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소련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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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라니
작품등록일 :
2024.08.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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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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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셰비키-폴란드 전쟁

DUMMY

프로이센, 러시아, 합스부르크의 3국 분할로 123년의 암흑기를 겪은 폴란드가 마침내 독립을 되찾았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하면서 괴뢰국인 폴란드 섭정 왕국이 무너지고, 폴란드 공화국이 건국된 것이다.

그러나 새롭게 태어난 폴란드는 정치적 불안정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러던 중, 독립의 영웅 유제프 피우수트스키가 바르샤바로 돌아오면서 서서히 정국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폴란드는 지정학적으로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하여 안보에 큰 위협을 느꼈다.

독일과 러시아가 재부상할 것을 우려한 폴란드는 최대한 많은 완충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폴란드인들의 민족주의 성향과 맞물리며 폴란드인이 거주하는 모든 영토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빌뉴스는 폴란드인의 도시다! 빌뉴스를 해방하고 리투아니아를 정복하라!”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는 폴란드인과 유대인이 다수 거주하는 도시였다.

빌뉴스의 인구 중 폴란드인은 약 50%, 유대인은 약 44%, 리투아니아인은 약 6%에 불과했다.

폴란드는 이러한 인구 구성을 근거로 빌뉴스를 폴란드의 영토로 병합했다.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의 빌뉴스 병합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비록 빌뉴스의 인구 구성은 폴란드인이 다수였지만, 빌뉴스는 리투아니아의 수도로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였다.

리투아니아의 수도는 반드시 빌뉴스여야 했다.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의 침공에 맞서 러시아 볼셰비키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볼셰비키는 우크라이나 방면에서 남러시아 백군과 대치 중이었고, 리투아니아의 개입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개입을 망설였다.


“갈리치아 일대의 폴란드인을 보호하자! 갈리치아 일대를 점령하라!”


볼셰비키가 개입을 망설이는 사이 폴란드는 뒤이어 서우크라이나의 갈리치아 일대를 침공했다.

갈리치아는 우크라이나인이 다수였으나 폴란드인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갈리치아의 폴란드인들은 우크라이나군의 지배에 반발하며 봉기를 일으켰고, 폴란드 공화국은 이에 호응하여 군대를 파견했다.


볼셰비키의 공세에 밀려 서우크라이나 갈리치아 일대로 후퇴한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에게 폴란드의 침공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폴란드군은 파죽지세로 갈리치아 일대를 점령했고, 볼셰비키에 이어 폴란드의 침공까지 받은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은 멸망의 위기에 처했다.


“폴란드 공화국에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갈리치아 일대 영유권을 인정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을 우크라이나의 정통 정부로 승인하고, 볼셰비키와의 전쟁을 도와주십시오.”


양면 전선에서의 전쟁은 그 강성한 독일 제국조차 감당하지 못했던 고난이었다.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폴란드의 야욕과 볼셰비키의 위협 사이에서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차악을 선택했다.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은 갈리치아 일대만을 원하는 폴란드보다 우크라이나 전역을 집어삼키고 있는 볼셰비키가 더 큰 위협이라 판단했다.

결국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은 갈리치아 일대의 우크라이나인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볼셰비키의 위협에 집중하기 위해 갈리치아 일대를 포기했다.


볼셰비키의 서방 공세에 위협을 느끼고 있던 폴란드 공화국은 갈리치아 일대의 영유권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볼셰비키와의 전쟁을 도와달라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수락했다.

볼셰비키와의 전쟁을 결의한 폴란드 공화국은 즉각적인 행동에 나섰다.


“폴란드의 고토를 회복하여 찬란했던 그 시절의 폴란드를 재건하자!”


폴란드군은 네만강을 건너 벨라루스 서부 핀스크를 점령했다.

핀스크는 유대인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도시로, 과거 폴란드 영토였던 시절이 길었던 도시다.

폴란드는 이를 근거로 핀스크를 폴란드 영토라 주장했다.


