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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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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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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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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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있어!

DUMMY

바실리쿠스가 깔깔 웃었다.



"하루도 안 되어 손바닥 뒤집듯 의견을 뒤바꾸어 버리는구만. 누구한테는 먹다남긴 잔반이 그게 먹고 싶으냐고 한 주제에! 아주...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었잖아. 세상에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겠어."



부끄러웠던 나머지 말레이카가 구석으로 홱 숨어버렸지만 바실리쿠스는 철창을 부여잡고 놀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말없이 숨었던 말레이카도 부아가 치밀었다.



"못됐어 진짜!" 그녀가 빽 소리를 지르자 바실리쿠스도 벙어리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걸핏하면 꼬투리를 잡고 사람을 놀려대는 인간이랑은 같이 살아갈 수가 없어!"



바실리쿠스도 아까 낮에 들었던 말이 있으니 쌓인 게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 너는 내가 배가 고프다고 징징대던 소리도 못 들은 채 하면서 사내라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핀잔이나 주지 않았더냐. 그래놓고 지금 그런 꼴을 보았는데 나한테 화를 내지 말라고 하는 거지? 나도 그런 변덕쟁이랑은 같이 살아갈 수가 없겠구나. 들어라. 이 오라비는 이제부터 네가 어찌되든 상관하지 않으련다. 먹음직스런 베이컨 소시지가 되던 말던, 이제부터 다 너 알아서 하는 거다!"



말레이카는 차가운 바닥에 앉아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미 몹시 분하고 참담한데 바실리쿠스는 장난만 치고 놀리고 있다. 결국 그녀는 소리를 죽이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바실리쿠스가 그 소리를 듣고 철창 앞으로 달려가서 한참을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달랬다.



그때가 새벽 4시쯤으로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산 너머에 날이 밝아오는지 밖에서는 수탉이 울 듯 말 듯 간을 보는 요사한 기운이 움싹을 트고 있다. 말레이카는 한창 토라져서 방안을 이리저리 성큼성큼 돌아다니고 발굽소리를 팍팍 냈다.



"오빠도 나같은 년이 죽어서 돼지고기가 되어야 속이 시원하겠죠. 떽떽거리는 년 없으니 얼마나 좋아요. 사람들이 자기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셈 하나 똑똑하지 못하는 게 왜 내 잘못이냔 말이야? 누구하나 내 덕 안 본 사람 없는 주제에 뒤에서 수군거리기나 하고 안 좋은 말을 퍼붓는데 내 입이 곱게 자랄 틈이 있었겠어."



하면서 평소에 마음에 담아두었던 부분까지 쏟아내는 것이었다. 바실리쿠스가 조용하게 "그래도 넌 좀 말을 곱게 할 필요가 있어." 하니 갑자기 성질을 팍 내고 당신은 도대체 누구 편이냐 세상에 내 편 하나 없고 이제 아무도 필요가 없으니 그냥 여기서 죽어버릴 거야 그러는 것이다. 그래서 바실리쿠스가 또 여러번 달랬다.



이 때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말레이카가 들키지 않으려고 잔반을 조심조심 씹어먹던 것보다 더 이상했다. 바실리쿠스는 주머니에 든 로드렉(전부터 가끔씩 바실리쿠스의 앞주머니에 숨어있곤 하던 그 사람)에게 한 번 살펴보고 오라고 말했다. 잠시 후 돌아온 그가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원장이 게랙탱한테 등목을 해주고 있는데."



바실리쿠스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더 자세히 보고 오라고 재촉했다. 잠시 후 돌아온 로드렉이 말했다.


"등목을 해주고 있는 걸."


"왜 이 시간에 등에다 찬물을 붓고 있을까?"


"저 게랙탱 새끼든 원장이든 모두 한패라는 뜻이지." 말레이카가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오빠들은 이런 간단한 사실 하나 짐작해내지 못한단 말이야? 그러지 않고서야 저 고귀한 나리께서 게랙탱 같은 외지인 잡것한테 손수 물을 뿌려주겠어?"


"그런데 너는 왜 여기 있냐?"



