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소련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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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라니
작품등록일 :
2024.08.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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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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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진군

DUMMY

내가 검은 머리 소련 빨갱이가 되기로 결심한 그날부터, 오직 이 순간만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준비해왔다.

유럽 전선을 발로 뛰며 빠르게 정리한 것도, 시베리아 전선을 쉬지 않고 밀어붙인 것도 모두 이 시기에 맞추기 위함이었다.


그렇다.

나는 처음부터 3·1운동을 명분 삼아 볼셰비키 적군을 조선으로 진군시킬 계획을 세웠다.


나는 이방인으로서 소련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능한 많은 조선인을 소련으로 이주시켜 나만의 지지층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 시작이 바로 볼셰비키 적군의 조선 진군이다.

적군을 이끌고 한반도에 진입하여 조선인의 대규모 이주를 진행할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조선인이 소련으로 이주하기만 하면 그들은 곧 나의 지지층이 된다.


이 계획에 대한 나의 확신은 어디서 오냐고?

내 아버지가 바로 연해주 조선인의 대부 최재형이잖냐.

내가 숨만 쉬고 있어도 소련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자연스레 나를 따를 것이다.


혹시라도 역사가 변해 고종의 죽음과 국장일이 변경된다면 어떻게 하려고 했냐고?

그걸 왜 고민하고 있냐.

역사대로 흘러가면 좋은 거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조선에서 노동자, 농민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시위대는 100만 이상으로 조선 인구의 5%가 넘는 인원입니다. 이 사건은 조선의 볼셰비키 혁명 가능성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폴란드와 달리 일본의 식민지배에 신음하고 있는 조선은 볼셰비키 적군을 배척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반제국주의 투쟁과 세계혁명 완성을 위해 볼셰비키 적군은 조선의 국경을 넘어 진군하겠습니다.”


나는 볼셰비키 인민위원회에 일방적인 보고를 올리고 주저 없이 행동에 나섰다.

시베리아 방면 볼셰비키 적군에서 나의 독단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볼셰비키에서 파견된 정치장교들의 반발은 있었다.

그러나 이 몸이 누군가?

한때 비공식 당서열 10위권에 들었던 몸이자 현직 볼셰비키 혁명정부 국방차관이 아닌가.

나에겐 정치장교들의 반발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권위가 있었다.


“국방차관 동지. 인민위원회의 지령은 받고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지금 조선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혁명이 일어났다고 하지 않았나? 혁명은 시간 싸움이야. 우리가 여기서 시간을 지체한다면 조선은 혁명의 기회를 잃을지도 몰라. 볼셰비키 혁명정부는 항상 세계혁명 완성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바로 트로츠키 동지가 늘 주장해오던 바가 아니었나? 동지는 지금 트로츠키 동지의 영구혁명론을 부정하는 건가?”


“궤변입니다! 이건 단지 독립을 원하는 식민지의 반란일 뿐이잖습니까! 이를 볼셰비키 혁명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지금 궤변이라고 했나? 레닌 동지께서는 늘 말씀하셨지. 반제국주의 투쟁이 곧 혁명의 길이라고 말이야. 그 말씀에 따르자면 독립을 원하는 식민지의 투쟁이 곧 혁명의 시작이 아니겠나? 나는 동지가 레닌 동지의 가르침을 부정할 생각은 없으리라 믿네.”


나는 조선 진군을 반대하는 것은 곧 혁명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몰아붙였다.

이는 단순한 논리가 아니라, 정치장교들에게 가하는 강력한 압박이었다.


그들은 내가 가진 권위와 정치적 영향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조선 진군에 반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반혁명 분자로 낙인찍힐 두려움을 극복하고 내 앞길을 막아설 만큼 결단력 있는 이는 없었다.


이렇듯, 나는 국방차관의 권위와 혁명의 명분을 적절히 사용하여 정치장교들의 반발을 철저히 억눌렀다.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된 권한으로 인민위원회에 나의 독단을 고발하는 것뿐이었다.


***


모스크바 볼셰비키 인민위원회.


최운학의 독단적인 조선 진군 소식은 모스크바의 볼셰비키 인민위원회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인민위원회 내부에서는 최운학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특히 최근 들어 최운학과 이념적 충돌이 잦았던 트로츠키가 이 비난의 선봉에 섰다.


