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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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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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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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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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달 2

DUMMY

"일단 씻자. 꼴이 말이 아니구나."


데온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노인장은 온 김에 장작 좀 거들어 가시구려."


"뭘, 또.

됐네. 서로 어려운 거 잘 아는데."


데온의 잔정어린 권유에 노인은 손사레를 쳤다.

약초를 캘 수 없는 겨울이 오면 데온의 수입도 절반으로 줄어들기에 이맘때의 데온의 처지는 노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인도 그걸 잘 알기에 하는 말이었다.


"서로 어려운 거 아는데, 내가 좀 더 젊지 않소.

이번 겨울은 더 춥다던데 똑같이 추우면 나보다 노인장이 먼저 얼어죽겠지."


꽤 거친 표현이었지만 내용이 다정했다.

똑같이 어려운 처지지만 노인이 얼어죽을 가능성이 더 높으니, 더 신경쓰라는 권유.

허나 노인은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입이 하나 더 늘었으니 오히려 내 것을 나눠야지.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울 수밖에."


"것참."


노인에 지적에 현실을 깨달은 데온이 아쉬운 듯 혀를 찼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예년과 같은 노인보다는 군식구가 늘어난 데온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겨울 내내 여유가 생길 때마다 노인이 데온에게 이것저것 챙겨주기 시작했다.

나 때문에.


"여튼. 아이를 부탁하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제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걸음은 느렸으나 데온은 노인을 붙잡지 못했다.

노인의 말마따나 군식구가 늘어난 데온에겐 이제 여유가 없으니까.


"······죄송해요."


진심이다.

갑자기 생겨난 군식구 때문에 여유치 않은 데온의 살림이 더더욱 어려웠으니까.

허나 이 노르달에서 없는 여유에도 불구하고 아이 하나를 맡아줄만한 곳은 데온의 집 뿐이다.

다른 집은 있는 입을 덜어야 할정도로 가난했으니까.


데온과 살지 못하면 중앙에 있는 고아원으로 가야한다.

그곳은 더더욱 환경이 열악하며 무언가 배울 기회따윈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다.

절반은 굶어죽고 살아남은 아이의 대부분은 빈민가로 숨어들게 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도적 길드나 뒷골목 패거리의 심부름꾼이 된다.


고아원이 아닌 데온의 조수로 들어가게 된 것, 그것이 이전 생의 내 첫번째 행운이었다.


"뭘. 네가 미안해할 건 없다."


데온은 그렇게 말했지만 불편한 마음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이전 생에서는 살아남기 급급해서 잘 몰랐지만, 어른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지금 데온의 집을 다시 살펴보니 데온이 나를 조수로 삼기로 한 것이 얼마나 큰 결심이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노인의 집보다는 훨씬 처지가 좋았으나 집 곳곳은 수십번 고친 흔적이 가득했다.

진즉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할 집을 억지로 수명을 늘려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구나."


데온은 그렇게 말하며 거실 한쪽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거실의 난로에 불을 붙이더니, 가마솥에 물을 넣고 끓였다.

물이 끓는 동안 데온은 거실 반대편에 있는 조제실의 약장을 뒤졌다.

그리고 약초 몇 가지를 추리더니 잔 하나를 가져와 거기에 다져넣었다.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라도 적응해야할 거다.

날이 다시 풀리기 전엔 목욕은 어려워."


데온은 내가 귀족 아이라 생각한 탓에 그렇게 당부한 모양이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미 오래 전에 익숙해진 일이다.


게다가 이 집엔 욕실이랄 법한 공간이 따로 없다.

씻고 싶으면 한쪽 구석에서 요령껏 씻어야 했고 그마저도 얼굴과 손발을 씻는 것이 고작.

당연한 일이다.

몸을 담글만한 욕조는 평민에게 사치니까.


"상관없어요."


내가 회귀자라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당장은 목숨을 부지한 것에 감사해야 하는 처지다.

산전수전 다 겪고 시간을 되돌린 지금은 물론이고 이전 생에서도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염치 같은 건 없었다.


"마셔라."


데온이 가마솥에 끓인 물과 약초 다진 것을 섞어 내게 건넸다.

향이 익숙했다.

내가 감기 기운이 있을 때마다 데온이 만들어줬던 그 약차였다.

