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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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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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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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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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이와 흥부 그리고 가시덤불

DUMMY

#40.심청이와 흥부 그리고 가시덤불

이제는 조선에서 살지 못하고 차라리 명나라나 섬나라 왜로 가서 자리 잡는 수밖에 없다.



“형님 차라리 다시 산으로 들어갑시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 가서 뭔 고생을 사서 할라고 그럽니까?”



맞는 말이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타국에 간 조선인들의 소문은 대체로 좋지 않다. 척박한 땅을 일구다 굶어 죽는 사람이 대다수고, 먹고 살기 위해 본토 사람들 밑으로 노비로 들어가 짐승처럼 산다고 한다.


그렇다고 조선에 있을 수는 없다. 화적으로 살 때에는 적당히 노략질을 하다 관군들의 눈을 피해 옮겨 다니면 됐는데, 이제는 표적이 되어 전국에 수배령이 떨어지면 숨어 있을 곳도 없다.


반정은 화적들에게 사지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윤서는 미리 알았기에 그토록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주워 담을 수 없으면 새 물을 받아야 한다. 명나라로 가기로 한다. 가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유롭게 죽고 싶은 것이다.


덕물도는 작은 섬이지만 수군의 진(鎭)을 둘 만큼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는 중요 요충지이다. 관리하는 관직을 만호(萬戶)라 하고 이 십 여명정도 수하를 거느려, 작은 섬치고는 제법 규모가 있는 관청을 가지고 있다.


꺽쇠가 죽인 관군들을 대신해 교대하러 오는 놈들을 처리하고 곧 바로 관청을 습격하기로 한다. 죽은 놈들에게서 빼앗은 창 두 자루와 돌맹이로 무장을 한다.



“꺽쇠야 미안하다...”



덴년이는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여인이다. 그런데 꺽쇠에게는 하고 있다. 자기 때문에 화적 전체를 위험에 빠트려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녀 나이는 서른이 채 되지 않았다. 기녀였을 때 스물이었고 모지리를 그때 만났다. 모지리가 산으로 데려가지 않았으면 한 많은 인생, 끝을 보려 했었다. 이쁜 얼굴이 인두로 날아가는 날에 그녀의 감정도 함께 죽은 것이다.



“모지리 형님이 그립지 않소?”


“죽은 놈이여....... 그리워해서 뭐에 써.”



덴년이는 누구에게나 반말을 한다. 꺽쇠가 그녀보다 나이가 스물이나 많아도 예외는 없다. 그럼에도 반말을 찍찍 하는 것은 쎄 보이고 싶어서다. 하지만 그만큼 속이 여리다는 증거다.



“육지로 나가면 살 길 찾아 가보쇼.”


“빌어먹을 놈....... 내가 짐스러워 내치는 거냐?”


“인생 반은 산에서 살았다 치고 반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요.”


“한 번 화적은 죽어도 화적이여....... 누가 받아 준다고 내치냐.”


“다리 하나 못쓰게 만들고 백정촌에 숨어 살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거요.”


“싫다. 죽어도 니 곁에서 죽을 거다.”


“.......”


“왜 겁나냐? 치마 올리고 엉겨 붙을 까봐? 걱정마라....... 사내라면 이젠 진저리가 난다. 너 내가 아니면 챙겨줄 사람 없을 까봐 그런다....... 그러니 나 버릴 생각하면 안 돼.......”


“알았소. 내 곁에서 붙어사시오.”



모지리가 사랑했던 여자다. 그녀가 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 지켜주고 싶다.


교대하러 관군이 올 시각이다. 꺽쇠가 힘이 좋은 덕팔을 부른다.




*




화적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돈두가 솔개와 함께 죽은 관군들의 옷을 입고 뒤돌아 앉아 있다. 교대하러 온 관군들이 그들을 부르지만 답을 하지 않자 솔개와 돈두에게 간다.


교대자들이 가까이 오자 솔개와 돈두가 못생긴 얼굴을 되돌아 보여주자 관군들이 깜짝 놀라 뒷걸음질 한다. 뒤에 누군가에 의해 막힌다. 일그러진 덕팔의 얼굴이 나타난다.




*




강화도에서.......

윤서가 남장을 하지 않고 쓰개치마를 눌러 쓴 채 막란을 데리고 강화도로 입도(入島)를 한다.


