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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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최근연재일 :
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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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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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DUMMY

4



회이던은 코를 킁 들이마시곤 전기톱의 화면을 확인했다.


강도들 죄다 살해하는 데 1분 16초의 시간이 경과하였다. 그러니 탐지 기능의 이용권은 8분 44초가 남았다. 주변에는 달리 감지되는 것이 없었다.


회이던은 거친 손동작으로 강도의 옷자락을 뜯어냈다. 더러운 천이건만, 얼굴이며 손등이며 어디든 할 것 없이 피에 젖은 곳을 구석구석 닦는 데 쓰였다.


그러는 동안 코멜루가 수레를 이끌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대단하네요. 그 뭐냐, 혹시 검성이세요?”


“검성이라···. 그런 말을 대체 누가 창안했을까요. 고상하신 분들끼리 서로 자화자찬하려고 만든 낱말이겠지요. 부끄러워라.”


“그런 건가요?”


“낸들 압니까.”


코멜루의 얼굴에는 경외가 서려 있었다. 숲의 어둠을 향하였던 원초적인 두려움은 어느덧 철인을 향한 경외로 탈바꿈하였다.


그런데 회이던은 공포와 경외의 상관관계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교단 것들이 민중에게 경외를 강요하는 기제부터가 공포를 조성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숭배받아 마땅한 거룩함과 이해 못 할 악의는 종이 한 장의 차이 일지도 모른다···.


회이던은 수레 가로막은 시체들을 발길질하며 밀쳤다. 바닥에 널린 살점의 입자들은 더 이상 고형을 지녔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것들도 발길질에 밀려나 흙 위에 쓸리고 닦이며 흉측한 무늬를 새겼다.


“이 자식들, 그냥 길거리 강도 놈들이 아닙니다.”


“그럼 뭐죠? 길거리 강도가 아니면··· 그 뭐야···.”


“딱 봐도 이상한 농담에 시동을 걸고 계시는구만. 하지 마십쇼.”


회이던은 노변 앞에 무릎을 낮추었다. 시체들의 면면을 하나씩 살피려는 것이었다.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벌려 확인하니, 때가 낀 듯 흐릿한 홍채 가운데에 기이하게 빛나는 표식이 보였다.


“마법사의 지배를 받고 있네요. 여기 눈동자 속에 문양 같은 거 보입니까? 정신 지배를 당하면 사람 눈동자가 이렇게 돼.”


“저런, 큰일이네요. 그럼 여기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겠어요.”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일 수 있을 때 죽여 놓는게 낫죠.”


“에··· 저는 딱히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데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회이던 바라보는 코멜루의 표정이 흐릿해졌다. 하등 엮일 필요 없는 위험에 자초해서 엮이겠다 하니,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는 것도 무리는 아녔다.


게다가 경호를 목적으로 고용된 몸 아닌가. 위험해 보이는 숲길에 들어선 것은 지점을 빠르게 통과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이라도 있다.


그런데 굳이 사악한 마법사 얼굴 보러 가겠단 건 다른 문제다. 아무런 이득이 없다···.


회이던도 그런 일반인의 시각을 등한시하진 않았다. 피에 미친 광인처럼 보이고픈 생각도 없었다.


“그 뭐야, 저희가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마법사 쪽에서 찾아올 겁니다. 숲을 무사히 통과시켜 줄 생각이 없을 거예요. 손실한 병력을 다시 보충하기 위해 무슨 수작을 부리겠죠.”


“그럼 그냥 반나절을 대가로 숲을 피해 돌아가는 편이 나았던 것 아닌가요···?”


“그건 경호 없을 때나 그렇고요. 그러니 제가 나서겠다 하는 겁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지만, 회초리 빼앗는 게 가능한 상황이라면 기다리지 않고서 기습 가하는 게 나을 수도 있죠.”


“하하.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무서워 죽겠네요.”


회이던은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마법사가 숨어 있을 법한 장소는 대략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무가 더 우거진 쪽, 즉 회이던 바라보는 방향일 것이며 그 안쪽은 훨씬 어둑하고 훨씬 살풍경했다. 나무란 것이 으레 품은 심록의 표상 따윈 없었다.


