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소련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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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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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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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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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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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강화 회의

DUMMY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영국이 중재에 나섰다.

영국의 중재 아래 평양에서 일본과 러시아 간의 강화회의가 개최되었다.

일본 측에서는 하라 총리의 정당 입헌정우회 소속 국회의원 다카하시 고레키요가 특별사절단을 이끌고 강화회의에 참여했고, 러시아 측에서는 볼셰비키 서열 3위 스탈린이 직접 이 동방의 끝자락까지 발걸음했다.


“먼저,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본 협상에 임하는 주체가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이 아닌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임을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스탈린은 협상의 주체를 명확히 했다.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은 이미 러시아 내전의 종전을 선언했으므로, 이 전쟁은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과 일본 제국 간의 문제라는 것이다.

뭐,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을 전면에 내세운들 그 누구도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이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대일본제국은 존경하는 블라디미르 레닌 의장께서 주장하신 무병합·무배상 강화를 요청합니다. 대일본제국과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은 서로 모든 점령지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전쟁 전의 상태로 돌아갑시다.”


일본은 과거 레닌의 선언을 근거 삼아 무병합·무배상 강화를 요청했다.

현재 일본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점거하고 있었고, 이에 더불어 과거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북사할린도 장악하고 있었다.

일본은 이 두 지역을 돌려주고 내가 점령한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를 돌려받길 원했다.


이 조건대로 강화 조약이 체결되면 일본은 큰 손실 없이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일본이 시베리아 출병으로 소모한 군비 정도는 1차 세계대전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충분히 만회하고 남으니 말이다.


근데 우리가 왜 무병합·무배상 강화를 해야 하지?

너희가 점령하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북사할린이랑 우리가 점령하고 있는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의 가치가 엄연히 다른데?


“일본은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의 영토를 선전포고도 없이 침공하여, 수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본국은 이러한 만행에 분노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와 피해보상이 선행되어야 함을 알립니다.”


스탈린은 말도 안 되는 일본의 요구는 무시하고 먼저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묻고 나섰다.


일본이 극동 지방에서 자행한 전쟁범죄는 수도 없이 많다.

당장 조선인 정착촌인 신한촌에서 벌인 학살은 현대에도 유명한 참변이다.


현지 러시아 여성에 대한 강간도 만연했는데, 강간으로 말미암아 일본군 7만 중에 1만 명이 성병에 걸려 전투력이 저하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는 훗날 일본군 위안부를 설립하는 계기가 된다.

전시 강간의 교훈이랍시고 시작한 것이 바로 성노예 부대 운영인 것이다.


아무튼 우리 입장에서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은 명백한 침략 행위였다.

이에 우리는 전쟁의 책임을 일본에 돌리며 사죄와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이는 간접적으로 무병합·무배상 강화는 없다는 선포이기도 했다.


스탈린은 사죄와 피해보상 요구에 이어 준비해둔 구체적인 강화 조건들을 제시했다.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은 다음 네 가지 조건을 요구합니다. 첫째, 전범국 일본은 블라디보스토크와 북사할린에서 군대를 철수할 것을 요구합니다. 둘째, 러일전쟁의 결과로 빼앗긴 남만주철도와 남사할린 지역의 반환을 요구합니다. 셋째, 침략 행위에 대한 피해보상금으로 금 500톤을 요구합니다. 넷째, 현 점령지를 기준으로 정전을 요구합니다.”


나는 스탈린과 사전에 이 요구사항들을 충분히 논의하고 확정해둔 상태였다.

우리의 요구사항들을 하나씩 분석해 보자면.


첫째, 전범국 일본의 군대 철수.

일본도 군대 철수 자체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지만, 문제는 '전범국'이라는 표현이다.

일본은 전범국이란 단어를 절대 용납할 수 없을걸?

이 시대의 전범국은 전쟁에 대한 책임 유무보다는 패전국을 가리키는 단어였으니까.


둘째, 남만주철도와 남사할린.

러일전쟁의 결과로 러시아가 일본에 빼앗긴 것들이다.

남만주철도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부설권을 빼앗겼긴 했지만 어쨌든 본래 러시아 소유가 될 예정이었다고?

역사적인 명분이 충분한 요구다.


셋째, 피해보상금 금 500톤.

일본도 금본위제 나라였기에 화폐를 발행할 충분한 금괴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시대 일본의 보유 금괴가 약 800톤이었으니 우리는 일본 보유 금괴의 약 60%를 요구한 것이다.

이는 시베리아 출병을 통해 일본이 러시아에서 빼돌린 금괴의 약 8배에 해당하는 양이기도 했다.


넷째, 현 점령지.

이는 내가 점령한 조선 북방의 평안도와 황해도와 함경도를 가리킨다.

볼셰비키 적군이 피를 흘려 점령한 영토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지.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의 요구는 들어줄 가치조차 없습니다! 강화 협상을 이어가고 싶다면 좀 더 현실적인 요구를 가져오십시오.”


“일본의 요구도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집니다. 최소한 전쟁을 일으킨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은 스스로 주제 파악부터 마치고 다음 협상에 임하여 주시길 기대합니다.”


강화 회담 첫날, 양측은 각자의 정전 조건을 제시하고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나 그날의 대화는 일종의 입장 확인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협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중재에 나선 영국 대표는 협상을 원활하게 이끌기 위해 양측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무병합·무배상 강화라는 조건은 일본이 철회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협상국이 러시아 내전에서 발을 뺄 당시 함께 발을 빼지 않은 것은 일본이 시베리아를 정복할 야욕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이 전범국이라는 표현을 철회해준다면 협상이 훨씬 유연해질 것입니다. 이는 일본 내각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입니다.”


