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소련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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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라니
작품등록일 :
2024.08.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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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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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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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최재형

DUMMY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체결되어 러시아와 동맹국과의 전쟁이 종전되었다.

애국심이 가득한 일부 국수주의자들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라는 러시아 제국의 정당한 영토를 상실한 것에 분노했으나 이는 극히 일부였다.

대부분의 러시아 인민들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났음을 기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러시아 각지에서는 이미 새로운 전쟁의 기운이 고조되고 있었다.

핀란드에서는 독일과 유착한 백군과 핀란드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한 적군 사이에 내전이 발생했고,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이슬람교가 종교적 자유를 위해 일어났으며, 우크라이나와 캅카스의 지역에서는 민족주의 세력이 독립을 외쳤다.

그뿐만 아니라 제헌의회를 해산당한 사회혁명당이 시베리아에서 임시정부를 구성해 볼셰비키 혁명정부을 비난하고 나섰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코르닐로프도 탈옥하여 남러시아 지역에서 반볼셰비키 백군을 창설했다.


이렇듯 본격적인 러시아 내전이 임박한 가운데.

나는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타고 연해주 우수리스크로 향했다.


코르닐로프의 쿠데타 이후 볼셰비키에 가입하여 쉴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가 이런 급박한 시기에 우수리스크로 향하는 이유가 뭐냐고?

뭐긴 뭐야.

가족을 만나기 위함이지.


사실 시간을 내려고 한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일찍 우수리스크에 다녀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최운학의 가족을 만날 염치가 없었다.

나는 최운학이면서 최운학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최운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않을까?

혹시라도 들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걱정 속에 가족과 만나는 시간을 미루고 미루다 보니 이제는 러시아 내전이 임박했다.

아니, 사실 이미 러시아 내전은 발발했다고 해도 무방했다.

단지 아직은 본격적인 연합국의 개입이 없었기에 러시아 전역으로 내전의 불길이 번지지 않았을 뿐.


이제는 가족을 만나야 한다.

연합국이 본격적으로 러시아 내전에 개입하기 전에 가족을 러시아의 수도 페트로그라드로 데리고 와야 했다.

특히 벌써 블라디보스토크에 순양함을 정박시키고 시베리아 출병 각을 재고 있는 일본이 러시아 내전에 개입하기 전에 말이다.


나는 무려 6박 7일이라는 대장정을 거쳐 우수리스크에 있는 본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빠! 뭐 하다 이제 왔어! 그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아빠! 할아버지가 나 인형 많이 사줬다! 아빠는 선물 없어?”


우수리스크에 있는 본가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자녀들이 뛰어나와 나를 반겼다.

최운학은 이미 아들 둘과 딸 둘을 가진 아버지였다.


와, 근데 애들 정말 많이 컸네.

내 기억 속에 애들은 완전 아기던데.

근데 왜 첫째랑 둘째만 뛰어나오는 거야?

셋째와 넷째는 어디 갔어?


나는 가족을 만나보니 지금껏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생전 처음 보는 가족이었음에도 생각보다 어색함이 밀려오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이 시대의 최운학이 살아온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도 어색함을 가시는데 한몫했다.


“형. 오랜만이야. 그동안 대충 소식은 들었어. 성공했더라?”


“오빠! 전쟁터에서 다친 곳은 없어?


“오빠! 왜 이렇게 연락이 없어! 우리가 오빠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어야겠어?”


“형. 마을에 소문 다 났어! 적위대장 페치카 최! 완전 멋져!”


“오빠? 진짜 큰 오빠 맞아?”


“저게 내 오빠...?”


“저게 내 형...?”


뒤이어 최운학의 동생들도 나와 한 마디씩 던졌다.

와, 애들이 도대체 몇이냐.


기억에 따르면 최재형의 4남 7녀 중, 여동생 셋이 이미 시집을 갔으니 본가엔 남동생 셋과 여동생 넷이 살고 있겠네.

와, 어마어마한 대가족이구만.

