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요괴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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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밤의꿈
작품등록일 :
2024.08.27 01:26
최근연재일 :
2024.09.0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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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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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도련님의 친우

DUMMY

파밧.


파밧.


파바바바밧.


공기가 엉키고 엉켰다.


바람이 어지럽게 휘몰아치며 주변에 아무렇게나 자란 들풀들을 철썩철썩 스치며 지나갔다.


그러다 그녀의 손 주변으로 모여 더욱 강하게 응집했다.


이윽고 손바닥을 떼자 아무것도 없던 그 사이의 공간에서 녹색으로 빛나는 기다란 창이 서서히 나타났다.


평소 그녀가 힘을 쓸 때면 늘 볼 수 있었던 바람이 지금 창이라는 구체적인 물체로 형상화한 것 같았다.


중앙 차원에서 자신을 돌봐 주는 가은은 타 차원의 존재들에 대해서 여전히 잘 모르는 슬기가 한눈에 딱 보기에도 마녀의 지팡이라고 알아차릴 수 있을 만한 도구를 썼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시엘은 가은과 같은 마녀임에도 불구하고 마녀의 지팡이가 아닌 그 끝이 아주 날카로운 창을 소환해 냈다.


사실 시엘은 본디 마녀의 본질과도 같은 특성인 치유가 아니라, 일족을 수호하기 위해서 잉태의 시작부터 따로 관리를 받아 탄생한 특수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목적으로 태어난 다른 마녀들과 함께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 싸움에 더 최적화된 전투 마녀로 성장했다.


창과 지팡이의 차이는 그런 것이었다.


“흑아 님, 보따리를.”


시엘이 말하자 흑아가 들고 있던 보따리를 그녀에게 내어 주었다.


시엘은 그것을 받아 자신의 창끝에 고정시켜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제대로 고정되었는지 살핀 후에는 곧바로 자신의 창을 하늘 높이 던졌다.


창은 다시 땅으로 내려오지 않았고, 그 자리에 두둥실 떠 다녔다.


시엘이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저었다. 창은 그녀의 손짓대로 움직였다.


그녀가 맞은편에 홀로 우뚝 솟은 산을 가리키자, 창은 산꼭대기를 향해 빠른 속도로 쏘아지듯 날아갔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곧 굉음이 들렸다.


시엘이 던진 바람의 창이 산꼭대기 어딘가에 부딪쳤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폭발하는 구름처럼 빠르게 피어오르는 뿌연 흙먼지들이 창이 꽂힌 주변에서 매섭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 일행이 서 있는 상당히 먼 위치에서도 그 회백색의 장관을 맨눈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허얼?”


갑자기 창을 던져 산을 부숴 버리는 시엘의 모습에 놀란 슬기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리고 넋이 나간 채로 부서진 산과 시엘을 몇 번이나 번갈아 봤다.


그러나 시엘은 그런 슬기의 반응을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오직 한 지점만을 사납게 노려봤다.


자신이 방금 창을 던진 바로 그 지점이었다.


[······크르르르르릉!]


그녀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화답이라도 하듯, 잠시 후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치 사나운 맹수가 낮게 그르렁거리는 것 같은 그런 소리가 슬기가 있는 곳까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다 짐승의 울음소리는 이내 슬기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의 형태로 바뀌었다.


[크릉. 크르릉. 크르르릉! ······이런. 하아. 시에에에엘!]


시엘이 노려보고 있던 산 정상에서 누군가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사방을 때렸다.


이어서 슬기는 신기한 광경을 발견했다.


시엘이 던졌던 그녀의 창이 마치 부메랑처럼 다시 하늘을 날아서 이곳으로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손으로는 시엘의 과자가 가득 담긴 보따리를 꼬옥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 창을 잡고서, 거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누군가의 그림자도 함께 보였다.


그리고.


쿠우우우웅─!


창이 세 사람이 있는 근처까지 도달하자 그림자는 곧바로 창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 버리고 땅으로 뛰어내렸다.


슬기의 눈엔 엄청나게 높아 보이는 위치였는데도 정체불명의 남자는 그 행동에 일말의 거리낌이 없었다.


무사히 착지한 남자가 손가락으로 시엘을 가리키며 화를 냈다.


“갑자기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백색을 전신에 잔뜩 두른 남자였다.


“헐.”


그의 모습을 가까이서 확인한 슬기는 놀라서 침을 삼켰다.


창을 타고서 날아온 존재의 외형은 일전에 보았던 ‘그 사람’과 똑같았다.


맨 처음 그녀가 동방 차원에 왔을 때, 다짜고짜 은후를 공격했었던 백호 요괴, 아강이라는 남자와 말이다.


“흐, 흑아 님! 저, 저 사람! 이게 대체······.”


당황한 슬기는 흑아의 옷깃을 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그날, 은후를 습격하는 것에 실패한 그 남자는 곧바로 서방 차원으로 도피했다고 마녀가 분명 그랬었다.


