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소련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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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라니
작품등록일 :
2024.08.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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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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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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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 소비에트 공화국

DUMMY

옴스크를 점령하고 시베리아 임시정부의 최고지도자 콜차크를 체포한 후, 나는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따라 볼셰비키 적군을 진군시켰다.

시베리아 임시정부가 패망하며 시베리아는 사실상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고, 나는 바이칼 호수 근처의 도시 이르쿠츠크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일본군과 대면했다.


이르쿠츠크에 도달한 시점에서 내 군대는 300만에서 200만으로 줄어 있었다.

이는 전투로 인한 사상자 발생보다는 시베리아 점령지에 대한 소비에트 설립과 치안 유지를 위한 부대를 위해 부대를 조금씩 남겨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록 총 병력은 줄어들었을지언정 시베리아 임시정부를 멸망시키며 노획한 전차, 항공기, 야포 덕분에 내 군대의 전투력은 오히려 한층 더 강해진 상태였다.


“국방차관 동지. 극동지방 해방과 조선 독립을 위해 한인사회당도 함께 하겠습니다.”


“한 명의 조선인으로서 한인사회당의 합류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러시아 내 조선인들을 잘 이끌어 주십시오.”


볼셰비키 적군의 이르쿠츠크 공세에는 조선인들의 사회주의 정당 한인사회당도 합류했다.

한인사회당이 이끄는 병력은 겨우 수백에 불과하여 전황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동휘를 비롯한 저명한 항일독립운동가들이 내 군대에 합류한 것 자체가 기뻤다.

이는 조선인 사이에서 내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침략자를 몰아내고 이르쿠츠크를 해방하라!”


나는 시베리아 전선에서 노획한 전차를 앞세워 이르쿠츠크로 진격했다.


일본은 시베리아 출병에 7만3천 명을 파병했지만, 워낙 넓은 점령지를 유지하느라 막상 이르쿠츠크에 주둔한 병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르쿠츠크에 주둔한 일본군은 1개 사단에 불과했고, 이는 200만에 달하는 볼셰비키 적군의 진군을 막아서기엔 절대적으로 부족한 병력이었다.


결국 일본군은 이르쿠츠크 방어를 포기했다.

일본군은 그간 체포했던 친 볼셰비키 인사들과 조선 독립군들을 모두 처형한 후 바이칼 호수 서쪽의 도시 치타로 퇴각했다.


이르쿠츠크를 해방한 후, 나는 볼셰비키 적군의 진군을 멈추었다.

이는 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서 지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내가 이르쿠츠크를 해방한 시점에서 러시아 내전의 승리를 선언하고, 외교적으로 협상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남러시아 백군이 이스탄불로 도주하고 시베리아 임시정부가 해체된 시점에서 협상국은 이미 러시아 내전의 승패가 결정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협상국의 아낌 없는 지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반 볼셰비키 세력은 사실상 궤멸했다.


러시아에 남은 백군은 대몽골제국의 재건을 꿈꾸는 이단아 그리고리 세묘노프만이 남아 있었다.

세묘노프의 세력도 자바이칼 지방의 도시 치타를 근거지로 두고 있었기에 아직 볼셰비키 적군이 도달하지 못하였을 뿐, 볼셰비키 적군의 진군이 재개되면 순식간에 쓸려나갈 세력이었다.


이처럼 러시아 내전은 원래 역사보다 훨씬 빠르게 종결을 맞이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모든 영토로부터 군대를 철수하고 러시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러시아가 어떤 제약도 받지 않은 채 자국의 정치 발전과 국가 정책에 대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합시다. 러시아가 스스로 선택한 제도 아래에서 자유로운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진심으로 환영을 받을 수 있도록 세계가 최선을 다해 협력해야 합니다.”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간섭 전쟁을 펼쳤던 협상국은 러시아 내전이 볼셰비키의 승리로 끝날 기미가 보이자 볼셰비키 정권을 인정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는 각국의 반전 여론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세계대전의 여파로 지친 각국의 국민들은 타국의 정권 교체를 위해 전쟁을 이어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이러한 국민의 여론을 의식하여 러시아 내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협상국의 간섭 전쟁이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러한 협상국의 철수 움직임에 오직 일본만이 반발하고 나섰다.


