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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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최근연재일 :
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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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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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DUMMY

25



악마의 단단한 갑각이 무용했다.


그 안에 들어차 있던 속살은 억지로 욱여넣어 놓았던 것마냥 팽창하기 시작했다. 투명하고 탱글탱글한 질감에 연분홍색을 띤 핏줄이 곳곳에 돋아 있었다.


그것들은 전기톱의 진동에 전율하며 파들거리거나 꿈틀거렸다. 진액 같은 것도 잘린 단면을 타고 흘렀다.


악마는 뇌의 일부를 소실한 여파로 미친 듯이 날뛰었고, 땅속에 파묻혀 있는 몸체도 극심하게 발버둥을 쳤다. 이에 지면은 한낱 양탄자처럼 들썩일 따름이었다.


대가리를 바닥에 쾅쾅 찍어대기도 했다. 이에 땅에 발 붙이고 선 사냥꾼들의 균형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뿐이다.


대가리 암만 바닥에 찍어 봤자 자멸의 빠른 지름길에 불과할 뿐, 그 이상의 결과를 창출할 수는 없다. 그나마 성한 속살도 파편이 되어 마구 흩날릴 따름이었다.


“계속 저러도록 방치해 놓으면 뇌 손상으로 죽기야 하겠죠.”


“다만 아주 오래 걸리겠지. 젠장, 저대로 법석을 부리게 놔둘 수는 없어.”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빈틈이 없는걸요.”


날뛰는 기세가 세찬 것만은 사실이다. 불도 뿜을 줄 아는 다재다능한 놈이었다. 광란의 와중에도 화염을 내뿜으며 주변 풀밭을 간이 불지옥으로 탈바꿈시켰다.


카에키가 모는 마차는 그 모든 불지옥과 맹공이 닿지 않을 만한 안전한 위치까지 빠져나갔다.


사냥꾼들도 조금씩 뒷걸음질 쳤는데, 그들로선 환장할 노릇이었다. 넋 놓고 보고만 있는 건 그들 원하는 바가 아녔다. 어서 도끼와 망치 맛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다.


“대장, 어떻게 합니까?!”


“젠장, 모르겠다! 다 같이 돌진하자!”


“아니, 잠깐 기다리십쇼. 그랬다간 다들 납작하게 두들김 당한 고깃조각이 되고 말 겁니다.”


회이던은 무작정 뛰쳐나가려는 사냥꾼들을 멈춰 세웠다. 생긴 건 다들 막무가내인데 말을 하면 제대로 경청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 다행이었다.


“무슨 신통한 계획이라도 있는가? 아니, 그보다 자네 손에 들린 그 이상한 것은 또 뭐야?”


“마법의 일종이랍니다. 부끄러우니깐 너무 신기하게 보거나 하진 마십쇼.”


“마법이라! 자네 솜씨도 마법 덕인가? 아주 눈여겨볼 만하더군!”


마법이라니, 이 무슨 씨알도 안 먹힐 궁색한 둘러댐인가. 그러나 꽤나 단순해 보이는 사람들이니만큼 먹힐 거라 생각하고 내뱉었다.


깔보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깔보는 게 맞는 것 같네요. 자중하겠습니다. 이런 싹퉁 바가지 없는 놈 같으니라고···.


여하튼 회이던은 눈을 부릅뜨며 악마의 요동치는 몸체 전부를 시야 안쪽에 들어오게 했다.


이 지렁이 모양 괴물이 펼치는 야단법석에서는 이성이나 습성과 같이 정형화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죽음을 향한 공포와 광기만이 읽힐 뿐이다. 반복되는 양식 따윈 없다.


그러나 육신의 동작은 인체의 가용 범위 내에서만 기능한다. 반복이 결여되었다 해도 한 동작으로부터 연계되는 다음 동작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다만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인지하는 안구의 근육이 필요할 뿐이다. 그렇게 기다리며 때를 노리던 회이던에게 시기적절한 순간이 찾아왔다.


바람에 사납게 떨리는 불길은 진입하기 적당한 모양으로 휘날렸고, 흙더미 위로 솟은 길쭉한 몸체 대부분은 바닥을 휩쓸더니 위로 밀려 올라가는 동작이었다.


