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소련 빨갱이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다우라니
작품등록일 :
2024.08.27 17:08
최근연재일 :
2024.09.16 13:42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9,837
추천수 :
711
글자수 :
183,596

작성
24.09.05 07:05
조회
805
추천
23
글자
11쪽

개성 방어선

DUMMY

일본 도쿄, 수상관저.


볼셰비키 적군의 조선 진군 소식에 일본 정치계는 책임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었다.


“내각은 무엇을 했기에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겁니까?”


“그걸 왜 우리에게 묻습니까? 시베리아 출병을 결정한 것은 전임 내각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협상국의 요구를 무시할 겁니까? 유럽 전선에 파병하지 않아 협상국에서 얼마나 압박을 받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당시 시베리아 출병의 필요성은 우리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전임 내각의 실책을 현 내각에 전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일본은 명목상 의원내각제를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조슈번과 사쓰마번 출신들이 교대로 총리직을 맡아왔다.

그러나 이번에 번벌이 아닌 입헌정우회에서 처음으로 총리가 나왔으니, 그가 바로 현 일본 총리 하라 다카시였다.

하라 다카시는 일본 중의원 제1당 대표로서 임명된 최초의 총리이자, 전형적인 문민 총리였다.


당연히 번벌 출신들이 문민 총리를 반길 리 없었다.

하라 총리가 탁월한 정치력으로 가까스로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시베리아 출병 실패는 하라 총리의 정치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였다.


“협상국이 퇴각할 때 우리도 같이 퇴각했어야 했던 것 아닙니까? 현 내각이 무리하게 연해주 점령지를 고수하려다 전쟁이 확대된 것 아닙니까?”


“7만 명을 동원해놓고 그냥 물러나자고요? 그때는 당신들이 그걸로 비난했겠지!”


“흠, 어쨌든 러시아의 조선 침공은 현 내각의 책임입니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면 책임지고 물러나시길 바랍니다.”


역사 속 하라 총리는 전례 없는 정당 내각을 이끌며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총리직을 유지했다.

식민지 정책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한 장본인도 바로 하라 총리였고, 훗날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서 일본 해군을 설득한 인물 역시 하라였다.

정작 하라 총리는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직전에 극우 범죄 단체의 손에 암살당하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하라 총리는 일본 정치권의 최대 숙제인 문민통제를 조금이나마 실현한 최초의 총리였다.

이러한 하라 총리의 실각은 일본의 미래를 크게 바꿀 사건이었다.


시베리아 출병으로 소집된 대본영 회의는 패전의 책임을 둘러싼 논란으로 격해졌다.

일본의 전통적인 육군과 해군 간의 갈등이 이번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육군은 그 많은 예산을 들여다가 러시아의 반란군 하나 이기지 못해 이 사단을 낸 겁니까?”


“본토보다 더 넓은 지역을 겨우 7만으로 어떻게 지킨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증원이 필요하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잖습니까! 해군에서 전함 건조 계획에 예산을 퍼붓는 바람에 이 꼴이 난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많은 예산을 퍼부어서 해군은 대일본제국에 무슨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본토보다 넓은 지역을 겨우 7만 병력으로 어떻게 지키란 말입니까? 증원이 필요하다고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해군에서 전함 건조에 예산을 퍼붓는 바람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아닙니까? 그렇게 많은 예산을 쓰고도 해군이 대일본제국에 무슨 도움을 주었습니까?”


“블라디보스토크도 대련도 모두 해군이 지키고 있거늘 그 무슨 망발이요? 해군이 없었으면 육군은 벌써 연해주에서 밀려 쫓겨났습니다! 육군이 친 사고를 해군에서 어찌어찌 수습해주고 있는 꼴이잖습니까!”


“그러니까 애초에 시베리아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파병을 했으면 좀 좋았습니까! 협상국 눈치를 보느라 추가 파병을 안 해서 이 모양 이 꼴이 난 것 아닙니까?”


이러한 육군과 해군의 갈등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정치와 군사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미 뿌리내리고 있었다.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조슈번과 사쓰마번이 각각 육군과 해군의 주축 세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두 세력 간의 경쟁이 육군과 해군 간의 갈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조슈번 출신 인물들은 육군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독일식 육군 체제를 도입했다.

반면 사쓰마번 출신 인물들은 해군의 중추를 형성하며, 영국식 해군 체제를 도입했다.


두 번 출신 인물들은 정부 내에서 서로의 영향력을 견제하며, 육군과 해군의 예산, 인사, 전략에서 지속적인 갈등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양군은 서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군비 경쟁을 벌였고, 이는 일본 정부의 재정적 부담을 심각히 가중시켰다.


