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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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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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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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DUMMY

30



흘러 흘러 흐르는 바람에는 풀떼기 같은 것도 섞여 있다. 이파리 달린 얇은 나뭇가지들은 경풍에 흔들림 멎는 순간이 없었다.


마차 뒷칸에 가만히 앉아 있던 카에키가 회이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녀 손가락이 좌측의 어느 먼 위치로 뻗었다.


“뭐야, 저것들.”


바퀴 빠진 수레 한 대가 그녀 손가락 끝에 걸쳐 있었다. 말 한 마리가 그 앞에 죽은 채 널브러져 있는데 수레 끌던 녀석으로 사료되었다.


그 주변을 두 명의 사람이 둘러싸고 있는데, 불의의 사고 현장을 살피는 선한 이들로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 하여 도적놈들처럼 보이는 것도 아녔다. 똑같이 갖춰 입은 둘의 복장이 회이던의 심기를 몹시도 불편하게 했다.


“검은망토잖아. 저놈들 저 앞에서 뭐 하는 거야.”


회이던은 마차의 방향을 틀었다.


검은망토들은 부서진 수레 앞에 서서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그러다 덜컹거리는 또 하나의 수레바퀴 소리를 듣고선 검집에서 무기부터 빼 들었다.


야전교범에 의거한 행위라 하여도 호로새끼들이 따로 없다.


“저것들은 또 뭐야? 어이! 정지!”


“저것들이라뇨. 엄연히 인격 갖춘 사람들에게 그런 대명사 쓰는 건 어디서 맞바꿔먹은 예의범절입니까.”


회이던의 재기발랄한 인사에 대한 답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두 명의 검은망토는 갑자기 나타난 두 명의 허름한 행인들보단 그들이 소유한 화물에 더 큰 관심을 지닌 듯했다. 그 점이 섭섭했다.


천천히 굴러가던 마차 바퀴가 슬며시 정지했다. 마부석에서 거뜬히 착지한 회이던은 전체적인 상황을 한눈에 담아 살폈다.


“예절은 지능 문제인데···.”


수레 아래, 검은망토들의 발 뒤에 시신 한 구가 퍼질러져 있었다. 그들은 살인을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자세히 관찰해도 좋다는 듯 사이를 벌리기까지 했다.


“친구, 곤경에 빠진 수레 주인 도와주러 온 거야? 그런데 그냥 갔어야지. 왜 사서 오지랖이야.”


시체를 바라본 카에키가 헉 하는 소리를 흘렸다. 회이던은 어째 마음이 헛헛해졌다.


“당신들이 죽인 저 사람, 아는 사람인데···.”


“아, 그래? 거 미안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더러 어쩌라고. 이 시발놈아.”


가슴에서 옆구리까지 베여 죽어 있는 사람은 코멜루였다. 뜬눈으로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다.


약탈을 피하고자 완강히 저항한 끝에 살해당한 것 같지 않았다. 살인 현장에서 읽힌 자취는 그만큼 격렬하진 않았다.


그냥 안녕하세요 공무원 나리들, 휙, 커헉, 털썩, 이렇게 끝.


회이던은 한숨을 쉬었다. 24시간 이내 척파크 구릉지대에 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길거리 강도떼와 야지의 악마들을 잘 피해 여기까지 달해 놓고, 녹봉을 받아먹는 정의의 수호자에게 덜컥 살해당한 꼴이다.


이와 같이 어떤 비극은 가까이에서 바라보았을 때야말로 진정 헛웃음을 유발한다. 물론 회이던은 웃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경직된 얼굴을 하고 있자니, 그 모습이 검은망토들에게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를 남겼나 보다. 겁먹은 표정으로 읽혔을까. 그들은 낄낄 웃으며 회이던의 목전까지 칼날을 들이밀었다.


“자, 친구. 그냥 도망칠 기회를 줄게. 마차랑 여자애 놔두고 꺼져버려. 품에 든 것도 다 바닥에다 털어놓고.”


“오, 자비롭기도 해라···.”


검은망토 둘은 자기네들끼리 얼굴을 마주 바라보더니 속절없이 웃어 재꼈다. 칼 쥐지 않은 손으로는 회이던을 삿대질하기까지 했다. 정말 즐거워 보였다···.


“구라야, 이 시발놈아. 이 새끼 표정 좀 봐, 못 살아 나간다는 거 미리 알고 있는 마냥···.”


“얼굴 펴, 이 좆 같은 새끼야. 니 물건은 아주 요긴히 사용해 줄게. 겸사겸사 여자애는···.”


회이던의 손가락이 건반 치듯 굽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러자 전기톱의 손잡이가 스르륵 나타나 그 안쪽에 실렸다.


