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소련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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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라니
작품등록일 :
2024.08.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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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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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초대

DUMMY

1918년 1월 4일 늦은 밤.

인민위원회 의장 블라디미르 레닌의 저택.


“페치카 동지. 오는 길이 힘들지는 않았는가? 이 사람이 혁명을 수호하느라 바쁜 사람을 괜히 이 늦은 시간에 초대하였나 싶군.”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보다는 인민위원장 동지께서 훨씬 더 고생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전 러시아 인민들이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어허. 인민위원장 동지라니. 무슨 그렇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을 사용하는가. 여긴 내 자택인데 그렇게까지 예의 차릴 필요 없네. 전처럼 편하게 레닌 동지라 부르게.”


볼셰비키 혁명정부가 시행하는 모든 개혁은 레닌의 검토를 거쳐 시행된다.

그러다 보니 레닌이 신경 써야 할 업무의 양은 항상 상상을 초월했다.

그렇다고 이걸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엔 볼셰비키에서 레닌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혁명 완수를 위해 쉴 새 없이 달려가던 레닌이 나를 저택에 초대했다.

이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달려가야 마땅하지.


레닌도 참 대단한 점이.

러시아라는 대국의 1인자가 되었으면 현실과 타협하고 권력에 취할 만도 한데.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페치카 동지. 이제 난 보이지도 안 나봐?”


“하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외무인민위원 동지. 레닌 동지께 인사드리고 바로 인사드리려고 했습니다.”


“외무인민위원 동지는 무슨. 나도 그냥 트로츠키라고 불러.”


트로츠키도 여전했다.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2인자로 자리매김한 트로츠키다.

그러나 특유의 오만한 성격으로 인해 볼셰비키 내에서 막상 트로츠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근데 왜 레닌의 부름을 받고 온 저택에 트로츠키가 함께 있냐?

생각해보면 한창 혁명 준비할 적엔 이렇게 3명이 함께 하는 시간이 참 많았었는데.


뭐, 볼셰비키 혁명 이후로 각자 바빴으니까.

내가 일부러 정치랑 조금 떨어져 지낸 것도 있었고.


“트로츠키 동지와 강화 협상에 대해 논의하다가 페치카 동지 이야기가 나와 실례를 무릅쓰고 밤늦게 초대했네. 지금이 아니면 이야기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실례라니요? 제가 어찌 레닌 동지의 부름을 실례라 느끼겠습니까? 언제든 불러만 주십시오. 레닌 동지의 부름이라면 자다가 맨발로라도 달려오겠습니다.”


“하하하. 이거 보시오, 레닌 동지. 내가 뭐라 그랬소? 페치카 동지라면 오히려 좋아할 거라고 그랬지? 페치카 동지는 가만 보면 말을 참 잘하는 것 같아. 들어보면 분명 과장이 심한데 이게 듣기가 나쁘지 않다니까?”


손님에게도 정중한 레닌.

마치 제집인 마냥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트로츠키.


이렇듯 극과 극의 성격을 지닌 두 사람이지만.

그들은 서로 가장 신뢰하는 동지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날 초대한 이유가 강화 협상 때문이라고?

독일과의 강화 협상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거 어차피 실패할 강화 협상이잖아?


“페치카 동지, 혹시 현재 독일과 논의 중인 강화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들은 바가 있나?”


“강화 협상이 매우 더디고 잘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은 우리 러시아는 무병합·무배상 강화를 원하고, 독일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영토를 요구하고 있다는 정도입니다.”


이 지지부진한 강화 협상이 타결되려면 어느 한쪽에서 크게 양보해야 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냐.


뭐, 어쨌든 날 이 자리에 불러서 의견을 물어본다는 것은.

둘 사이에 의견이 완전히 다르다는 거겠지?


“나 레닌은 독일이 요구하는 영토와 배상금을 지불하고라도 강화 조약을 받아들여 한숨 돌릴 여유를 가지고 싶네. 그러나 트로츠키 이 친구의 생각은 다른가 보더군.”


“전쟁의 종결은 노동자들의 세계 혁명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어. 독일과 강화를 하는 것 자체가 독일 노동자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페치카 동지도 나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에 동의하지 않았나?”