“여기 계십시오. 따라오신다면야 경호의 본분은 다하겠다만, 가뜩이나 두려움에 떨고 계신데···.”


“에··· 그럼 전 기다리고 있을게요. 어차피 수레가 나무 사이를 통과하지 못할 거예요. 화물을 방치하고서 자리 비우기도 좀 그러니깐···.”


“무기 같은 건 갖추고 계십니까?”


코멜루는 두꺼운 외투의 단추를 풀어 옷감 안쪽을 드러냈다. 칼집에 꽂힌 단검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그거 쓸 일 없길 바라야겠네요.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아마 그쪽 생각보다 훨씬 빠를 겁니다.”


회이던은 코멜루와 수레와 말을 남겨둔 채 홀로 숲길을 벗어났다. 안쪽 깊은 곳은 시종일관 우중충하고 차가웠다.


그렇게 얼마간 걸었다. 길 바깥을 잠자코 걷자니, 타인의 피로 달아오른 육신도 잠잠하게 식었다.


해가 떠오른 지는 조금 되었는데도 공기가 찼다. 이슬을 머금어 축축해가지곤, 도통 가라앉을 낌새가 아니었다.


아마 드높은 흑색 가문비나무들이 햇빛을 독식하는 탓일 테다.


모든 숲이 새로운 생명의 온상은 아니다. 빽빽한 나무 이파리가 하늘을 온통 가리면, 아래에는 남는 볕이 없다.


지극히 한정된 토양만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말의 햇빛 쬘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짙푸른 그림자 가운데에 콩알만 하게 드리운 햇빛은 붓으로 강하게 찍어 누른 것마냥 유난히 도드라졌다.


땅에는 콩알만 한 햇빛, 그리고 흙과 그 위에 튀어나온 나무의 뿌리, 자리 잡은 이끼들뿐이었다.


그밖에는 나무줄기 아래의 양분 찌꺼기를 빨아 먹는 퇴색한 풀줄기 몇몇이 전부였다.


다만 버섯만은 곳곳에 만개해 있었다. 회이던은 얼굴 찡그리며 모양도 해괴한 그것들을 노려보았다.


‘버섯은 식물인가? 햇빛 없이도 잘 자라는데··· 식물이 맞나?”


마음의 기강이 어찌나 해이한지 저 따위 생각이나 하고 앉았다. 긴장감은 발톱만큼도 없었다.


주기적으로 전기톱에 달린 화면을 확인하기야 했다만, 이질적인 광채는 회이던 마음에 짜증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햇빛을 정면으로 바라보듯 눈 따갑기 그지없었다.


한데 눈 따가운 형편이 지속되는 와중, 화면 끄트머리에 적성 생명체를 표시하는 점이 나타났다. 탐지 기능의 이용 시간이 2분 58초 남은 시점이었다.


회이던은 화면의 쨍한 광채와 숲의 깊은 어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시력을 고문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쨌든 대략적인 위치 정돈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 멀지 않았다. 그때부턴 발바닥이 아닌 발꿈치로 걸었다.


흙의 일부가 되다 만 죽은 이파리들은 밟을 때마다 버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바람마저 잠잠한 숲속에선 그것만으로도 귀에 큰 자극이었다.


그 상태로 계속 걷다 보니 잔여 시간은 58초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먼 쪽 앞에 나무가 임의로 벌채된 공터가 나온 것도 그 시점이었다.


회이던은 여전히 어둠 속에 머무른 그대로 공터의 동향을 살폈다. 나뭇잎이나 가지 사이로 투과되는 빛무리가 눈을 시리게 했다.


숲의 어둠에 눈이 적응해 버린 탓에 바깥의 볕은 그저 아득한 흰 덩어리로만 보였다.


그럼에도 인영이 꾸물거리는 것 정돈 보였다. 화면 속 점과 똑같은 위치에 서 있었다.


