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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밤의꿈
작품등록일 :
2024.08.27 01:26
최근연재일 :
2024.09.0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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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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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방영

DUMMY

솔직히 슬기는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민세영에게 복수하는 최고의 방법은 자신이 압도적인 실력으로 세상에 인정받는 것, 그리고 그렇게 쌓인 인지도로 그녀를 지그시 눌러 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민세영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이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쭉 제자리걸음 중인 것 같은 자신과 달리, 날로 인기를 차곡차곡 쌓고 있는 그녀를 보자, 최근 자꾸만 드는 생각이 있었다.


‘만약, 정말 만약에······ 내가 지금 그녀가 서 있는 저기까지도 도달하지 못하면 어쩌지······?’


실력은 틀림없이 슬기 본인이 위였다.


단언할 수 있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은 이따금씩 찾아왔다.


뛰어난 실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꼭 인기로까지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제 실력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면, 분명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을 것은 틀림없겠지만, 그렇게 쌓은 인지도가 과연 그날의 민세영보다 위일 수 있을까?


첫 촬영 이후로도 가끔씩 루나의 라이브 방송에 출연했던 덕분인지, 자신을 향한 여론도 아주 조금씩은 바뀌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직접 심장을 두드리고 마음을 돌려야 할 다수의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그걸 숫자로 생각해 보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나는 과연 사랑받을 수 있을까······.


아직 제대로 첫발을 내딛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방해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것이 크든 작든 그 크기는 상관없었다. 한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도무지 그칠 줄을 몰랐다.


쉼 없이 시련이 찾아올 때마다 굳건할 것만 같았던 자신의 의지는 조금씩 흔들리려 하고 있었다.


그간에 쌓였던 실패의 두려움이 자신의 신념을 자꾸만 무르게 만든다.


“······에잇! 땅 그만 파자. 일단 부딪쳐 보는 거지, 뭐.”


슬기는 애써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잡생각을 떨쳐 보려는 노력이었다.


걱정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아는데도,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면 순식간에 의식이 불안 속에 잠겨 있다.


<청춘, 나빌레라>의 방영 날짜가 점점 다가올수록 더 그렇다.


드디어 대중들에게 평가받아야 할 시간이 이제 코앞까지 바짝 다가왔으니까.


이건 은후나 청웅, 그리고 루나의 도움도 받을 수가 없다.


자신의 실력으로 최선을 다해 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실력이 온전히 대중의 관심과 사랑으로 이어지는 건 이제 순전히 운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신경이 예민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 현재 이 촬영장에는 그런 자신보다도 훨씬 더 신경이 날카로워진 다른 한 사람이 또 있었다.


바로 <청춘, 나빌레라>의 작가 성지훈이었다.


“······뭐라고? 하! ······젠장!”


얼추 잠깐의 휴식 시간이 다 끝나 가는 것 같아 슬기가 다시 촬영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물을 마시며 수분을 보충하고 있는데, 때마침 저 멀리서 욕설을 내뱉고 있는 성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지훈의 분노한 목소리는 온 촬영장을 울리고 있었다.


슬기가 서 있는 곳에서도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화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하! 하아! 장난하나, 이것들이! 우 감독님, 안 되겠습니다. 저 먼저 작업실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어쩌면 초반부랑 후반부는 다 뜯어 고칠지도 모르겠어요.”


“······하아. 성 작가, 진정하고······.”


“후반부는 아직 괜찮지만, 그럼 초반부는 불가피하게 다시 촬영을······.”


“그거, 본인도 무리한 고집부리는 거라는 사실, 잘 알고 있죠? 저쪽들이야 자기네 PPL만 제대로 되면 내용이 어떻게 바뀌는지는 어지간해서는 터치를 안 할 테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쓸 건 없다지만······.”


우태영이 한손으로 자신의 미간을 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지금도 충분히 우리 스토리 좋아요. 내가 좋다고 하면 정말 좋은 겁니다.”


“······.”


“당신만큼 나도 타협이란 거 잘 모르니까 말이죠. 오히려 내가 더했으면 더했지. 그런 내 안목을 지금 못 믿겠다는 겁니까? 그리고 알죠? 난 쪽대본 같은 거 안 받아.”


얼음장같이 차가운 우태영의 목소리.