독일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더라도 강화를 원하는 레닌.

애당초 독일과 강화를 할 생각조차 없는 트로츠키.

레닌과 트로츠키는 서로를 설복시킬 수 없었기에 나를 부른 듯했다.


나야 여기서 둘 중 한 명의 편을 들라고 하면 솔직히 레닌 편이긴 하지.

근데 이게... 내가 나서서 의견을 내도 되려나?


“이건 혁명정부 인민위원회에서 토의해야 하는 부분이 아닙니까? 저는 적위대장이지 볼셰비키 혁명정부의 정책에 관여할 수 있는 의원이 아닙니다.”


내가 대선 후보의 낙하산 보좌관을 하면서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면.

낙하산은 누구보다 처신을 잘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금만 처신을 잘못해도 엄청나게 욕을 먹게 되거든.


나는 적위대장이다.

볼셰비키 혁명정부가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부대를 이끄는 사람이라는 소리다.


근데 내가 혁명정부의 정책 채택 과정에까지 관여한다?

분명 여기저기서 말이 나올 거다.

안 그래도 볼셰비키 내에 나를 시기하는 놈들이 그득한데 그놈들한테 괜히 명분을 던져줄 필요는 없잖아?


그러나 나의 이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레닌과 트로츠키는 나의 의견을 듣길 원했다.


“페치카 동지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겠네. 나 레닌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네. 이 자리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다른 동지의 귀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란 것을. 우리는 단지 전직 육군 장교의 조언을 듣고 우리의 논의를 이어가고 싶을 뿐이네.”


“그래, 페치카 동지는 직접 전선에서 독일과 싸워 본 적도 있지 않나. 나 트로츠키도 약속하지. 오늘의 대화가 절대 동지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걸. 우리는 독일과의 전쟁을 직접 겪어본 동지의 의견을 참조하고 싶을 뿐이니까. 부담가지지 말고 이야기해봐.”


아, 이렇게까지 판을 깔아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기는 하는데.

살짝 말해보기라도 할까?


내가 대선 후보의 낙하산 보좌관을 하면서 깨달은 점이 또 하나 있다면.

기회는 잡아야 한다는 거다.

사실 강화 협상에 내 의견을 반영할 좋은 기회이기는 하잖아?


“레닌 동지와 트로츠키 동지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부족하지만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독일이 요구하는 영토와 배상금을 지불하고라도 강화 조약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레닌 동지께서는 이미 군대의 동원을 해제하고 이를 자발적인 민병대 조직으로 재편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동지께서 ‘국가와 혁명’에 저술하신 원칙대로 말입니다. 그런데 독일과의 전쟁이 4년 차에 접어든 현재 누가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전하고 싶겠습니까? 당연하게도 재편이 마치면 병사들은 군대에 거의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아직 전쟁 중인 국가가 군대를 해체한다니?

이게 웬 미친 짓인가 싶지만 놀랍게도.

이는 볼셰비키 혁명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인 정책이다.


근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이렇게 군대는 해체했으면서 독일의 강화 협상은 끝내 거부해버린단 거다.

진짜 빨갱이들은 단체로 머리 속이 꽃밭인가?


“뭐? 페치카 동지, 실망이군. 독일의 노동자들을 배신하자는 소리야? 우리가 조금만 도와주면 독일의 노동자들도 혁명을 일으킬 거라고!”


“트로츠키 동지, 진정하시지요. 제 이야기는 트로츠키 동지의 영구혁명론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뭐야? 독일 제국은 곧 붕괴할 거야.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우리의 승리야. 우리가 독일을 공격하지 않으면 독일도 우리를 공격하지 않겠지. 그러면 의미 없는 강화 조약이 없어도 더이상 전쟁은 없어!”


트로츠키는 흥분한 목소리로 나를 다그쳤다.

지금이 밤늦은 시간이란 사실을 잊기라도 했는지 트로츠키의 목소리는 온 방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나 애당초 의견을 내뱉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의견을 내뱉은 이상 나도 물러설 수 없었다.

이대로 강화 협상이 결렬되면 꿈도 희망도 없는 결과가 기다린다.


러시아의 군대가 얼마나 형편이 없었으면.