이 과정에서 육군과 해군은 독립적인 세력으로 발전하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 나라의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협력을 거부했고, 육군에서 육군 소속 해양수송대를 운영하고 해군에서 해군 소속 상륙부대를 운영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는 나중에 태평양 전쟁 시기에 이르러, 서로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전황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육군의 거짓 정보로 해군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해군의 거짓 정보로 육군이 전멸하는 등의 일이 수시로 일어났다.

이로 인해 정확한 내부 정보를 얻기 위해 서로 스파이를 심을 정도였다.


이러한 갈등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군국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직 이 정도로 육군과 해군의 갈등이 심각하진 않았지만, 지금도 그 갈등의 씨앗은 꾸준히 자라는 중이었다.

결국, 이러한 대본영의 육해군 갈등은 하라 총리가 직접 나서 중재한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대책 회의가 가능해졌다.


“자자! 일단 조선 방위부터 논의합시다. 육군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까?”


“육군은 조선 방위를 위해 본토에 주둔하는 상설 사단 5개를 파병할 것을 요청합니다. 러시아 놈들의 남하를 저지하려면 최소한 이 정도의 병력은 필요합니다.”


“육군을 모조리 조선에 보내면 본토는 누가 지킵니까?”


“그건 잘난 해군 나리께서 맡아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해군께서 바다를 완벽히 틀어막고 계신데 어떻게 러시아군이 본토를 위협하겠습니까?”


일본의 평시 육군 규모는 약 25만 명으로, 현재 시베리아 전선에 7만, 조선주차군으로 약 4만 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번 추가 파병 요청은 5개 사단 약 10만 명으로, 이를 수용하면 일본 육군의 약 21만 명이 해외에 파병되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본토 방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만도 했지만, 일본 본토는 섬이었기에 육군은 해군의 존재를 내세워 본토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해군 역시 이러한 육군의 발언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5개 사단이면 충분합니까? 듣자 하니 남하한 러시아 놈들이 거의 50만에 달한다던데? 심지어 조선인들도 거기에 합세하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적군의 숫자가 불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전쟁의 장기화를 대비해 동원령을 선포해야 합니다. 동원령이 힘들다면 최소한 조선과 규슈에 부분 동원령이라도 선포해야 합니다.”


“전면적인 동원령은 힘듭니다. 조선과 규슈에 부분동원령을 선포하도록 합시다.”


하라 내각은 대본영의 요청에 따라 육군 5개 사단의 추가 파병과 조선 및 규슈 지역의 부분 동원령 선포를 승인했다.

이와 더불어 하라 내각은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러시아에 특별사절단을 파견했다.


***


조선 경성, 조선총독부.


조선주차군이 평양에서 볼셰비키 적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혈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조선총독부는 평양이 함락될 경우를 대비해 제2의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총독 각하, 평양 전선에서 조선주차군이 러시아군을 막아서고는 있으나 오래 견디기 힘들 듯합니다. 러시아군의 남하를 저지할 새로운 방어선이 필요합니다.”


“만약 평양이 함락된다면, 어디에서 러시아군의 남하를 막아야 하겠나?”


“경성과 평양 사이에 가장 큰 도시는 개성입니다. 개성은 예성강을 끼고 있어 자연적인 방어선으로도 최적의 위치입니다. 이곳에 방어선을 형성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입니다.”


“개성이라... 경기도 최북단의 도시로군. 그렇다면 황해도까지는 포기해야 하는건가.”


조선총독부는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개성을 제2의 방어선으로 선택했다.

개성은 고려의 옛 수도이자, 경기도와 황해도를 잇는 관문이었다.

개성 방어선이 무너지면 볼셰비키 적군은 단숨에 경성으로 들이닥칠 것이었다.


조선총독부는 개성 방어선이 붕괴되는 순간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만약 그 일이 현실이 된다면, 그들은 경성을 포기하고 부산으로 도주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질 것이었다.


“개성을 반드시 지켜라! 개성이 무너지면 경성은 속수무책이다. 러시아군이 예성강을 넘지 못하도록 철저히 방어선을 구축하라!”


개성은 경기도 방어의 최후의 보루로 떠올랐다.

조선총독부는 개성 방어선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고, 예성강을 따라 병력을 배치하며 철통같은 저항을 준비했다.

개성 방어선이 무너지면 경성마저 위태로워질 것이 분명했기에, 조선총독부는 이곳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다.


일본에서 파견된 5개 사단의 병력이 속속 부산항에 도착했다.

일본군은 신속하게 상륙 절차를 마친 뒤 곧바로 이동할 준비를 마쳤다.


“신속히 상륙하라! 상륙한 부대는 대열을 정비하고 부산역으로 집결하라.”


