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요괴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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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밤의꿈
작품등록일 :
2024.08.27 01:26
최근연재일 :
2024.09.03 11:24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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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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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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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너에게는 내가 있지 않느냐

DUMMY

신지영도 그랬다.


그녀가 지금의 슬기 나이 때, 한창 그런 모험들을 했었다. 다른 차원의 존재들을 만나고, 믿을 수 없는 경험들을 하고.


못 본 사이 아이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얼마나 힘을 깨우쳤을까.


청웅이 아이가 기연처럼 힘을 깨웠다는 것을 일일이 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었을 거라는 것을 신지영은 알고 있었다.


어서 빨리 자신의 손녀가 보고 싶다.


신지영이 청웅에게 물었다.


“아, 빨리 슬기를 보고 싶네요. 얼마나 성장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오늘이 드라마 첫 촬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장소가 어디인가요? 아이는 지금 어디 있죠?”




“흐음.”


첫 촬영이 있는 날.


슬기는 은후, 흑아, 도진과 함께 일찍 촬영 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번 드라마에서 함께 일하게 된 스태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한 뒤, 자신의 대기실에서 촬영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젯밤 늦게까지도 손에서 놓지 않고서 암기했던 대본을 다시 또 펼쳐서 확인했다.


자신이 표현하고 연출해야 할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떠올려 보며 자꾸만 찾아오는 긴장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대기실 창밖을 내다보면서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는 은후의 모습이 보였다.


“응? 왜 그래요, 은후?”


“흐음. 이상하구나.”


“네? 뭐가요?”


“공기가······. 흐음, 먼 곳에서 공기와 공간이 자꾸 뒤틀리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꽤 거리가 떨어져 있는 장소에서 누가 크게 싸우고 있는 거 같은데.”


“어? 싸워요? 누가요?”


“글쎄다. 물론 인간은 아니겠지. 이런 힘을 낼 수 있는 존재는 결코 인간일 리가 없다.”


그의 말에 슬기 역시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은후가 바라보고 있는 지점을 얼추 가늠해서 눈을 게슴츠레 떠서 보았다.


그가 말한 상황이 일어난 곳을 찾으려 했지만, 자신의 눈에는 전혀 그런 장면들이 보이지 않았다.


“으음. 전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인간의 능력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더 먼 곳이다. 그리고 나도 그곳이 보이는 게 아니라 기감으로 느끼고 있다.”


“흐음, 그런데 누가 왜 중앙 차원에서 싸우는 걸까요?”


“글쎄다. 그것도 모르겠구나. 아무튼 내가 이곳으로 온 이후로 이렇게 공기가 두려움에 떨 듯이 요동치는 것은 처음 본다. 아주 큰 싸움인 것 같다.”


은후가 역시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정도 소란이면 슬슬 마녀들이 개입해서 양측을 중재할 듯도 한데, 그런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으음. 저 좀 무서워지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뭔가 큰 싸움이 났다 하니 바로 살짝 겁을 먹은 슬기를 내려다보며 은후가 피식 웃었다.


그녀의 예쁜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가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 제대로 주변에 결계는 쳐 두고는 있으니 중앙 차원에 큰 피해는 없을 것이다. 저들이 싸움에 집중하다 이쪽으로 흘러들어 온다 해도 마찬가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은후는 보드라운 슬기의 머리를 천천히 쓸어 그녀의 귀 뒤로 슬쩍 넘겼다.


그리고 진지한 눈빛으로 시선을 그녀에게 맞추며 말했다.


“너에게는 내가 있지 않느냐.”






“너에게는 내가 있지 않느냐.”


은후는 슬기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쥐어 자신의 얼굴 앞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살포시 입을 맞추었다.


“그러니 괜찮다. 걱정할 필요 없다. 전혀.”


“······.”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슬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뜨겁게 열이 나서 금방이라도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어흠, 크흠. 큼!”


“엣헴. 크허험. 콜록콜록!”


두 사람 사이에 뭔가 묘한 기류가 흐르는 듯하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도진과 흑아가 마치 서로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차례대로 헛기침을 했다.


그것도 괜히 더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면서, 심술 가득한 마음으로 두 사람을 방해했다.


“도련님······ 도련님도 배신자. 흐윽, 큽.”


특유의 무표정 속에서도 분명 기분 좋은 행복감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는 은후를 보며 흑아가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도련님과 자신은 주종 관계를 넘어 진실된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맞긴 하지만, 뭐랄까.