너머로는 움막과 오두막이 각각 한 채씩 보였다. 꾸물거리는 인영은 그 앞을 빙빙 돌고 있었고,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채지도 못한 듯했다.


회이던은 몸의 균형을 맞춘 채 한쪽 발을 뻗었다. 바닥에 닿아도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적성 인간 탐지 기능을 종료합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기능이 준비되어 있으니, 당국을 위해 이용을 주저하지 마세요!”


“뭔 시발···.”


“거기냐!”


전기톱에서 명랑하고 가증스러운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즉시 숲 바깥의 공터로부터 밝은 빛이 발하였다.


빛에 닿은 나무 두 그루는 얼어붙었다. 얼어붙더니, 이내 깨져버리며 반으로 토막이 났다.


가지가 다른 나무에 짓눌려 우지끈 꺾이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커다란 줄기가 교차하며 무너져 내렸다. 흙먼지가 크게 일었다.


마법사는 두 손을 비비듯 허공에 휘저으며, 곧바로 후속하는 공격을 준비하였다. 그의 손바닥 사이에 시퍼런 냉기가 일었다.


“꼭두각시들을 못 쓰게 만든 건 네놈이냐? 심장을 얼려서 죽여 버리겠···.”


말 마치기도 전, 떨어지는 나뭇잎과 흙먼지가 세차게 꿰뚫리며 허공에 구멍을 남겼다. 그와 동시에 수평으로 겨눈 톱날이 숲의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마법사의 가슴팍까지 닿기까지, 반응할 수조차 없는 속도였다. 톱니의 살벌한 회전이 옷자락에 맞물렸다.


그 섬찟하게 전달된 진동이 마법사의 동공을 얼어붙게 했다.


“크하악!”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급히 얼음을 이용해 방어막을 형성한 모양이었다. 톱날은 마법사의 가슴팍으로부터 튕겨 나가면서 우측 상단을 향해 솟구쳤다.


하지만 마법사는 공격을 막아냈을 뿐 견디진 못한 탓에 뒤로 크게 밀려났다. 꼴사납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젠장···!”


“빌어먹을, 네놈 입 닥치게 하는 기능은 없냐? 그건 얼마를 지불하면 되는데.”


마법사에게 한 말은 아니다. 전기톱에게 한 말이었다.


“무음 기능은 2000점을 차감합니다! 점수를 지불하시겠어요?”


“미친 새끼 아냐.”


부글 끓는 눈빛을 향해봤자다. 한낱 인격 없는 기물에게는 별 의미 없는 행위다.


회이던은 대신 마법사에게 이글거리는 시선을 향하였다. 볼썽사납게 엎어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법사의 낯빛은 창백했다. 연령은 얼굴 주름살로 미루어 오십은 족히 되어 보였다.


그의 쏘아보는 눈동자는 분명한 빛을 발하였고, 그 안쪽에 새겨진 표식은 경멸을 품은 채 일렁거렸다.


열기를 발하는 두 시선이 맞부딪히며 스산하게 얼어붙은 공기를 녹였다.


“네놈, 교단에서 보냈나?”


마법사는 노기 띤 음색으로 쏘아붙였다. 회이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젠 하다 하다 횃불 밑에서 잿가루 퍼먹는 개냐는 소리도 듣고 그런다. 적잖게 마음이 상하였다.


그런 기분이 얼굴 바깥으로도 드러난 모양이었다. 분개하던 마법사의 낯짝에는 일견 의아한 빛깔이 떠올랐고, 그 뒤에는 차츰 비열한 낌새로 물들어 갔다.


“아! 내가 말실수를 했군. 교단과 척진 입장이었나 본데···.”


“알면 됐다. 방금의 경험을 교훈 삼아 앞으로는 말할 때 조심하도록 해. 그런데 네놈에게 다음이란 게 있을진 모르겠다···.”


“아봐. 교단을 적대하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우린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셈이지. 이렇게 우리끼리 적대할 까닭이 없는 것 같군.”