트로츠키는 최운학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그의 독단적인 결정이 볼셰비키 혁명의 근본적인 원칙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운학의 조선 진군이 단순한 군사적 실수를 넘어 볼셰비키의 국제적 목표와 이념적 기초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 민족주의자 같은 놈을 봤나! 이는 혁명에 대한 배신이오! 저놈이 볼셰비키 혁명을 망치려고 하오!”


“일본 식민지에 공장이 있소? 뭐가 있소? 노동자 계급이 형성되지도 않은 곳에서 무슨 혁명을 전파하겠다는 거요? 그냥 자기 나라를 독립시키고 싶은 것뿐이잖소!”


“이래서 유색인종은 하등하다는 거요! 애초에 유색인종 따위가 국방차관이라니? 난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소!”


많은 이들이 최운학을 맹비난한 것은 그의 빠른 출세와 관련된 질투심이 크게 작용했다.

볼셰비키에 입당하자마자 레닌의 눈에 들어 승승장구해온 최운학이지 않은가.

이런 최운학을 질투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떡하니 큰 실책을 저질렀으니 평소 최운학을 시기하던 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서 노동자 계급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혁명을 전파하려는 시도가 단순히 민족주의적 독립 시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운학이 볼셰비키 혁명을 개인적인 민족적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런 접근이 볼셰비키의 이념적 순수성을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최운학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내며 인종적인 비하를 서슴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최운학을 향한 비난만이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결정과 행동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스탈린을 비롯한 소수민족 출신의 혁명가들이 최운학을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페치카 동지는 여태껏 볼셰비키 혁명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바쳐 혁명을 수호해왔소. 그런 페치카 동지가 볼셰비키 혁명을 망치려 한다고? 생각이란 걸 좀 하고 발언하시오!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시오?”


“페치카 동지는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동방에 정통한 동지요. 페치카 동지가 그리 판단했다면 그런 근거가 충분했겠지. 비난은 페치카 동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해도 충분하오!”


“그놈의 유색인종 발언은 또 어떤 놈이요? 우리가 언제 인종을 따져가며 혁명을 논했다고? 저런 시대에 뒤떨어진 놈이 어찌 이 자리에 앉아있단 말이오?”


최운학을 지지하는 이들은 그의 탁월한 군사적 업적을 강조했다.

최운학은 러시아 내전에서 최고 정치장교로서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특히 폴란드 전선과 시베리아 전선에서의 승리는 그를 볼셰비키 내에서 가장 뛰어난 전쟁 영웅으로 부상시켰다.


이러한 최운학의 전쟁 영웅으로서의 입지는 그의 정치적 위치를 더욱 공고히 했다.

최운학은 단순한 정치가가 아니라 전쟁터에서 직접 군대를 지휘하며 혁명을 승리를 이끈 전쟁 영웅이었다.

이런 업적들은 단순히 전장에서의 승리뿐만 아니라 그의 판단과 결정을 옹호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실상 볼셰비키 적군 내에서 최운학을 향한 지지는 상당히 높았다.

특히 볼셰비키 적군에 영입된 구 제국 시절의 지휘관들은 다른 정치장교보다 최운학과 협력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군사 전략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정치장교와 함께 부대를 지휘하다 보면 답답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반면, 최운학은 제국 장교 출신으로 군사 전략에 능통했고, 군사 작전을 논의하고 승인받는 과정이 한결 수월했다.


또한 최운학이 적위대장 시절 직접 훈련시킨 적위대 출신들도 그를 강력히 지지했다.

적위대 출신들은 볼셰비키 적군에서 최소 중대장에서 최대 사단장까지 골고루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들은 최운학을 스승이자 상관으로 존경하며 신뢰했다.


“평소의 이미지가 온순해서 그렇지 페치카 동지는 10월 혁명 당시 가장 먼저 무장봉기를 주장했던 동지네. 나 레닌은 페치카 동지가 나폴레옹처럼 혁명을 망치지 않을까 걱정되네.”


“페치카 동지를 향한 볼셰비키 적군의 지지는 두려울 정도입니다. 페치카 동지가 제2의 나폴레옹이 되는 것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내전이 마무리되면 페치카 동지가 적군에서 완전히 손을 떼도록 하는 것이 좋겠군.”


이러한 최운학을 향한 볼셰비키 적군의 맹목적인 지지는 볼셰비키 정부를 두렵게 만들었다.

레닌조차 이러한 사태에 불안감을 느낄 정도였다.


레닌은 분명 혁명의 동지로서 최운학에게 호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최운학을 인정하는 만큼 두려움도 공존했다.

