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소련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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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라니
작품등록일 :
2024.08.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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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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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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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가 없는 아이

DUMMY

중학교 시절.

나는 일진들의 장난감이었다.


일진들은 나에게 별 이상한 요구를 해댔고 나는 그들의 요구를 묵묵히 듣고 있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라고는 무반응 정도?


내가 힘이 약해서?

아니다.

나는 나를 괴롭히던 웬만한 애들은 때려눕힐 깡이 있었다.


그러면 내가 공부를 못해서?

그것도 아니다.

반에서 10등 안에는 들었으니 최소 중간 이상은 했다.


그럼 도대체 왜?

이유는 딱 하나.

수저가 없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왜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소리 있잖아.

나는 그 수저가 없다고.


다시 말해 고아.

즉 부모가 없었다는 소리다.


“야, 너 고아라며? 우리 집은 막 공부 좀 해라고 지랄인데 너는 그런 애비애미가 없어서 좋겠다?”


“···.”


“고아원은 재밌냐? TV보니까 예쁜 누나들이 봉사도 많이 가더라. 야, 좋겠다?”


시작은 언어폭력.

초등학교라고 놀리던 이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중학교의 언어폭력은 차원이 달랐다.

일진들은 온갖 모욕적인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야, 최운학. 우리가 뭐 어려운 것 시켰냐? 요 앞에 편의점 들어가서 빵 좀 몰래 가져나오라고. 이 돈은 심부름값이라니까?”


“···.”


“왜? 싫냐? 그러면 대신 이 새끼랑 여기서 맞짱 한번 떠볼래? 니가 이기면 너 대신 이 새끼 보낼게. 어때? 막 끌리지 않냐?”


“···.”


“아~ 답답해 미치겠네. 야, 지금 우리 무시하냐? 우리 말 안 들려? 이 새끼가 죽고 싶냐? 확!”


거기에 이어지는 물리적인 폭력.

뺨싸대기를 날린다던지 뒤통수를 갈기는 정도는 애교였다.

기분이 나쁜 날에는 발에 차인다거나 밟히는 일까지 다반사였다.


그렇게 일진들에게 맞고 또 맞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때.

그놈이 내 앞에 나타났다.


“넌 왜 맨날 쟤들한테 맞고 있어? 싸우면 니가 충분히 이길 것 같은 애들이 태반인데?”


“···.”


“너 말할 줄 몰라? 소문을 들어보니까 그건 아닌 것 같던데.”


나라고 어찌 괴롭힘을 당하고만 있었겠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해봤다.


선생님께 이야기해봤지만.

돌아온 것은 훈계에 벌점 정도.

나는 그것보다 더 큰 복수를 당해야 했다.


참지 못해 나를 괴롭히는 일진을 때려눕혀도 봤지만.

돌아온 것은 금수저의 학부모 호출.

나는 선생님의 중재 하에 무슨 그룹 계열사 사장이라던 일진의 부모님께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여야 했다.


“너 혹시... 맞는 걸 즐기고 그런 건 아니지?”


“···. 일 키우면 나만 손해야. 나는 고아야. 몰라?”


“응? 아는데 그게 왜? 고아를 괴롭히면 그게 더 사회적으로 문제 아니야?”


처음엔 이 새끼는 또 뭔가 싶었다.

안 그래도 고달픈 학교생활에 또 이상한 놈이 하나 들러붙은 격이었으니까.


그는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여태껏 내가 겪어온 삶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 사회가 얼마나 불합리한지.

고아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그는 나의 이야기를 매우 흥미로워했다.

그리고 그는 제안했다.

날 도와주겠다고.


“운학이 내가 데려가도 될까? 그리고 나를 봐서라도 이제 운학이 좀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는데?”


“니가 뭔데?”


“나? 너희 아버지한테 물어보는 게 어때? 너희 아버지가 무슨 그룹 계열사 사장이라며? 내가 누군지 누구보다 잘 아실걸?”


그는 일진들 앞에서도 당당했다.

그의 자신 있는 목소리에 일진들은 가만히 서서 나를 빼앗겼다.