재료가······, 뭐였더라.

······에키네시아와 엘더베리, 생강······.


"네가 먹긴 역할 텐데 꽤 잘 마시는구나."


내가 데온이 건넨 약차의 내용물을 헤아려보는 동안 데온은 가마솥의 끓인 물을 헝겁에 적셔 내 맞은편에 쭈구려 앉았다.

그리고 젖은 헝겁으로 내 뺨과 손을 문질러 닦았다.


"······윽."


자잘한 상처들이 난 터라 데온의 조심스러운 손길에도 상처가 꽤 아팠다.

결국 내가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자 데온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왼뺨의 상처를 한 번 더 들여다본 뒤 허리를 폈다.


"아침은 먹었어?"


"네, 어르신이 나눠주셨어요."


내 대꾸에 데온을 고개를 끄덕이더니 겉옷을 챙겼다.

바깥에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식사는 했다니, 반나절 정도는 괜찮겠구나.

나갔다 올테니 편하게 있거라.

저쪽에 있는 약초 중에는 함부로 만지면 위험한 것도 있으니 건드리지 말고.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오마."


물건을 늘 제자리에 두는 데온이기에 이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눈감고도 찾을 수 있었지만 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일이 잘 풀린 건가?


"뭐, 그렇죠."


데온이 나가자마자 아르다르보가 내뱉었다.

이정도면 잘 풀린 편이다.

데온이 추궁아닌 추궁을 할 때엔 꽤 놀랐지만, 결과적으로 잘 풀렸으니까.


"그럼······."


데온이 멀어졌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조제실의 약장으로 향했다.

아직 키가 작아 의자를 딛고 일어서야 했지만, 약장의 꼭대기까지 살피는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 위험한 약초도 있으니, 건드리지 말라고 한 것 같은데?


"그건 약초에 대해 문외한일 때 얘기고요."


독초도 용량을 조절하거나 보완할 만한 다른 약초와 섞으면 약이 된다.

때문에 데온의 약장에는 독초가 여럿 보관되어 있었고, 데온이 나가면서 당부한 말은 그런 독초를 내가 잘못 건드릴까봐 건넨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독초를 구분하지 못해 건드리거나 그 독초를 해독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 한정된 이야기다.

나는 2년 넘게 데온의 조수로 있으면서 그런 독초를 구분하는 법과 해독법을 꼼꼼히 배웠다.

적어도 이 약장에 있는 약초 중에서 내가 모르는 것은 없다.


- 뭘 찾는 거냐?


"지빠귀 풀이요."


- 지빠귀 풀? 그건 어디 쓰려고?


"신세지게 됐는데, 밥값을 해야죠."


- 밥값?


"네, 밥값이요."


난 아르다르보의 의문에 착실하게 대답하며 약장을 뒤졌다.

대략적인 위치가······.

······이 근처 어디 있을텐데······.


"찾았다."


지빠귀 풀은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위치보다 조금 위쪽에 있었다.

지빠귀 풀은 한여름에는 지천에 깔린 흔한 풀이지만, 한해살이풀이라 겨울이 가까워지는 지금 날씨에는 구하기 어렵다.

추위에 약해 겨울이 다가오면 죄다 말라붙어 버리니까.

그러니 데온의 약장에서 좀 빌려 쓸 수밖에.


- 리안?


지빠귀 풀은 원래 지혈초와 섞여 상처에 많이 쓴다.

의사들이 쓰는 정식 치료제는 아니지만 마취 효과가 있는 풀이라 용병들이 현장에서 많이 쓰는 응급 처치용 약초였다.


내게 지빠귀 풀에 대해 알려준 건 이전 생의 데온이었지만, 지빠귀 풀을 활용하는 방법은 용병질을 하다가 사냥꾼 출신인 다른 용병에게 배웠다.

지혈초와 섞지 않은 지빠귀 풀은 사냥에 단독으로 쓸 수 있는데, 어디에 쓰냐면······.


"토끼 잡게요."


함정을 팔 때 쓴다.

특히 토끼.


- 토끼?


"네, 토끼."


약장에 있는 지빠귀 풀의 양은 어른 손으로 두 주먹 정도.

난 그중에서 네 줄기 정도를 챙겼다.

많이는 필요 없으니까.


- 그걸로 토끼를 잡는다고?


