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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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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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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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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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DUMMY

10



새벽의 공기는 눈이 아릴 정도로 차가웠다. 그리고 소녀에게는 아버지 없는 첫 아침이다.


한 차례 의식이 꺼졌을 때에는 상실을 의식할 수 없다. 그러나 잠이 덜 깬 채로 눈을 뜬 그 순간, 다시 눈 감을 수 없다. 상실을 사무치게 깨닫게 된다.


아니면 영영 눈을 감고 싶은 욕구에 휘말리기도. 회이던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적 그랬다. 지금은 덜하다.


마차는 절벽과 절벽을 잇는 다리로 향했다. 교량은 멀리서 얼핏 보아도 두께와 폭이 상당했다.


하지만 낡고 해졌는데도 개보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차라리 유적의 기능에 더 충실한 편이었다.


한편 교량의 양쪽 끄트머리에는 판잣집 같은 것들이 너저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시꺼먼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간신히 집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들이었다.


다리의 전체 폭이 15미터가량은 족히 되어 보이건만, 정작 뚫린 길은 마차가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수 있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심미안적으로도 좋지 않았다. 그러니 유적으로서의 기능도 낙제점이다.


“상당히··· 열받는 광경이로구만. 저런 곳에도 사람이 살까?”


꾸준히 말 붙이다 보면 언젠가 여자애의 입이 다시 트이지 않을까 싶었다. 대답을 바라고 던진 말은 아니었건만, 소녀는 대답 대신이라는 듯 회이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왜?”


어깨 두드린 반대편 손바닥에 주머니 하나가 놓여 있었다. 소녀는 주머니를 회이던 코앞에 들이밀었다.


회이던은 마차를 잠시 정차시킨 뒤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리는 것이, 열어보지 않아도 동전이 가득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왜?”


소녀는 손가락으로 회이던을 가리켰다.


“나한테 준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회이던을 한 번 더 가리키고, 그 뒤 소녀 자신을 가리켰다.


정황상 경호의 삯이라는 것처럼 들렸··· 아니, 보였다. 행상인과의 이야기를 엿들었던 것일까. 주머니 묶어 놓은 끈을 풀어 안을 확인하니 녹슨 금속의 냄새가 물씬했다.


“고맙다.”


당장 소녀의 앞가림을 위해 마다해도 모자랄 돈을 덥석 받아들였다. 인정머리 없어 보일 순 있으나, 차라리 그편이 나았다.


소녀의 마음이 복잡한 만큼, 회이던도 그렇기 때문이다. 새벽녘 해가 완전히 고개 내밀기 전 마부석에 올라탈 때부터 하나의 근심이 회이던의 뇌를 지배했다.


얘를 대체 어디다 내려 줘야 하지?


차라리 금전으로 계약 관계에 묶여 있다면 책무도 견딜 만한 것이 된다. 받은 만큼 일하면 된다는 심리적 장벽이 세워지는 것이니, 다른 생각에 젖을 필요도 없어 정신적으로 훨씬 이롭다.


그래도 동전 몇 푼 정돈 남겨 줘도 좋지 않을까 싶지만, 그건 애를 적당한 곳에 내려다 준 뒤 생각해도 무관한 것이다.


아무튼 다시 운행을 시작한 마차는 문턱같이 솟은 커다란 다리의 초입을 지나 중간 정도에 도달했다.


침침하게 시퍼런 하늘 아래 시꺼먼 판잣집은 그 표면에 어둑하게 드리운 그늘만큼이나 우중충한 소리를 냈다.


오래된 배가 물 위에 하염없이 떠 있는 것처럼 삐걱이는 소리가 양옆에서 조그맣게 들렸다.


그와 함께 거친 돌바닥을 구르는 차륜도 비슷한 소릴 내는데, 그렇게 낡은 목재들이 나직하게 소음을 흘리는 가운데 면밀하지 못한 기척도 몇 섞여 있었다. 회이던은 알 수 있었다.


“거기서 정지!”


아니나 다를까, 판잣집의 어느 지붕 사이에서 위협적인 지시가 울렸다. 목에 가래가 잔뜩 끼어서 칼칼한 목소리였다.


“당장 멈춰라! 목에 구멍 나기 싫으면!”


“하하···. 또 뭘까. 너무너무 궁금하네···.”


양옆에 늘어선 판잣집들의 문이 벌컥 열리며 곤궁한 무장 수준의 도적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여섯 혹은 그 이상 되어 보였다.


이윽고 전방의 왼편 2층짜리 판잣집 지붕에서 도적들의 수괴로 보이는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참 목소리대로 생긴 사람이었다.