독일군은 기관총병을 열차에 태운 후 수시로 내려서 해당 지역의 소비에트 지도자를 사로잡고 다시 열차를 타고 진군하는 기상천외한 짓을 벌인다.


그야말로 철도 진군.

에휴, 니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노동자라도 동원해서 철도라도 좀 끊어보지 그랬냐.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트로츠키 동지의 말대로 독일 제국은 반드시 붕괴할 겁니다. 그러니 일단 강화 조약을 맺고 숨을 고른 후에. 그때 가서 조약 무효화를 선언하면 그만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세계 혁명은 어쩌고?”


트로츠키는 흥분하며 영구혁명론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독일 혁명의 영향을 받아 서유럽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유럽 혁명의 영향을 받아 미국에서도 혁명이 일어나면.

전 세계는 공산주의로 대동단결!


볼셰비키 혁명을 준비하면서 몇 번이나 들은 트로츠키의 혁명이론을 또 듣고 있으니 솔직히 속으로 열불이 났다.

아니, 당신이 아무리 그렇게 주장해도 난 그런 역사를 들어본 적이 없다니까?

독일에서도 서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공산주의로 대동단결 같은 거 안 일어난다고!


후, 앞으로 아무리 못해도 최소 5년 정도는 볼셰비키의 2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을 트로츠키랑 벌써 선을 그을 수도 없고.

나는 속으로 화를 삼키며 트로츠키의 연설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트로츠키 동지, 진정하시오. 이야기가 너무 과열됐소. 동지의 영구혁명론은 오늘 또 강의하지 않아도 나 레닌도 여기 있는 페치카 동지도 모두 알고 있소.”


다행히 옆에서 듣고 있던 레닌이 적절히 나서서 트로츠키를 제지했다.

레닌 동지 만세!


다행히 트로츠키도 한차례 연설을 마치고 나니 어느 정도 만족이 된 듯했다.

트로츠키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음을 느끼고 나는 질문을 이어갔다.


“트로츠키 동지.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강화 조약 없이도 독일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장교 출신이 그것도 모르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병사들을 지휘한 거야? 잘 들어봐. 독일은 현재 양면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그런데 우리가 더이상 독일을 공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어?”


트로츠키 새끼, 말하는 꼬라지 봐라.

네가 평소에 그따구로 말하니까 볼셰비키의 2인자 주제에 네 편이 하나도 없는 거야.


후, 침착하자.

트로츠키의 원색적인 비난 따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거야.

논리적으로 이길 수만 있다면 충분히 설득할 수 있어.


우리가 독일을 공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고?

그건 역사가 증명하지.


독일은 협상 결렬 2달 만에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한다.

그후 러시아의 수도 페트로그라드를 목전에 둔 독일은 러시아에 굴욕적인 조약을 강요하는데.

독일은 이 조약에서 무려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캅카스 지역 등 러시아 유럽 영토의 절반에 가까운 영토를 요구한다.


조금 이해하기 쉽게 비교하자면 이때 독일이 러시아에 요구한 영토는 한반도의 10배에 달하는 크기였다.

이 영토에는 러시아 인구의 40%인 5600만이 살고 있었고, 석탄의 90%, 철강의 70%, 산업의 50%, 철도의 25%가 존재했다.


이걸 생각하면 지금 독일이 요구하는 정도는 진짜 귀여운 수준이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정도로 강화 협상을 타결시킬 수 있다면 시쳇말로 개이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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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볼셰비키 적군 +2 24.09.01 766 18 11쪽
18 독일 혁명 +1 24.08.31 784 16 12쪽
17 러시아 내전 +3 24.08.31 820 17 11쪽
16 시베리아 출병 +1 24.08.31 810 16 11쪽
15 스탈린과 친구들 24.08.30 854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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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닌의 초대 +1 24.08.29 822 17 12쪽
8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1 24.08.29 830 19 12쪽
7 볼셰비키 혁명 +2 24.08.29 852 26 11쪽
6 적위대장 페치카 +1 24.08.29 868 21 11쪽
5 레닌의 러닝메이트 +3 24.08.28 917 20 11쪽
4 볼셰비키 입당과 트로츠키 +3 24.08.28 948 1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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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러시아 제국군 대위 최운학 +3 24.08.28 1,064 2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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