강도단 조종하며 매콤한 칼빵으로 첫인사를 가해 놓고선 이제 와 서로 화목해지자고 말한다.


회이던의 감흥 없이 건조한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배는 표만 구하면 누구나 탈 수 있지 않나? 같은 배에 타고 있다 해서 이해가 일치하는 건 아닐 텐데.”


회이던은 전기톱 쇠줄을 몇 번 위협적으로 당겼다 집어넣었다 했다. 전기톱은 배기구를 통해 수레 끌던 말처럼 강한 숨을 내뱉었다.


그 뜨거움이 어둑한 숲속을 걸으며 식어버린 혈기에다 조금씩 박동을 더했다.


“같은 배에 탑승했단 건 목적지도 같다는 의미야. 나와 손잡는 건 어때? 내겐 교단을 무너뜨릴 만한 우등한 계획이 있다고.”


사상의 일부가 겹친다는 것만으로 동지 의식을 품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게다가 몹시 위험하기까지 하다. 회이던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마법사의 눈이 내내 번득였기 때문이다. 그 눈빛은 여전히 독기를 잃지 않았다.


표정을 제어할 줄 아는 게 구밀복검의 기본 소양이다. 애초에 마음에 두지 않았기에 뱀 같이 날름거리는 눈초리를 가리지도 못하는 것일 테다.


적당히 호의를 가장하다, 빈틈을 보이는 순간 기습을 가하겠구나 싶었다.


“음··· 길 가던 행인 공격하는 작자와는 악수하고 싶지 않아. 그냥 죽일래.”


회이던은 전기톱 레버에 손가락을 올렸다. 되먹지 못한 기습은 질색이니 그냥 선수나 칠까 싶었다.


톱날은 회전을 재개하였고, 마법사는 못내 당황했는지 얼굴 색깔이 울긋불긋해졌다.


“오냐. 그렇게 죽고 싶다면야 기꺼이 베풀어 주마!”


마법사는 발을 박차며 회이던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의 소매가 펄럭거렸다.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회이던의 이마와 그리 떨어지지 않은 허공에 날카로운 고드름들이 나타났다. 숫돌에 정성을 다해 갈아낸 금속처럼 더할 나위 없이 뾰족했다.


“횃불 숭상하는 놈들에게 대항하는 얼음장수라···. 이건 조금 시의성이 있구만.”


회이던은 멍청한 표정으로 위를 바라보며 헛소리나 내뱉었다.


그런 그를 향해 손가락 개수보다 많은 고드름들이 일제히 내려꽂혔다. 그러나 건성으로 내두른 전기톱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손보다 빠른 회이던의 눈은 흩어진 고드름 파편들을 훑었다. 와중에 모양 상하지 않은 파편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부서졌다곤 하나 여전히 조그만 고드름이라 부를 순 있었다. 그것이 바닥에 떨어져 완전히 박살 나기 전, 회이던은 정확히 겨누어 손날을 휘둘렀다.


적당한 세기로 가격당한 고드름 파편은 퉁겨져 날아갔다. 향하는 곳은 마법사의 심장이었다.


시퍼런 한기와 반짝이는 얼음 가루들이 휘날리며 두근거리는 왼편 가슴을 정확하게 노렸다.


“별 같잖은 잔재주를···!”


마법사는 두 손을 춤추듯 놀리며 영창을 대신했다.


날아드는 얼음 파편이 그의 죽음에 완전히 도달하기 전, 안개처럼 희뿌연 냉기와 함께 얇디얇은 얼음의 막이 나타났다. 고드름은 거기 부딪히며 맥없이 깨졌다.


“그렇게 말하면 내 마음이 아프잖아. 회심의 일격이었다고···.”


회이던은 전기톱을 높게 치켜들더니 저돌적으로 자리를 박찼다. 전투가 개시하며 벌어진 간격은 회이던의 길게 뻗은 보폭이 한 번 땅을 밟을 때마다 무색해졌다.


마법사의 손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외려 더 현란해졌다. 순간 일대에 성에의 한기가 감돌았다. 그것은 회이던이 발을 딛은 땅 아래 모여들어 응축되었다.