바로 그 찰나였다. 손에 들린 전기톱이 악마의 요란한 울음소리 따윈 우습게 여길 굉음을 흘렸다.


소리의 잔향만을 뒤에 남긴 채 회이던은 달려 나갔다. 그는 눈 깜짝할 새 나무둥치처럼 흙바닥에 박힌 악마의 몸체 뒤편에 자리잡았다. 거기에 닿기까지 바닥에 새겨진 발자국은 네 걸음뿐이었다.


“오오!”


몇 사냥꾼이 탄성을 내질렀다. 검은 광택의 갑각은 앞서 말한 대로 무용했으며, 얄팍한 속살은 네 발자국만으로 스쳐 지나간 톱날에 절반가량 끊어져서 너덜거렸다.


회이던은 앞으로 쏠린 자신의 몸에 급격한 제동을 걸었다. 끈적한 피 묻은 톱날이 뒤로 미끄러지듯 한 차례 더 휘둘렸다.


“궤에에오오옹.”


열 번 찍어도 넘어갈까 싶은 두꺼운 몸체가 단 두 방에 깨끗이 썰렸다···. 사실 그리 깨끗하진 않다.


단면이 갑각 바깥으로 급격하게 밀려 나왔으며 짓물러진 핏줄과 힘줄, 기다란 장기 같은 것들은 뭔지 모를 성분의 녹색깔 액을 뿜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정도를 벗어난 불결함이다. 어쨌든 대가리를 비롯 그 아래의 몸체가 불바닥에 처박혔다.


별로 놀랍지 않은 사실이지만, 악마는 그 상태로도 살아 있었다. 물 바깥으로 나온 담수어마냥 팔딱거리며 절단된 몸을 좌우로 흔들어댔다.


사냥꾼들은 곧바로 무기를 쳐들고선 기합을 내뱉으며 불길을 헤쳤다.


“추악한 악마에게 깊은 잠을 선사하라!


“깨끗한 화염으로 정화하리라!”


지렁이 모양 악마의 남은 잔재에 집단 구타가 가해졌다. 불길이 그들 몸을 옭아매건만, 관계 없이 즐거워 보였다. 뜨겁지도 않은가. 온도에 무감한 사람들이거니 싶었다.


회이던은 사냥꾼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악마의 구불거리는 몸체가 파헤쳐 놓은 구덩이 속을 들여다보았다.


원래 땅굴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은데 조금 전의 소동으로 인해 매설된 듯했다. 흙더미에 깔려 버둥거리는 악마들이 몇 정도 보였다.


지옥문이 웅웅거리며 맥동하는 소리는 흙더미 안쪽에서 더 노골적으로 들렸다. 또한 흙의 입자 사이사이로 한증막처럼 내뿜어지는 열기에 얼굴이 익는 듯했다.


“지옥문은 이 아래에 있습니다!”


회이던은 그렇게 외치면서 꿈틀거리는 악마들을 하나하나 쑤셔 죽였다. 폭행을 끝마친 여섯 사냥꾼이 회이던의 뒤에 섰다.


세문두크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뚝뚝 끊어지는 소리를 냈다. 스스로의 힘으로 모가지 꺾여 죽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리가 컸다.


“좋아, 이 안에 지옥문이 있단 거지.”


“방금 그놈이 하도 휘저은 탓에 흙더미가 침하한 모양입니다. 들어가실 거라면 삽 같은 걸로 파헤쳐야 할 것 같군요.”


원칙상 악마 토벌 시 지옥문 안에 발 들이는 것은 엄금이다.


안쪽에 악마가 단 한 마리도 잔여하지 않아야 지옥문이 닫히는 탓에, 교회 기사의 인도 아래에 제한적으로 돌입하는 것만은 허용되었다. 그마저도 복귀 후 구금되어 각종 종교적 의례와 심문을 거쳐야만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냥꾼들은 지옥문 진입에 전혀 거리낌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그 점은 회이던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세문두크는 갸륵하다는 얼굴로 회이던 어깨에 무거운 손바닥을 올렸다.


“자네 손에 들린 그것, 마법으로 만들었다고? 교단이 허용하던가?”


