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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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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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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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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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은 춤을 추고 사내들은 노래를 한다

DUMMY

“강화에 가야 합니다. 폐세자가 거기로 유배 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를 구해 준다고 약조했거든요.”


“이미 세상이 버린 임금입니다. 그와의 약조는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부인 때문에 지키려는 것입니다. 제가 ‘낭중지추’ 주머니 속의 고추....... 아니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양반이 되었으니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지 않을 것입니다.”


“주워 담아도 돼요.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들려 합니까? 이 한심한 양반아!”



폐세자를 구하려 하다니....... 도대체 생각이 있는 서방인가? 일이 잘못되면 역모로 몰릴 수 있는 중대 범죄인 것이다. 폐위된 임금하고 어떤 약조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막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부인의 뜻이 주워 담으라면 그리 하지요. 그러니 너무 화내지 마세요.”



일단 윤서를 가라앉히고 나중에 하면 된다. 산채 식구들을 살려준 광해이다. 아무리 폭군이라 하더라도 은혜를 모르면 개돼지 이상은 아니다. 막란은 약조를 지킬 것이고, 윤서는 막란을 막아야 한다.


화적들 모두 면천이 되었다. 이보다 기쁜 날이 없었다. 돼지를 잡고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운다. 여인들은 춤을 추고 사내들은 횃불을 흔들어 대며 노래를 한다.



“아씨....... 먼저 간 모지리 놈이 원망스럽습니다.”



모지리의 아내 덴년이의 한탄이다. 그녀는 서방의 몫까지 술을 마시고 그의 옷을 입고 춤을 춘다. 윤서도 그녀의 설음과 기쁨에 맞추어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춘다. 솔개는 노래를 하고 그 옆에서 돈두는 술에 취해 비틀 거린다. 화적들 모두 제 나름대로 기쁨의 잔치를 벌인다.


꺽쇠도 칼을 놓고 술잔을 든다. 그의 손에 칼이 들리지 않은 것은 산에 들어와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화적의 두령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살아왔다. 막란이 비워 있는 꺽쇠의 잔에 술을 따른다.



“어미가 생각나?”


“.......언제 부터인가 어미 얼굴이 생각이 나지 않아.”


“노망들었어? 어찌 어미 얼굴을 잊을 수 있소?”


“글쎄 말이다. 그리 고운 얼굴인데....... 아무리 생각을 떠올려도 이목구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어.”



아비가 불쌍하다. 노망이 든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미 얼굴을 잊었다. 아마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서 그런 것 같다. 아니면 관군들과 싸울 때 머리를 씨게 맞았다고 그러더니 그 탓인 것 같다.



“아비 너무 걱정마. 솔개 아저씨도 어느 손으로 밑을 닦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고 그랬어. 그런데도 밥 먹는 건 지장이 없다고 그러잖아. 덴년이 아줌니가 아비를 달리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젠 어미 얼굴 잊어.”


“아씨는 우리와 다른 분이야. 잘 모시고 살아.”


“아비가 싫어하잖아? 이젠 같이 사는 거 좋아?”


“좋은 건 아니지만....... 아씨는 좋은 분 같아.”


“좋은데....... 내가 한 약조를 지키지 말라고 해. 그게 싫어”


“사람은 다 지키고 살지 못해. 내가 애미를 지키지 못한 것처럼.”



아비는 어미를 지키지 못한 것을 죽을 때까지 괴로워하며 살 것이다. 죄를 사하고 신분을 면천해 주어도 아비 꺽쇠에게는 의미가 없다. 어미가 죽었을 때 그도 죽었던 것이다.


화적들의 잔치는 사흘 밤 이틀 낮 동안 계속 되었다. 이제 덕물도로 떠나야 한다. 그 곳에서 생을 다할 때까지 살아야 한다. 누구든 육지 사람들을 만나서도 안 되고 누구든 나와서도 안 된다. 그런 조건으로 화적들을 살려준 것이다.


달포(한 달 정도) 전에 산채로 들어온 막내가 있다. 명주(강릉)에서 온 막란보다 두 살 아래인 사내다. 풍랑으로 고기를 잡던 부모와 배를 잃고, 빚진 배 값을 갚기 위해 화적이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다리를 쓰지 못하는 할머니가 있는데 자기가 덕물도로 들어가면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거다.



