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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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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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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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천으로 세상을 덮다

DUMMY

“백부는 임금의 견제를 위해 폐세자를 살려야 한다고 했고 임금은 죽이라고 했다면서요. 그 둘을 싸움 붙이면 한 놈만 남을 것 아닙니까? 우린 그 놈 말만 들으면 된다는 뜻이지요.”


“알겠습니다. 부인 말씀을 따르지요.”



임금과 최이척....... 반정을 위해 동맹관계를 맺었으나 지금은 서로의 권력을 위해 한쪽은 무너져야 하는 사이가 됐다. 윤서와 막란은 이 둘의 관계를 이용하여 살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




최이척의 집.......



“세자를 죽이라고 했다고 임금이?”


“그렇다니까요. 백부님 몰래 하라고 했답니다. 그 놈이!”


“제가 똑바로 들었습니다. 백부님!”



막란한테 백부라는 말을 듣자 최이척의 인상이 구겨진다. 막란도 백부라고 말하기 싫지만 윤서가 말끝마다 백부라고 붙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따른다.


임금이 최이척을 능멸하려 윤서의 남편 막란에게 일을 맡긴 것이 분명하다. 국법으로 죽이는 것은 자신들을 비롯한 대소신료들이 반대하니까 그렇게는 못하고, 저 무식한 노비출신 막란을 시켜 폐세자를 죽이려는 거다.


진퇴양난이다. 어명을 거역하자니 임금과 보이지 않는 피곤한 싸움이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임금의 말을 따르라고 하면 임금의 장난질에 놀아나는 것 같아 아주 기분이 나쁘다. 또 폐세자가 죽으면 임금을 협박할 수 있는 마지막 패를 잃게 되어 곤란하다.



“망나니라고 했나? 자네 이름이?”



이놈은 아직도 지 조카사위 이름을 모르고 있다.



“막! 란! 막란이라고 합니다. 백부님.”


“그래 양반이 되었으면 성을 올렸을 텐데 성을 뭐라고 지었나?”



임금의 어명이나 빨리 처리할 일이지....... 남의 성 갖고 트집 잡으려 지랄이지?



“저는 뜻 없이 막란이라고 불렸었는데 제 성도 그냥 이름에서 따서 막 막(幕)이라고 했습니다. 백부님.”


“막 막이라....... 그렇게 지은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그냥 막 살고 싶어서 지은 것입니다. 백부님.”


“막은 막 살다의 막이 아니네. 글을 아직 깨우치지 못했나 보군.”


“서방님은 천자문과 유학 소학은 뗐습니다.”



사실이었다. 막란이 천의 글자를 알게 되자 세상이치가 궁금해져 기본적인 서적은 틈틈이 익혀 이미 왠 만한 글자의 뜻을 알게 된 것이다.



“부인의 말씀이 남사스럽습니다. 다 늦게 머리가 튀었나 봅니다. 요새는 명심보감에 심취해 있습니다....... 제가 막 살고 싶다 라고 말씀 드리는 뜻은, ‘막(幕)’처럼 헝겊이나 천 같은 것으로 위를 덮듯이, 이름 란(亂)을 써서 어지러운 세상, 사람들의 보호막이 되고 싶어서 제 성을 막이라 지은 것입니다. 백부님.”


“말끝마다 백부님이라고 붙이지 않으면 안 되겠나? 자네가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도성 안의 사람들은 다 알고 있네.”


“백부님 알겠습니다.”



최이척을 세상 사람들이 ‘늙은 여우’라 부르지만 이 꼽추 놈은 자기보다 더 여우같다. 어떻게 그 짧은 세월에 명심보감까지 볼 정도의 실력을 키웠단 말인가....... 아마도 윤서를 이용해 권력을 잡아보려 죽자 살자 글공부를 했을 것이다. 이놈이 기어오르게 두어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볼 수만은 없다.



“비밀에 붙이라 했으니 교지는 없었을 테고....... 그런데도 나한테 발설을 했군.”


“큰 아버지는 폐세자를 살려두어 인질로 삼으려 하셨잖아요. 임금을 협박하는 구실로요. 임금의 어명과는 상충됩니다. 서방님은 누구를 따라야 되나요?”


“임금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왕실의 남자들이 얼마나 되는 것 같냐?”


“.......”


“적통 후통 모두 합치면 백이 넘는다. 내가 그깟 폐세자에 목숨 걸고 있다 생각하는 거냐?”