바실리쿠스가 로드렉한테 물었다. 사실 그는 평소 버릇대로 로드렉을 부른 것뿐인데 진짜로 나와서 놀란 상태였다.



"늑대아이 등에 업혀서 왔지. 여기 숨어서 너희를 놀래키려고 했던 건데 바실리쿠스 니가 나를 부르길레 눈치챈 줄 알았어."



어찌됐든 의지할 편이 하나 더 생겼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로드렉이 지금 영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지만 그들은 지금 자기 몸 건사하기도 바빴기에 그런 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주의 딸인 테레사가 납치당한 뒤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으니 이제는 다들 죽었다고 생각한다는 부분에서는 아이고 하며 다같이 장탄식 소리를 냈다.



"조금만 기다리면 쿠미누스 사제님이 알고서 무슨 수라도 써주실 거야."



바실리쿠스가 이렇게 말하자 말레이카는 대뜸 쿠미누스를 욕하고 나섰다. 바실리쿠스가 눈앞에서 끌려가는 걸 알면서도 두 눈만 뜨고 있었다는 것이 그의 죄였다. "그 사제라는 양반이 평소 영주 앞에서도 큰 소리 땅땅하며 얼마나 유세를 부리고 다녔는가 한 번 생각해보라고요. 영주님 그건 이렇게 하면 안 되네, 저렇게 하면 안 되네 둥둥 운운하더니.... 사소한 일 하나라도 자기 뜻대로 안 되어먹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었잖아요. 그렇게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이 이번 일만 이렇게 두 손 뚝 때고 있으면 봐요. 사정이 있어서 못 한 건지 그럴 깜냥이 없는 건지, 내가 터무니 없는 말을 하는 건가!"



잠시 후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듯 하니 말레이카가 화재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재판 일은 어떻게 됐어요?"


"그건 아까 다 말 했잖니. 게랙탱이 여러 사람을 매수해서...."


"그거 말고 판사의 태도 말이에요. 게랙탱이 그자식이 원님을 매수하던 바지를 벗고 나랏님하고 궁둥이를 짝짜꿍하던 그 판사라는 양반이 듣질 않으면 무용지물 아니겠어요?"



바실리쿠스는 잠시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고보니 좀 귀찮아하는 기색이긴 했지. 내가 소란 피운 걸 빼면 그닥 화를 내지도 않았어. 당시에는 몰랐는데 얼굴의 관상과 몸가짐을 생각해보면 의외로 공명정대하고 소탈한 성품일지도 몰라."



그 얘기를 듣고 말레이카가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면 다행이지! 나도 사람들한테 들은 바가 있는데, 저 큰 도시의 사법소에서도 분수가 없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원한만을 가지고 남들을 허위고소 했다가 되려 볼기짝을 얻어맞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들었어요." 돼지 콧구멍이 철창 사이로 불쑥 나와있었다. 바실리쿠스는 어둠 속에서 말랑말랑한 돼지코가 씰룩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번 일도 그렇다고 보면 우리도 맘 편히 잘 수 있지 않겠어요?"



로드렉이 혼자 중얼거렸다.



"그런데 등목은 왜 하고 있었을까."



그런데 상상이 너무 과했던가, 바실리쿠스는 기억을 톺고 톺다보니 재판 당시의 일로 너무 깊게 휘몰아 들어가고 있었다. 바실리쿠스는 게랙탱 그놈을 잡을 수도 없이 일 끝난 재판장에서 다음 안건의 사람들이 들어와 의자에 앉으면서 '쟤는 뭔 일 땜에 여기 왔을까.' 하는 눈빛으로 보고있는 와중에도, 원고와 피고를 분리시키라는 판사의 명령에 따라 놈들이 완전히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잠자코 있어야만 했다.



그때 생각을 하니 아직도 가슴이 천불이 나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 하였다. 그래서 가슴을 쿵쿵 때리다가 하늘에 대고 그만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으아, 나보고 뭐 어떡하라는 거야!"