장교의 지휘 아래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부산역은 그들로 인해 북적였다.

부산에 상륙한 일본 육군은 각 부대를 신속하게 정비하고, 철도역으로 집결했다.

일본군은 경부선 철도를 통해 개성으로 수송되었고, 개성에 도착하자마자 철저한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일본군은 평양에서 내려오는 경의선 철도를 끊어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려 했고, 경기도의 경계를 따라 방어선을 형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동원령이 선포되었다! 만 18세에서 35세의 남성은 모두 집결지로 모여라!”


한편, 경성에서는 동원령이 선포되었다.

동원령에 따라 만 18세에서 35세 사이의 일본 남성은 모두 징집 대상이 되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한반도에는 대거 일본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일본인들은 대부분 부산항을 통해 들어와 경성 남촌에 정착했다.

이로 인해 경성은 자연스럽게 조선인들이 거주하는 북촌과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남촌으로 나뉘었다.

북촌과 남촌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불문율 속에 공존했다.


조선총독부는 경성 남촌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집집마다 방문하여 징집 대상자들을 데려가기 시작했다.

남촌 곳곳에서 징집 대상자들이 소집되는 모습이 연출되었고, 젊은 일본 남성들은 곧 전장으로 보내질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이들도 대부분 개성 방어선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이와 달리, 조선인들이 거주하는 북촌은 남촌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조선인들은 징집 대상이 아니었고, 오히려 조선인의 볼셰비키 적군 합류를 막기 위해 통행이 엄격히 통제되었다.


“조선인의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라! 볼셰비키와 접촉하는 자가 있으면 즉시 체포하라!”


하지만 아무리 엄격히 통제해도 한계는 있었다.

독립을 간절히 염원하는 조선인들은 통제를 뚫고 볼셰비키 적군에 합류했다.


조선은 이제 일본군과 볼셰비키 적군, 그리고 독립을 꿈꾸는 조선인들이 얽힌 복잡한 전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은머리 소련 빨갱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월화수목금 주5일 연재합니다. +3 24.08.27 739 0 -
36 신경제정책과 누진세 +7 24.09.16 497 25 11쪽
35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 +2 24.09.13 671 27 12쪽
34 외무장관 페치카 +6 24.09.12 687 28 12쪽
33 소비에트 연방 설립 +2 24.09.11 739 23 11쪽
32 열병식과 적기훈장 수훈 +1 24.09.10 764 24 11쪽
31 철군과 몽골 혁명 +4 24.09.09 812 22 11쪽
30 조선인 이주계획 +4 24.09.08 807 19 11쪽
29 평양 강화 회의 +3 24.09.07 824 23 12쪽
28 한반도 해방 작전 +6 24.09.06 841 14 11쪽
» 개성 방어선 +6 24.09.05 806 23 11쪽
26 평양 전투 +3 24.09.04 819 19 10쪽
25 조선 진군 +4 24.09.03 862 23 12쪽
24 1919년 3월 1일 +3 24.09.02 852 19 11쪽
23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 +1 24.09.02 811 18 11쪽
22 시베리아 임시정부 +2 24.09.01 809 15 11쪽
21 남러시아 백군 +1 24.09.01 778 15 11쪽
20 볼셰비키-폴란드 전쟁 +2 24.09.01 783 17 11쪽
19 볼셰비키 적군 +2 24.09.01 767 18 11쪽
18 독일 혁명 +1 24.08.31 785 16 12쪽
17 러시아 내전 +3 24.08.31 820 17 11쪽
16 시베리아 출병 +1 24.08.31 810 16 11쪽
15 스탈린과 친구들 24.08.30 854 16 11쪽
14 모스크바 천도와 조선의 맛 +2 24.08.30 856 19 12쪽
13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1 24.08.30 831 17 11쪽
12 독립운동가 최재형 +1 24.08.30 846 19 11쪽
11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3 24.08.30 827 16 11쪽
10 레닌의 초대 (2) 24.08.29 851 18 11쪽
9 레닌의 초대 +1 24.08.29 822 17 12쪽
8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1 24.08.29 831 19 12쪽
7 볼셰비키 혁명 +2 24.08.29 853 26 11쪽
6 적위대장 페치카 +1 24.08.29 869 21 11쪽
5 레닌의 러닝메이트 +3 24.08.28 917 20 11쪽
4 볼셰비키 입당과 트로츠키 +3 24.08.28 948 19 11쪽
3 나는 소비에트를 지지한다 +1 24.08.28 993 21 11쪽
2 러시아 제국군 대위 최운학 +3 24.08.28 1,064 23 11쪽
1 수저가 없는 아이 +1 24.08.28 1,123 1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