“그렇습니다. 악마들을 썰어 죽이는 용도이니 쌍수를 들고 반기지 않았겠나요.”


“하하! 당연히 그러하겠군!”


다른 사냥꾼들도 세문두크를 따라 호방하게 웃었다. 회이던의 실력을 찬미하는 말들이 하나씩 건네어졌다.


마검이니 뭐니 하는 반응이 일반적이지, 편견이 없어도 너무 없는 사람들이다···. 회이던은 고개 숙여 화답하면서, 전기톱이 또 뭐라 망발을 지껄이기 전에 입자화하여 거두었다.


“그럼 안쪽에서 좋은 사냥 되십시오. 지옥문의 위치가 드러낸 마당에, 굳이 저희를 보호하는 노고는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회이던은 다시 한번 고개 꾸벅이더니 돌아서려 했다. 그때 세문두크의 굵은 손아귀가 회이던의 팔을 붙잡았다. 뒤돌아 바라본 그의 눈에는 은근한 빛이 서려 있었다.


“어떤가, 코멜루. 자네도 안에서 사냥을 함께 즐기지 않겠는가?”


“예에?”


“자네가 악마 놈을 단 두 방에 베어 넘길 때 지은 표정을 똑똑히 보았다네. 해방감을 만끽하는 듯하더군.”


또 표정에 전부 드러난 모양이었다. 평상시에는 덤덤한 낯을 잘만 유지하면서 왜 무기 휘두를 때에만 관리가 안 되는가. 싸움에 발정 난 미친개도 아니고 말이다.


“···저도 마음만은 굴뚝같지만 여동생 안전이 우선이라서요.”


그렇게 말하며 마차 쪽을 뒤돌아보았다. 그런데 카에키는 마차 위에 없었다.


도리어 활과 화살을 구비한 채 회이던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멀뚱한 표정으로 말문이 막힌 채 당돌한 꼬마애를 바라보았다.


“뭐, 뭐 하는 건데···?”


카에키는 눈썹을 찡그리며 활을 확 들었다. 어쩌라는 건지.


“자네 여동생은 괜찮은 것 같은데.”


“예? 괜찮을 리가 있습니까. 얘, 뭐 하는 거야. 어서 왔던 길 다시 돌아가!”


“하하. 자네는 욕망을 해소하는 법이 서툴러···! 지금 원하는 것은 생각을 내려놓은 채 악마들을 마음껏 도륙하는 것이지···?”


“그, 그럴 리가···.”


“하하···. 난 자네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어. 자네는 옛 시절처럼 악마들을 베어 넘기며 만끽하고 싶은 게야···!”


“그럴 리가···!”


욕망을 해소하는 법이 서툴다니, 이 금욕을 강권하는 세계에서 가장 짐승에 가까운 놈팽이가 있다면 바로 회이던 섬칼리고드다···. 욕망이고 자시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카에키는 난데없이 왜 이러는가.


카에키는 회이던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더니, 그 뒤에 지옥문 위치한 구덩이를 번갈아 가리켰다. 여전히 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자네가 욕망을 해소하는 법이 서툴다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군.”


“예? 그럴 리가요.”


카에키는 손가락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더니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 뒤 회이던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는 단호한 힘이 실려 있었다.


날 챙기지 마시오. 나의 안전을 신경 쓰지 마시오. 이런 미친 의미는 당연히 아닐 테다. 그녀 눈에 실린 단호한 의지는 그녀 스스로가 아닌 회이던을 향하고 있었다.


거듭되는 헌신에 조금이나마 안식을 마련해 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찡그린 눈썹에서 결연함이 느껴졌다. 타인, 즉 카에키 자신의 안위에만 치중하여 스스로를 뒷전에 놓지 말라 전하는 것 같았다.


“자네가 욕망을 해소하는 법이 서툴다고 말하는 것 같지?”


“예···? 아뇨,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부터 그 구절에 묘하게 집착하시네요.”


기특하긴 한데, 영 기분이 알쏭달쏭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사냥꾼들은 열심히 굴착하며 공간을 마련하고 있었다. 파묻혀 있던 악마들의 사체가 흙더미 옆에 덩그러니 쌓였다. 지옥문은 점차 그 흉흉한 모습을 내밀며 독한 유황 냄새와 열기를 내뿜었다.