“뭔 일이쇼? 급한 일이신가?”


“하하, 급하다니. 하나도 안 급해. 하나도 안 급하다고. 우리 함께 여유롭게 이야기 나눠 보자. 아주 여유롭게.”


뒤에서 바들바들 떠는 게 느껴졌다. 돌아보니 소녀는 공포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겁에 질렸다기보단, 좋지 않은 경험에 의해 척수반사적으로 행해지는 자기 보호에 가까웠다.


그녀 생에 가해진 모든 불행은 그녀 자신이 도적놈들에게 납치당한 데서부터 기인하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런가 하면 두 명의 장정이 어느샌가 다리 입구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별 감흥은 없었다.


다만 소녀는 감흥이 차고 넘쳐 보이기에, 안심시킬 요량으로 어깨 부근을 툭툭 두드렸다. 그런다고 안심이 될 리야 없다만 방치해 놓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회이던이 주변의 동태를 살피는 동안, 도적단의 수괴는 어정쩡한 자세로 지붕 끝자락을 붙잡고 몸을 내리더니 그 아래 바닥에 착지했다.


무슨 덜미라도 잡은 양 의기양양한 얼굴이 회이던의 심기를 아주 살짝 거슬렀다.


“지금 나 도적질 당하는 건가?”


“좌절하는 속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안심해도 좋아! 불법적으로 털어먹으려는 게 아니니깐.”


“그럼 합법적으로 털어먹을 작정이신지?”


“귀에 꽂히게 말대답을 하네···. 대충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좀 더 듣기 좋게 포장해서 통행세, 어떤가?”


“통행세라···. 통행세···. 이 다리를 당신들이 지었나?”


“뭐라고? 크하하하, 이거 완전 바보 아닌가!”


이야기를 들은 도적단 수괴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주변 부하들을 돌아보는데, 그제야 부하들도 제 두목을 따라 웃었다.


두 사람을 제외한 이 자리의 모두가 즐거이 껄껄 웃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오직 회이던만이 죽상이고, 소녀만이 불안에 몸 둘 바 없었다.


“하하하···. 이런 멍청한 자식. 다리 지은 놈들은 전부 진작에 뒈졌지.”


“다리 지은 놈들에게 수금할 권리를 양도라도 받았나 봐. 지금 태도가 너무 당당하네.”


도적단 수괴 얼굴에 서려 있던 웃음기가 가셨다. 그들 시각에는 회이던의 태도가 훨씬 당당했다. 필요 이상으로 그러했다.


“말 가려서 하지 그래? 생각이 굳어서 상황 분별이 잘 안되나?”


“그래. 미안하다. 유의하도록 하지. 유의하긴 할 건데,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수괴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누르듯 광대 근육 위아래를 좁힌 채로 대답했다.


“주인 잃은 물건을 길에서 줍는 게 지탄 받을 행위냐? 아니지. 우리도 버려진 이 다리를 주워서 우리 걸로 삼았을 뿐이니깐, 지금 이 절차도 철저히 준법에 의한 거라고···.”


인생을 아주 혈액 색깔에 가까운 장밋빛으로 사신다. 사람 불태운 재를 거름 삼아서 사람을 가꾸는 미친 세상에서 참 진취적인 방법으로 앞날을 개척하는구나 싶었다.


호구에게나 먹힐 잡소리에 불과하지만 회이던은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경청했다. 한참 전부터 죽상에 가까운 낯빛이었으니, 지금도 그러하다는 의미이다.


하여튼 그런 회이던에게 더러운 손바닥이 내밀렸다.


“동화 열 닢. 여길 통과하려면 동화 열 닢이다.”


다리를 주우면서 광기도 함께 주우셨나. 액수를 듣고 맨 처음 떠오른 감상이었다.


회이던이 목숨을 걸고 사람 경호하며 받는 액수가 그 언저리였다. 사실 목숨 건 적은 없지만 아무튼 그러하다.


양심을 팔아먹었나. 도적 떼 죽이는 것도 철저히 준법에 의거한 거야. 맛보기로 두 명 먼저 죽여줄 테니 나머지의 의향은 그 뒤에 들어 보자. 어때?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너무 잔혹한 광경을 마차 뒷칸의 여자애에게 보여줬다간 정서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니 되도록 폭력은 지양하고 싶다만, 그 열쇠가 회이던의 자제력이 아닌 도적놈들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점이 의외의 사실이었다.


“너무 과한데. 한 닢은 어떤가?”


“푸하하! 미친놈인가!”


