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소련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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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라니
작품등록일 :
2024.08.27 17:08
최근연재일 :
2024.09.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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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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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군 대위 최운학

DUMMY

“최 대위! 최 대위! 뭐해?”


최 대위?

야, 내가 군대 전역한 지가 언제인데 뭔 놈의 최 대위야?


혹시 이거 그건가?

죽기 전에 본다던 주마등인가 그거?


“최 대위! 정신 안 차려? 중대 돌격시키라고! 뭐 하는 거야?”


그래도 큰 고통 없이 잘 갔네.

20년 지기의 마지막 배려, 뭐 그런 거냐?

참 고맙기도 하다.


“야! 최 대위! 중대 돌격시키라는 말 안 들리냐!”


아, 이 몸이 과거 회상 좀 하겠다는데 어떤 새끼가 자꾸 방해하냐!

최 대위는 왜 계속 찾고 있냐?

그러니까 나는 지금 군대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저 시끄러운 코쟁이는 누구야?

어... 막 떠오르는 기억에 따르면 이 코쟁이가 내 직속상관인가?


“예, 알겠습니다! 각 소대장에게 전파한다! 모든 소대는 전방의 적진지를 향하여 일제히 돌격하라!”


아, 이런.

군 시절의 상명하복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었나?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명령이 튀어나왔다.


내 명령에 따라 100여 명의 병사들이 소총을 들고 전장으로 뛰어나갔다.

딱 보아하니 쟤들이 내 밑에 배속된 병사들이다.


그러고 보니 나 여태껏 코쟁이랑 러시아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네?

여기서 웃긴 점이 명령은 또 한국어로 내뱉었다.


코쟁이가 나를 닦달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군.

그러니까 저 망할 직속상관 코쟁이는 나를 통하지 않으면 병사들이랑 소통할 방법이 없는 거다.


내가 이끄는 중대는 러시아 제국에 귀화한 조선인으로 구성된 중대니까.

러시아 제국에 귀화했다고 전부 러시아어에 능통하지는 않다.

근데 이건 다 누구 기억이냐?


‘으윽.’


나는 갑자기 솟구치는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기억이 강제로 쑤셔 넣듯 내게 주입되었다.


“야, 최 대위! 오늘따라 왜 이래? 야! 야! 의무병! 의무병!”


나는 나에게 명령을 내린 코쟁이, 아니 대대장이 의무병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며 쓰러졌다.


***


다음 날 아침.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린 장소는 의무실이었다.


“대위님, 정신이 드십니까?”


“그렇네. 내가 왜 여기에서 깨어났지?”


“전장에서 갑자기 쓰러졌다고 들었습니다. 외상은 딱히 없는 것으로 보아 스트레스성 쇼크가 의심됩니다.”


스트레스성 쇼크?

아, 맞다.

이 상황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떠올리지 못했다.


이게 지금 무슨 일이야?

내가 왜 러시아 제국군 대위야?


머리가 아프다.

머릿속에 기억이 혼재했다.


내가 내가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 보좌관이었던 최운학이 아니다.

나는 지금 러시아 제국군 대위 최운학이다.


“지금은 어떠십니까? 두통이 심하다거나 갑자기 쓰러질 것 같다거나 그런 문제는 없습니까?”


“어... 괜찮네. 의무실에서 휴식을 취한 덕에 좀 안정이 된 것 같아. 요즘 통 잠에 못 들어서 그랬나 보군.”


“괜찮으시다면 막사로 돌아가셔도 무방합니다. 따로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내방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나는 의무실에서 나와 내 막사로 걸어가며 강제 주입된 기억을 되새겼다.

내가 속한 전장은 러시아 제국과 독일 제국이 맞붙는 동부전선.

떠오르는 기억에 따르면 나는 1차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장교로 징집되어 3년간 전장에서 굴러가며 중대장까지 진급한 상태다.