그런데 왜 지금 이곳에 그가 있는 것일까. 그도 자신들처럼 또 차원을 건너온 건가.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서 안절부절못하는 슬기의 손을 꼭 잡으며 흑아가 말했다.


“아니야. 그가 아니야, 슬기. 괜찮아.”


“······에? 아니라고요?”


흑아의 말에 슬기가 정신을 차렸다.


그러더니 눈동자만 떼구루루 옆으로 굴려 하얀 남자의 모습을 곁눈질했다.


진정하고 다시금 살펴보니 전에 만났던 남자와 헷갈릴 정도로 외모가 꼭 닮아 있긴 했으나 분명 완전히 그라고 하기에는 이질감이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저 남자가 훨씬 더 앳되어 보였다.


아직은 살짝 덜 자란 맹수의 느낌이 난달까.


일전에 만났던 백색의 남자는 더 어른스럽고 인상이 날카로웠다.


“아란······.”


흑아가 남자의 이름을 내뱉었다.


지금 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그러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 안에는 오롯이 분노 하나만 녹아 있지는 않았다.


어쩐지 애증이라는 감정이 잔잔하게 그리고 슬프게 묻어 있는 것 같다고, 바로 옆에서 듣고 있던 슬기는 생각했다.


아란은 일찍이 은후를 죽이려 했던 백호 요괴, 아강의 배다른 막냇동생이다.


그러니 그도 선대 요마왕의 아들인 셈이다.


그는 아버지의 거짓말에 속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은후의 어머니에게 독이 발린 당과를 건네 죽음에 이르게 만든 과거가 있었다.


은후보다도 훨씬 어렸던 그는 당시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저지른 일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결과가 그랬다.


그러나 그 전까지만 해도 그는 분명 도련님의 가장 친한 친우였고, 마님이 진심으로 자신의 둘째 아들처럼 귀여워한 사람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그랬으니, 물론 흑아 역시도 나름의 방법대로 아란을 꽤나 아꼈었다.


그러나 흑아에게 그때의 기억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준 당과를 먹고 마님이 죽었다.


그날 이후, 흑아가 아란에 대해 의식적으로 기억하려고 하는 단 하나는 오직 그것뿐이다.


그리고 그를 용서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란 역시 마찬가지.


아란, 그가 여태까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흥. 갑자기 무슨 짓이야! 오랜만에 왔다 싶었더니, 대체 뭐냐고!”


잔뜩 성이 난 아란이 소리쳤다.


그가 뿜어내는 맹수 같은 기운이 무척이나 흉흉했지만 시엘은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맞받아치는 그녀의 기세가 아란을 압도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산속에 숨어서 지질하게 굴 겁니까? 아란 님!”


“뭐, 뭐라고?”


그녀의 일갈에 아란이 어깨를 움찔하며 뒤로 한 걸음 주춤 물러났다.


슬기와 흑아는 시엘의 뒤편에 서서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어쩐지 당장은 저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와아. 그나저나 시엘 님, 엄청 박력 있네. 멋있다.”


평소엔 온화한 사람이 화가 나면 더 무섭다더니.


슬기는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지금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시엘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지금 은후 님이 많이 아프십니다.”


“······어?”


“원인은 당신의 아버지가 죽기 직전에 그에게 건 저주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근, 그 저주가 서서히 발현되고 있었습니다.”


“뭐?”


“그러다 오늘 새벽에 예상치 못하고 있던 일이 하나 더해지는 바람에 상황이 갑자기 악화되었습니다. 현재 그는 내상을 심하게 입고 의식 불명인 상태입니다.”


“하아! 그 망할 영감탱이가······! 감히 죽기 직전까지!”


크르르릉!


아란이 낮은 목소리로 그르렁거렸다.


그냥 보면 덩치가 조금 클 뿐인, 아직은 조금 덜 자란 어린 맹수 같은데 당장 그가 뿜어내는 기운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그가 울자 주변의 공기가 따라 거세게 진동했다.


광활한 들판이 순식간에 그의 기운으로 온통 잠식되어 버렸다.


은후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지만 아란은 그에 관해서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


선대 요마왕은 그에게 있어서 결코 소중한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망할 영감탱이, 꼴좋다. 정말 쌤통이다.’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피가 이어진 친아버지였지만,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고 여기지 않았다.


선대 요마왕은 언제나 자신의 힘과 권력에 취한 미치광이 같았다.


겉보기에는 카리스마 있는 강인한 요괴의 왕으로 어느 정도 지지는 받았었다.


그러나 이면에서 그는 같은 일족들 사이에서도 한낱 추악한 괴물이었을 뿐이다.


백호 가문에는 그 시간을 다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생존해 오면서, 요괴 사회에서 강인함을 인정받고 나름의 명성도 쌓아온 대요괴가 여럿 있었다.


그러나 왕은 타고난 자신의 무력을 앞세워 그들을 제 아래에 굴욕적으로 무릎 꿇게 만드는 일을 즐겼다.


