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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밤의꿈
작품등록일 :
2024.08.27 01:26
최근연재일 :
2024.09.0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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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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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의 후손들

DUMMY

“어디 보자. 루시퍼라는 곳이······ 이 근처인 거 같은데.”


그로부터 며칠 뒤, 외할머니 신지영이 서울로 왔다.


슬기가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드라마 촬영이 시작된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아이가 있는 촬영장에 들르기에 앞서 우선은 새 기획사라는 곳을 먼저 가 보려고 했다.


신지영은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열어 루시퍼의 위치를 다시 검색했다.


백발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스마트폰의 자판을 입력하는 그녀의 손놀림은 무척이나 빨랐다.


한창 스마트폰을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을 어린 친구들과 비교해 봐도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그 속도와 정확성이 뛰어났다.


타닥. 타다다닥.


“아, 한 블록 뒤인가.”


지도의 검색 결과와 주변을 열심히 번갈아 보다가 마침내 확실한 위치를 가늠한 그녀는 꺾어진 골목길을 돌아서 목적지로 가려고 했다.


쿠웅─.


그러나 그녀는 지금 막 지나가려던 꺾어진 골목에서 때마침 반대로 걸어오고 있던 한 상대와 그만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아얏. 어, 어라?”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지만, 신지영은 어리둥절했다.


골목이 사각이었던 탓에, 보통은 이런 충돌이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겠으나, 그녀는 내심 놀랐다.


그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결코 보통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걸어오는 상대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


오히려 평소 같았으면 이곳이 제아무리 사각 지대였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부딪치기 전에 그녀가 먼저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신지영은 자신을 이렇게 놀라게 만든 상대방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어, 어지러워. 뭐야, 이거. 오랜만에 왔더니 여기 햇빛이 왜 이렇게 강해진 거야. 히, 힘이 안 나. 아씨. 그놈들 빨리 쫓아가야 하는데.”


“······?”


순간, 신지영과 부딪친 남자가 비틀거렸다.


“으으으. 밥 먹고 올걸, 괜히 마녀의 제안에 눈이 돌아서 급하게 온다고. 크헉. 피, 피······. 깨끗하고 맛있는 생피가 필요오오오······.”


털썩.


그리고 뭐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어? 어어? 괘, 괜찮아요? 이봐요, 젊은 총각?”


놀란 신지영이 남자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자신과 부딪친 탓인가 싶어서 그의 상태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뭐야, 인간이 아니잖아? 아! 그래서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건가. 일부러 더 지우고 돌아다닌 거 같긴 한데, 암만 그래도 내가 이 특이한 기감을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신지영이 이어 말했다.


“흠, 그간 이들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안 쓰고 살았나? 하긴, 꽤 오랜만에 다시 보긴 했네.”


그녀로서는 한동안 전혀 마주치는 일이 없었던 타 차원의 존재를 다시금 보게 되니 되레 반가운 마음마저 들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 만나게 된 이 존재는 대체 어떤 괴물이지 하고 문득 호기심도 들어서 신지영은 상대를 이리저리 훑어보며 관찰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이 남자는 아무래도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였다.


삐쩍 말라서 그렇지 않아도 비실비실해 보이는데, 안색도 백지장보다 더 하얗고 창백했다.


그는 계속 눈을 깜빡거리며 스스로 정신을 차려 보려고 나름 애를 쓰는 것 같았지만, 기운이 없는지 여전히 해롱거리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이봐요? 젊은······ 총각? 음, 젊은 거 맞나? 이쪽 존재들은 영 실제 나이가 잘 가늠이 안 돼서. 여하튼, 이봐요. 정신 좀 차려 봐요. 저기, 저기요? 네? 괴물씨?”


찰싹찰싹.


이미 반쯤 눈이 감긴 남자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며 신지영이 그를 깨워 보려고 했다.






남자가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는 상태에서 잠꼬대를 하듯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신지영이 자신을 지칭하는 호칭에 대해서 반발했다.


“누우가아······ 감히이이! 이 몸에게 괴물이라는 거야아아······. 나느으은! 서방 차원 최고의 꽃미남이시다아아아······!”


“흐음. 안 되겠네.”


계속 정신을 못 차리는 그를 빤히 지켜보다가 신지영이 남자의 어깨에 손을 살포시 얹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통해 자신의 기운을 조금씩 그에게 흘려보냈다.


파아앗.


“그나저나 여행자가 이런 데서 갑자기 픽 쓰러지다니. ······그렇게 약한 괴물 같지도 않은데. 흐음. 뭐, 사정이 있나.”