평소에 전혀 안 그러던 사람이, 정말 그럴 조짐조차 안 보이던 사람이, 안면을 싹 바꾸고 바로 제 눈앞에서 저러니까 더욱 배신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도련님께 얼른 멋진 반려가 나타나길 진심으로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무의식중에는, 평소 여성에게 관심이 없었던 도련님의 성격을 미루어 보아, 그는 앞으로도 쭉 이성에게는 눈길도 안 주면서 자신과 우애 가득한 삶만을 살아갈 거라고.


흑아는 내심 그렇게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주 당연스럽게.


오랜 세월 동안 마님과 도련님의 뒷바라지를 해 왔다.


마님이 살아 계실 때, 흑아는 항상 가슴 부근이 간질간질 따뜻하고 행복했다.


이미 그렇게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마음이 늘 충만한 상태라 그런지 그도 실은 연애의 필요성을 못 느꼈었다.


딱히 마음에 드는 여성이 없기도 했지만.


마님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은후와 함께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살았다.


도련님이 선대 요마왕을 물리치고 그가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왔다.


그때는 정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정신없이 몰아치는 질풍 같은 삶이었다.


이제 마님은 여전히 계시지 않고, 은후 도련님은 원하던 대로 복수를 마치고 결국 왕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들에게는 선대 요마왕의 저주라는 크나큰 숙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그래.


결코 쉬이 간과해서는 안 될 큰 숙제가.


그런데 그 문제가 아직 다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저렇게 연애 전초전의 분위기를 팍팍 풍길 만큼 진도가 나갔다니!


‘언제! 대체 어느 사이에 저만큼이나!’


짐작되는 거라고는 은후의 요기가 갑자기 요동을 쳐서 급작스럽게 수면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바로 직후에, 그가 다짜고짜 슬기를 붙잡고 그녀에게 했던 말들뿐.




“슬기, 하루 만에 깨어나면 스물다섯 살에 결혼해 준다고 했었지? 내가 잠들어 있을 때 말이다.”




도련님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그렇다면 그때가 시작이 아니라, 그 전부터도 뭔가 조짐이 있었다는 건데.


“끄으으응.”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전혀 모르겠다.


평소 자신이 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정도로 눈치가 없는 줄은 몰랐다.


거기다 저 둘만 그러면 다행이지.


최근, 자신의 다른 주변 분위기들도 심상치 않다.


얼마 전에 우연히 만났던 월하노인은 자신에게 새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주책맞게 마구 자랑을 했다.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던 아란은 알고 보니, 동방 차원 총괄 마녀 시엘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었고, 그걸 자신의 눈앞에서 직접 돌직구로 표현하기까지 했다.


‘더 웃긴 건 철벽이라 칭해지는 마녀 일족인 시엘이 또 그걸 전혀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았단 말이지.’


둘이 꽁냥꽁냥하는 것을 보자니 괜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월하노인과 아란은 그렇게 흑아에게 제대로 염장을 지르고 바람처럼 빠르게 사라졌었다.


자신은 분명 그들의 그런 모습들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여자도 필요 없었고, 그리 외롭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스스로가 내보이는 반응들을 냉정히 살펴보면 꼭 그게 아닌 거 같다.


정말 본인도 모르는 사이, 긴 세월을 홀로 살면서 그간 쌓이고 쌓인 외로움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이제는 손대면 톡 하고 터져 버릴 것만 같은 지경에 이르렀나 보다.


그리고 마침내 눈앞에 은후 도련님과 슬기가 빚어내고 있는 행태를 보며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상하게 감정이 전염된다고 해야 하나.


저들에 비해서 자신의 외로움이 더 부각되어 이전보다 확실하게 잘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인지 흑아는 자꾸만 기분이 뒤숭숭해지고 있었다.


자신의 그런 변화가 불편했다.


또 혼란스럽다.


도련님이 잘되길 바라는 건 맞지만, 그로 인해서 전혀 모르고 살았던 자신의 외로움을 인지하게 되는 건 싫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이렇게 외로움을 조금씩 인지해 가고 있는데도, 역시나 마음이 가는 여성이 여전히 없다는 거다.


“크응. 도련님······ 진짜 배신자.”


흑아는 자신에게 몰아치는 여러 가지 감정들 때문에 마음과 머리가 복잡해져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울먹였다.




한편, 슬기와 은후의 분위기가 불편한 것은 이도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의 사연은 흑아보다도 복잡하고 슬펐다.


이도진은 잘나가는 무당집의 후계자로, 만약 가출만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비슷한 가풍의 다른 가문 처자를 약혼자로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박차고 가문과의 절연을 선언했고, 당당히 홀로 섰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가문의 후계자로 있을 때는 집안 어른들이 정해 주는 여인만을 만나야 했기 때문에, 학창 시절부터 철저히 감시당하며 살았다.