마법사는 한쪽 손을 급격히 쳐들었다. 관현악단의 지휘자가 연주를 종료하는 듯한 몸놀림이었다.


지면에 응축된 냉기는 그 즉시 거대한 얼음의 칼날이 되어 회이던을 향해 솟구쳤다.


두 발이 바닥에 맞닿지 않은 찰나였다. 때문에 회이던으로선 회피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신체는 세로로 양분될 것이며 단면은 그 즉시 빙결할 테고 피 한 방울 맺히지 않을 것이다.


마법사의 얼굴에 미소가 실렸다. 흡사 얼음과 같이 차가웠다.


그러나 회이던의 얼굴, 지극히도 무딘 표정을 짓고 있던 그 얼굴에는 어쩐지 화색이 돌면서, 거기다 더해 뜨겁게 달궈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대단, 하구만!”


톱날의 회전이 거세게 휘둘렸다.


몸뚱아리보다 더 큰 칼날의 상승은 틀어막히며, 금속끼리 맞부딪히는 소리와는 사뭇 다른 음성이 공터를 가득 메웠다.


흡사 건반 달린 타악기를 두들겼을 때 나는 영롱한 음색이었다.


얇디얇은 빙벽은 그 음색을 이어받아 파열하여 길게 갈라졌다. 베었다기보단, 타격한 것에 더 가까웠다. 때문에 회이던은 운동의 반대 방향으로 멀리 튕겨 나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무것도 없는 빈 땅에서 얼음 나타나는 건 말이 되는 일인가···.’


회이던은 체중의 무게를 상반신에 쏠리게 한 뒤, 몸의 방향을 재조정했다.


그의 두 발바닥이 공터 끝자락에 솟아 있는 가문비나무를 디뎠다. 오랜 세월을 과시하며 늠름하고 두껍게 뿌리 내린 나무였다. 여기 숲 전체가 그랬다.


회이던은 그대로 나무껍질을 박차더니 스스로를 쏘아 날렸다. 단단한 나무줄기가 뒤흔들렸고, 나뭇잎 사이로 유입되는 실낱같은 빛줄기도 요동쳤다.


목적지는 마법사의 심장이 위치한 왼편의 가슴팍이다. 얼음의 입자를 흩뿌리는 톱날의 회전은 그 위치를 정확히 가리켰다.


왼쪽 가슴, 조금 전보다 박동이 거세졌겠지. 모르는 일이다. 냉기 다루는 마법사이니 언제나 완만한 박동을 유지할지도.


“쥐새끼 같은 놈!”


마법사는 한 차례 더 팔을 치켜들었다. 바닥에 응결된 기운이 세차게 번쩍이더니 얼음의 단두대 칼날이 매섭게 솟구쳐 올랐다.


대포알처럼 스스로를 쏘아 보낸 회이던은 대포알처럼 제 추진력을 제어하지 못한다.


결국 스스로 단두대에 정수리를 처박고 말 것이다. 그리고 세로로 갈라져 죽고 말 것이다.


“아, 좆되어 버렸군.”


이렇듯 과시적인 동작은 가끔 역으로 이용당하곤 한다. 그건 사람을 사지로 내몬다. 보기 우스꽝스럽고 모양 빠지는 죽음이 될 것이다.


회이던은 전기톱의 육중한 무게를 추 삼아 몸을 우측으로 틀었다.


수정된 궤적은 얼음의 칼날을 아주 살짝 비켜 나아갔으며, 다만 톱날만이 그것에 정확히 꽂혔다.


“혹은 좆되지 않았거나···!”


추진력을 상실하는 것 따윈 없었다. 전기톱은 얼음을 아래 대각선 방향으로 절개하며, 이번에는 회이던을 추 삼아 미끄러져 내려갔다.


날카로운 빙인은 톱니의 선회에 철저히 갈려 나갔고 빛나는 가루들은 온 사방에 튀었다.