막란이가 혼자 일을 처리하겠다는 것을 윤서가 우겨 같이 온 것이다. 성공하면 모를까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윤서가 있어야 그나마 방패막이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폐세자를 살리기로 했다. 윤서의 생각이다. 어명대로 죽이면 비밀을 지키기 위해 막란을 또 누군가 시켜 죽일 것이다. 그럴 바에는 폐세자를 살려 도망치게 한 다음, 정신없는 틈을 이용해 곽주의 쌍바윗골에 숨겨놓은 금을 가지고 냅다 튀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명이든 후금이든 도망가서 자리를 잡고 화적들을 부르면 된다. 윤서는 재물이 있으면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서도 세상 어딜 가든 남부러울 것 없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이다.


윤서와 막란은 강화 목사를 찾았다. 최이척의 이복형제의 아들이니 윤서에게는 사촌 오빠지만 서얼출신이라, 중앙관직은 등용되지 못하고 평생 한직에만 떠돌 팔자다.



“오라버니 그간 강녕하셨어요?”


“그래 윤서 니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그래 아버님은 안녕하신가?”


“네....... 새 임금 만드는데 일등공신이라 영의정도 되셨구 전답도 많이 받아 팔자가 늘어져 아주 쌍 팔자가 되셨습니다. 조카를 어떻게 괴롭힐지 궁리하면서요”


“여전하구나....... 윤서 니 성깔이 아직 팔팔한 거 보니까.”


“오라버니는 그래 한양으로 불러주지 않는 답디까?”


“누구보다 명예와 체통으로 사시는 분이 아니냐. 서자가 이 정도로 살면 됐지 무얼 바라겠냐....... 그런데 이 사람이 그렇게 말 많은 니 서방이냐?”


“네....... 형님 막 막(幕)에 어지러울 란(亂) 막란이라 하옵니다.”


“막씨라....... 내가 알기로는 막씨를 가진 조선인은 없네. 자네가 시조(始祖)가 되겠구만.”


“최씨 가문에 입적하려 했더니 백부님이 거품을 물어 할 수 없이 기존 이름 하나에 성씨를 만든 것입니다.”


“하하....... 아버님이 그렇게 해 줄 양반이 아니지. 내 이름도 겨우 족보에 올리지 않았느냐? 그래서 이렇게 변변한 벼슬자리도 하나 꿰차고 있고.”


“강화에 서인이 된 임금과 폐세자가 유배중이라 들었습니다.‘


“어찌 알았느냐? 그 둘은 중앙에서 특별히 관리하고 있어 나도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밀에 붙이고 있는데.......”


“폐세자를 만나야 할 사연이 있습니다. 사정을 봐 주실 수 있는지요?”


“말했다시피 내 소관이 아니다. 비록 강화가 유배소이지만 관리는 조정에서 따로 하고 있어 네 부탁은 들어줄 수 없구나.”



구해주기 전에 폐세자의 의향을 물으려는 거였다. 괜히 힘들여 도주로를 마련했는데 거절하면 허사가 되기 때문에 미리 확인해야 했다. 강화목사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알겠습니다. 폐세자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어 확인하려 한 것뿐입니다. 너무 괘념치 마세요.”


“여기 강화는 밴댕이가 먹을 만하다. 동서와 함께 며칠 쉬다 가거라.”


“벌써 한 여름입니다. 해변에서 피서를 하다 가겠습니다.”



폐세자의 유배소가 해변에 있다. 가까운 곳에 거처를 두고 기회를 봐야 한다.




*




강화에서의 첫날 밤.......

막란은 물 만나 신났다. 낮에는 멱을 감고, 밤에는 물고기와 낙지를 잡는다며 싸돌아다닌다. 잡은 것들은 폐세자를 감시하는 관군들하고 밤마다 술잔치를 벌인다. 물론 의도된 행동이지만 막란은 좋아서 하는 것 같다.


막란이 관군들과 완전히 친해진 유월 스물 나흘 날(6월24일) 밤, 윤서는 폐세자의 초가에 숨어든다. 막란이 관군들에게 술이며 잡은 낙지를 대접할 때 몰래 들어간 것이다. 막란이 술은 하지 못하지만, 마시면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주사가 있다.



“한 잔 더....... 인생 뭐 있소 한 번 달려봅시다!”


“어허 근무 중이라니까 그러네....... 더는 안되네.”


“나두 근무 중이요. 한 잔 더 하면 내가 창을 뽑아 그대들의 귀를 즐겁게 해 드리겠소.”



막란이 심청이 임당수 빠지는 구절을 구슬프게 불러 관군들의 혼을 빼 놓는다. 윤서는 폐세자의 방에 숨어든다.



“최이현의 여식 윤서라 합니다.”


