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소련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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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라니
작품등록일 :
2024.08.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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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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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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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셰비키 입당과 트로츠키

DUMMY

코르닐로프의 쿠데타가 진압되고 며칠 후.

나에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다.


“최 대위, 육군본부에서 자네의 전역을 이례적으로 승인한다더군. 아니, 아직 전쟁이 한창인데 전역이라니? 자네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건가?”


“하하. 제가 그동안 소비에트를 지지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에 육군참모총장의 쿠데타로 소비에트와 충돌까지 했으니, 위에서도 제가 부담스러운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입조심 좀 하라고 그러지 않았나? 아니, 자네는 늘 전역하고 싶어 했으니 오히려 좋은 일이겠군. 축하하네.”


이 얼마나 바랬던 순간인가?

합법적인 전역이라니.


이것으로 나를 감싸고 있던 족쇄가 하나 풀렸다.

솔직히 군인 신분만 아니었어도 벌써 소비에트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었을 거라고.


“아, 그리고 여기 이 공문 받게. 자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소비에트에서 자네에게 보낸 공문이라더군.”


“소비에트에서 제게 말입니까? 혹시 무슨 내용인지 읽어보셨습니까?”


“대충 보니까 전역 후에 소비에트에 방문해 달라는 내용 같던데? 자세한 건 제대로 안 읽어봐서 나도 모르겠네. 자네가 직접 읽어봐.”


오, 소비에트에서 날 위해 공문까지 보내줬다고?

소비에트가 나와의 약속을 잊지 않았구나!


요 며칠 동안 얼마나 고민이 많았던가.

소비에트가 싹 입을 닦으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그러면 소련 설립 이전에 소비에트에 가입하는 건은 물 건너가는 거니까.


“대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대위 최운학, 이 시간부로 전역을 신고하겠습니다.”


“그래, 그동안 고생했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도록 하지.”


그렇게 나는 소비에트의 부름을 받고 러시아의 수도 페트로그라드로 향했다.


동부전선에서 페트로그라드로 향하는 여정은 열차를 타고 대략 3일 정도 걸리는 여정이었다.

물론 이는 전시 상황으로 인프라에 문제가 생겨서 그렇고, 평시엔 12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하고도 남는다.


페트로그라드는 현재 임시정부와 소비에트의 대립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혁명으로 세워진 임시정부는 러시아의 경제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였고, 이에 따라 국민들의 신뢰도는 날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었다.


반면 소비에트는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집행기구로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을 옹호하며 더 나은 사회와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었다.

국민들의 마음은 점차 임시정부를 떠나 소비에트로 향하고 있었고,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 나는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에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소비에트에 가입하려고 방문했습니다.”


“네, 그러면 가입 절차를 설명해 드릴게요.”


로비의 접수처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직원이 앉아있었다.

여직원은 친절한 목소리로 나를 응대했다.


로비 안에는 분주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손님들은 로비에서 나눠주는 번호표를 챙기거나 안내판을 확인하여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고, 소비에트 직원들은 신속하고 친절하게 손님들을 응대했다.

로비 곳곳에서 대화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소비에트가 본래 참여와 자치를 추구하는 조직이었기에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생동감 넘치는 소비에트의 모습은 페트로그라드 시민들의 민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확연히 보여주는 중요한 단면이었다.


“선생님, 소비에트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원칙과 가치에 동의하셔야 해요. 그리고 우리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해요.”


“그렇군요. 저는 소비에트의 원칙과 가치에 동의하며 소비에트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이 가입 신청서를 작성하여 주세요. 그 후 저희가 신청서를 검토하고 가입 승인 여부를 알려드릴게요.”


여직원은 의례적인 질문 후, 내게 소비에트 가입 신청서를 내밀었다.

나는 여직원이 내민 가입 신청 서류에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기록했다.


이름 표트르 페트로비치 최.

출생연도 1883년.

성별 남자.

직업 퇴역 군인.

주소는... 나 집이 연해주에 있는데?


“여기 주소는 페트로그라드가 아니라도 괜찮습니까?”


“네? 안 되지 않을까요? 주소가 페트로그라드가 아니면 어디 사세요?”


“오늘 막 페트로그라드에 도착해 아직 숙소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월세를 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일단 주소란은 비워두고 다음에 기재해 주세요. 그리고 직업이 퇴역 군인? 그럼, 지금 직업은 없으세요?”


“저는 러시아 공산당 볼셰비키의 당원이 되어 공직에서 활동하길 원합니다.”


여기서 잠시 소비에트의 정치 세력에 대해 알아보자면.

현재 소비에트엔 크게 세 세력이 공존했다.


첫째는 사회혁명당.

농촌 개혁, 토지재분배, 사유 재산권 보장 등을 강령으로 채택한 사회주의 정당이다.

사회혁명당은 이 시기 가장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 정당이었다.

농민 출신의 병사들이 열렬히 지지한 덕이다.


둘째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멘셰비키.

마르크스 이론에 근거하여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했을 때야 비로소 공산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회주의 정당이다.

멘셰비키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정당으로 사회혁명당 못지않은 세력을 자랑했다.


셋째는 러시아 공산당 볼셰비키.

자본주의의 발전 없이도 공산주의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회주의 정당이다.

볼셰비키는 지지층이 매우 빈약했는데, 이는 이들이 외치는 주장이 너무 급진적인 탓이 컸다.

볼셰비키는 특유의 급진적인 주장으로 인해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배척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중에서 볼셰비키의 당원이 되길 원했다.

비록 지금은 가장 배척받는 정당일지언정 이들이 끝내 혁명의 주인공으로 거듭난다는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선생님. 특정 정당에 가입하는 내용은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에요. 직업도 없으시고 주소도 없으시면 지금 당장 소비에트에 가입하기는 힘드시겠는데요?”