의기양양하게 말을 잇던 검은망토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들이 정말 재미있게 여겼던 회이던의 얼굴보다 더하다.


“너. 너···. 회이던 섬칼리고드···?”


“그래. 기사 학살자이며 신성 모독자이며 마검 활용자이며 추기경 살해자이며···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검은망토 학살자···!”


“아니, 검은망토는 따로 세어 주지 않아. 너희 족속들 그 정도로 대단한 존재들 아니니 과대평가하지 마.”


“으갸아아아!”


검은망토 하나가 칼끝을 부쩍 밀어붙이며 근사한 용기를 발휘했다.


그때 뒤에서 화살이 회이던의 귀 옆을 스쳤다. 냉기의 부스러기와 함께 바람결을 흩뿌리고는, 바로 그 검은망토의 눈깔에 깊게 처박혀 부르르 떨었다.


“끄아악! 아악!”


“이, 이런 시발···!”


쇠줄 들려 올라감과 동시에 레버가 눌렸다. 회전하는 톱날이 눈깔 한쪽 잃은 검은망토의 몸을 꿰뚫었다.


“야그으으으윽!”


우측으로 팔 휘두르니 뚫린 몸은 손쉽게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분리되었다. 덩달아 그 옆에 서 있던 놈의 팔뚝도 부수적으로 잘라버렸다.


아직 못다 죽은 두 몸뚱이가 먼저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그 뒤 피를 분수처럼 뿜어대는 팔뚝이 근처에 떨어졌다.


“까학! 깍! 끼힉!”


“끄하아아악!”


몸통만은 아직 성한 검은망토는 강렬한 고통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럼에도 용감무쌍히 내밀어 흔들리는 칼끝이 야전교범에 의거한 것인지는 회이던이 알 바 아녔다.


두꺼운 장갑으로 그 끄트머리를 붙잡아 전기톱 들이밀어 반으로 부수었다. 그렇게 손에 남은 칼날 파편은 그대로 상대방의 얼굴에 쑤셔 박혔다. 날붙이는 안구를 관통하여 두개골의 어느 언저리까지 밀려 들어갔다.


“아학! 학! 아학!”


“봉급이 만족스러운 수량도 아닌데 이렇게 추운 곳까지 뺑이를 돌게 시키니 빡이 칠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이 새끼들아. 왜 일반 시민들이 네놈들 도적질을 세금으로 원조해 줘야 하는데?”


“사, 살려··· 살려···.”


“뭔 살려줘 타령이야. 자비의 기쁨을 느껴 보세요, 이러면서 그냥 두고 간다 해서 그 상태로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냐?”


회이던은 피범벅 얼굴의 턱 끝을 발로 걷어찼다. 꼴사납게 바닥에 뒹군 그의 위에 발바닥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콱콱 처 밟힌 안구의 칼날 파편이 더 깊숙하게 밀려 들어갔다.


“웁웁! 퀫! 퀘앗!”


“확률적으론 이게 제일 간결한 죽음이다. 그냥 받아들여.”


검은망토는 걸레로 입 틀어막힌 마냥 불완전한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다 축 늘어졌다.


회이던은 그들 시신에 침을 한 번씩 퉤 뱉고는, 발을 굴려 수레의 그림자 바깥으로 밀었다. 그러면 빠진 바퀴 아래에는 코멜루 뿐이다.


가는 목적지 겹치니 언젠가 마주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던가. 그게 이런 모양새로 실현되었다. 차라리 성채 안에서 떨떠름한 재회를 가졌다면 좋았을 것을. 손바닥 한번 들어 보이고 말았을 테다.


카에키가 마차에서 내려 조심스레 발을 딛는 소리가 들렸다. 회이던 옆에 다가왔음을 냉기의 농도로 알 수 있었다.


카에키는 그를 지나쳐 코멜루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눈을 감겨 주었다.


행상인의 죽은 얼굴은 최소한 일격에 죽임당한 낯이긴 했다. 눈을 감겨 놓으니 편안히 잠든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반면 고개 돌려 회이던의 얼굴을 바라보는 카에키는 음울함이 무척이나 내려앉은 낯빛이었다.


언급하였듯, 빠르면 24시간 이내에 척파크 구릉지대에 달할 수 있는 거리이다. 카에키가 지불한 금액은 진작에 차감되어, 지금은 초과 근무를 이행하고 있는 꼴이다. 그러나 회이던은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책임에도 어느덧 익숙해지고 말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녀 얼굴에 머무른 어두운 기색이 점차 호전에 이르고 있었다. 영영 극복 못 할 상실을 조금이나마, 타인의 온기에 마음을 열며 메워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문두크의 일행과 어울린 것이 화근이 되었다. 사람들이 잔불 하나 남기지 않고서 잿가루처럼 스러져가도록 하는, 이 땅의 들판을 지배하는 죽음이 그녀 마음에 다시금 차가운 냉기를 안겼다.