“그럼 어명을 따르라는 말씀입니까?”


“네 서방이라는 사람도 이 나라의 백성 아니더냐? 임금의 어명은 국법이다. 어명을 따르지 않는 것은 국법을 어기는 것이다. 어명을 거역한 죄는 당연히 엄벌에 처해질 것인데 어찌 내게 고자질 하는 것이냐!”



최이척은 막란과 윤서의 의중을 파악했다. 임금과 자기를 이간질하려는 것을....... 임금이야 나중에라도 버릇을 고쳐놓으면 되지만 이 하찮은 막란과 윤서의 손에 놀아나는 것은 더욱 싫었다. 폐세자야 죽으면 어떤가....... 또 능양군처럼 찾으면 되는 것이다.


윤서의 바램처럼 최이척이 움직여주지 않는다. 폐세자를 죽이지 못하게 하고 임금과 한바탕 붙어야 어부지리로 막란과 윤서가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데 이 백부 놈이 넘어오지 않는다.



“백부님의 뜻은 알겠습니다. 서방님 보고 어명을 따르라 하겠습니다.”


“잊지 말거라. 어명은 곧 나의 뜻이기도 하다. 쓸데없는 짓으로 전하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야.”


“곧 영상이 되신다고 들었습니다. 감축 드립니다.”


“태조대왕 이래로 우리 가문에서 여덟 번째 나오는 재상이다. 더는 가문을 더럽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백부님이나 조심하세요. 우리는 알아서 할 거니까.”



백부 이놈은 꼭 우리를 걸고 넘어가지 못해 안달이다. 더 쏘아 붙이고 싶지만 여기 있다간 제 명에 살지 못할 것 같아 서둘러 나온다.




*




덕물도에서.......

화적들이 이주한지 열흘이 지났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고 했으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어 있는 것이 없다. 허허벌판에 데려다 놓은 느낌이다. 급한 대로 나뭇가지와 낙엽으로 움막을 지어 비바람이나 겨우 피하게 만들었다.


사는 구역도 정해져 있다. 마을 사람들과는 접촉할 수 없게 관군들이 항상 감시한다. 먹을 것도 자급을 해야 한다. 조개를 주워 허기를 달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도저히 사람 사는 꼴이 아니다.



“꺽쇠야 나 못살겠다. 따개비 주워 먹는 것도 이젠 신물이 난다. 마을에 내려가서 쌀을 팔아오든 훔쳐오든 해서 좀 갖고 와라!”



덴년이의 푸념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한해에 두 번....... 그것도 관군들 감시 하에 미리 말해둔 물자를 받기 위해서만 허락되는 것이다. 막란과 윤서도 통제된다. 이제 화적들은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격리된 채 살아야 한다.



“형님....... 산채 생활이 훨 났소! 이게 뭐요! 감옥소 아니면 뭐란 말이오!”


“꺽쇠야 내 서신을 써 놨으니 양반 며느리한테 보내 우리 사정을 알려야 겠다.”



평양에서 창기를 했던 경험으로 화적들 중에서 유일하게 글을 아는 덴년이다.



“내가 한 번 저 관군들을 꼬셔보마.”



화적들을 감시하는 관군들을 가리킨다. 덴년이는 한때 이름난 기녀로, 인두로 지져진 한 쪽 얼굴을 가리면 양귀비 뺨을 후려친다.


덴년이가 한 쪽 얼굴을 광목천으로 가린 다음, 숯으로 눈썹을 그리고 입술은 진달래 즙으로 발라 화장을 입힌다. 궁둥이를 흔들며 걸으니 요녀가 따로 없다.



“이보셔 관군나리들....... 새우가 튼실해요. 내 까서 드릴테니 잡숴보쇼!”


“저리가게나....... 자네들과 소통하면 내 목이 달아난다구!”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 밖에 없잖소! 외로운 사람끼리 말벗이나 되자는 건데 뭐 그리 까탈스럽게 그러쇼!”



덴년이가 강제로 관군들 둘을 데리고 숲으로 들어간다.



“외로워? 서방은 어쩌구?”


“그놈의 서방....... 먼저 뒈졌어요.”


“죽었어? 그래서 외로운 게야?”


“이거 드시고 필요한 거 있으면 더 말해요.”



덴년이가 새우 살을 발라 관군들 두 명에게 차례로 먹인다.



“맛있어. 맛나.......”


“자네 가슴이 왜 이렇게 볼록한가? 남정네 속 타게.......”



