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소련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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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라니
작품등록일 :
2024.08.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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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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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러시아 백군

DUMMY

한편, 탈옥하여 반볼셰비키 세력을 결집시킨 전직 육군 참모총장 알렉산드르 코르닐로프는 위대한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기치로 내걸고 남러시아 지역의 중심도시 예카테리노다르를 공격했다.

비록 코르닐로프의 죽음으로 예카테리노다르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으나, 이 전투는 산발적으로 봉기하던 반볼셰비키 세력들에게 남러시아 백군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전투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귀족, 지주, 부르주아 계층의 의용군이 남러시아 백군에 합류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뛰어난 기동력과 전투력을 자랑하는 카자크 용기병의 일부가 남러시아 백군에 합류함으로써 남러시아 백군의 전투력은 한층 강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한 안톤 데니킨은 남러시아 백군의 지휘권을 이어받아 다시 한번 예카테리노다르를 공격했다.


“이번에야말로 예카테리노다르를 점령하여 위대한 러시아 제국을 재건하자!”


이 당시 볼셰비키 적군은 모스크바 근방의 반란 세력을 우선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벨라루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방면에 주력하고 있었다.

이러한 틈을 타서 남러시아 백군은 예카테리노다르를 함락시키고 안정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예카테리노다르를 확보한 남러시아 백군은 조직을 재정비하는 한편 세력 확장을 시도했다.

남러시아 백군은 예카테리노다르를 중심으로 북캅카스 일대를 정복하였고, 이로써 러시아 전역의 반볼셰비키 세력 중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흑해 함대는 위대한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위하여 남러시아 백군에 합류하겠습니다.”


“대러시아 제국의 자랑스러운 흑해 함대의 합류를 환영하오.”


북캅카스를 정복하며 오갈 데 없이 방치되었던 흑해 함대가 남러시아 백군에 합류했다.

흑해 함대의 합류는 남러시아 백군이 외국과 통상의 길을 열어젖혔다는 것을 의미했다.


영국을 비롯한 협상국들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남러시아 백군에 전차를 비롯한 막대한 양의 군수품을 지원했다.

이로써 남러시아 백군은 질적인 면에서 볼셰비키 적군을 압도하는 성장을 이뤘다.


“시베리아의 알렉산드로 콜차크 제독이 러시아 의회의 승인을 얻어 러시아 공화국의 재건을 선언했습니다. 우리도 동쪽의 차리친을 뚫고 콜차크 제독에게 합류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우리가 콜차크 제독이 이끄는 시베리아 백군보다 훨씬 강력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합류해야 마땅하지요. 차라리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여 모스크바를 함락시키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합니다!”


북캅카스를 근거지로 거대한 세력을 이룬 남러시아 백군은 두 가지 의견이 대립하였다.

하나는 시베리아 백군과 힘을 합쳐 반볼셰비키 백군을 통일하자는 의견이었고, 다른 하나는 남러시아 백군만의 힘으로 볼셰비키를 무너뜨리자는 의견이었다.

두 의견의 대립은 남러시아 백군의 총사령관 데니킨이 후자를 강력히 주장하며 일단락되었다.

이에 남러시아 백군은 모스크바 정복을 목표로 출정하였다.


남러시아 백군의 북상은 볼셰비키 적군이 벨라루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방면의 민족주의 세력을 모두 정리하고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고 있던 시점에 시작되었다.

남하하는 볼셰비키 적군과 북상하는 남러시아 백군은 남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맞닥뜨렸다.


이러한 볼셰비키 적군과 남러시아 백군의 대치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제3자인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계열의 흑군이었다.

이들은 양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싸움에 휘말리거나, 양측의 공격을 받아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랄까?


아나키즘은 국가권력과 모든 사회적 권력을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절대시하는 사상이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측면에서 아나키즘과 볼셰비즘은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두 사상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아나키즘은 국가권력과 모든 사회적 권력을 부정하는 반면, 볼셰비즘은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노동자들의 권리를 실현하려는 사상이랄까.