마지막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 내려놓으면 막 후련한 기분이 들까. 막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은 받지 못할 것 같았다. 적어도 마지막만은 서로 후련히 인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코멜루를 묻어 주자. 어디 좋은 곳에 말야.”


카에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이던이 행상인의 시신을 조심히 들어 올리자, 그녀는 마차 뒷칸으로 쪼르르 이동하더니 커다란 천을 펴 놓았다. 코멜루의 시신 뉘어 놓을 자리였다.


이제는 익숙해 보였다. 벌써 이런 데 익숙해지면 안 된다.



***



회이던은 코멜루가 운반하던 나무 상자도 자신의 마차에 실었다. 어차피 가나티 성채에 향할 예정이니, 그저 배달 기수가 바뀐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무 상자의 덮개는 훼손되어 있었다. 검은망토들이 열어 보려고 시도한 모양인데, 안에 무슨 불법적인 행위의 부산물이 들어있을 나무 상자는 그만큼이나 강력히 봉해져 있었다.


회이던은 전기톱으로 적당히 묘수를 부려 덮개를 개봉하였다. 그런데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것은 무슨 음흉한 물건들이 아니었다.


“이건··· 의외로구만.”


어느덧 옆에 다가온 카에키도 안에 든 것을 함께 바라보았다. 내용물은 다름 아닌 예술품이었다.


옛 예술가들이 진땀을 기울여 획을 가한 작품들, 지금은 인간성을 찬미한다며 망치로 두들겨지고 불살라지는, 그런 종류의 예술품들이다. 성스러움의 예찬이라는 때는 조금도 묻지 않았다.


회이던은 예술 관련해선 조예가 조금도 없다. 그런 걸 싹틔울 수 있을 만한 토양도 아니다.


사조가 어떻고 기법이 어떻고··· 그런 것에 대해선 조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막눈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 교단 입장에선 가만 놔둘 물건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잘포로스 공은 이런 걸 모으시나 보다. 당연히 목숨을 걸고 취미생활 하시는 건 아니겠지. 뭔가 숭고한 뜻이 있지 않겠니. 그 뭐야, 반지성의 광란으로부터 역사를 사수해야 한다는 사명 같은 것 말야···.”


그렇게 말하며 카에키를 바라보았다. 뭔 뜻인지 알아들은 것 같진 않았다. 예술과는 거리 먼 삶을 살아왔을 그녀이기에, 이런 게 다 불법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


“내심 교단에 불만 품은 사람이 아니라, 아예 대놓고 그들 정책에 반감 가진 사람인 것 같구나. 말인즉슨 의외로 너를 무척이나 흔쾌히 받아주실 수도 있단 거지.”


카에키는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회이던은 다른 쪽 상자도 뒤적였다. 마찬가지로 그림 여러 폭이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바닷가를 묘사한 그림이었다. 파도치는 모습, 옅은 에메랄드빛의 안료와 짙은 미역빛깔의 안료, 그리고 흰색만으로 새겨 놓은 한 폭의 바다 광경이었다.


바닷가의 소도시 아름다운 그의 고향에서는 파도를 눈여겨본 적 없었다. 새삼 이런 색깔이었구나 싶어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렇기에 기억을 그림에 대입시켜 독자적인 감회에 빠지지도 못하였다. 말라붙은 감수성에는 한계점이란 게 있었다.


그럼에도 어쩐지 마음을 빼앗겨, 한동안 들고 있는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였다.


옆에 얼굴 붙이고 서 있는 카에키도 그 작품을 응시하였지만, 그림이 담아낸 형상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산과 들에서만 지낸 그녀는 파도라는 존재를 모른다.


“바다에는··· 바다가 뭔진 아니?”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는 강이나 호수와 달리 물결이 사람 쪽으로 밀려 와. 모래밭을 손바닥으로 쓸어 담듯 밀려와서, 물속에 있는 것들을 뭍으로 밀어 보내고 뭍에 있는 것들은 바다로 데려가거든.”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좋다 나쁘다 할 건 없다. 또 도태된 사람처럼 지리멸렬하게 사회 탓이나 하게 되는데, 자연 현상에마저 선악을 먼저 생각하게 만드는 이 세상이··· 어쩌구.