가까이서 있으니 그가 안으로 갈무리하고 있었기에 모호했던 기운의 존재가 조금 전보다는 더 자신의 감각에 잘 잡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힘을 온전히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그것도 전체를 정확히 다 가늠해 낸 정보는 아니었다.


그녀의 능력으로 확실히 볼 수 있는 것은 약간에 불과했다.


단지, 신지영은 남자가 지니고 있는 힘의 크기가 실은 꽤 상당하다는 것만은 감지할 수 있었다.


접근이 가능하지 않은 깊은 곳에는 지금 여실히 보이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그는 분명 힘을 숨기고 있는데도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의 날카로운 감을 찍어 누르는 듯한 무거운 압박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모르긴 몰라도 아마 원래 살고 있던 차원에서 그는 꽤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지 않을까.


신지영은 그렇게 추측했다.


우우우웅.


“아아. 이제 예전 같지 않아서 조금만 나눠 줘도 금방 피곤해지네.”


나름 화려했고, 소소한 모험도 가득했던 소싯적을 떠올리며 신지영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예전의 한창때와는 신체의 반응이 달랐다.


기운을 조금만 나누어 주었을 뿐인데도 자신의 몸이 금방 지치고 힘들어하고 있었다.


“으으음. 이런 거 말고, 피······ 피를 줘. 맛있는 걸로······.”


“피?”


남자가 잠투정을 부리듯이 한 말에 신지영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재빨리 자신의 뾰족한 엄지손톱으로 두 번째 손가락 끝을 그었다.


베어 낸 손가락 끝에 금세 피가 맺혔다.


신지영은 핏방울을 남자의 입 안으로 떨어뜨렸다.


두 눈을 꼭 감고 얌전히 그녀의 기운과 피를 받아들이고 있던 남자가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쓰고 있던 그의 얼굴이 이제는 훨씬 편안해져 있었다.


“······으으음. 냠냠. 꾸울꺽.”


마치 음식을 먹듯 입맛을 다시고 침까지 꼴깍 삼키며 계속 기운을 흡수하던 그가 잠시 뒤에 곧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눈꺼풀을 여러 차례 깜빡거리다가, 바로 앞에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신지영을 발견하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다행이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을 확인한 신지영은 그에게 주입하고 있던 힘과 피를 곧바로 거두었다.


더 이상 나눠 주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몸에 더 큰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어깨에 짚고 있던 손도 천천히 떼어 냈다.


그러자 별안간 그가 차츰 멀어지는 신지영의 손목을 덥석 잡아챘다.


그리고 소리쳤다.


“알밤 막걸리! 그것도 최고급 알밤 막걸리 맛이 난다! 맛있어!”


“······응?”


“너! 달달하면서도 상큼 시원한 알밤 막걸리 맛! 진짜 최고야!”


“······?”


갑자기 저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신지영은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남자는 흥분으로 들떠서 두 뺨이 발갛게 물든 데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방금 한 그의 말에 악의는 전혀 없어 보였다.


남자는 정말 순수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그대로를 여과 없이 내뱉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고오오오얀······ 이 아니라······ 저게, 그냥 저 괴물씨 나름의 칭찬인가······.”


그렇게 판단한 신지영이 말했다.


“저기, 이봐요. 괴물씨? 여기 중앙 차원으로 잠시 여행을 온 건지, 한동안 쭉 지내려고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갑자기 사람한테 맛있네 어쩌네 하지 마세요.”


“응?”


“저야 그쪽이 타 차원에서 오신 분이라는 걸 아니까, 인간들의 일반 상식이나 사고방식과는 상당히 다르단 걸 이해하겠습니다마는······ 실례입니다.”


“어?”


“그것도 이렇게 길 한가운데서, 갑자기 그런 소릴 들으니까 엄청 민망하네요. 이것 참, 남사스럽기도 하고요.”


“어? 그래?”


“네. 어디 가서 다른 인간들에게는 그런 말 남발하시면 안 됩니······. 어라? 마녀들이 기본적으로 이곳에서 지켜야 할 것들은 알려 줬을 텐데요.”


신지영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여기서 다른 쪽 차원 분들이 너무 심하게 튀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관리가 곤란하니까. 응? 아닌가요?”


그리고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그녀 역시 마녀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이미 여러 가지가 보였고, 타 차원의 존재들도 꽤나 만난 적이 있었으니까, 마녀들의 존재를 오히려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지영은 일찍이 그런 다른 존재들을 만났던 거와는 달리 마녀들과는 직접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마녀들과 선조 사이에서 나눴던 계약에 의해서, 그녀들은 산신의 후손인 자신을 먼저 찾아올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마녀를 찾아갈 수 있었다.


그저 지금까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찾아가지 않았을 뿐이다.