“우크라이나 민족은 다른 모든 민족과 마찬가지로, 독립된 나라로서가 아니라 독립된 노동자로서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흑군의 구호는 아나키즘의 사상을 잘 보여준다.

아나키즘은 실상 볼셰비즘보다도 더 현실에 실현하기 힘든 사상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회적 권력을 부정하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려고?

아나키즘의 사상이 실현되면 세상은 온갖 범법행위가 만연하지 않을까?


국가권력을 부정하는 아나키즘의 사상 때문에 흑군은 우크라이나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볼셰비키 적군과 남러시아 백군 모두에게 배척당했다.

아나키스트 흑군은 양측의 압박에 시달리며 결국 붕괴하고 말았다.

흑군의 지도자 네스토르 마흐노는 볼셰비키 적군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러시아군과 폴란드군이 함께 모스크바로 진군합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독립에 동의하지 않으면 동맹은 불가능합니다.”


“이 세상에 우크라이나인이란 민족은 없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정당한 러시아의 영토입니다.”


이 시기, 폴란드는 러시아 내전에 적극 개입하여 동방 공세를 개시하였다.

볼셰비키 적군은 남러시아 백군과의 대치로 인해 대부분 묶여 있었고, 폴란드의 동방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밀리게 되었다.


이에 데니킨은 볼셰비키 적군에 맞서 폴란드와 동맹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폴란드는 이미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보장한 상태였고, 데니킨은 러시아 제국주의자로서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었다.


결국,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 폴란드는 러시아 내전의 향방을 알 바 아니라는 생각으로 폴란드 영토 확장에 주력하였다.

폴란드와의 협력에 실패한 데니킨은 어쩔 수 없이 남러시아 백군만으로 볼셰비키 적군을 공격하였다.


“스탈린 동지. 백군이 전차를 운용하는 이상 전면전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소이다. 전면전을 최대한 회피하며 전장을 넓게 썼으면 좋겠소이다.”


“보로실로프 동지. 동지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겠소. 사후보고로도 충분하니 오직 승리만 생각해주시오.”


“스탈린 동지. 그 믿음에 반드시 보답하도록 하겠소이다.”


남우크라이나 방면 볼셰비키 적군은 훗날 소련 적군의 넘버원이 될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와 훗날 강철의 대원수가 될 이오시프 스탈린이 지휘하고 있었다.

각각 총사령관과 최고 정치장교로 지휘권을 양분하고 있었지만, 혁명가의 삶을 사느라 군대를 지휘해본 경험이 없는 스탈린은 오랜 친우 보로실로프를 믿고 지휘권을 모두 일임했다.


볼셰비키 적군과 남러시아 백군의 질적 차이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볼셰비키 적군은 대부분 1차대전을 경험하지 못한 징집병인 반면, 남러시아 백군은 참전병 출신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볼셰비키 적군은 모든 부대가 소총병으로 이루어진 반면, 남러시아 백군은 영국이 지원해준 전차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남러시아 백군은 전면전에서 확실한 우세를 보였다.


보로실로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적 우위를 활용했다.

우크라이나 방면 볼셰비키 적군의 수는 100만 명에 달했지만, 남러시아 백군의 총병력 15만 명에 불과했다.

보로실로프는 남러시아 백군과의 전면전을 최대한 피하고, 남러시아 백군이 없는 방면을 공략했다.

볼셰비키는 철도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남러시아 백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전장 이동이 가능했다.


“총사령관님. 병사들에게 분출할 탄약이 부족합니다!”


“총사령관님. 전차를 운용할 기름도 부족합니다!”


보로실로프의 전면전 회피 전략으로 남러시아 백군은 일시적으로 정복지를 확장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남러시아 백군은 곧 물자 부족 현상이 닥쳤다.

볼셰비키가 장악한 모스크바 일대는 러시아 최고의 공업지대인 반면, 남러시아 백군이 장악한 남러시아 일대는 농업지대였다.