"지빠귀 풀이랑 멍석 딸기랑 섞으면 토끼가 좋아하거든요."


멍석 딸기에 지빠귀 풀을 섞으면 약간의 수면 효과와 함께 마취가 된다.

즉, 멍석 딸기와 지빠귀 풀을 섞인 걸 토끼가 먹으면 기절한다는 뜻이다.

멍석 딸기는 데온의 약장에는 없는 재료지만, 눈이 쌓이는 1월까지도 산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니 토끼 덫을 놓으면서 찾아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신기하군.


"예전에 사냥꾼 출신한테 배운 건데, 별다른 기술 없이 사냥하기 좋아요."


아직 난 힘도 약한데다가 몸집도 잡으니 직접적인 사냥은 무리다.

그렇다고 마냥 데온에게 신세를 지기엔 영 염치가 없었다.

멋모르던 어린 시절이면 모르되, 데온의 사정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지금 마냥 신세를 지기엔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사냥법을 찾을 수밖에.


겨우내 다시 흑빵만 먹을 생각에 진저리가 났던 것은 절대 아니다.


찾을 수 있는 것을 모두 찾고서 창을 내다보니 아직 해가 중천이었다.

나는 벗어뒀던 옷을 다시 여미고 지빠귀 풀과 검을 챙겼다.

데온은 해가 지기 전에 온다고 했으니, 그전에 돌아오면 되겠지.


- 지금 나가려고?


"덫만 치고 오게요."


아르다르보에게 그렇게 대꾸한 나는 곧장 문을 나서려다 잠시 멈췄다.

그리고 고민 끝에 데온에게 짧은 메모를 남겼다.

나보다 데온이 먼저 돌아온다면, 걱정할지도 모르니까.




***



덫을 놓기 위해 산을 다시 오르자, 멀지 않은 곳에서 토끼 덫을 놓기 적당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노르달에서 살 땐 한 번도 사냥을 해본 적이 없지만, 데온의 조수를 하면서 약초를 캐러 다녔던 기억 탓에 근방의 지리를 무척 익숙했다.


내가 덫을 놓은 곳은 총 세 군데.

토끼는 새벽이나 해 질 녘에 움직이니 이대로 내려갔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오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함정을 놓고 데온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하늘 위로 수십마리의 새떼가 몰려가는 게 눈에 띄었다.


'······철새?'


너무 멀어 종류는 알 수 없었으나 상당한 규모의 새떼였다.

저렇게 몰려서 이동하는 건 철새 아닌가?

근데, 저건 뭔가, 보통 철새의 움직임이라기엔······.


'······쫓기는 것 같은······?'


그 부자연스러운 기색에 눈살을 찌푸리는데, 갑자기 아르다르보가 말했다.


- 마물이로군.


"마물이라고요?"


아르다르보의 말에 깜짝 놀라 다시 새떼를 쫓는데, 이미 멀어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 정확하진 않지만, 푸른 부리 맹조같군.


"푸른 부리 맹조(猛鳥)요?"


푸른 부리 맹조는 이름 그대로 푸른 부리를 가진 거대한 마물이다.

맹조(猛鳥)라는 이름처럼 무척 사나운 성질을 가진 새 모습의 마물이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 살기에 좀처럼 마주치기 어려운 마물이다.


위험하지만 마주칠 확률은 적달까.


- 저렇게 많이 몰려다니는 건 나도 처음 보는군.


푸른 부리 맹조의 대이동.

이것이 나이가 아득하게 많은 아르다르보도 처음보는 모습이라면, 흔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

이유가 뭐지?


"······푸른 부리 맹조 서식지가 분명 하얀 산맥 안쪽에 있었죠?"


- 그래. 내 기억으로도 그렇다.


"아무래도 쫓겨가는 것처럼 보이고요."


- 그렇군.


역시······.

이유는 잿빛 성이 불탄 것과 '그것' 때문인가.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 무얼?


"마물의 숲에서 아르다르보가 내게 했던 말, 기억합니까?"


내 말에 아르다르보는 잠시간 말이 없었다.

내가 무얼 말하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처럼.


- 마물에 대한 지배력 얘기냐?


"네. 아르다르보의 그 가정이 맞다면······,

이번 대재난, 이전보다 빨리 터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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