일단 임관 3년 만에 중대장이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진급 속도다.

아니, 전쟁 중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느린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여기서 또 조선인이라는 내 수저를 생각하면 느린 진급 같지도 않다.


1차대전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났으니 현재 시점은 1917년.

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현재 내가 속한 러시아 제국은 매우 위험한 상태다.


지금 중요한 것은 1914년에 발발한 1차대전이 아니다.

아니, 1차대전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1917년은 미국의 참전으로 1차대전의 판세가 협상국 쪽으로 완전히 기울 시기다.

또한 나의 새로운 삶의 터전인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시기이기도 하였다.


망할! 왜 하필이면 1917년인 거냐?

나는 즉시 혁명 소식부터 수소문했다.


“혹시 너희 페트로그라드에서 일어난 혁명에 대해 뭐 들은 거 없어?”


“수도 방위대가 혁명에 가담했대. 니콜라이 2세를 폐위하고 황태자 알렉세이를 황제로 삼는다더라.”


“아니야, 내가 듣기로는 우리도 이제 프랑스처럼 공화제를 채택한다던데? 두마가 러시아 공화국을 선포한다고 들었어!”


“그럼 전쟁은? 전쟁도 끝나는 거야?”


“그건 아니야. 전쟁은 최후의 승리까지 멈추지 않을 거래.”


아, 이미 혁명은 시작되었구나.

노동자의 나라,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줄여서 소련.

그 악명 높은 독재 국가의 등장이 임박했다는 소리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일본 식민지 신세인 한반도로 귀환? 아니면 아예 2차대전도 피해갈 중립국으로 피난?’


일단 일본 식민지 신세인 한반도로 귀환하는 선택지는 미친 짓이다.

내가 거기 돌아가서 뭘 하겠냐?


친일?

1945년이면 일본제국이 패망할 것을 뻔히 아는데 이걸 하는 것은 미친 짓이고.


독립운동?

독립운동을 하려면 차라리 해외에서 하고 말지.


특히 내 가정사를 고려하면 한반도 귀환은 절대 선택할 수 없는 길이다.

이 몸, 그러니까 러시아 제국군 대위 최운학은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장남이니까.


최재형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은 독립운동가다.

최재형은 특히 연해주 지역의 민족교육과 항일 무장독립운동에 힘썼는데, 이 당시 연해주에 거하는 조선인들로서 최재형의 원조를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조선 멸망 전후 연해주 독립운동은 최재형을 빼놓고서는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최재형은 연해주 등지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런 독립운동가의 장남이 한반도로 귀환한다?

이건 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대문형무소 각이다.


그러면 고려해볼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는 중립국으로의 피난.

2차대전까지 피하려면 스위스, 스웨덴, ··· 더 없나?


와, 2차대전이 미치긴 했구나.

어떻게 선택지가 이것밖에 없냐?


중립국으로의 피난은 가장 현실적인 길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선택하기 싫은 길이다.

과거 소령 1차 진급 평가에 밀렸다고 내가 왜 전역을 선택했겠나?

한계가 뻔히 보이는 길에 내 인생을 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중립국으로의 피난이 나의 인생을 가장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이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편안한 삶보다 성공한 삶을 원한다.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신이 내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근데 이걸 그렇게 날려버린다고?

죽어도 그렇게는 안 되지.

최소한 역사에 내 이름 세글자는 남기고 가야 수지타산에 맞지 않겠냐!


‘큰 꿈을 꾸기 위해서는 큰물에서 놀아야지! 아예 떠오르는 최강대국이자 미래의 천조국 미국으로의 이민을 떠나버려?’


미래의 천조국 미국.

국가의 미래성만 보자면 참 매력적인 선택지이긴 한데.


여기서도 문제는 바로 내 수저.

이 시대에는 피부색이라고 하는 것이 좀 더 명확한 표현이려나?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다.