레닌은 최운학의 언변과 능력이라면 제2의 나폴레옹이 되어 혁명을 엎어버리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걱정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페치카 동지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는 것은 가능해도 동양인이라는 한계로 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어쩌면 페치카 동지가 동양인이라 다행이군. 만약 페치카 동지가 러시아인이었다면 정말 혁명의 적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어.”


레닌은 진심으로 최운학이 혁명의 적이 되지 않길 바랐다.


***


다시 돌아와서 북만주 하얼빈.


나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인민위원회에 분란을 만든 이상, 공으로 이를 상쇄해야 했다.


치타에서 출발하는 북만주철도는 하얼빈에서 노선이 나뉘었다.

하나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노선이요, 또 하나는 창춘으로 향하는 노선이었다.

러시아에서 일본군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노선을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볼셰비키 적군을 블라디보스토크가 아닌 창춘으로 진군시켰다.


“남만주철도도 본래 러시아의 소유였다. 남만주철도를 따라 남하하라!”


창춘은 러시아가 운영하던 북만주철도의 마지막 종착지였다.

창춘부터는 이제 일본이 운영하는 남만주철도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패배로 운영권이 넘어가기 전에는 남만주철도 또한 러시아가 운영하는 철도였다.

그러니 본래 소유주가 이를 되찾는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이 있겠는가.


볼셰비키 적군이 남만주철도를 따라 남하하여 봉천으로 향하자, 일본 관동군이 반응했다.

관동군은 일본의 조차지 대련과 남만주철도를 지키기 위한 군대였으나, 이 시기의 관동군은 6개의 독립수비대대가 전부였다.

이는 만주의 마적들에게서 남만주철도를 수비하기에는 충분한 숫자일지 몰라도, 전면적인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부족해도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병력의 열세에 관동군은 봉천을 포기하고 요동 반도의 조차지 대련 수비에 집중하기로 했다.

대련에는 일본 해군도 주둔해있으니 해상포격의 도움을 받아 볼셰비키 적군과 싸울 작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대련을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내 목표는 조선 진군이었고, 봉천을 점령함으로써 이미 조선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사단장들은 각 도시에 주둔하며 만주 철도 방위에 최선을 다하게. 필요하다면 무력 사용도 허가하겠네. 절대 보급로가 끊기거나 약탈당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되네.”


나는 만저우리, 하얼빈, 장춘, 봉천 등 북만주철도와 남만주철도의 주요 기착지에 기병사단을 배치하여 마적들로부터 철도를 방어하도록 했다.

그리고 봉천에서 방향을 틀어 대련이 아닌 신의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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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조선인 이주계획 +4 24.09.08 807 19 11쪽
29 평양 강화 회의 +3 24.09.07 824 23 12쪽
28 한반도 해방 작전 +6 24.09.06 841 14 11쪽
27 개성 방어선 +6 24.09.05 805 23 11쪽
26 평양 전투 +3 24.09.04 818 19 10쪽
» 조선 진군 +4 24.09.03 862 23 12쪽
24 1919년 3월 1일 +3 24.09.02 851 19 11쪽
23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 +1 24.09.02 811 18 11쪽
22 시베리아 임시정부 +2 24.09.01 809 15 11쪽
21 남러시아 백군 +1 24.09.01 778 15 11쪽
20 볼셰비키-폴란드 전쟁 +2 24.09.01 783 17 11쪽
19 볼셰비키 적군 +2 24.09.01 767 18 11쪽
18 독일 혁명 +1 24.08.31 785 16 12쪽
17 러시아 내전 +3 24.08.31 820 17 11쪽
16 시베리아 출병 +1 24.08.31 810 16 11쪽
15 스탈린과 친구들 24.08.30 854 16 11쪽
14 모스크바 천도와 조선의 맛 +2 24.08.30 855 19 12쪽
13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1 24.08.30 831 17 11쪽
12 독립운동가 최재형 +1 24.08.30 846 19 11쪽
11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3 24.08.30 827 16 11쪽
10 레닌의 초대 (2) 24.08.29 851 18 11쪽
9 레닌의 초대 +1 24.08.29 822 17 12쪽
8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1 24.08.29 831 19 12쪽
7 볼셰비키 혁명 +2 24.08.29 853 26 11쪽
6 적위대장 페치카 +1 24.08.29 869 21 11쪽
5 레닌의 러닝메이트 +3 24.08.28 917 20 11쪽
4 볼셰비키 입당과 트로츠키 +3 24.08.28 948 19 11쪽
3 나는 소비에트를 지지한다 +1 24.08.28 993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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