“히히. 몰라. 그런 거. 여긴 정말 갑자기 오게 된 거라, 그런 이야기는 전혀 못 들었어. 거기다 마녀들 쪽이 먼저 도와 달라고 부탁했으니까 이 정도 실수는 괜찮겠지.”


“마녀들이 부탁을 했다고요?”


“응! 아, 정확히 말하자면 거래랄까? 뭐, 내 성격도 잘 아니까, 그쪽도 어느 정도는 감수하고 있을 거야. 히힛. 아아! 그보다 나 괴물 아니야!”


“······어? 괴물? 아. 죄송해요. 이름을 몰라서. 제가 어릴 때 만났던, 타 차원에서 오신 분들은 반 장난삼아서 그렇게 불렀었거든요. 그냥 그때 그 기억대로 불러 버렸네요.”


자신이 괴물이라고 했던 것을 남자는 쭉 신경 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무서운 힘을 지닌 것에 비해 뭐랄까.


상당히 언행이 어리고 귀여운 남자였다.


마르긴 했지만 실제로는 키도, 체격도 결코 작지 않은 남자였지만, 어쩐지 동네 친구의 꼬꼬마 손자의 행동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신지영은 쿡쿡 웃었다.


그리고 그에게 달래듯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저 혼자 괜히 반가웠어요.”


“응! 헤헷. 괜찮아! 앞으로는 그렇게 안 부르면 돼! 아, 있지! 그리고 나! 나! 궁금한 거 있어! 그렇게 맛있는 비결이 뭐야? 응? 알려 줘!”


“······맛있는 비결?”


남자는 계속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재촉하듯 아까부터 쭉 잡고 있는 신지영의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응! 지금까지 마녀들 말고는, 특히 거기 대장 녀석 말고는 이렇게 맛있는 녀석은 처음 봤어!”


“음. 저기, 그러니까, 제 기운이 맛있다는 거죠? 대장 녀석이라면, 역시 최고 마녀를 말하는 건가요?”


“응! 응!”


“······글쎄요? 사실 살면서 기운이나 피를 나눠 줬던 적은 꽤 여러 번 있는데, 맛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분은 저도 지금 처음 봐서요.”


“어? 그래?”


“네. 기운에도 맛이라는 게 있다는 걸 그쪽 덕분에 오늘에야 알았어요.”


사용자의 특질에 따라 뿜어내는 기운의 색채가 각자 다르다는 것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헌데, 그뿐만이 아니라 서로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맛도 다르다는 건 정말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으응? 그럼 몰라, 너도? 비법 같은 거어? 없어? 정말?”


남자의 얼굴이 단박에 시무룩해졌다.


어쩐지 그의 머리 위로 대형견의 귀가 힘없이 축 처져 있는 듯한 환상이 오버랩되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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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행복을 찾아서(완) 24.09.03 22 0 12쪽
80 조우 24.09.03 12 0 11쪽
79 조우 24.09.03 8 0 12쪽
78 조우 24.09.03 11 0 11쪽
77 인생의 일부 24.09.03 10 0 12쪽
76 그녀, 민세영 24.09.03 9 0 11쪽
75 그녀, 민세영 24.09.03 9 0 11쪽
74 그녀, 민세영 24.09.03 11 0 12쪽
73 그녀, 민세영 24.09.03 12 0 12쪽
72 그녀, 민세영 24.09.03 15 0 11쪽
71 천재와 범재 24.09.03 11 0 12쪽
70 첫 방영 24.09.03 11 0 12쪽
69 사고들 24.09.03 11 0 11쪽
68 할머니가 허락하심 24.09.03 11 0 12쪽
67 할머니가 허락하심 24.09.03 12 0 12쪽
66 할머니? 24.09.03 11 0 11쪽
65 슬기는 나의 것 24.09.03 15 0 12쪽
64 슬기는 나의 것 24.09.03 13 0 11쪽
63 너에게는 내가 있지 않느냐 24.09.03 15 0 12쪽
62 너에게는 내가 있지 않느냐 24.09.03 13 0 12쪽
61 산신의 후손들 24.09.03 14 0 13쪽
60 산신의 후손들 24.09.02 14 0 12쪽
59 산신의 후손들 24.09.02 13 0 11쪽
» 산신의 후손들 24.09.02 13 0 12쪽
57 산신의 후손들 24.09.02 14 0 12쪽
56 대본 리딩 24.09.02 12 0 12쪽
55 다시, 도련님의 친우 24.08.31 15 0 12쪽
54 월하노인 24.08.31 15 0 12쪽
53 도련님의 친우 24.08.31 15 0 12쪽
52 도련님의 친우 24.08.31 1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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