영국의 중재에 따라 일본은 무병합·무배상 강화를 포기했고, 러시아는 일본을 전범국이라 칭하는 것을 철회했다.


그러나 영국의 중재가 잘 먹힌 것도 여기까지.

다른 요구 조건에 대해서는 영국의 중재가 먹혀들지 않았다.


영국은 러시아가 적절한 피해보상금을 받고 점령지에서 완전히 물러나길 원했다.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것은 수 세기 동안 이어진 영국의 주요 정책이었고, 이를 위해 영국은 러일전쟁 당시 일본을 후원하기도 했던 나라였다.

영국은 여전히 러시아의 남하가 반갑지 않았고, 이번에도 어떻게든 러시아가 조선에서 물러나길 원했다.


“페치카 동지, 영국이 일본의 편을 들기로 작정한 것 같소. 동지는 어떻게 하고 싶소? 사실 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사할린만 돌려받아도 충분히 만족할 거요.”


“스탈린 동지, 이미 적지 않은 조선인들이 볼셰비키 적군에 입대해 피를 흘린 상황입니다. 그들의 희생을 무위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미국을 중재자로 끌어들이는 방안은 어떻겠습니까? 미국이라면 영국처럼 대놓고 일본의 편을 들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영국의 편파적인 중재에 반발해 미국을 끌어들였다.

마침 미국은 일본의 시베리아 정복 야욕에 학을 떨고 있지 않나.

미국은 태평양 패권을 위해 일본을 견제할 생각이 충만했고, 우리의 중재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미국은 협상 테이블에 앉자마자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남만주철도는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이 양보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비록 부설권을 빼앗기긴 했지만, 결국 남만주철도는 일본의 자본으로 건설된 철도이지 않습니까. 이를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에 반환하라는 요구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습니다. 그 대신 일본이 충분한 전쟁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중재하겠습니다.”


“남사할린은 일본이 양보해야 합니다. 솔직히 남사할린은 일본인이 사는 영토도 아니지 않습니까. 남사할린에서 일본이 얻는 국익도 미비하고 말입니다. 남사할린을 포기하는 대신 남만주철도를 지킨다면 이는 일본에 유리한 협상입니다.”


영국과 미국이 함께 중재에 나서자 막혀있던 중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본과 러시아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타협점을 찾아갔다.

일본은 남사할린을 포기하는 대신 남만주철도를 돌려받는 조건을 받아들였고, 러시아에게 전쟁위로금으로 금 500톤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마지막 요구사항이었다.

일본은 조선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버텼고, 우리도 조선에서의 전면적인 철수는 강력히 반대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조선 문제가 부딪히자, 양국은 강화 협상을 중재하고 있는 영국과 미국을 상대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나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영국과 미국을 설득했다.


“영국 대사. 러시아는 충분히 폴란드 전역을 정복할 여력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국을 존중해 중재를 받아들였습니다. 러시아가 유럽에서 한 발짝 양보한 만큼 영국도 아시아에서 한 발짝 양보해주시길 기대합니다.”


“미국 대사. 러시아는 미국의 태평양 이권을 위협할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러시아는 지금 해군력이 거의 전무한 상태입니다. 반면 일본은 범아시아주의를 내세워 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일본의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장차 미국의 태평양 패권을 위협할 국가는 러시아가 아니라 일본입니다.”


영국에겐 폴란드에서의 양보를 강조했다.

나는 폴란드군을 모조리 전멸시키고도 폴란드 영토로 진격하지 않고 영국의 중재를 받아들인 과거가 있었다.

사실은 역사를 비추어 보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시작되는 대국민적인 반격을 우려하여 진격을 멈춘 것이지만, 영국이 이걸 어떻게 알겠는가.

폴란드에서의 양보는 누가 봐도 러시아가 승세를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중재를 존중했던 모양새였고, 나는 이를 명분 삼아 조선에서의 양보를 요구했다.


미국에겐 태평양 이권을 강조했다.

러시아는 지금 해군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러시아 제국의 자랑스러운 발트함대와 태평양함대는 모두 백군 측에서 내전에 참전했고, 백군의 패배가 명확해지자 전함을 이끌고 타국으로 망명해버렸다.

그나마 러시아에 남은 함대는 북방함대뿐.

이로써는 미국의 태평양 이권을 위협하긴커녕 타국의 침략에 러시아 해안을 지킬 능력조차 부족했다.

그렇기에 나는 현재의 러시아가 미국과 태평양에서 경쟁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반면, 일본은 과거의 조약에 근거로 영미 양국을 설득했다.


“영국 대사. 사건의 발단인 시베리아 출병은 영국의 요청이었잖습니까? 일본은 오랜 동맹 영국의 요청에 따라 시베리아 출병을 단행한 것입니다. 일본은 러일전쟁 당시 우리를 지지해줬던 영국의 의지를 믿습니다. 이대로 러시아의 남하를 용인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미국 대사. 조선은 열강이 공인한 대일본제국의 영토입니다. 일본과 미국은 1905년 밀약을 맺지 않았습니까. 첫째,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의도를 갖지 않는다. 둘째, 극동의 평화 유지를 위해 미국, 영국, 일본은 동맹관계를 확보한다. 셋째, 미국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 이 밀약에 따라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 통치를 존중하듯 미국도 일본의 조선 통치를 존중해 주십시오.”


영국에겐 오랜 동맹관계를 강조했다.

일본은 영일동맹이 앞으로도 쭉 이어지길 원했다.


미국에겐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강조했다.

여기엔 미국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존중하지 않으면 일본도 미국의 필리핀 통치를 존중하지 않겠다는 협박도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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