향하는 목적지는 변동이 없었다. 마법사의 왼쪽 가슴, 그의 심장이다. 맨바닥에서 얼음의 검망이 생성되었던 것처럼 모든 것에 막힘이 없었으며 또한 순식간이었다.


“기고만장해하지 말거라!”


분개를 담은 고압적인 목소리가 회이던을 향했다.


눈치채 보니, 회이던은 어느새 웃어대고 있었다. 비웃음, 혹은 승리의 확신을 담은 웃음 같은 게 아니었다. 그냥 자동으로 빠져나오는 것이다.


몸에는 어쩐지 열기가 맴돌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쌀쌀맞은 아침의 공기 속, 살을 에는 듯한 빙결과 씨름하고 있는데도 외려 달아오르니 말이다.


두꺼운 얼음을 절삭하며 울어대는 전기톱의 굉음은 흥취를 더하는 연주가 되었다. 얼굴에 튀는 얼음의 가루들은 녹아내려서 마치 땀줄기처럼 보였다.


“허허, 허허허···. 허허허허!”


그럼 마법사의 심장에 톱니가 닿기까지 남은 시간 1초 하고 반 정도.


마법사는 급히 왼손을 휘둘러 허공에 넓게 호를 그었다. 이빨을 앙다문 그의 얼굴에는, 곧 베일 운명을 직감하면서도 어째 패색이 실려있지 않았다.


회이던의 눈동자가 무언가를 감지했다. 시야 구석에 반짝이는 빛이 일었다. 일순간, 한 줄기의 햇빛을 수십 개의 방향에다 오색빛깔로 투과하는 투명한 것이 반짝였다.


그 반짝임은 극히 찰나였다. 돌개바람부터 피부에 세차게 닿았다. 이는 직후 닥칠 죽음을 암시했다.


회이던은 급히 전기톱의 추진을 멈추면서 스스로의 몸을 거꾸로 회전시켰다.


“끝이다!”


공터와 그 양옆의 숲까지 포괄하여, 하나의 면 자체를 절삭하는 거대한 참격이 일었다.


진행 방향 따윈 없었다. 공간 전체가 동시에 절단되었다. 면과 접한 모든 것이 반으로 토막이 났다.


햇빛 투과한 얼음 가루를 반짝이는 참격은, 그 반짝임과 같이 눈 깜짝할 새였다.


시전자인 마법사 본인조차도 시작과 경과, 그리고 끝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시간의 잘게 나뉜 틈새가 다음 순간과 접합한 뒤에야 결과를 관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맨 먼저, 얼음의 잘게 나뉜 결정들이 허공에 잔여한 것이 보였다. 마치 별과 같이 반짝거리는 빛결을 형성하여 행성의 고리처럼 넓게 퍼져 있었다.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이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은연중에 서린 죽음의 맥락만 아니었다면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선을 그 아래로 내린다 한들 반으로 잘린 회이던의 하반신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마법사 자신의 가슴팍에서 멈출 도량 없이 솟구쳐 오르는 혈액만을 관측하였을 뿐이다. 핏물의 분수는 시퍼런 냉기와 어우러져 빛을 산란시켰다.


“···크허억!”


식도를 역류한 핏물이 뒤늦게 구강을 타고 아래로 쏟아부어졌다.


마법사는 그때 들어야만 했다. 시간의 잘게 나뉜 틈새, 그때 자신의 몸에 닿은 톱날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백 마리 짐승의 으르렁거림을 섞어놓은 듯 음험한 회전의 소음을 들어야만 했다···.


“강도들 데리고 인형 놀이나 하는 변태 영감이라 얕봤는데, 과연 마법사는 마법사야.”


그러나 너무 늦었다. 이제는 등 뒤에서 무심하게 건네어지는 목소리만 귀에 들어올 뿐이었다.


“개자시익···! 가당치도 않은 마검 하나 주웠을 뿐인 주제에, 기고만장해하지 마라!”


마법사는 죽을힘을 다해 몸을 돌렸다. 통증이 어마어마해서 그것만 해도 사력을 다해야만 했다.