개구리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나머지도 따라서 울듯이, 수괴의 웃음이 도적단 모두에게 번졌다.


회이던 얼굴에 머무른 죽을상은 한층 심화하여 폭력을 가까스로 억제하는 낯짝이 되었다.


그러자 도적들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회이던 낯짝이 조금 우스꽝스럽긴 하다.


어떤 놈은 아예 손가락질까지 해가면서, 저러다 복통으로 죽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숨도 못 쉬며 웃어댔다. 회이던의 현재 낯짝이 암시하는 섬뜩한 함의는 그 누구도 읽지 못했다···.


“알겠으니깐 좀 조용히···. 세 닢으로 하지. 세 닢은 어때?”


“열다섯 닢.”


“미친 새끼··· 아, 미안하군. 방금 말은 못 들은 걸로 해 주겠나? 하여튼 내가 액수를 열다섯 닢이라고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아니, 네놈 귀는 정상이다. 그 귀여운 입을 나불거릴 때마다 응보를 해 주마. 도망칠 생각 마. 스무 닢이다.”


여차하면 피를 볼 수도 있단 것처럼 도적들의 무기가 슬그머니 치켜 올라갔다.


그런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뿌듯하단 표정을 띄운 수괴는, 휘파람을 불며 마차 뒷칸의 소녀를 가리켰다.


“정 비싸다고 생각하면, 뒷자리에 저 여자애를···.”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대로 턱이 걷어차이며, 그 충격에 뒤따르는 음성은 한 박자 늦게 울렸다.


“형님!”


“이 미친 새끼가···!”


회이던은 좌석에 들러붙은 엉덩이를 재빨리 회전해 몸을 틀었다. 길게 뻗은 팔이 수괴의 허리춤에 매달린 칼 손잡이에 닿았다.


수괴는 저 혼자 알아서 나자빠지며, 이에 칼집에서 스르륵 빠져나온 칼은 회이던 수중이 되었다.


뒤를 가로막고 서 있던 도적 두 놈이 마차 위에 올라탔다. 공포에 질린 숨을 내뱉는 소녀 뒤로, 잽싸게 마부석을 뛰어넘은 회이던이 칼을 휘둘렀다.


“커학극···.”


“휘엑···!”


마지막으로 숯돌질을 한 게 언제인지, 칼날은 한참을 무뎌져서 차라리 표면에 남은 생채기가 더 예리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가상의 날카로움을 번질거리며 단 하나의 획을 긋자 두 도적의 목에서 한 잔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무거운 대가리 두 쪽이 철푸덕하는 소리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회이던은 그들 몸뚱이를 발로 툭툭 밀쳐서 마차 아래에 떨어뜨렸다.


턱이 돌아가 반 정도만 제정신인 수괴가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다른 잔당들은 패기에 눌려 한 보씩 뒷걸음질 쳤다.


“동전 정도야 얼마든지 내 줄 수 있지···. 공손하게 적선을 바라면 세 닢 정도는 얼마든지 내 줄 수 있었다고. 그럼 나도 선행하는 마음이 들어서 기쁘고 네놈들은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어서 기쁠 거 아냐.”


빈말 아니었다. 정중하게 말 건네었으면 동전 몇 닢 정도 내어주지 않을 까닭은 없었다.


“그런데 네놈들 말하는 게 많이 불쾌해. 구걸하는 사람들 태도가 아냐···.”


허허, 먹고 살기 힘든데 폭력을 가하는 것은 싫단 말씀이시군요. 마침 저도 제 뒤에 있는 자라나는 새싹에게 지나친 가학의 광경을 보여주긴 싫습니다.


서로의 이해에 상충하는 지점이 없네요. 여기 동전 몇 닢 받으십시오. 앞으로도 정의에 입각한 도적질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서로의 이해가 한참 어긋났으니 정중할 까닭도 없었다. 칼을 마차 바닥에 툭 떨친 회이던은 보따리 속에서 전기톱을 꺼내었다.


웅성거림이 커지고, 도적단 수괴는 아무 말이나 막 내뱉었다.


“시··· 시발! 말을 죽여! 이 개새끼 도망치지 못하게 해!”


“미친놈인가. 잘못한 것 없는 말을 왜 죽여. 생명 존중이란 걸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이 세상이 너무나 개탄스럽다, 진짜.”


회이던은 뒤돌아 여자애의 상태를 확인했다. 여자애는 가쁜 숨을 억지로 짓누르며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있었다.


얼굴에 공황의 기색이 다분하게 묻어나 있건만, 예외적으로 활줄을 쭉 당기는 손에는 조금의 떨림도 없었다.