“방법이 없겠습니까? 여기 보시면 제가 소비에트로부터 받은 공문도 있습니다.”


“음, 잠시만요. 소비에트의 정식 공문? 이런 걸 가지고 있으시면 처음부터 보여주셨어야죠!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여직원은 내가 제출한 공문을 살펴보더니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 공문, 생각보다 파워가 상당한걸?


생각해보니 당연한 소리이긴 하네.

이 공문은 쿠데타 진압과정에서 공을 세운 최운학이라는 개인을 대상으로 발행한 공문이잖아?


잠시 후, 여직원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를 데리고 나왔다.

깊이 있는 눈, 독특하게 굽은 콧대, 적절히 풍성한 수염.

이 아저씨, 뭔가 마법사처럼 생겼다?


“안녕하십니까. 표트르 페트로비치 최입니다.”


“반갑군, 표트르 동지. 나는 트로츠키라 하네.”


뭐? 트로츠키?

이거 실화냐?


예상치 못한 거물과의 만남.

자연스럽게 내 허리가 굽혀졌다.


“처음 뵙겠습니다. 트로츠키 동지. 제가 동지를 직접 뵌 적이 없어 바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실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무슨 또 실례까지야. 소비에트에 군사정보를 넘겨줬던 동지가 볼셰비키에 가입하길 원한다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와봤네. 사실 이 공문, 내가 발행한 거거든.”


트로츠키는 한껏 낮추며 예의를 차리는 내 태도가 부담스러운지 손사래를 치며 제지했다.

그러나 나는 이보다 더욱 숙이고 들어갈 자신도 있었다.


레온 트로츠키.

본명 레브 다비도비치 브론슈타인.

그는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혁명가의 길을 걸은 사나이로 장차 볼셰비키의 2인자까지 올라갈 인물이었으니까.


“영광입니다, 트로츠키 동지. 저술하신 ‘결과와 전망’은 감명 깊게 읽어보았습니다. 특히 동지의 이론, 영구혁명론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알고 싶습니다. 저는 동지의 이론이 진정으로 혁명적이라 생각합니다.”


“오! 동지가 뭘 좀 아는군. 영구혁명론에 관심을 가지는 동지를 만나 기쁘구먼. 혹시 지금 시간이 괜찮으면 잠시 나와 영구혁명론에 대해 토의해보지 않겠는가?”


나는 트로츠키를 따라가며 인터넷 서핑을 통해 습득한 영구혁명론에 대한 지식을 떠올렸다.


영구혁명론.

트로츠키가 1906년 저술한 ‘결과와 전망’에서 공식적으로 제기한 트로츠키의 독자적인 사회주의 혁명이론이다.


본래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사회주의 혁명은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어나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유럽의 변방이자 후진적인 산업구조를 가진 러시아에서 최초의 혁명이 발생했다.

이는 사회주의 혁명가들에게 대두된 가장 큰 문제였다.

트로츠키는 이를 세계 사회주의 혁명, 즉 선진국에 사회주의 혁명을 연속적으로 일으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는 러시아와 같이 후진적인 산업구조를 지닌 국가는 세계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하여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혁명의 영속성이 곧 사회주의 혁명의 완성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혁명은 어느 한 나라에서 종결되어서는 안 되네! 사회주의란 민족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끝내 국제주의의 승리로 완결되지 않는다면 이는 실패한 혁명이지!”


“즉, 혁명은 지역적 현상이 아니라 국제적 현상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군요. 저 또한 국제적 혁명 없이는 사회주의 세상이 실현되지 못하리라는 트로츠키 동지의 의견에 적극 동의합니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는 필수불가결하다고 여겨집니다.”


실상 영구혁명론도 문제가 적지 않다.

이상적으로야 선진국에 혁명을 전파하여 동맹을 맺으면 전부 해결될 것 같지만 국제관계가 그렇게 쉽나?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게 국제 외교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선진국이 혁명의 대열에 참여하면 혁명의 주체는 어떻게 되는 거야?

러시아에서 다른 선진국으로 혁명의 주체가 넘어갈 수도 있잖아?


이런 이유로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은 훗날 러시아 혁명가들에게 외면받는다.

아무튼 이건 훗날 이야기고.


이제 막 볼셰비키에 입당할 나에게 트로츠키는 반드시 붙잡아야 할 인맥이었다.

그러면 스스로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혁명가라 자부하는 이에게 호감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그의 혁명이론에 동조해주는 것이지!


나는 알고 있는 모든 잡지식을 동원하며 트로츠키와 대화를 이어갔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트로츠키의 혁명이론에 동조하며 열심히 아부를 떨었다.


“장교 출신이라 걱정했는데 누구보다 혁명이론에 정통한 동지였군! 동지의 볼셰비키 입당은 걱정할 필요 없네. 동지가 쿠데타 진압에 세운 공도 있고 하니, 나 트로츠키가 추천해주지. 그 누구도 동지의 입당을 반대할 수 없을 거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볼셰비키의 당원이 되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볼셰비키에 정식으로 입당하고 나서 한 번 더 보도록 하지. 누구에게 소개도 해 줄 겸 말이야. 며칠만 기다려 보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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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러시아 내전 +3 24.08.31 820 17 11쪽
16 시베리아 출병 +1 24.08.31 810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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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적위대장 페치카 +1 24.08.29 869 21 11쪽
5 레닌의 러닝메이트 +3 24.08.28 917 20 11쪽
» 볼셰비키 입당과 트로츠키 +3 24.08.28 949 1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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