그래서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연애를 할 기회들을 모조리 차단당했었다.


그리고 집을 박차고 나온 그 이후, 이도진은 이제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던 모든 금욕의 봉인을 해제하고 희대의 카사노바가 되겠다며 큰 꿈을 품었었지만······.


준수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은 잘 모르고, 또 사실대로 말해 줘도 믿지도 않지만, 실제로 그는 아직 모태 솔로다.


그래, 요즘 세상에 그 희귀하다는 모태 솔로.


집을 나와서도 은후나 흑아처럼 여성에게 관심이 없었냐 하면 그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정말로 카사노바가 되고자 꿈꿨었다.


거기다 이도진은 심각할 정도로 ‘금방 사랑에 빠지는’ 부류 중에 한 사람이었고, 또 자칭 로맨티스트였다.


여성에게도 관심이 많았고, 그만큼 적극적인 대시도 많이 했다.


그런데 고백만 했다 하면 모조리 차였다.


그래도 초반엔 준수한 외모 덕분인지, 다가가면 다가가는 대로 여성들이 그럭저럭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정말 신기하게도 막상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모조리 그를 거절했고, 단 한 번도 제대로 커플로까지 연결이 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냥 자기가 연인으로 사귈 만큼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하고 그러려니 했다.


진짜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어느 날은 자신에게 꽤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던 여성에게 고백을 했더니, 그녀가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질색을 하며 도망을 갔던 일이 있었다.


그게 너무 이상해서 문자로 이유를 묻자,




「미안해요. 도진 씨를 만난 이후로 꿈자리가 너무 사나워져서요. 이게 농담이 아니라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예요. 제발 부탁이니까 앞으로는 저한테 절대로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라는 내용이 담긴 장문의 문자가 돌아왔었다.


그 답장을 받고 너무 어이가 없었다.


꿈자리가 사납다니 귀신의 짓인가.


그런데 하필 건드려도 자신을, 감히 과거 무당집 후계자의 연애사를 방해하다니, 간덩이가 부었구나 했다.


자꾸 연달아서 차이기만 하던 차라 스트레스가 쌓였던 이도진은 마침 잘 걸렸다 싶었다.


그 건방진 귀신 놈을 찾아내서 아주 제대로 혼을 내려고 했다.


그래서 다음에 좋아하게 된 여성에게는 정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자신이 직접 쓴 부적들을 선물들 안에 숨겨서 줘 봤다.


그런데 다 소용이 없었다.


진짜 뭘 해도 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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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행복을 찾아서(완) 24.09.03 22 0 12쪽
80 조우 24.09.03 12 0 11쪽
79 조우 24.09.03 9 0 12쪽
78 조우 24.09.03 11 0 11쪽
77 인생의 일부 24.09.03 10 0 12쪽
76 그녀, 민세영 24.09.03 9 0 11쪽
75 그녀, 민세영 24.09.03 9 0 11쪽
74 그녀, 민세영 24.09.03 11 0 12쪽
73 그녀, 민세영 24.09.03 13 0 12쪽
72 그녀, 민세영 24.09.03 15 0 11쪽
71 천재와 범재 24.09.03 11 0 12쪽
70 첫 방영 24.09.03 11 0 12쪽
69 사고들 24.09.03 11 0 11쪽
68 할머니가 허락하심 24.09.03 11 0 12쪽
67 할머니가 허락하심 24.09.03 12 0 12쪽
66 할머니? 24.09.03 12 0 11쪽
65 슬기는 나의 것 24.09.03 15 0 12쪽
64 슬기는 나의 것 24.09.03 13 0 11쪽
63 너에게는 내가 있지 않느냐 24.09.03 15 0 12쪽
» 너에게는 내가 있지 않느냐 24.09.03 14 0 12쪽
61 산신의 후손들 24.09.03 14 0 13쪽
60 산신의 후손들 24.09.02 14 0 12쪽
59 산신의 후손들 24.09.02 13 0 11쪽
58 산신의 후손들 24.09.02 13 0 12쪽
57 산신의 후손들 24.09.02 14 0 12쪽
56 대본 리딩 24.09.02 12 0 12쪽
55 다시, 도련님의 친우 24.08.31 15 0 12쪽
54 월하노인 24.08.31 16 0 12쪽
53 도련님의 친우 24.08.31 15 0 12쪽
52 도련님의 친우 24.08.31 1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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