‘크게 걱정할 필욘 없겠구만.’


회이던은 전기톱 쇠줄을 당기며 마부석에서 내려왔다.


말을 죽이라는 지시가 무색하게, 회이던의 신묘한 솜씨를 본 도적놈들은 그 누구도 자기 목숨을 도박의 판돈으로 올리지 않았다.


이렇게 살육의 목전에 서니 음습한 미소가 스멀거렸다. 아이 앞에서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도저히 자의로 제어할 수 없었다.


“이 멍청한 새끼들아. 기꺼이 세 푼이나 적선해 주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되도 않는 억지를 부리다 같은 무게의 핏물로 대신하는 거야.”


“야 이 개자식들아! 칼 맞대기도 전에 겁부터 먹으면 어떡해!”


수괴는 정작 본인도 뒷걸음질 치며 부하들에게는 사지에 뛰어들길 독려하였다.


이렇듯 본격적인 약탈 행위 대신 좀스럽게 통행료나 요구하며 연명하는 놈들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 역시 필요 바깥의 살육 대잔치를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러니 모두들 무기를 집어넣고 판잣집 안으로 들어··· 시발, 저건 또 뭐야?”


한참 능글거리며 대사를 읊던 회이던은 갑자기 당황한 낯빛이 되더니 말끝을 흐렸다. 휘둥그레진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도적들이 모여 있는 자리가 아닌 그 너머였다.


무얼 봤기에 그러는 걸까요. 회이던의 시선을 좇아 같은 곳을 바라본 소녀가 덜컥 숨 삼키는 소릴 냈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고개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내 그들 모두가 들이마시던 숨을 멎었다.


“뭐, 뭐야.”


낯선 사람 하나가 어느샌가 도적들의 무리에 섞여 있었다. 사람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옛날에는 분명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미간 양옆 눈구멍이 나 있어야 할 위치에는 웬걸, 지느러미 같은 살덩어리가 돋아나 있었다.


그 나풀거리는 앞면과 뒷면에 수십 개는 족히 될 기괴한 눈동자들이 개미집 구멍처럼 빽빽했다.


교량 위를 밟고 서 있는 모두의 말문이 막혔다. 양옆의 판잣집이 삐걱거리는 소리만 적막 속을 감돌았다. 그러나 실로 적막은 오래가지 않았다.


“으약···!”


낯선 자의 아래턱이 풍선장어처럼 부풀며 도적 하나의 목을 물었다. 그러자 무언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져 데구르르 구르는데, 코 위쪽만 남은 머리통이었다.


오른쪽 어깨가 통째로 사라진 상반신은 비틀거리다 맥없이 쓰러졌다. 철푸더억.


“이런 시이이발! 대체 뭐야!”


삽시간에 경악의 도가니가 되었다. 낯선 이는 얼마간 도적놈의 얼굴 조각을 으적거리며 씹더니 삼키지도 않으며 바닥에 게웠다.


잘게 다져진 것들이 점액질에 휩싸인 채 주르륵 흘러내렸다. 식욕보다는 살인을 향한 욕구가 우선인 것일까.


낯선 이는 기다란 팔을 들어 다른 도적놈들 붙들더니 게 눈 감추듯 오른쪽 갈비뼈를 뜯었다.


어깨와 복부를 잇는 아슬아슬한 이음매만 남겨놓은 채 도려내진 육신은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에 나자빠졌다.


소녀가 그 뒤를 다급하게 가리켰다. 다리 건너편에 몇몇이 추가로 포착되었다. 기괴하게 변형된 신체를 느적거리며 미친 듯 달려오는 게 보였다.


회이던은 혀를 차며 다시 마부석에 올라갔다.


“악마병 발병자다. 젠장, 통행료고 지랄이고 여길 어서 빠져나가야 해.”


공황은 도적놈들로 하여금 무기가 손에 들려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했다.


사람 비웃을 때는 단합이 잘 되던 도적놈들이 우왕좌왕하며 산개했다. 무기 휘두를 생각도 못 하였다.


“시발! 이것들 좀 어떻게 해봐!”


“니 쪽으로 유인해! 니 쪽으로··· 크하악!”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아비규환이다. 저 혼자 발을 헛디뎌 넘어지더니 하반신을 물어뜯기는 놈, 판잣집 지붕에 올라가려다 바짓섶을 붙잡혀 돌바닥에 부딪히는 놈···.