“아니....... 여길 어떻게?”


“임금이 세자마마를 죽이라 사람을 보냈습니다.”


“언제 죽어도 죽을 목숨이다. 죽기 전 아바마마를 뵙고 죽는 것이 소원일 따름이야.”


“살기를 원하신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 하실런지요?”


“살아 뭣하겠느냐....... 또 이놈 저놈에게 끌려 다니다 끝내 죽을 목숨....... 나를 죽여야 할 사람과 같이 온 것이냐?”


“제 지아빕니다. 지금의 임금이 세자마마를 죽이라 보냈으나 이전에 세자마마의 아버님으로부터 살려달라는 부탁을 받아 그 약조를 지키려는 것입니다.”


“지금 임금의 어명을 따르게나....... 언제든 각오가 되어 있는 목숨이다. 허나.......”


“.......”


“아버님을 한 번 만나게 해 다오....... 그럼 그대들의 수고를 끼치지 않게 스스로 자결할 테니.”


“........”


“멀지않은 곳에 아버님의 거처가 있는 줄 알고 있다.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느냐?”



난감한 일이다. 둘을 어떻게 빼 내어 만나게 한 다음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 해 준다면 내 보여줄 것이 있다.”


“.......”


“따라 오너라”



폐세자는 마당으로 윤서를 안내했다. 반대편 끝에서 막란의 창소리가 새어 나온다. 아마도 흥부의 박타는 구절이 나오는 거 보니까 심청전은 끝났나 보다. 흥부전도 반시진(1시간)이나 걸린다.


누구도 그의 창이 끝나기 전에는 자리를 떠서는 안 된다. 윤서도 잘못 걸리면 밤을 새야 된다. 그래서 웬만하면 막란에게 술은 먹이지 않는다.


마당 주위로 가시덤불이 둘러쳐져 있다. 대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구조다.


한쪽 유독 가시덤불이 많아 더욱 가까이 할 수 없는 곳에 폐세자가 덤불을 걷어낸다. 윤서가 다가가서 확인해보니 겨우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나 있다.



“죽기 전에 아바마마를 뵈려 밤마다 파 놓은 굴이라네.”



어쩐지 폐세자의 손이 여름인데도 소나무 껍질처럼 갈라져 있어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맞은 편 소나무 숲까지 팠다고 하니 얼마나 수고가 컸겠는가....... 이렇게 무리하면서 까지 그의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아버님을 만나 뵙는 것이 마마의 삶과 죽음보다 더 값진 일입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러네........ 아니 해야 할 말이 있네........ 죽기 전에 하지 못하면 내 눈을 감지 못할 것이야....... 들어 주시겠나?”


“.......들어 드리겠습니다. 세자마마님.”




*




덕물도 관청에서.......

다행히 경계를 서는 관군들은 두 명 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 이 조그마한 섬에서 위협이 될 것은 없다. 그래도 강화도 부근 섬이라 수군의 진(鎭)을 두어 강화도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꺽쇠와 화적들은 밤을 이용해 경계가 느슨한 틈을 노려 관청을 장악했다. 워낙 훈련이 안된 관군들이라, 처음 덴년이에게 못된 짓 한 두 놈들 빼놓고 손끝 하나 다치게 하지 않았다.


관청의 수장을 비롯해 관군들을 창고에 우겨 넣었다. 다음 날 물자를 실은 관군들의 배가 오면 탈취해 화적들은 덕물도를 떠나 명으로 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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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조선의 통역사는 첩자이다 NEW 57분 전 3 1 12쪽
70 그 바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24.09.16 5 0 11쪽
69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24.09.15 7 1 11쪽
68 저는 몰라요 24.09.14 12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8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0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0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9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3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6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1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3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3 1 12쪽
57 王八! 24.09.03 14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7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5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3 1 11쪽
53 무명(無名)이라 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1 24.08.30 19 1 12쪽
52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24.08.29 16 1 11쪽
51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 24.08.28 14 1 12쪽
50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24.08.27 16 1 11쪽
49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24.08.26 17 1 11쪽
48 황주(荒酒)로 데워 만든 온주(溫酒)입니다 24.08.25 16 1 11쪽
47 한계란의 언니를 아십니까 24.08.24 15 0 12쪽
46 가을 햇살에 눈이 감긴다 24.08.23 14 0 11쪽
45 세상의 반이 사라진다는 것 24.08.22 12 0 11쪽
44 황금 열 냥으로 할 수 있는 일 24.08.21 18 0 12쪽
43 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24.08.20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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