그 말에 로드렉의 의문점이 멀리 달아나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로드렉이 화들짝 놀라서 자기가 뭐 그렇게 몹쓸 말을 한 건 아닌데 왜 그러냐고 물으니 바실리쿠스가 실실 웃으면서 생각이 너무 과하여 그런 것이니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그들 세 사람은 당장에 뭘 어떻게 할 수도 없으니 오늘은 이쯤하고 도로 잠에 들었다. 로드렉은 이 근방의 쥐들을 만나면서 수도원의 분위기를 파악하겠다고 나섰다. 말릴 이유도 없었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 돼지가 갇힌 감방에서 그날, 수도원 사람들의 입장으로 보아 아주 괴상한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날 감방지기가 바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하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죄수들에게 아침식사를 가져다 주는 일을 부탁해야 했다.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나리는 부탁하는 입장이 되셨으니 한 가지 미리 양해해주셔야 합니다. 그 바실리쿠스라는 놈이 보기 드문 뚱뚱이라고 하니 밥 부족하다 성화를 부려도 그건 제 책임이 아니라는 걸요. 전 식당에서 받는 대로 가져갈 뿐이니까."



척 들어도 내 알아서 반찬 몇 개 정도 빼먹을 테니 그리 알라 통보하는 것이었다. 감방지기는 속으로 '건방진 새끼' 하고는 그건 니가 알아서 하라고 말한 뒤 어딘가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예상대로 그 하인은 식당에서 음식을 받아간 뒤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서 "죄수한테 신선한 사과는 사치나 다름없지." 라고 중얼거리며 노랗고 아삭거리는 사과를 대뜸 착복해 씹어먹었다.



좀 전에 식당에서 본인 몫으로 받아먹은 것까지 포함하면 하루에 사과를 두 개나 먹어대는 아주 포악한 짓이었다.



마침 그곳은 위에서 아래로 감방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그 철창 가까이에 있었다. 늑대아이가 간밤에 사람들을 놀리는 중간중간 안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던 그 구멍이었다. 하인은 '그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옆에는 본인처럼 뚱뚱한 돼지가 한 마리 같이 있었더랬지' 생각하며 무심하게 사과를 씹어먹으면서 다리를 쪼그려 안쪽을 슬쩍 보다가 먹던 사과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즉시 벌떡 일어나더니 거세게 눈을 비비면서 다시 고개를 숙여 지금 자기가 보고있는 게 정말인지 수어번 확인해보고는 감방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랬더니 정말이다! 두 눈이 휘둥그런 채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한 마디를 냈다.



"여자가 있어!"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면서 뇌까렸다. 아무리 보아도 자기 머리카락에 파묻혀 잠든 여성의 벌거숭이 모습이었다. 난데없이 벼락이 떨어진 격이다.



"여자가 있다... 왜 여자가 있지?"



한동안 멍청하게 중얼거리고 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여자가 있어! 여자가 있어!"



잠시 후, 하인이 수어명의 수사들을 대동하고 달려왔을 때 그곳에는 돼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서있을 뿐이었다. 수사들은 화내기보다 깔깔 웃기 시작했다.



"정말로 여기 여자가 있었단 말입니다!" 하인이 외쳤다. "여러분 제 말을 믿지 않는 겁니까? 그렇다면 저는 죽어버리는 수 밖에 없어요!"


"그래, 자네가 여자를 봤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을게." 수사 한 명이 말했다. "하지만 자네가 여자가 있다고 한 자리에 돼지가 있었다는 사실도 부정하지는 않을 거야."



즉 돼지가 여자로 보였다는 뜻이니 하인은 울며불며 어떻게든 해명하려고 했지만 수사들은 믿어주려하지 않았고 되려 이 못된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 소문은 원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평소같았다면 본인도 같이 웃어넘겼을 테지만 이날따라 심각한 얼굴로 그 하인을 불러서 어떻게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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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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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7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7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5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9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5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7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7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7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9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6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7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7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8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7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7 0 12쪽
60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24.08.11 6 0 11쪽
59 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24.08.11 6 0 13쪽
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6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6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8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7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7 0 11쪽
53 콩가루 고문 (2) 24.08.09 6 0 12쪽
52 콩가루 고문 (1) 24.08.09 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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