불안해하며 거친 숨을 내뱉던 말들은 고삐를 당기자마자 곧장 달렸다. 악마병 발병자 몇이 부딪히고, 그리고 애석한 일이지만 도적 몇 놈도 달리는 말에 휩쓸렸다.


“하아!”


별안간 우당탕하며 마차 뒷칸에 무언가가 올라타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가 알아듣기 힘든 비명을 질렀다. 회이던은 마차를 급정거하며 전기톱부터 손에 쥐었다.


“왜 멈춰! 달려! 달리라고! 뒤에서 쫓아온다고, 시바알!”


도적놈들의 수괴였다. 회이던은 욕지기를 내뱉으며 다시 고삐를 당겼다.


“미친놈아, 올라탈 거면 나 사람이요 하고 올라타.”


“그게 지금 중요하냐? 이러다 다 죽는다고! 속도 더 올려!”


“아직도 제가 두목인 줄 알고 명령을 하네···.”


“으아악!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중요하지. 탑승료도 없이 내 마차에 올라탔잖아. 이게 역지사지란 거란다, 어디 평생 가둬 놓고 썩은 생선만 제공해 주고 싶네···.”


좁달막한 판잣집 사잇길은 진작 통과하였다. 마차는 서서히 속력을 타더니 금세 다리의 말미에 다다랐다.


뒤쫓는 악마병 발병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를 초월하였다 해도 2마력의 속도는 따라잡을 수 없다.


맨발이 돌바닥에 촥촥 달라붙는 소리는 차츰 멀어져서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저··· 저것들은 대체 뭐야? 어디서 나타난 거지?”


“악마병이란 미지의 질병이 발병한 사람들이다. 설명은 조금 이따···.”


다리와 흙바닥 사이의 경계면을 지나치는 순간이었다.


돌바닥 위를 달릴 때에는 보이지 않던 사각, 시야의 맹점에 머무르고 있던 발병자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 마차를 향해 몸을 던졌다.


짐칸이 덜컹거리며 왼편으로 푹 기울었다. 난간에 매달린 것이었다.


여자애는 비교적 침착하건만, 도적단 수괴 놈만이 정신 사납게 소리를 질댔다. 아비규환이 마차 위까지 번졌다.


“놈이 탔어! 탔다고! 탔다니깐!”


“미친놈아, 정신 사나우니깐 닥치고 고삐나 잡아!”


회이던은 발치에 내려놓았던 전기톱을 도로 들어 올리며, 짐칸 구석에 몸 밀착시키고 벌벌 떠는 놈에게 고삐를 건네었다.


“잡아, 이 빌어먹을 놈아. 잡으라고!”


도적놈은 엉거주춤하며 회이던과 자리를 뒤바꾸었다. 짐칸에 두 다리 올려놓은 회이던은 여자애부터 본인 뒤편으로 옮겨놓았다.


그러는 와중, 발병자가 난간을 넘어 마차 짐칸에 완전히 올라탔다.


“어, 어디로 가면 되는데? 어디로?!”


“알아서!”


전기톱에 시동이 걸렸다. 한낱 악마조차 병법 비슷한 것을 사용하며 인간들을 도살하건만, 그 미만의 영역까지 전락한 발병자들의 살육은 그야말로 무지성의 극치였다.


그렇기에 까다로웠다. 경험의 영역에서 추측의 영역은 완전히 배제해야 하며, 오로지 근육에 새겨진 기억만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매 움직임이 의외의 것이기에 그에 대응하는 임기응변이 중요하고 어쩌구···. 알 게 뭔가.


코 위쪽이 촉수처럼 여러 다발로 분화한 놈이 달려들었다.


그 끝에는 눈알이 달려있지만, 동시에 다발 하나하나가 억센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어 신체 부위를 잡아 쥐어짜듯 끊어버리는 위협적인 용도였다.


하지만 전기톱의 돌아가는 톱날 앞에선 그저 말미잘이었다.


“쾨이이옳.”


목청 속에서부터 메아리치듯 울리는 불쾌한 음성, 생명체가 내뱉어선 안 되는 목소리였다. 비위 상해 눈살을 찌푸린 회이던은 그대로 복부를 갈라 토막을 쳤다.


뿜어져 나오는 핏물은 붉은빛깔 가운데 기묘한 유황의 악취를 포함한 것이, 어쩐지 악마의 것들과 흡사했다.


도적단 수괴 놈은 마차 속력을 진정시키며 짐칸을 돌아보았다.


“되, 된 거냐? 됐어?”


“내려. 이 개자식아.”


“뭐라고···?”


회이던은 전기톱 손잡이로 도적단 수괴 놈의 대가리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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