21세기에 와서는 흑인 대통령도 나오는 등 대부분의 인종차별이 사라졌지만, 미국은 1960년대까지도 유색인종에 대한 테러가 빈번했던 나라다.

심지어 이런 테러를 신문에 대대적으로 광고까지 했던 나라가 바로 천조국 미국이 되시겠다.


이런 미친 나라에 가서 성공하라고?

검은 머리 외국인은 성공은커녕 목숨 부지하기부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대 미국으로의 이민은 자살이나 다를 바 없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결국 남는 선택지는 하나뿐이군. 어떻게든 이 땅에서 성공한다. 이 땅 러시아에 세워질 소련이란 나라에서 말이야.’


러시아에서의 장점이라면 놀랍게도 이 시대의 러시아가 서양 열강 중에서 가장 인종차별이 적은 나라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현대의 러시아를 바라보고 있자면 말이 되나 싶지?


하지만 정말 그렇다.

이 시대의 러시아는 주요 민족인 러시아인이 인구의 50%도 되지 않던 다민족국가였거든.

그러니 타민족이라고 무조건 배척만 할 것이 아니라 품어줄 필요가 있었지.


덕분에 러시아는 황제의 신임만 있다면 유색인종도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는 나라였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라면 요승 라스푸틴이려나?


이거 예시가 나라를 망친 간신의 대명사라 좀 그렇긴 한데.

어쨌든 당시 라스푸틴은 러시아 제국에서 재상보다 더 큰 영향력을 자랑한 실세였잖냐?


더불어 장차 이 땅에 세워질 소련도 전세계에서 가장 인종차별이 적은 국가가 될 예정이었다.

소련의 핵심이념인 공산주의는 기본적으로 서양에 널리 퍼진 백인우월주의를 거부하고, 제국주의를 비난했으며, 민족자결주의를 지지하는 이념이었으니까.


물론 소련이라고 아무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도 그 지긋지긋한 수저가 또 문제다.

이 몸의 아버지 최재형은 놀랍게도 조선인 출신으로 러시아 황제를 알현하여 훈장을 받을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였거든!


문제는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본질적으로 계급에 대한 투쟁이라는 것.

그들의 눈에 나는 타도의 대상이자 개혁해야 할 적폐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소련에 정착할 계획이라면 그 유명한 스탈린 시대에 벌어질 민족적인 비극도 막아야 한다.

연해주의 조선인들이 일본에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며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하는 이 좆같은 미래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것저것 고려해보니 소련이 건국되기 전이라 그나마 다행인가? 아직은 기회가 있어. 내가 빨갱이가 되면 된다!’


적백내전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러시아 공산당에 가입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된다.

그러나 혁명의 초기 단계인 지금은?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든지 러시아 공산당에 가입할 수 있다!


거기에 나는 이 시대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수많은 정보를 알고 있지 않은가.

공부한다는 느낌보다는 탐험한다는 느낌으로 인터넷을 뒤적이며 온갖 역사적인 사건을 조사하고 살펴보는 것이 취미였던지라 소련에 대한 지식도 생각보다 해박했다.

소련의 설립과 해체까지의 대략적인 흐름, 소련의 주요 인물, 소련의 주요 정책, 소련이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끼친 영향 등.


내가 가진 이런 미래 지식만 잘 활용할 수 있다면?

내가 혁명의 주역 중 하나가 되는 것도 절대 불가능은 아니다!


만약 내가 혁명의 주역이 된다면 일단 소련의 답도 없는 이념부터 손 봐야겠지?

너도나도 거지가 되는 공산주의는 좀 그렇잖아?


생산수단의 공유화? 집단농장 도입?

이딴 망국의 지름길은 전부 막아내고.


누진세, 국민연금, 공공사업 등.

현대의 자본주의를 추구해보자.


응? 그게 무슨 공산주의냐고?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

1910년대에 이 정도면 충분히 빨갱이 소리 듣고도 남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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