금수저 일진을 통해 알게 된 사실.

그는 무려 현역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아들이었다.


금수저를 뛰어넘어 금뱃지수저.

상상치도 못한 그의 신분을 알게 된 일진들은 감히 그를 건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덤으로 그가 데리고 간 나도 말이다.


“운학아. 복수하고 싶지 않아? 재들 하나씩 다 때려눕혀 보자. 전부 니 꼬봉으로 만드는 거야. 어때?”


“좋아. 그게 니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는 일진들과 나의 맞짱을 주선했다.

나는 애당초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놈부터 하나씩 차례대로 쓰러뜨렸다.


“이겨라! 최운학! 그래, 턱주가리를 날려버려! 좋아!!!!!”


그는 나와 일진들의 싸움을 진심으로 즐겼다.

내 승리를 위해 자기 용돈으로 권투장까지 등록해줄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 내내 싸움에 끌려다녀야 했다.

그래도 반항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맞기만 하던 시절보다는 훨씬 보람찬 나날이었다.


“운학아. 내 과외 같이 갈래? 아빠한테 친구랑 같이 과외 수업 들으면 안 되냐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했거든? 어때?”


“좋아. 그게 니가 원하는 것이라면.”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그는 초고액 과외에 나를 데리고 다녔다.

그의 부모님은 아들이 과외를 빼먹지 않고 잘 다닌다는 사실에 만족하셨고, 내가 공짜로 과외 수업을 함께 듣는 것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아들의 친구라고 종종 용돈까지 챙겨주실 정도였다.


초고액 과외 덕분일까?

나의 성적은 전교에서 최상위권에 들 정도로 많은 향상을 이루었다.

물론 나와 과외를 함께한 그놈도 비슷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처럼 그는 내 인생 최고의 친구였다.

비록 그놈에게 나는 최고의 장난감 또는 애착인형 같은 것일지라도 말이다.


“군인으로서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의 교육과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완수하며, 국가와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수호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육군사관학교 62기 생도 대표 최운학.”


우리는 대학교를 진학하면서 진로가 나뉘었다.

그는 명문대 정치외교학과를 진학했고, 나는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나에게 있어 육군사관학교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는 고아였고, 성인이 되며 고아원을 나와 독립해야 했으니까.

여기는 입학금도 없고, 심지어 품위 유지비도 지급된다고?


나는 군대에서 나의 수저를 극복해내리라 다짐했다.

나는 뛰어난 성적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공수특전여단의 소대장으로 임관했다.


나는 나의 군 생활을 화려한 이력으로 가득 채웠다.

수색과 구조, 생화학 방어, 사격과 엄폐 등 기본적인 군사 교육부터 암호 해독, 통신, 사이버 보안과 같은 정보전 교육, 대테러 교육, 고공낙하 교육, 스나이퍼 교육 등의 특수 군사 교육까지 빠짐없이 수료했다.


이에 힘입어 나는 여단장 표창, 사단장 표창을 수차례 수상했고, 심지어 단 1회에 불과할지라도 육군참모총장 표창까지 수상했다.

이렇듯 나의 앞날엔 꽃길만 가득해 보였다.


“최 대위, 미안해. 이력만 보면 최 대위가 진급해야 한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나? 그치만 올해는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내 약속하지. 내년엔 반드시 최 대위가 진급할 거야. 이해해 줄 수 있지?”


그러나 군대는 이러한 내 노력을 배신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장군을 부모로 두고 있는 친구들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른바 별수저.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었음에도 승승장구했다.


하필 소령 1차 진급 평가 당시 공수특전여단에 별수저가 두 명이나 있었다는 것이 내 불행이었다.

나는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진급 경쟁에서 밀려났다.


“여단장님. 죄송하지만 의무복무기한 10년만 채우고 전역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순 없나? 전역하면 할 일은 있고?”


“작년부터 저를 불러주시던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제 동창의 아버지이자 현역 국회의원이십니다. 이제 그분 아래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자 합니다.”


“흠, 최 대위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서 장교의 길을 걷는 동안 그놈의 아버지 김 의원은 어느새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손꼽히고 있었다.