두 남자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러자 표식이 서린 마법사의 눈동자는 타오르듯 강하게 빛을 발하여 눈꺼풀 바깥까지 일렁였다.


“···.”


“···.”


그렇게 눈싸움하듯 계속해 서로의 눈을 응시하였다. 마법사의 불타는 눈망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것도 무슨 공격의 일종인가? 나 막 혼란스러워지려 하는데.”


“아뿔싸, 몸에 마력 지니지 못한 미숙아였나!”


“푸핫.”


회이던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타액이 마법사의 얼굴에 지저분하게 튀었다.


“아, 실례. 아무튼 내게 정신 지배를 가하려 시도한 것이었군? 거 안타깝게 되었수다. 많은 희망을 걸었을 텐데 말이죠.”


몸에 내장된 마력 운운한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마법사가 사람을 인형 삼는 정신 지배의 기제는 신체의 마력을 이용하는 것인 듯싶었다.


인간은 보통 태어날 적부터 미량의 마력을 머금은 채 태어난다. 그 총량을 발전시켜 유용하게 써먹는 것은 재능의 영역이다.


다만 회이던과 같이 미숙아라는 멸칭으로 불리우는 인간들도 더러 있는데, 미량의 마력마저 타고나지 못한 이들이다.


“허허, 허허허, 허허···.”


회이던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렇듯 지나친 미약함은 때때로 수중에 품어 놓은 칼날이 될 수도 있단다.


마법사는 자신의 목에 톱날 들이밀며 실없이 웃어대는 회이던을 두려움 섞인 눈으로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수중에 남은 패는 없으며 피 분수는 시간 흐를수록 세기에 박차를 가했다.


“그럼 끝.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입으로만 머금으시오. 나 지금 그쪽이 다른 술수를 부릴까 너무 두려워서 바로 죽여버릴 생각이니깐.”


“자, 잠깐! 목숨을 구걸하겠다!”


“그걸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놈은 또 처음 보네···.”


“네게도 교단을 뒤엎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지? 내겐 그 수단이 있어! 나와 함께 교단을 무너뜨린 뒤, 새 질서를 세우자!”


“사양할랜다. 숲길 지나는 민간인 해코지나 해대는 당신의 질서는 너무나 난폭할 것만 같아.”


“안 돼! 내 말을 끝까지 들···!”


목젖에 들이밀린 톱날이 회전을 시작했다.


안개처럼 시린 희뿌연 한기 위로 핏방울이 사정없이 흩날렸다. 그 붉은 색이 더 도드라지게 반짝였다.


그리하여 무척이나 비윤리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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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톱 소드마스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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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 24.09.04 9 1 21쪽
31 31 24.09.03 10 0 17쪽
30 30 24.09.02 12 0 17쪽
29 29 24.09.01 13 0 26쪽
28 28 24.08.31 10 0 16쪽
27 27 24.08.30 13 0 19쪽
26 26 24.08.29 12 0 16쪽
25 25 24.08.28 15 0 21쪽
24 24 24.08.27 10 0 22쪽
23 23 24.08.26 14 1 27쪽
22 22 24.08.25 48 0 19쪽
21 21 24.08.24 17 0 23쪽
20 20 24.08.23 15 0 18쪽
19 19 24.08.22 16 0 22쪽
18 18 24.08.21 15 0 22쪽
17 17 24.08.20 18 0 26쪽
16 16 24.08.19 19 1 21쪽
15 15 24.08.18 21 1 28쪽
14 14 24.08.17 21 1 17쪽
13 13 24.08.16 19 0 19쪽
12 12 24.08.15 17 0 18쪽
11 11 24.08.14 18 0 18쪽
10 10 24.08.13 21 0 20쪽
9 9 24.08.12 23 0 23쪽
8 8 24.08.11 29 0 19쪽
7 7 24.08.10 36 0 16쪽
6 6 24.08.09 35 0 26쪽
5 5 24.08.08 34 0 18쪽
» 4 24.08.07 52 0 23쪽
3 3 24.08.06 64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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