난 그녀를 위해 기도하기로 하였다···.


“살려, 주세요···.”


“시발, 뭐야.”


회이던은 급히 소리 들린 쪽으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팡이를 벽돌 틈새에 박아 넣은 나프가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저 이제 힘 빠져요···!”


“이런 미친, 살아 계셨군요. 조금만 버텨요.”


기적은 없다. 오로지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회이던은 잠시나마 신실함의 함정에 빠질 뻔하였던 자신을 책망하며 하반신을 바닥에 걸친 채 상반신을 아래로 쭉 내밀었다.


길게 뻗은 손이 나프가 길게 뻗은 손에 간신히 잡혔다. 썩 위태로운 그 모습을 눈물 채 닦아내지 못한 카에키가 간신히 붙들며 힘 보태었다.



***



이틀 정도가 더 지났다. 눈에 보이는 것은 들녘뿐이며 인위적인 길이랄 게 없지만, 어쨌든 갈림길이다.


회이던은 허리춤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은화 두 닢을 꺼냈다. 꺼낸 것들은 그대로 나프에게 들이밀렸다.


“왜, 왜요···?”


“받아요.”


“그러니깐 왜요···?”


“은화 두 닢, 자매님 경호해 드리는 몫이었죠. 그런데 돌이켜 보면 제가 제 의무 충실히 이행하고 그랬던 것 같지 않습니다. 외려 자매님 덕에 목숨을 건졌는데, 은화 두 닢 무게를 제 무게에 더해 놓고 있으면 부끄럽죠.”


나프는 돈을 되돌려 받길 주저하였다. 그러면서도 얼굴에는 의외라는 듯, 은근한 미소가 떠올랐다. 갑자기 분위기가 심히 징그러워지기에 회이던은 질색하는 표정을 띄웠다.


“몰랐어요. 회이던 섬칼리고드, 잔부스의 인간 백정이라는 사람이 겸양도 겸비하였을 줄은···.”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냥 변덕 심한 것뿐이에요. 그리고 저 그런 이름으로 불립니까?”


“돈은 되돌려 받진 않을게요.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저도 섬칼리고드 님 덕에 위기를 여럿 넘겼는걸요···.”


그러나 회이던은 그녀의 반응을 일축하며 은전 두 닢을 강제로 쥐여 주었다. 나프는 한사코 거절하려 했지만 회이던 쪽이 더 막무가내였다.


이렇듯 서로의 이권을 떠넘기려 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보기에 심히 재미있다. 마차 뒷칸에서 그런 모습을 쳐다보는 카에키 표정은 평온했다.


“카에키가 건네는 거라 생각하며 받아요. 녀석도 자매님 덕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그건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나프는 못 이기겠다는 듯 은전 두 닢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하늘에 잔뜩 껴 있는 회색 먹구름이 세 사람의 낯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지만 표정만은 구름의 영향 바깥이었다. 바람이 세게 불며 머리카락을 눈꺼풀 사이에 끼우고 온갖 농락을 선보이지만, 그래도 나프의 표정은 밝았다.


나프는 카에키와 눈을 맞추었다. 카에키는 오히려 먼저 고개를 꾸벅이며 작별을 고했다. 나프도 그런 그녀에게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덕분에 지난 며칠간 적적하지 않았습니다. 자매님께서 찾아 해매이시는 게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만, 부디 원하는 바를 이루시면 좋겠네요. 금역까지는 고된 길이니 안전 유의하십시오.”


“네에. 섬칼리고드 님도요. 저에게는 인식에 개변을 선사해 준 근사한 만남이었어요.”


“교인 신분 아닙니까. 추기경 살해범에게 하기 적절한 대사인가요?”


“듣는 사람이 없으니깐··· 괜찮지 않으려나요.”


나프 콰엘하치드는 회복 마법을 조금 부릴 수 있었다. 불법으로 지정된 이후 단 한 번도 꺼내본 적 없었다 하나, 그럼에도 회이던 등짝의 너덜거리는 살갗을 소생시키기엔 충분했다.


두터운 신앙과 반역의 불씨가 동시에 존재하는 기묘한 여자, 나프 콰엘하치드가 먼저 악수를 권했다. 회이던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녀 손을 맞잡고는 강하게 흔들었다.


그렇게 마차 바퀴가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어째 좋은 작별을 가지기엔 우중충한 하늘이었지만, 최소한 사람 신경 거슬리게 하는 검은색 군집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은 바람도 딱 적절한 정도로만 불었다.


나프는 멀어져 가는 마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카에키는 막 웃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쭉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멀어져 가는 그녀가 손톱처럼 작아질 무렵에야 고개 돌려 편한 자세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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