“나 어릴 때 이런 게 있는 곳에서 자랐다. 그땐 삶이란 게 어지간히도 단순했거든. 당시에 나는 이런 물결 같은 걸 하찮다고 생각하면서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


카에키는 회이던이 자기 나이만 할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하다는 눈빛이다. 회이던은 카에키 나이 때 길거리에서 쌈박질이나 하고 다녔다.


그때는 달리 고충이 없었다. 사람을 패면서 즐거움을 느끼던, 세상에 아무런 근심을 품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여.


너무 늦게 어른이 되어버렸다···.


회이던은 나무 상자에 덮개를 다시 덮어 놓았다. 그 뒤 검은망토들의 시신을 들어 짐칸 위에다 팽개쳤다.


카에키는 눈살을 확 찌푸리며 저들 더러운 시체를 왜 신경 쓰냐고 불만을 표했다.


“가나티까지는 얼마 안 남았다. 잘포로스 공의 영역에서 이놈들 시체가 발견된다고 생각해 봐. 경우 좋게도 시체에는 회이던 섬칼리고드의 흔적까지 남아 있지. 그 경우 그분께서 처하실 상황은 그냥 곤경이라는 말로 표현하기 부족할 거다.”


그러니깐 어디 양지바르지 못하고 탁한 물 근처에 파묻어 숨기자는 거다. 그런데 그것도 일단은 뭘 잘했는지 모를 호로 쌍놈들을 매장해 주는 모양새이고, 카에키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아버지를 직접 매장한 경험 때문일 것이다. 어린 그녀에게 매장이란 행위는 유달리 각별하고 고유한 의미로 각인되고 말았다.


“차이가 있어. 파묻어버리는 것과 묻어 주는 것, 어감부터가 아주 심대하게 다르지? 그냥 썩어가는 잔반을 구덩이 속에 집어넣는 것 뿐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편할 거다.”


두 사람과 세 사람의 시신이 실린 마차는 부서지고 바퀴 빠진 수레 앞을 지나쳤다. 죽임당한 코멜루의 말에겐 애도를 표할 뿐, 그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만 최소한의 도리로 고기를 채취하거나 하진 않았다···.


뒷칸은 화물들로 가득 들어차, 이제는 카에키가 자리매김할 만한 공간이 없게 되었다. 그녀는 마부석, 회이던의 옆에 앉았다. 맞닿은 쪽 어깨가 몹시도 시렸다.


고삐 붙든 채 전방만을 주시하다 가끔씩 옆을 힐끗 보거나 하면, 어쩐지 어두운 표정이었다. 코멜루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행상인과는 하룻밤의 동행뿐이었음에도 그러하다.


구금되어 지내던 나날, 회이던과 더불어 처음으로 맞이한 사람이라 이리도 침울해하는 것이려나 싶었다. 그떄 코멜루가 한 말이 뭐였더라. 가족에게 곧장 데려다 줄게. 이제 무서운 건 다 끝났단다.


두 문장에 들어맞는 게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그 두 문장은, 내내 핍박과 학대에 시달렸을 여자애에게 조금 따스한 모닥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



검은망토들의 시신은 적당히 파헤친 아무 구덩이에다 첨가한 뒤 덮어 놓았다. 그 뒤로 마음 내키는 광경이 나올 때까지 주욱 마차를 몰았다.


코멜루의 시신을 매장할 장소를 찾은 것은 해가 뉘엿거리기 시작한 뒤였다. 카에키가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고, 회이던도 마침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행상인은 폭포를 바라보는, 숲의 뻥 뚫린 끝의 언덕에 묻혔다. 폭포 아래 개울은 졸졸거리며 자갈을 때렸다. 듣기만 해도 몸이 차가워지는 소리를 내며 어딘지 모를 곳으로 흘러갔다.


개울은 서늘한 하늘빛을 비췄다. 햇빛의 마지막 광채를 쐬어 연한 파란색과, 그 아래에는 냉기에 차츰 잠식당하는 연분홍빛이 있었다. 그 총천연색이 개울에 온통 비쳤다.


쏟아지는 폭포 역시 묘비 같은 모양처럼 보였다. 어떤 절경들은 유달리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때 카에키의 아버지를 매장하던 당시, 봉분 위로 해가 지는 광경도 마치 묘비처럼 보였더랬다. 그 기억이 카에키에겐 아무개 여기 묻혔노라 역할을 대신할 것이다.


회이던은 모닥불을 붙인 뒤 앉은 자리에 퍼졌다. 그러고는 불씨가 하늘로 피어오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지막 야영이다. 빠르면 내일 오후 초입 즈음에 가나티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마지막 야영인데, 사람 매장한 직후라 그런지 두 사람 모두 뭔지 모를 고즈넉한 기분에 휩싸여 따로 각별함이라 할 만한 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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