“일본은 영국과 프랑스의 요청으로 시베리아 출병을 단행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와 협의 하나 없이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권을 인정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협상국의 요청에 따라 일본군이 흘린 피에 대한 대가를 요구합니다. 최소한 극동지방만큼은 볼셰비키에 대항하는 정권이 세워져야 합니다.”


시베리아 출병에 가장 많은 군사를 파견한 일본은 연해주를 비롯한 극동지방을 점령하여 자국 영토로 편입할 야심이 가득했다.

협상국의 반발로 자국 영토로 편입할 수 없다면 최소한 괴뢰국은 세워야 마땅했다.


“우리는 서부전선에서 그보다 훨씬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일본군은 서부전선 파병 요청을 철저히 무시했잖습니까? 대전쟁의 승리에 공헌한 정도를 따지자면 일본은 최하위권입니다. 협상국은 극동지방에 대한 일본의 야심을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일본군은 당초 협상국과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더 진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이내 일본군은 이 약속을 잊은듯 북사할린, 연해주, 북만주철도를 차례로 점령했고, 최종적으로는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따라 진군하여 바이칼 호수 동쪽의 이르쿠츠크까지 점령지를 확대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같은 협상국들이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을 비난하고 나섰다.

특히 태평양 패권을 지향하는 미국은 전쟁까지 거론하며 일본을 압박했다.


“세계가 공산주의에 굴복하더라도 일본은 절대 이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극동지방은 공산주의를 막을 방파제가 될 것이며, 일본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극동지방을 수호할 것을 천명합니다.”


협상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극동지방의 지배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도리어 일본은 이를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일본의 희생이라며 당당하게 주장했다.

이미 러시아 내전의 승리을 선언한 볼셰비키 혁명정부에게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은 정권에 부담이 가는 행위였다.


“러일협약을 기억하십시오. 한반도가 정당한 일본의 영토이듯 극동지방은 정당한 러시아의 영토입니다.”


“그 협약은 러시아 제국과 맺은 협약입니다. 일본은 당신들이 러시아 제국을 계승한 합법적인 정부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볼셰비키도 직접 나서서 일본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볼셰비키는 일단 일본의 점령지를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분리해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이라는 완충국을 건국했다.

겉으로나마 극동지방을 별개 국가로 독립시킨 볼셰비키는 러시아 내전은 종결했고, 앞으로 극동 지방에서 계속될 전쟁은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과 일본 제국의 전쟁이라 선언했다.

이러한 조치로 협상국과의 외교적인 문제와 볼셰비키 내부의 정치적인 문제가 해결되자 나는 드디어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볼셰비키 적군을 진군시킬 수 있었다.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극동 지방의 혁명을 수호할 것이다! 치타를 해방하라! 일본군을 몰아내고 혁명을 완수하자!”


치타는 시베리아횡단철도와 북만주철도가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는 치타가 점령당하면 볼셰비키 적군은 철도를 따라 두 갈래 길로 진군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상대적으로 병력이 부족한 일본군은 전장이 두 방면으로 나뉘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볼셰비키 적군과 일본군은 치타에서 다시 한번 맞닥뜨렸다.

일본군은 시베리아 출병에 투입된 병력을 모두 모아 치타 방어에 나섰다.

치타에는 마지막 남은 백군 세묘노프도 주둔하고 있었으므로 일본군은 이들과 힘을 합쳐 볼셰비키 적군의 진군을 막아섰다.


“아군 전차 뒤에 숨어서 돌격하라!”


일본군은 참호와 철조망과 기관총의 결합이라는 치트키를 사용해 볼셰비키 적군의 공세를 막아섰다.