그놈은 나에게 이 길을 함께 걷자고 제안했다.

이는 분명 내 태생 수저를 초월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나는 김 의원의 경호실장이 되었다.

김 의원은 당내경선에 승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나는 군 시절 동안 수많은 특수교육을 수료했던 경험으로 김 의원을 완벽히 경호했고, 김 의원은 끝내 당내경선에 승리하며 여당의 대통령 후보 자리를 쟁취했다.


“최 실장. 최 실장을 안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군. 최 실장이 우리 아들의 친구라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네. 이제 경호실장이 아닌 보좌관이 되어 정치에 발을 들여보는 것이 어떤가?”


“맡겨만 주신다면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놈이지만 최선을 다해 후보님을 보좌하겠습니다.”


“예끼, 이 사람아. 스스로를 어찌 개나 말에 비유하나. 그래도 참 고맙군. 최 실장, 아니 최 보좌관. 오늘부터 잘 부탁하겠네.”


이렇게 나는 대통령 후보 보좌관이 되었다.

솔직히 처음부터 김 의원 아래에서 정치 생활을 하던 이들에겐 낙하산도 이런 낙하산이 없었겠지.


물론 낙하산을 꼽아준 이유는 있었다.

김 의원은 더러운 일을 대행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납치, 감금, 협박.

나는 이런 불법적인 일을 대행해주는 대가로 장차 꽃길을 예약한 것이다.


“후보님. 아니, 대통령 당선인님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최 보좌관.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로 대통령 비서실에 한 자리를 마련해 줄 것을 약속하지. 수고 많았네.”


“대통령 당선인님의 호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의 이런 노력이 꽃을 피운 걸까?

김 의원은 미세한 차이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김 의원의 대통령 당선 이튿날.

나는 퍽치기를 당했다.


***


어느 폐공장 안.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온몸이 속박되어 있었다.

눈을 떠서 주변을 살펴보니 장소도 익숙하다.

그간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출근 도장을 찍던 그 공장이다.


‘아... 이번엔 내가 납치를 당했구나.’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장소라 오히려 긴장감이 사라졌다.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나.

여기에 온 이상, 이미 끝이란 사실을.

여기서 면담한 인물들은 다시 만나는 일이 없었다.


어쩌면 아니,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만 없어지면 김 의원이 저질렀던 수많은 불법적인 일이 모두 묻힌다.

나는 수저가 없으니 이렇게 사라진다 한들 아무 뒤탈도 없다.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최고의 인선이야.

정치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깡패들을 노려보았다.

깡패들 사이에서 나의 20년 지기 그놈이 걸어나왔다.


나는 그놈을 향해 으르렁거리듯 말을 꺼냈다.


“이번엔 내 차례냐?”


“역시 우리 최 보좌관님. 상황 파악이 아주 빠르시다니까?”


“그냥 묻으면 되지. 굳이 납치까지 할 이유가 있었냐?”


“뭐... 마지막 인사라도 할까 싶어서?”


“하, 씨발...”


뭐? 마지막 인사?

이게 승자의 여유란 거냐?


나는 욕설을 끝으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김 의원의 보좌관이 되어 온갖 불법적인 일을 담당하였을 시점부터?

아니면 여단장의 권유를 무시하고 전역한 시점부터?

그것도 아니면 이제는 20년 지기 웬수가 되어버린 이 새끼를 알게 된 시점부터?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끝도 없다.

내가 고아원에 버려진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나?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시점부터 이미 답이 없었던 인생이었던 걸까?

어쩌면 수저가 없는 아이는 성공할 수 없는 이 사회부터가 문제가 아닐까?


사실 다 의미 없는 고민이다.

나에게 허락된 삶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운학아. 그동안 즐거웠다. 잘 가라.”


즐겁긴 개뿔.

20년이란 세월, 함께 해서 더러웠다.

다시 만날 일은 없겠구나.


나는 팔에 주사바늘이 꼽히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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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러시아 내전 +3 24.08.31 820 17 11쪽
16 시베리아 출병 +1 24.08.31 810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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