“두령 봐주쇼! 할미가 다리 대신에 두 팔로 겨우 살고 있지만 나 없으면 산송장이오! 나는 빼줘요!”



곤란하다. 누구든 빠지면 모두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했다. 그 책임은 죽음을 뜻한다.



“봐 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해. 할미는 사람을 보내 돌봐주게 할 테니 사정 이야기는 그만 하게.”


“할미는 노망끼가 있어요. 점점 더 심해지면 나아님 다른 사람은 곁에 두지 않을 거요. 할미를 두고 이대로 떠날 수 없단 말이오.”


“아비 그냥 막내 보내줘요. 막내 아니면 할미가 송장이라 그러지 않소.”


“그건 안 됩니다. 아버님! 관군들이 산채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가다 들키는 날이면 우리 모두 개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꺽쇠도 마음 같아서야 관군들을 모두 쳐 죽이고 막내를 할미 곁으로 보내주고 싶다. 그러면 목숨 걸고 반정에 앞장 선 것이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안됐지만 막내를 보낼 수 없는 일이다.



“인명은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막내는 우리와 함께 덕물도로 갈 것이다.”


“그래 막내야. 내가 부인과 함께 할미를 찾을 것이니 너무 걱정마.”



막란은 행동이 자유로우니 대신 할미를 맡겠다는 것이다. 윤서는 다른 사람을 보내자고 했으나, 막란이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며 고집을 피워 어쩔 수 없이 명주(강릉)까지 가게 생겼다.



“.......고맙소 형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나두 노망이 들면 그때 갚아.”



다시 사흘이 지났다. 내일 해가 뜨면 산채 사람들 모두 덕물도로 가야 한다. 산채를 정리한다. 기본적인 것은 섬에 모두 준비되어 있으니 옷가지만 가져가라고 한다. 보잘 것 없는 화적들의 살림이지만 놓고 가기에는 눈에 밟혀 사람들이 악착같이 챙긴다.


날이 밝았다. 덕물도로 떠나는 날이다. 윤서와 막란도 달콤한 밤을 지냈다. 오랜만에 걱정 없는 며칠을 보낸 것 같다. 이제는 언제까지 어제와 같은 밤을 보낼 수 있으리라.......


화적들이 분주하다. 관군들이 화적들을 에워싼다. 누군가 막란에게 귓속말을 한다.



“막내가 잡혔데.......”



막내가 산을 내려가다 관군들에게 잡힌 것이다. 팔과 다리가 묶여 개처럼 관군들에게 끌려왔다. 관군들이 화적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막란을 밀어 넣으려 하나 윤서가 제지한다.



“이놈들 모르겠느냐! 최이척 대감의 조카사위다! 뒈질라고 환장했느냐!”



워낙 카랑카랑한 말소리에다 눈을 부릅뜨고 호령하는 윤서의 모습에 관군들이 막란의 몸에 칼과 창을 물린다. 뒤에 있던 토포사 조찬한이 나선다.



“어명이오! 누구든 이탈하는 자가 있으면 모두 죽이라는 어명이오!”



새로 추대된 임금의 명령이라는 소리다. 화적들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기회를 봐서 언제든 죽이라는 것이다. 그 기회가 온 것이다.


막내의 머리는 뭘로 맞았는지 반은 부서져 겨우 숨만 붙어 있었다. 차라리 죽일 것이지 사람을 이렇게 반송장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너무 잔인했다.



“도망가다 잡혔다. 이놈 입으로 자백을 했으니 어명에 의해 너희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금방이라도 화적들을 모두 죽일 셈이다. 화적들은 이미 덕물도로 가기 위해 무기는 모두 관군들에 반납한 상태다. 몇날 며칠을 술로 보내 심신은 말이 아닐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임금이 이런 것을 노린 것인가? 살려 준다 안심시켜 놓고 화적들의 무장해제와 무방비 상태를 노려 모두 죽이려구....... 토포사 조찬한은 최이척의 사람이 되었다. 임금은 최이척과 거리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임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최이척의 독단 행동이다.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도망가려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었습니까?”



며칠 전만 해도 할미를 막란과 윤서에게 맡긴다고 했던 막내다. 그런 그가 덕물도로 가는 날 화적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할미에게 갔을 리가 없다.



“산 밑에서 잡았소. 그리고 이놈에게서 자백을 받아냈단 말입니다.”