“한 번 생각해 보게나. 자네 출중한 실력을 한 번만 목격하는 것은 너무나 모자라. 부디 위용 떨치는 모습을 한 번 더 보여주길 바라네. 각자의 무기에 같은 피를 묻힐 수만 있다면 내게도 큰 영광이 될 것 같군.”


세문두크는 회이던의 등짝을 툭툭 두들기더니 굴착을 조력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회이던은 옆에 덩그러니 남겨진 카에키를 미심쩍게 흘겼다. 악마병 발병자들, 군체로서의 악마, 그 모든 것을 겪고 난 뒤인지 어째 의연한 모습이었다.


“잘 생각해. 악마 놈들은 숲속 짐승들과는 달라. 자칫하다간 처참한 꼴을 면하지 못할 거다.”


카에키는 회이던을 가리키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전기톱 든 그가 옆에 서 있을 텐데 그런 주의 사항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대충 그런 뜻으로 쏘아 붙이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겠어? 가벼운 마음가짐이야말로 저 안에서는 진정으로 치명적인 것이라고.”


손가락이 회이던을 한 번 더 가리켰다. 그 뒤 카에키는 회이던이 웃는 표정을 어설프게 흉내 냈다. 그리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언제나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막 웃거나 하면서 썰어대지 않나요.


회이던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이처럼 의미를 추측하며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은 참 재미있다.


“그래. 떨어지지 말고 딱 붙어 있··· 아니다. 그럼 더 위험하겠구만. 적당히 상황 보면서 내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을 잘 구분하거라. 지금까지 잘 해왔던 것처럼. 알겠지?”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눈동자를 맞추어 들여다보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어 있던 눈동자는 어느덧 까마득했다.


냉기 아래에는 흐리멍덩한 우울 대신 총명한 안광이 서려 있었다. 이것 참 감회가 색다르군.



***



지옥문 안쪽은 감돌고 있는 대기부터 시뻘겠다.


바깥 세계에 불어닥치는 연무는 고작해야 불붙은 데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분위기만 잡았다. 그런데 지옥문 안쪽은 실제 불기둥이 곳곳에 솟구친다.


땅바닥은 검붉은 연기를 매캐하게 토해냈다. 다른 것도 아닌 지반부터 악마 외 생명체에 대한 적개심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암반의 표면은 인간형 생물체의 뼈 모양 조각 같은 것들로 가득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암반들이 발붙일 수 있는 바닥을 온통 뒤덮었다.


그런데 뼈 모양 조각들은 인공적으로 빚어낸 것이 아니다. 한때나마 살아 있던 것들이 암석과 융화하여 굳은 것이다.


발붙일 수 있는 바닥은 한정적이었다. 호수, 호수라기보단 바다 한가운데의 섬과 같다. 다만 물이 아닌 용암, 극한의 열기를 뿜는 용암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용암 속 깊이는 알 수 없다.


태양과 달이 없는 땅에선 바닥에 하늘거리는 것이 위를 붉게 비춘다. 그렇게 한낱 인간들의 세계관을 거슬렀다.


한편 용암의 바다 한참 너머에는 세상 그 어떤 탑보다 거대한 불기둥이 느릿하게 소용돌이쳤다. 끝을 알 수 없이 검붉은 하늘 끝에 닿을 정도였다.


불기둥은 지옥문을 통해 진입한 그 어느 지역에서도 관측할 수 있다. 그러나 저 먼 곳까지 도달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발로 걸어서 달할 수 있는 범위는 가장 넓다 해도 숲 한 채 규모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상은 깎아지른 암벽이나 용암 바다에 가로막혀 있다. 말 그대로 고립된 섬이다.


어느 지옥문을 들어가나 지형이 다를 뿐 환경은 똑같다. 지옥에 대한 탐사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까닭이다.


“뒈질 시간이다, 횃불의 실패작들아!”


어슬렁거리며 뼛가루의 벌판을 배회하던 악마들이 소리 난 방향을 돌아보았다.


사냥꾼들이 하나둘씩 괴성을 지르며 지옥문 안쪽으로 몸을 들였다. 하나같이 몸을 부르르 떨며 잇몸을 드러낸 모습이었다.