핀스크를 시작으로 벨라루스 서부 주요 도시들이 속속 폴란드군에 함락되자, 볼셰비키는 벨라루스 소비에트 공화국 소속 적군 5만을 투입하여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폴란드군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고, 벨라루스 적군은 잇따라 패배를 거듭했다.

결국 폴란드군은 벨라루스 중부 방면까지 진격하여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를 점령하였다.


폴란드군은 벨라루스 침공과 동시에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을 빠르게 점령했다.

또한, 리투아니아를 거쳐 라트비아 남동부까지 진격하여 일부 지역을 점령했다.


폴란드군의 기세에 깜짝 놀란 볼셰비키는 양측의 분쟁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제안했다.


“리투아니아의 빌뉴스, 벨라루스의 핀스크, 우크라이나의 갈리치아 등 폴란드인의 민족적 정체성이 강한 도시들은 폴란드 영토로 인정하겠습니다. 대신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를 반환하고, 폴란드군의 동진을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의 독립을 지지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면 협상은 결렬될 것입니다.”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던 폴란드는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까지 점령했던 영광스러운 과거를 재현하기를 꿈꾸고 있었다.

이 기세라면 폴란드는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폴란드 분할로 멸망하기 이전의 영토를 모두 수복할 수 있어 보였다.

폴란드의 영광스러운 과거에는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그리고 우크라이나까지 모두 폴란드의 영토였다.


당연하지만 볼셰비키가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리는 없었다.

우크라이나의 흑토지대는 러시아의 핵심지대 중 하나였다.


협상이 결렬되자 폴란드는 즉각 공세를 재개했다.

폴란드군은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우크라이나 방면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폴란드군의 공세는 순식간에 우크라이나 전역을 휩쓸었다.

폴란드군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키이우)까지 함락시켰다.

폴란드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영광스러운 시절의 영토 회복이 눈앞에 다가온 듯했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언제까지 당할쏘냐.

볼셰비키는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하였다.


일찍이 남우크라이나 방면으로 진입한 볼셰비키 적군은 정치장교 스탈린의 지휘 아래 남러시아 백군의 공세를 막고 있었다.

그렇기에 폴란드와의 전쟁에는 새로 징집한 적군 100만 명이 투입되었다.

폴란드 방면 최고 정치장교로는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의 국방차관인 내가 직접 나섰다.


볼셰비키 적군의 반격은 성공적이었다.

나는 우크라이나 방면, 벨라루스 방면, 리투아니아 방면 등 세 방면에서 동시에 폴란드군을 몰아쳤다.

반격 10일 만에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키이우)가 볼셰비키 적군에 의해 재점령되었다.

그 후 각각 10일 간격으로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도 해방되었다.


“부됸니 동지. 소문으로만 듣던 카자크 용기병의 용맹함을 나에게 보여주시오.”


“무적 카자크 용기병대의 돌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폴란드군 따위 하룻밤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친 혁명파 카자크 용기병대을 이끌고 볼셰비키 적군에 가담한 세묜 부됸니를 제1기병군 사령관으로 임명하었다.

부됸니는 제1기병군을 지휘해 폴란드군의 방어선을 붕괴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독일은 폴란드의 물자반입을 거부합니다. 폴란드로 향하는 전쟁물자는 독일을 경유할 수 없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폴란드와 러시아의 전쟁에 중립을 선언합니다. 폴란드로 향하는 지원군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폴란드와 국경분쟁을 겪고 있던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는 이 기회에 볼셰비키의 힘을 빌려 폴란드를 아예 멸망시키려 나섰다.

독일은 폴란드로 향하는 물자가 자국을 경유하는 것을 거부했고, 체코슬로바키아는 중립을 선언하며 헝가리가 파견한 3만의 기병 군단을 막아섰다.


이제 볼셰비키 적군이 폴란드 본토를 향해 진군할 차례였다.

나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진군을 시작했다.


이처럼 점령한 모든 영토를 빼앗기고 이제 폴란드 본토까지 볼셰비키 적군에게 짓밟힌 위기에 처한 폴란드는 급히 영국에 SOS를 보냈다.