협상국이 남러시아 백군에 군사물자를 지원하는 속도 이상으로 남러시아 백군의 군사물자 고갈이 빨랐고, 어느 시점에 이르자 이제 군사물자 부족으로 남러시아 백군이 전투를 회피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또한 데니킨은 유능한 장군일지언정 유능한 통치자는 아니었다.

데니킨은 남러시아 백군의 점령지에서 폭압적인 정책을 펼쳤고, 이는 민심의 이반을 가져왔다.

남러시아 일대의 인민들은 볼셰비키 적군의 진격을 환영했다.

남러시아 백군의 점령지는 계속 축소되었으며, 탈영병이 속출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볼셰비키와 폴란드가 정전에 합의하자 남러시아 백군은 더욱 큰 위기에 빠졌다.

폴란드 방면에서 활동하던 세묜 부됸니의 제1기병군이 남우크라이나 지역을 우회해 북캅카스 지역으로 치고 들어갔다.

후방마저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 된 남러시아 백군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졌다.


“나 안톤 데니킨은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며, 표트르 브란겔을 후임으로 지명한다.”


브란겔이 남러시아 백군의 지휘관이 되었을 때, 남러시아 백군은 크림반도 일대만을 남겨두고 패퇴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물주였던 협상국마저 남러시아 백군에게 희망을 접고 물자 지원을 줄여나갔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브란겔은 최선을 다해 남러시아 백군의 패전 원인을 고쳐나갔다.

그는 토지 개혁을 통해 민심을 얻으려 하였고, 인민들을 약탈하던 무능한 장군들을 해임하였다.

또한, 러시아 제국주의자였던 데니킨과 달리 남캅카스 지역의 독립을 인정함으로써 민족주의 세력의 지지를 얻으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브란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세를 되돌리기는 불가능했다.

스탈린과 보로실로프가 이끄는 볼셰비키 적군은 지금까지 남러시아 백군에게서 노획한 전차, 장갑차, 야포까지 이끌고 크림반도로 진격하였다.

반면, 남러시아 백군은 이제까지 협상국에게 지원받은 모든 기갑 장비를 잃고 알보병인 상태였다.


브란겔은 볼셰비키 적군의 진격을 막을 방안이 없음을 인정하고 대규모 철수작전을 시행하였다.

그는 흑해 함대를 동원하여 남러시아 백군과 그 가족, 그리고 민간인까지 약 15만 명을 데리고 협상국이 장악하고 있는 도시 이스탄불로 철수하였다.


“보로실로프 동지. 남캅카스 지역으로 진격합시다. 볼셰비키 중앙위원회로부터 남캅카스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건설이 승인되었소.”


“드디어 스탈린 동지의 민족 조지아에도 혁명의 손길이 닿게 되었구려. 축하드리오.”


북캅카스 지역과 크림반도를 완전히 수복한 스탈린은 남캅카스 지역으로 남하하여 조지아 민주 공화국을 멸망시켰다.

이어서, 서로 전쟁 중이던 아르메니아 민주 공화국과 아제르바이잔 민주 공화국도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멸망하였다.

이로써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세 민족의 민주 공화국은 해체되고 남캅카스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이 건설되었다.


스탈린이 이끄는 볼셰비키 적군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오스만 제국의 국경을 넘었다.

스탈린은 아르메니아인의 민족 자결을 명분으로 아르메니아인이 대다수를 이루고 살아가는 오스만 제국 북동부 영토까지 점령하고서야 진격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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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독일 혁명 +1 24.08.31 786 16 12쪽
17 러시아 내전 +3 24.08.31 820 17 11쪽
16 시베리아 출병 +1 24.08.31 810 16 11쪽
15 스탈린과 친구들 24.08.30 854 16 11쪽
14 모스크바 천도와 조선의 맛 +2 24.08.30 856 19 12쪽
13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1 24.08.30 831 17 11쪽
12 독립운동가 최재형 +1 24.08.30 846 19 11쪽
11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3 24.08.30 827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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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1 24.08.29 831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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