토포사 조찬한이 윤서를 똑바로 보고 말한다. 거짓을 말할 때의 표정이다. ‘난 진실이니 믿어 달라는’ 투의 행동이다. 정말로 그의 말이 진정이라면 얼굴 표정이 굳은 채 윤서를 똑바로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윤서가 막내에게 간다. 힘들게 그녀를 바라보다 숨이 할딱거린다. 막내의 손을 잡아준다. 막내가 숨을 거둔다.



“명주까지 가려는 자입니다. 그런 자가 외투 하나 걸치지 않고 홑저고리만 입었습니다. 신도 헤진 짚신만 신고 있고요. 이런 차림으로 삼백리가 넘는 명주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그걸 내가 어찌 알겠소! 산 밑에서 잡은 건 확실하니 화적들 이놈들은 임금님의 어명대로 모두 죽일 것이오!



관군들이 창과 칼을 무방비 상태의 화적들에게 겨눈다.



“나를 죽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하께 달려가 살려주라는 임금의 어명을 거역한 죄를 당장 고할 것이다!”



막내가 할미에게 가야한다는 말을 토포사 조찬한에게 이미 말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을 노리고 밤에 막내를 납치해 일을 꾸민 것이다. 그 뒤에는 최이척이 기회를 노려 화적들을 죽이라는 명이 있고.......


윤서까지 죽일 수는 없다. 최이척이야 넘어가 줄 수는 있겠지만 인목의 허락이 없었다. 또한 임금도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터라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놈이 도망가려 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 죽어버렸으니 확인할 길도 없고....... 이번 한 번만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이놈들 모두 그냥 두지 않겠습니다.”



윤서의 기지로 화적들은 살아났다. 그러나 이번에 알게 되었다. 화적들은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언제든 죽임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최이척은 그런 사람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기에게 권력을 주지 않은 왕을 갈아치웠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또 바꿀 것이다. 화적들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꺽쇠와 화적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토포사 조찬한의 감시 하에 덕물도로 떠났다. 막란과 윤서는 막내의 할미가 있는 명주로 발길을 옮겼다. 가는 도중에 조찬한이 만약 또 수작을 부리면 이번 일을 임금께 고해 바쳐, 다시는 벼슬을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엄포를 놓았다.




*




궁궐에서.......

영창대군이 아홉 되던 해에 인목의 품에서 강제로 떼어져 강화로 유배되어 거기서 광해의 밀자(密者)에 의해 독살되었다. 이런 연유로 인목은 광해와 그의 아들 폐세자를 죽이고 싶었다. 최이척은 반대였다. 폐모살제의 명분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광해와 폐세자를 죽이세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명분이 서지 않습니다.”


“그놈들이 살아 있는 한....... 나는 죽지 못해 사는 목숨입니다.”


“놈들을 죽인다면 백성들의 동요가 있을 것입니다.”


“놈들을 죽이고 싶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임금?”


“어마마마의 말씀이 맞습니다. 죽여야 합니다. 그 방법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밀자를 보내세요. 영창에게 광해 놈이 보낸 것처럼!”


“최이현 대감의 여식 지아비가 백정 일을 배워 칼을 좀 다룰 줄 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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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조선의 통역사는 첩자이다 NEW 50분 전 3 1 12쪽
70 그 바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24.09.16 5 0 11쪽
69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24.09.15 7 1 11쪽
68 저는 몰라요 24.09.14 12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8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0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0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9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3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5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1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2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2 1 12쪽
57 王八! 24.09.03 13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7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5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3 1 11쪽
53 무명(無名)이라 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1 24.08.30 18 1 12쪽
52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24.08.29 15 1 11쪽
51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 24.08.28 14 1 12쪽
50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24.08.27 16 1 11쪽
49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24.08.26 16 1 11쪽
48 황주(荒酒)로 데워 만든 온주(溫酒)입니다 24.08.25 16 1 11쪽
47 한계란의 언니를 아십니까 24.08.24 15 0 12쪽
46 가을 햇살에 눈이 감긴다 24.08.23 14 0 11쪽
45 세상의 반이 사라진다는 것 24.08.22 12 0 11쪽
44 황금 열 냥으로 할 수 있는 일 24.08.21 17 0 12쪽
43 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24.08.20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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