이에 영국은 폴란드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다급히 개입하여 새로운 국경선을 제시했다.


“폴란드의 독립은 영국이 보장한다! 러시아군이 폴란드의 영토 안으로 진격할 시에는 영국도 대응에 나설 것이다! 영군은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에 새로운 국경선을 제시한다!”


영국이 제시한 국경선은 러시아 제국 시절 가지고 있던 폴란드 영토를 그대로 돌려주는 제안이었다.

이러한 영국의 제안에 볼셰비키 중앙위원회 내에서 의견이 갈렸다.


“적군이 폴란드에 진입하면 모든 노동자들과 유럽의 좌파 정당이 혁명을 일으켜 우리를 맞이할 겁니다. 제국주의의 제안을 무시하고 세계혁명을 위하여 폴란드의 혁명을 완수합시다! 폴란드를 거쳐 독일까지 모두 적화해 거대한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을 만듭시다!”


트로츠키는 영국의 제안을 무시하고 폴란드를 침공할 것을 주장했다.

언제나 그렇듯 영구혁명론에 기반한 주장이었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폴란드와 독일이 아니라 반볼셰비키 백군의 섬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폴란드에 정신을 쏟는 사이 백군이 회생하면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폴란드 노동계층의 강성한 민족주의도 문제입니다. 설령 독일과 폴란드의 적화가 가능하더라도 민족문제 때문에 독일과 폴란드가 연방에 가입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겁니다.”


남러시아에서 볼셰비키 백군을 상대하고 있던 스탈린이 트로츠키의 의견을 전면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볼셰비키의 서열 2위와 3위가 의견이 나뉘자 레닌은 폴란드 전선을 지휘하고 있던 나에게 의견을 물어왔다.


“폴란드 국경에 가까이 갈수록 보급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폴란드인 노동자와 농민들도 볼셰비키에 협력하기는커녕 우리를 침략자로 인식하고 맹렬히 저항하고 있습니다. 벨라루스의 도시 핀스크,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이러한 저항을 겪었으니 폴란드 국경 안으로 진입하면 얼마나 더 큰 저항이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됩니다.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국방차관이자 폴란드 방면 최고 정치장교로서 영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전쟁을 멈추길 제안합니다.”


나는 비스와 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바르샤바 전투를 알고 있었다.

원 역사에서 폴란드는 바르샤바 전투를 기점으로 다시 한 번 전쟁의 주도권을 뺏어온다.

물론 내가 직접 전투를 지휘하는 만큼 반격의 기회를 줄 생각은 없지만.

괜히 찝찝한 것은 사실이었다.


내 의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논의 끝에 영국의 중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영국의 중재에 따라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과 폴란드 공화국은 정전을 합의했다.

이 조약으로 영국은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의 러시아 제국 시절의 영토 회복을 사실상 승인하였다.

이로써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이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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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남러시아 백군 +1 24.09.01 778 15 11쪽
» 볼셰비키-폴란드 전쟁 +2 24.09.01 784 17 11쪽
19 볼셰비키 적군 +2 24.09.01 767 18 11쪽
18 독일 혁명 +1 24.08.31 785 16 12쪽
17 러시아 내전 +3 24.08.31 820 17 11쪽
16 시베리아 출병 +1 24.08.31 810 16 11쪽
15 스탈린과 친구들 24.08.30 854 16 11쪽
14 모스크바 천도와 조선의 맛 +2 24.08.30 856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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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독립운동가 최재형 +1 24.08.30 846 19 11쪽
11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3 24.08.30 827 16 11쪽
10 레닌의 초대 (2) 24.08.29 851 18 11쪽
9 레닌의 초대 +1 24.08.29 822 17 12쪽
8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1 24.08.29 831 19 12쪽
7 볼셰비키 혁명 +2 24.08.29 853 26 11쪽
6 적위대장 페치카 +1 24.08.29 869 21 11쪽
5 레닌의 러닝메이트 +3 24.08.28 917 20 11쪽
4 볼셰비키 입당과 트로츠키 +3 24.08.28 948 1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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