“암만 당신이나 나 같은 베테랑이라도 말이지, 일단 중심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면 까딱하다가 후반부 흐름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야.”


우태영의 태도는 한결같이 단호했다.


거기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말투는 반말로 변해 있었다.


순간 그의 기세에 눌린 성지훈도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그가 곧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성지훈 역시도 우태영만큼이나 이 바닥에서 한 고집 하는 인물이었다.


“······아니요. 전 이대로 못 내보냅니다. 하필 타 방송사 동 시간대에 그 자식 작품이······. 그것도 기존 방송을 조기 조영하고, 첫방까지 같은 날로 잡아서. 하! 자신 있다 이거지? 날 얼마나 우습게 알고······!”


성지훈이 화를 내며 말했다.


“이건 처음부터 절 엿 먹이려고 아주 작정한 겁니다. 부탁입니다. 감독님, 저 믿으세요. 스토리 무너지는 일 없습니다. 초반부랑 후반부, 더 임팩트 있게만 바꾸겠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순간 성지훈이 깊이 머리를 숙였다.


“······.”


우태영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불쑥 나타난 성 작가의 정수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는 지금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설마 저 성 작가가 머리까지 숙일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존심을 지닌 남자가 이렇게 한참 동안이나 고개까지 숙이며 간곡히 부탁을 하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긴······ 그 작가한테는 특히나 지기 싫겠지. 저 자존심에.’


우태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좋아요. 그런데 우리 진짜 시간 없는 거 알죠? 바로 다음 주가 첫방입니다. 그러니 내가 줄 수 있는 기회도 한 번뿐이고. 지금 이것도 얼마나 무리를 하는 건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거기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 촬영에 임하는 모두에게 부담이죠. 만약 다음에 가져오는 대본이 별로라고 판단되면, 기존의 내용대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성 작가,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건데······.”


결국 우태영이 한발 양보를 했다.


그가 진지한 목소리로 충고했다.


“의욕이 넘치는 건 좋지만, 도발에 넘어가서 쉽게 흔들리지는 마세요. 지금 이렇게 흥분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알았죠?”


“네.”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성지훈은 곧바로 자신의 짐을 챙겨서 그대로 촬영장에서 떠났다.


멀찍이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도진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지금도 충분히 좋구만. 하여간 그놈의 열등감이 뭔지.”


열등감.


신기하게도 저 콧대 높은 성지훈 작가에게도 그런 게 있었다.


그리고 아마 저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지구상에서 딱 한 사람, 오직 ‘그’뿐일 것이다.


사실 그와 성 작가의 관계는 이쪽 업계에서 경력 좀 있다 하는 이들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슬기 역시 얼마 전에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었던 적이 있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성 작가가 타 방송사 경쟁 프로그램에 대한 소식을 듣고 난 이후부터 눈에 띄게 히스테릭하게 변해 버렸기 때문에.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돌 수밖에 없었다.


멀찍이서 저 두 사람의 내용을 함께 듣고 있던 이도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역시 전에 ‘그 후배?’ 이야기인가?”




작업실로 돌아온 성지훈은 자신의 노트북을 켰다.


덜컹.


자리에 앉자마자 책상 서랍을 열었다.


여러 개의 서류 뭉치 위에 담배 한 갑과 지포 라이터 하나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망설임은 짧았다.


달칵.


성지훈은 그 안에서 바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능숙하게 한 손으로 지포 라이터를 열어 불을 붙였다.


깊이 빨았다가 한껏 품었던 연기를 단숨에 내뱉는다.


“······후우우우. 하아! ······망할 새끼. 겨우 끊었는데. 젠장······.”


자신의 일을 도와주는 보조 작가는 당분간 작업실로 오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 둔 상태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기가 막힌 이야기도.


그 건방진 새끼의 입을 꾹 다물게 해 줄, 그런 이야기.


“후우우우······.”


작업실 내부가 금세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지금 성지훈의 눈앞에는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한 장면이 있었다.


대학교 동아리실.


일부러 작가가 누군지 밝히지 않고 보여 주었던 자신의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정말 악의 없이 해맑게 웃으며 감상을 말했던 그놈의 얼굴과 목소리.




“진부하네요.




아직 다 다듬어지지 않은, 앞으로가 더 무서운 천재.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평가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성지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체적으로. 거기다······ 저 역시 제가 정말 좋아하는 다른 우수한 작가들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건 아니지만······. 뭐야, 이건? 이 이야기는 정말 심한 것 같은데요. 대체 누가 쓴 거지?”