몸을 지옥문의 일렁임에 맡기는 순간 피부는 맵싸한 자극에 휩싸인다. 매우 독한 알코올에 전신을 노출한 듯한 감각 내지 통증이다.


교회 기사들은 이를 불경한 감각으로 여겨 몹시 혐오하였고, 검은망토들은 본능적으로 꺼리는 반응이었다. 익숙지 못한 이들은 참을 수 없는 구토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회이던이나 그 밖의 사냥꾼들에게는 전투의 고양을 일으키는 장치에 지나지 않았다. 카에키의 기색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남김없이 베어 죽이자! 눈알을 밟아 터뜨려, 세상 바라볼 자격 없는 시야를 앗아버리자!”


세문두크는 양손에 든 도끼를 앞으로 겨냥하며 우렁차게 외쳤다. 이를 신호 삼아 사냥꾼들도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 나갔다.


“우오오!”


“끼에에엑!”


“캬아아악!”


“구와악!”


다시 언급하지만 악마들이 내지르는 함성이 아니다. 지옥문 바로 근처에 도사리고 있던 악마들은 골통이 쪼개지거나 하는 다양한 까닭으로 절명에 이르렀다.


베고 부수고 째는 물결이 악마들 사이에 혼란처럼 퍼져나갔다. 바닥에는 팔뚝이나 머리통이 떨어져 경사를 데구르르 굴렀다.


“코멜루! 마음껏 미쳐 날뛰어도 좋다네. 더러운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며 막 태어난 사람처럼 뜨거운 증기에 휩싸이도록 하자!”


“아. 미쳐 날뛸 생각은···.”


“우오오오오!”


세문두크는 회이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서 달려 나갔다. 두꺼운 팔뚝으로 거침없이 휘두르는 도끼는 한 획마다 악마 대가리 최소 하나씩을 보장했다.


“···없습니다. 아마도요.”


조금 거리를 두고 펼쳐진 언덕 위에는 우뚝 솟은 석순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어째 석순이라기엔 인공적인 느낌이 났다.


석공이 심혈을 기울인 듯, 불길한 품위를 자랑하는 기둥에 더 가까운 형상이었다. 그 너머로부터 악마들이 추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개중에는 조무래기 수준을 아득히 넘긴 중형 악마도 셋 끼어 있었다. 신장이 4미터가량에 목과 승모의 경계가 없다시피 비대하다. 아가리 커다란 대가리 골격은 굳이 꼽자면 어류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것들은 달리며 발바닥에 땅이 닿는 족족 쿵쿵거리는 진동을 울렸다. 자갈 같은 게 붕 떠올랐다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지나는 경로에 알짱거리던 조무래기 악마들은 휩쓸리거나 퉁겨져 나갔다.


“횃불이여, 우리 비추소서! 그 누구도 죽지 말아라!”


“예에엡!”


상서롭게 느껴질 정도로 광란에 젖어 있던 사냥꾼들의 분위기가 얼추 뒤바뀌었다. 느껴지는 것은 사명감인 듯했다.


회이던은 그들 사이에 끼어든다면 그게 언제가 되어야 할지 속으로 고민하였다. 연회에 초대받았는데 모두와 두루두루 친하지만, 사실 그들 모두가 더 절친한 사람들을 옆에 끼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여하튼 생선 대가리 악마가 들어 올린 커다란 팔이 아래로 작렬했다.


세문두크 다음으로 몸집이 푸짐한 남자, 마칼룬이 대검의 날을 받쳐 든 채 망치 내려침 같은 일격을 막았다. 몸에 가해진 부하가 매우 클 텐데도 오만상 쓰는 정도로 버텨냈다. 대단하군.


마칼룬과 짝을 이룬 자는 초스토하임이란 남자였다. 얄상한 체구에 얼굴이 유약하다던 그 사람이다. 하지만 전투 속의 그는 낯과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살기를 띠었다.


얄상한 남자의 기다란 장검이 악마의 두 손목을 훑고 지나갔다. 토막을 치기엔 얕았으나, 토막이 목적은 아니었다면 충분히 깊었다. 너덜거리는 손목으론 망치 내려침과 같은 공격을 재현하지 못할 것이다.