이 시대엔 이게 보통이려나?


아무래도 막내 라인 애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쟤네 나이가 지금 8살, 6살, 4살인가?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네.


“호들갑 떨지 말고 다들 들어오거라. 운학이도 어서 들어오고.”


“네. 어머니.”


어머니께서 나오시더니 문 앞에서 벌어진 소란을 간단히 진압하였다.

아, 역시 어머니는 위대하구나.


집안에 들어오니 어머니 뒤에 숨어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두 아이가 보였다.

내 셋째와 넷째는 저기 있네.


얘들은 왜 마중을 안 나오고 저렇게 빼꼼 숨어있는 걸까 고민해보니 바로 답이 나왔다.

얘네들 아빠 얼굴을 모르는구나.


“얘들아.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오...””


부엌에서 최운학의 아내가 나와 애들을 인사시켰다.

현대에서는 아직 결혼도 안 한 나였는데 어쩌다 보니 한방에 아이 넷 가진 유부남이 되어버렸다.


“아버지,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밥 차려놨으니 식사부터 하자꾸나.”


나는 1차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징집되어 무려 4년 만에 집에 돌아온 입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들은 내가 약간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여도 그러려니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오늘 도착한다고 미리 전신을 보내놔서 그런가?

집안에는 이미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와, 이게 얼마만의 한식이냐.

입가에 침이 고이네.

잘 먹겠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냈어?”


“전쟁터는 어땠어?”


“혁명은 또 뭐야? 어쩌다가 거기에 참여한 거야?”


대충 짐을 풀고 식탁에 앉자 동생들의 질문 세례가 시작되었다.

어... 그러니까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하지?

나는 식사를 하면서 동생들의 궁금증을 모두 풀어줘야 했다.


“운학아. 잠시 이야기를 좀 나누겠느냐?”


“네. 아버지. 어디서 이야기를 나눕니까?”


“내 서재로 가자꾸나.”


나는 식사를 마친 후, 아버지 최재형과 함께 서재로 향했다.

마침 나도 바쁜 와중에 우수리스크까지 내려온 목적을 이뤄야 하는데 좋은 기회다.

다시 페트로그라드로 돌아갈 시간까지 생각하면 2주에 달하는 일정이었기에 또 내려올 시간은 없었다.


“그래. 혁명에 참여해서 큰 공을 세웠다고 들었다. 넌 이미 가정을 이룬 성인이니 너의 선택에 왈가왈부하지는 않으마. 내가 궁금한 것은 ‘러시아 내 모든 민족의 권리 선언’에 대한 의문이다. 연해주에 살아가는 우리 조선인도 이 선언에 포함되느냐?”


역시 독립운동가 최재형인가.

최재형의 관심사는 오직 고국 조선의 독립이었다.


만약 러시아 혁명이 조선 독립에 도움이 된다면?

굳이 이를 배척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겠지.


실제로 역사에서도 최재형은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그들에 대항하는 혁명군과 함께 싸우길 택한다.

그렇기에 나는 최재형에게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조선인이 이 선언에 포함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를 물으신다면 당연히 포함된다고 대답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볼셰비키 혁명정부의 선언을 곧이곧대로 들으시면 안 됩니다. 당장 우크라이나와 캅카스 지역에서 민족주의 세력이 독립을 외치고 있으나, 볼셰비키 혁명정부는 이들의 독립을 인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볼셰비키가 선언한 민족의 자결권은 러시아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민족이 스스로 공산주의 혁명을 이룰 권리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나는 최재형에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원인과 공산주의 이념이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리고 이어서 볼셰비키 혁명정부가 외치는 민족의 자결권에 대하여도 설명을 이어갔다.

최재형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면 우리 조선이 공산주의 혁명을 받아들인다면 볼셰비키 혁명정부가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원해 줄 것이라는 이야기냐?”