성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오랜만에 담배를 태웠더니 가슴 부근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파 오고 있었다.


그리고 단지 과거의 기억일 뿐인 놈의 목소리는 마치 현재 자신의 귓가에 실제로 입술을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더욱 선명해지고 있었다.




“연기는 배우가 하고, 촬영과 영상 편집은 감독과 영상기술팀이 할 테고, 그럼 이 작가는 대체 뭘 하려는 걸까요?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모든 이야기의 수집? 그리고 재구성?”




“······제길.”




“차라리 빅 데이터나 인공 지능이 하는 게 낫지 않나, 그건. 뭐, 좋아요. 그러나 최소한 자기 색깔로 녹여 내지 못한다면······ 전 그리 마음이 가지 않는데요, 이 이야기.”




“제길!”


담배를 들고 있는 성지훈의 손이 차츰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제일 많이 참조한 핵심 원작은 일반 대중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전문가도 아직 잘 모르는 작품인데. 원작자가 신인이라 인지도도 그리 있지 않고, 이건 이번에 새로 낸 신작이라서 말이죠. 흐음.”




놈이 시나리오 뭉치들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페이지들을 빠르게 촤르륵 넘긴다.


제대로 읽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이 되는 그런 속도였다.


그러나 믿을 수 없게도 녀석은 늘 언제나 그런 식으로 종이 안의 활자들이 담고 있는 모든 내용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읽어 냈었다.




“······어? 잠깐. 뭐야? 그래도 이 정도로 쓸 줄 알면 그냥 프로인데. 근데 이거 진짜 누구 글이에요? 이 작가 온전히 자기 이야기는 쓸 줄 안답니까? 네? 어라? 선배?”




“······.”


치이이이익.


성지훈은 담배를 재떨이에 거칠게 비벼 끄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은 도저히 맨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노트북과 지갑, 스마트폰 그리고 차 키를 챙기고 부랴부랴 작업실 밖으로 나왔다.


당장 술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독한 것으로.




일주일이란 시간은 정말 금방 지나갔다.


드디어 <청춘, 나빌레라>의 첫 화도 무사히 방영이 되었다.


첫 방송에서 기록한 시청률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엄청 선방했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청춘, 나빌레라>의 제작 스태프들은 어느 누구도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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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행복을 찾아서(완) 24.09.03 22 0 12쪽
80 조우 24.09.03 12 0 11쪽
79 조우 24.09.03 8 0 12쪽
78 조우 24.09.03 11 0 11쪽
77 인생의 일부 24.09.03 10 0 12쪽
76 그녀, 민세영 24.09.03 9 0 11쪽
75 그녀, 민세영 24.09.03 9 0 11쪽
74 그녀, 민세영 24.09.03 11 0 12쪽
73 그녀, 민세영 24.09.03 12 0 12쪽
72 그녀, 민세영 24.09.03 15 0 11쪽
71 천재와 범재 24.09.03 11 0 12쪽
» 첫 방영 24.09.03 11 0 12쪽
69 사고들 24.09.03 11 0 11쪽
68 할머니가 허락하심 24.09.03 10 0 12쪽
67 할머니가 허락하심 24.09.03 12 0 12쪽
66 할머니? 24.09.03 11 0 11쪽
65 슬기는 나의 것 24.09.03 14 0 12쪽
64 슬기는 나의 것 24.09.03 12 0 11쪽
63 너에게는 내가 있지 않느냐 24.09.03 15 0 12쪽
62 너에게는 내가 있지 않느냐 24.09.03 13 0 12쪽
61 산신의 후손들 24.09.03 14 0 13쪽
60 산신의 후손들 24.09.02 14 0 12쪽
59 산신의 후손들 24.09.02 12 0 11쪽
58 산신의 후손들 24.09.02 12 0 12쪽
57 산신의 후손들 24.09.02 13 0 12쪽
56 대본 리딩 24.09.02 11 0 12쪽
55 다시, 도련님의 친우 24.08.31 14 0 12쪽
54 월하노인 24.08.31 15 0 12쪽
53 도련님의 친우 24.08.31 14 0 12쪽
52 도련님의 친우 24.08.31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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