이는 그의 역겨운 취미 중 하나였을 뿐이다.


상대적으로 아주 많이 약한 이들에게도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본디 요괴들이 자신보다 약한 요괴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일부러 찾아다니며 괴롭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선대 요마왕은 그걸 즐겼던 사람이다.


거기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이들은 살면서 그가 품었던 수많은 여인들이었다.


형인 아강을 비롯해서 다른 형제들은 전부 서로의 어머니가 다 달랐지만, 그런 식으로 처해 있었던 각자의 상황은 아란과 같았다.


그는 즐겁다는 듯 광인처럼 웃으며 매일같이 어머니들을 공포 속으로 밀어 넣었다.


왕은 오직 자신만을 사랑했다.


그에게 여자라는 존재는 잠깐의 쾌락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태어난 모든 왕의 자식들은 단지 그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물에 지나지 않았다.


필요해서 가진 것도 아니었고 딱히 지울 이유가 없으니 그냥 생기는 족족 다 낳았던 거다.


그러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는 제 새끼들에게 철저히 무관심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자식들을 따로 불러서 눈을 마주하거나 긴 대화를 나눴던 적이 없었다.


아란이 그를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순간은 그가 어머니의 몸을 탐하여 함께 밤을 보내기 위해 처소를 찾아올 때, 오직 그때만 아주 잠깐 스치듯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제대로 눈길을 준 적은 없었다.


아, 아니다.


딱 한 번.


자신을 불러서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었다.


다정한 아버지인 척 연기를 하며 어리고 순진했던 저를 속여 결국엔 제 친우의 어머니를 죽게 만들었던 바로 그날.


그는 평소답지 않게 참으로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아란은 달라진 태도에 깜빡 속아서 드디어 아버지다운 아버지가 생겼다고 순수하게 기뻐했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친어머니는 그 괴물에게서 스스로를 지키기에만 급급했다.


그녀는 늘 두려움에 떨었지만 그렇다고 처한 현실에서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했다.


그저 몸을 웅크리고 겨우 숨만 쉰다 싶을 정도로만 활동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아란은 그런 어머니에게서 방치되었다.


늙은 유모의 손에서만 자랐다.


그러다 노쇠한 유모가 수명을 다한 이후 아란은 운명처럼 은후를 만났다.


은후와 그의 어머니는 유모 이외에 처음으로 아란에게 정이란 것을 주었다.


아란은 그 이전까지는 가족의 정 같은 거 전혀 모르고 살았다.


가까스로 그 두 사람을 통해서 비슷한 감정을 얻고 배운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라니.


그 남자를 그런 따스한 말로 결코 정의해 줄 수 없다.


광포하고 오만한, 지독히도 원망스러운 과거의 왕.


자신에게 그는 그저 그뿐인 존재다.


차라리 철저히 남이었다면 더 좋았을, 이어진 피마저도 증오스러운 사람.


기왕 죽을 거, 갈 때만이라도 좀 조용히 갈 것이지.


비열하게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감히 은후에게 그런 저주를 걸었단 말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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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요괴 매니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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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행복을 찾아서(완) 24.09.03 22 0 12쪽
80 조우 24.09.03 12 0 11쪽
79 조우 24.09.03 8 0 12쪽
78 조우 24.09.03 11 0 11쪽
77 인생의 일부 24.09.03 10 0 12쪽
76 그녀, 민세영 24.09.03 9 0 11쪽
75 그녀, 민세영 24.09.03 9 0 11쪽
74 그녀, 민세영 24.09.03 11 0 12쪽
73 그녀, 민세영 24.09.03 12 0 12쪽
72 그녀, 민세영 24.09.03 15 0 11쪽
71 천재와 범재 24.09.03 11 0 12쪽
70 첫 방영 24.09.03 11 0 12쪽
69 사고들 24.09.03 11 0 11쪽
68 할머니가 허락하심 24.09.03 11 0 12쪽
67 할머니가 허락하심 24.09.03 12 0 12쪽
66 할머니? 24.09.03 11 0 11쪽
65 슬기는 나의 것 24.09.03 15 0 12쪽
64 슬기는 나의 것 24.09.03 13 0 11쪽
63 너에게는 내가 있지 않느냐 24.09.03 15 0 12쪽
62 너에게는 내가 있지 않느냐 24.09.03 13 0 12쪽
61 산신의 후손들 24.09.03 14 0 13쪽
60 산신의 후손들 24.09.02 14 0 12쪽
59 산신의 후손들 24.09.02 12 0 11쪽
58 산신의 후손들 24.09.02 12 0 12쪽
57 산신의 후손들 24.09.02 14 0 12쪽
56 대본 리딩 24.09.02 12 0 12쪽
55 다시, 도련님의 친우 24.08.31 15 0 12쪽
54 월하노인 24.08.31 15 0 12쪽
53 도련님의 친우 24.08.31 15 0 12쪽
» 도련님의 친우 24.08.31 1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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