“볼셰비키 혁명정부가 곧 있을 내전에서 승리한다면, 그들은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라도 제국주의에 신음하는 소수민족 독립을 지원할 것입니다. 우리 조선이 공산주의 혁명을 받아들인다면 당연히 볼셰비키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를 결코 단순한 호의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볼셰비키의 도움을 받아 독립을 쟁취하면 최악의 경우, 지배국만 바뀐 결과를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내 대답을 들은 최재형은 고민이 많아 보였다.

최재형은 그 후에도 러시아 혁명이 조선 독립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관한 질문을 이어갔다.

나는 성심성의껏 모든 질문에 답하며 최재형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자, 이제 최재형의 질문에 모두 대답했으면 내 용건을 해결해야겠지?

나는 최재형에게 우수리스크에 온 목적을 털어놓았다.


“아버지. 페트로그라드에 가족들과 함께 살 저택을 마련해 놨습니다. 함께 페트로그라드로 올라가시죠.”


“혁명에 동참해서 큰 공을 세웠다더니 페트로그라드에 저택까지 마련할 정도면 정말 성공하긴 성공했구나. 그래 어느 정도 크기의 저택이냐?”


“어마어마한 대저택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 살기에는 충분한 크기입니다. 귀족이 살던 저택이라 고풍스럽기도 하고요.”


“네가 참 자랑스럽구나. 그러면 이번에 아내랑 애들을 데리고 올라갈 생각이냐?”


“제 아내와 애들은 물론이고,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들까지 모든 가족을 데리고 올라갈 계획입니다.”


최재형은 우수리스크를 점령한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런 역사를 알고 있는데 어찌 이를 방치하겠는가?

나는 당연히 최재형을 포함한 가족 모두를 페트로그라드로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운학아. 내가 있어야 할 장소는 여기다. 내가 우수리스크 조선인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데 어떻게 페트로그라드로 떠나겠느냐?”


“어찌 동포들만 걱정하시고 우리 가족이 겪을 고초는 걱정하지 않으십니까? 이미 일본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북상하기 시작하면 우수리스크는 너무 위험합니다! 우수리스크가 일본에 점령당하면 우리 가족이 일본 놈들에게 어떠한 고초를 겪어야 할지는 상상해보셨습니까? 아버지께서 끌려가는 것은 물론이요, 가족들도 모조리 끌려갈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보겠느냐?”


“현재 볼셰비키는 유럽에서 일어나는 반란군을 진압하는 것이 더 급합니다. 일본이 연해주를 점령할지라도 당장은 몰아낼 힘이 없습니다.”


“그럼 우리 조선 동포들은 어쩌느냐? 차라리 동포들과 힘을 합쳐 일본군을 막아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네가 적위대장으로서 동포들을 도울 방도가 없겠느냐?”


“아버지가 그리 말씀하지 않으셔도 이미 동포들을 도울 방도는 생각 중입니다. 연해주에서 일어나는 조선인 부대들을 정식으로 적위대에, 아니 곧 창설될 적군에 편입할 겁니다. 그러면 합법적으로 러시아에서 일본에 대항할 수 있는 부대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동포들에 대한 걱정은 저에게 맡기시고 함께 페트로그라드로 가시지요.”


“네 뜻이 정 그러하다면 어머니랑 동생들만 챙겨서 페트로그라드로 올라가려무나. 아무리 그래도 난 여기를 떠날 수 없다. 이 아비는 우수리스크 조선인 대표로서 동포들과 힘을 합쳐 일본군을 막을 방법을 고민해봐야겠구나.”


나는 끝내 최재형을 설득할 수 없었다.

과연 최재형은 만인의 존경을 받는 독립운동가였다.

나는 할 수 없이 최재형을 홀로 둔 채 가족을 챙겨 페트로그라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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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최재형 +1 24.08.30 846 19 11쪽
11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3 24.08.30 827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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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볼셰비키 혁명 +2 24.08.29 852 26 11쪽
6 적위대장 페치카 +1 24.08.29 868 21 11쪽
5 레닌의 러닝메이트 +3 24.08.28 917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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