맞은편에서는 키헨나와 크바플로드, 바이탄 세 사람이 생선 대가리 악마의 주의를 번갈아 분산시키고 있었다.


한쪽이 대방패로 공격을 이겨내는 동안 반대편에선 대형 망치로 타격해 뼈를 부서뜨리거나 했다.


그러다 주의가 공격자 쪽으로 쏠리면 그 즉시 방어자 역할을 교환하였다. 방패를 바닥에 놓고 밀어서 전달하는 식이었다.


어째 엉성하다만, 합을 맞춘 지 오래된 듯 규율이 짜여 있었다. 노련했다.


한편 세문두크는 단신으로 중형 악마를 온전히 상대했다. 노련한 사냥꾼은 그의 육중한 덩치를 감안하지 않아도 예사롭지 않은 발놀림을 보였다.


“크하핫!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 내내 죽어 있는 듯하다가, 이제야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어떠한 방어 장치도 없이 공격을 흘려보내는 모습은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두 손에 든 도끼는 끊임없이 적의 품을 파고들고, 사정없이 난자하며 광분으로 이끌었다.


분노에 휩싸인 악마의 공격이 더 가열되는 양상을 띄었지만 궤적은 더 읽기 쉽게 변했다. 이와 같은 싸움 방식을 오랫동안 고수해 온 듯하였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이 그의 실력을 방증했다···.


“따라오려무나. 우리는 조무래기들을 처치하자.”


회이던 오른손에 전기톱의 형체가 나타났다. 활시위에 미리 화살을 걸어 놓은 카에키가 충실히 그 뒤를 쫓았다.


조무래기 악마라 하여도, 모두가 혈귀와 같은 쬐끄만 재간둥이 체형은 아니다. 성인 정도의 신장을 지닌 것들도 수두룩하다.


놈들은 사냥꾼들을 가만 관망하고 있었다. 생선 대가리 악마의 피아 구분 없는 공격에 휘말리긴 싫은지, 어떤 방식으로든 전투가 끝나는 상황만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피에 젖은 연회의 막바지라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소음 속의 적막은 깨졌다.


쇠줄이 끌려 올라가며 내연 기관이 부들거렸다. 화살을 걸어 놓은 시위는 파들거리며 떨릴 때까지 당겨졌다.


“왜 남 일 보듯 멀뚱히 보고만 있냐, 이 역겨운 것들아···!”


팽창한 활시위가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가며 현악기처럼 퉁기는 소릴 냈다. 화살 날아가는 것과 함께 회이던도 내달리기 시작했다.


먼저 화살이 악마 대가리에 처박히고, 그 옆에 있는 악마 대가리는 톱날에 의해 목뼈로부터 해방되었다.


“쿠하악!”


“키에엑!”


사람 목소리 아니고 악마들 비명소리다. 맨손으로는 저항해 봤자다. 더 빠른 신체의 결손으로 이어질 뿐이다. 그런 측면에선 칼 든 사람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했다.


한데 카에키가 쏜 화살에 맞은 놈들은 눈에 띄게 고통스러워했다. 자리에 붙박은 채 움직이지도 않고, 태양 없이 텅 빈 하늘 올려다보며 울부짖기 일쑤였다.


이상한 일이다. 고작 화살이다. 저렇게까지 발광할 일일까···. 회이던은 참으로 궁금해하며 물밀듯 몰려오는 악마들을 베고 또 갈아버리고 아주 핏물을 뒤집어썼다.


날숨까지 달구는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서 무엇이 혈액의 따끈한 김인지, 무엇이 숨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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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24.08.18 21 1 28쪽
14 14 24.08.17 21 1 17쪽
13 13 24.08.16 19 0 19쪽
12 12 24.08.15 18 0 18쪽
11 11 24.08.14 18 0 18쪽
10 10 24.08.13 21 0 20쪽
9 9 24.08.12 24 0 23쪽
8 8 24.08.11 29 0 19쪽
7 7 24.08.10 36 0 16쪽
6 6 24.08.09 35 0 26쪽
5 5 24.08.08 35 0 18쪽
4 4 24.08.07 52 0 23쪽
3 3 24.08.06 64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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