덴년이가 기다렸다는 듯 가슴 속에서 윤서에게 줄 서신을 꺼낸다.



“오라버니들....... 내 부탁이 있소.”


“이게 뭔가?”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겄소....... 내 육지에 있는 동생한테 전할 말이 있어 그러는데 이것을 전해주면 엽전을 드리겠소.”


“미쳤나. 우리 목이 달아날 일이야!”


“그러니 내 이렇게 은밀히 부탁하는 것이 아니겠소.”


“안되네....... 자네 몸을 준다 해도 그것은 안 되는 일이야.”


“내 몸을 보여주면 함부로 그딴 소리는 나오지 않을 거요!”


“.......그럼 한 번 보기나 하세.”



덴년이 옷고름을 풀다가 다시 맨다.



“이 사람들이....... 맨 입으로....... 내 부탁을 들어주면 그때 옷고름을 풀겠소!”


“알았다고 서신을 주게....... 내 전해줌세.”



덴년이 다시 옷고름에 손이 가다 멈춘다.



“답신을 받아와요. 그러면 내 그때 다 보여주겠소.”


“아니 이년이 애간장을 녹여도 정도가 있지 어서 벗지 못하겠느냐!”



관군 두 명이 강제로 덴년이의 옷을 벗긴다. 그러다 덴년이의 덴자국이 있는 한쪽 얼굴이 드러난다.



“아니 이 화상은 뭐야! 이런 얼굴을 가지고 우릴 갖고 놀아!”



당한 것이 억울했는지 관군들이 덴년이를 패기 시작한다. 덴년이가 축 늘어지자 그녀의 옷을 벗긴다. 어느새 알몸이 드러난다. 관군 한 명이 올라탄다.


그때 둔탁한 소리가 난다. 옆에서 덴년이의 팔을 잡고 있던 관군 한 명이 엎어진다. 그 뒤에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꺽쇠가 나타난다.


반이 벗겨진 바지를 잡고 나머지 한 명이 도망치기 시작한다. 꺽쇠가 피가 묻은 돌맹이를 들고 쫒아간다. 덴년이가 겨우 정신차려 쫒아가는 꺽쇠를 잡으려는 듯 공중에 헛손질을 한다.




*




꺽쇠가 관군 둘을 죽였다. 덴년이의 나머지 얼굴도 관군들에 맞아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꺽쇠가 덴년이에게 옷을 입혀준다.



“꺽쇠야 왜 그랬냐?”


“.......괜찮소?”


“주인 없는 몸땡이....... 아무나 흔들면 어때서 이 난리를 쳤냐?”


“식구들하고 아무래도 이 섬을 떠야겠소!”


“왜 나를 지켜줬냐고! 그냥 내버려 둘 것이지!”



덴년이가 운다. 모지리가 죽었을 때와 막란 윤서의 혼례식 때 눈물을 흘렸다. 이번에 운 것은 그녀의 인생에서 세 번째 일 것이다. 얼굴을 인두로 지질 때에도 악착같이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킬 것도 없고 미련도 없다고 생각했던 몸뚱아리가 왜 이렇게 서러운지 모르겠다. 그것도 꺽쇠에 의해 구해졌다고 생각하니 더욱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른다. 꺽쇠는 되돌아서서 넘어가는 석양을 무심히 보고 있다.




*




“차라리 잘 됐소! 어서 이 섬을 뜹시다!”



화적들 모두 찬성했다. 산에서 자유롭게 일상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다. 섬에서....... 그것도 일정지역에서 지내라는 것은 감옥 보다 못한 생활이었다. 화적들은 떠나기로 한다.


관군들은 아침에 교대하러 온다. 그 전에 배를 마련하여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을 사람들의 고깃배는 속도를 내지 못해 금방 따라잡혀 쓰지 못한다. 관군들이 타고 다니는 배가 제격인데 그 배는 이틀 후에 들어온다고 한다. 그래도 관군의 배를 탈취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조선에서 살지 못하고 차라리 명나라나 섬나라 왜로 가서 자리 잡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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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그 바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24.09.16 5 0 11쪽
69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24.09.15 7 1 11쪽
68 저는 몰라요 24.09.14 12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8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0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0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9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3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6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2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3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3 1 12쪽
57 王八! 24.09.03 14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8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6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3 1 11쪽
53 무명(無名)이라 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1 24.08.30 19 1 12쪽
52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24.08.29 1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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