나는 서부전선을 교훈삼아 야포로 일본군의 참호를 포격하고 전차를 돌격시켰다.


볼셰비키 적군의 총 병력이 아무리 많다 한들 작정하고 버티는 일본군을 돌파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에 나는 휘하의 정치장교 바실리 블류헤르에게 볼셰비키 적군 절반을 떼어주며 치타를 우회시켰다.

볼셰비키 적군은 절반만 우회시켜도 그 숫자가 100만에 달했고, 일본군의 주력이 치타에 묶인 이상 이들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치타를 우회하여 아무르강을 따라 진군한 블류헤르는 마침내 극동지방의 중심도시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하바롭스크는 치타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에 있는 도시로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주요기착지였다.

즉, 하바롭스크가 점령당하면 치타에서 버티고 있는 일본군이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사용해서는 퇴각을 할 수 없어진다는 의미였다.


치타에 주력군이 묶인 일본군은 블류헤르의 우회를 눈치채고도 하바롭스크를 지킬 부대를 파견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하바롭스크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은 겨우 1개 연대뿐이었다.

참호와 철조망과 기관총의 결합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 법.

하바롭스크는 블류헤르의 손에 해방되었다.


“뭐? 하바롭스크가 함락되었다고? 젠장! 전군은 지금 당장 퇴각을 준비하라! 북만주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간다!”


하바롭스크가 함락된 이상 일본군이 목숨을 걸고 치타를 지킬 의미가 없어졌다.

하바롭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는 그리 멀지 않았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함락된다면 일본이 시베리아 출병에서 얻은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일본이 이번 시베리아 출병에서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남기려면 최소한 블라디보스토크만큼은 지켜야 했다.

결국 일본군은 치타를 포기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퇴각했다.


“국방차관 동지. 일본군이 퇴각하는 모습이 관측되었습니다!”


“블류헤르 동지가 드디어 하바롭스크를 함락시켰나 보군. 일본군이 없는 치타는 망설일 필요가 없지. 전군, 돌격하라!”


일본군이 북만주철도를 타고 퇴각하자 덩달아 그리고리 세묘노프의 백군도 해체되었다.

백군은 제각각 자기 살길을 찾아 도망갔고, 세묘노프는 퇴각하는 일본군을 따라 블라디보스토크로 도주했다.

치타를 점령한 후, 나는 곧장 퇴각하는 일본군의 뒤를 쫓았다.


“일본군은 중국 국경을 넘어 도주했습니다. 이를 추격하면 중국과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책임은 내가 지도록 하지. 그대로 진군하게.”


중국의 반발은 가볍게 무시했다.

중국은 위안스카이의 죽음으로 각지에서 군벌이 난립하며 러시아 이상으로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다.

장제스의 북벌로 중국이 재통일되기 전까지 중국은 경계할만한 대상이 못 되었다.


또한 북만주철도는 애당초 러시아 제국이 운영하던 철도였다.

볼셰비키 적군이 북만주철도를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였다.

볼셰비키 적군은 중국 내몽골 지역의 국경도시 만저우리를 넘어 하얼빈에 이르렀다.


“여기가 안중근 의사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그 하얼빈이군. 확실히 러시아풍의 건축물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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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시베리아 출병 +1 24.08.31 810 16 11쪽
15 스탈린과 친구들 24.08.30 854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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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레닌의 초대 +1 24.08.29 822 17 12쪽
8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1 24.08.29 831 19 12쪽
7 볼셰비키 혁명 +2 24.08.29 853 26 11쪽
6 적위대장 페치카 +1 24.08.29 868 21 11쪽
5 레닌의 러닝메이트 +3 24.08.28 917 20 11쪽
4 볼셰비키 입당과 트로츠키 +3 24.08.28 948 1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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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러시아 제국군 대위 최운학 +3 24.08.28 1,064 2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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