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소련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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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라니
작품등록일 :
2024.08.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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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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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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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소비에트 공화국

DUMMY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 하바롭스크.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완충국으로 설립되었던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은 평양 조약으로 전쟁이 끝나면서 그 존재의 의미를 잃었다.

자연스럽게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은 해체되었고, 서쪽의 바이칼 호수 주변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에 편입되었으며, 동쪽의 연해주에는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이 설립되었다.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영토는 현대 러시아의 아무르주, 하바롭스크 지방, 프리모리예 지방, 사할린주, 유대인 자치주에 해당하는 광활한 지역으로, 그 면적은 단순비교로 한반도의 약 8배에 달했다.

여기에 더해 평양 조약으로 일본이 할양한 함경도와 중국으로부터 강탈한 간도 지역도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영토에 포함되었다.

특히 극동 지방 적군의 최고 정치장교 바실리 블류헤르가 하얼빈을 포함한 송화강 동쪽의 모든 땅을 간도라 주장하며 점령함에 따라 현대의 연변 조선족 자치구는 물론 헤이룽장성의 절반에 가까운 넓은 영토가 모두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수도는 하바롭스크로 결정되었다.

하바롭스크는 극동 지방의 최대도시일 뿐만 아니라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중심부에 위치해 행정과 교통의 요충지로서 적합했다.


물론 조선인들에게 더 친숙하고 유명한 도시는 블라디보스토크였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는 마지막까지 일본군에게 점령당해 많은 피해를 입었고, 결정적으로 일본과 너무 가까웠다.

현재 소련 해군은 거의 붕괴된 상태이기 때문에, 만약 일본 해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을 시도한다면 이를 막을 수 있는 해군이 없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수도는 블라디보스토크 대신 하바롭스크로 결정되었다.


“소비에트는 조선인 동지들의 이주를 환영합니다! 가족 단위로 차례대로 접수하세요! 특히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모두 차분히 줄을 서서 대기하세요! 먼저 도착한 분들부터 순서대로 안내할 예정입니다!”


“서류에 가족 구성원의 이름이 빠지지 않도록 꼼꼼히 확인해 주세요. 이름이 누락되면 나중에 토지 배분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약 200만에 달했다.

소비에트는 이러한 대규모 이민자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먼저 도시에 살기를 원하는 이주민들과 농사를 짓기를 원하는 이주민들을 분류했다.

도시에 살기를 원하는 이주민들은 그들이 가진 기술에 따라 해당 분야의 일자리에 배치했다.

예를 들어 건축 기술자는 도시의 사회 기반 시설 재건에 배치되었고, 한의사는 의료 분야에 배치되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경우에는 일반 노동자로 분류되어 각종 공장에서 적절한 노동 환경을 제공했다.

이들은 도시 노동자로서 소비에트에 가입하고 도시 생활에 적응해 갈 것이다.


“개간지를 배정받은 조선인들은 신속히 버스에 탑승하세요! 자리가 비좁아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세요! 곧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농사를 선택했다.

이는 이주 전 조선인들 대부분이 농사에 종사했기 때문이며, 또한 농사를 지으면 토지를 나눠주겠다는 소련의 정책에 이끌린 것도 있었다.

마침 소련은 전쟁으로 파괴된 인프라를 재건하기 위해 농업 진흥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소련은 대규모로 이주한 조선인들을 활용해 극동 지방의 미개척지를 개발하고자 했다.

특히, 평양 조약으로 편입된 삼강평원에 주목했다.

삼강평원은 흑룡강, 송화강, 우수리강 사이에 위치한 퇴적 평원으로, 비옥한 흑토가 형성되어 있는 지역이다.


흔히 흑토 지대라고 하면 우크라이나의 흑토 지대가 가장 유명한데, 우크라이나는 이 흑토 덕분에 세계적인 곡물 생산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럽의 곡창'이라고 불린다.

삼강평원 역시 대규모 흑토 지대가 형성되어 있어, 제대로 개간만 이루어진다면 소련은 우크라이나에 이어 또 다른 대규모 곡물 생산 지역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러시아 제국 시절 곡물 생산의 대부분을 우크라이나에 의존했던 것을 고려하면, 삼강평원의 개발은 소련에게 엄청난 전략적 이점을 제공하는 선택지였다.


“정말로 이 땅을 개간하기만 하면 우리에게 나눠주는 거요?”


“당연합니다. 우리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모든 농민이 자신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비에트의 일원으로서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수확한 곡물은 어떻게 되는 거요?”


“농민들이 수확한 곡물은 정부에서 일정한 가격에 수매할 겁니다. 이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부의 수매 가격은 합리적일 것이며, 그에 따른 여러 가지 공산품들이 적절한 가격에 공급될 겁니다.”


“그렇군요. 우리는 이 땅에서 가족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성공적인 정착과 번영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필요한 지원이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소비에트는 여러분의 새로운 조국이 될 것이며, 우리는 함께 이곳을 더욱 발전시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잘 준비해보겠습니다.”


처음에 200만 조선인이 극동지방으로 이주하게 되었을 때, 그들의 마음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의 식민지를 벗어났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또다시 낯선 땅을 향하고 있었다.

강제로 떠밀린 사람도 있었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스스로 떠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 수 없는 미래 앞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극동의 대지.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평원과 눈으로 덮인 산맥이 조선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조선에서의 삶이 끝났다는 것을 아는 순간,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러나 그들이 이주한 소련은 그들의 걱정보다 훨씬 친절했다.

개간할 땅을 나눠주었고, 개간할 도구를 지원했다.

비록 당장 먹을 것은 부족했지만 모든 것이 행복했다.


조선인들은 먼저 그들의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삼강평원은 광활한 대지와 거친 자연에 둘러싸여 있었다.

넓게 펼쳐진 평원과 숲, 그리고 드넓은 하늘 아래에서 그들은 농사를 짓고, 마을을 세우고, 새로운 삶을 일구어 나갔다.

물론 모든 것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혹독한 겨울, 황량한 바람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강했다.

일제 치하에서 억눌려왔던 때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였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했던가?

개간만 마치면 이 땅을 전부 준다고 하지 않았나.

이제는 악덕 지주 아래에서 소작농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


농사를 짓는 손길 속에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서, 조선인들의 꿈과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그들은 극동의 새로운 땅을 그들의 '두 번째 고향'으로 만들어나갔다.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인민위원장으로 최재형 동지를 추천합니다. 최재형 동지는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원활히 정착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선인들의 안정적인 정착과 사회 통합을 위해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으며, 그의 능력과 헌신은 인민위원장으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최재형 동지는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비전과 목표를 실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동의합니다. 최재형 동지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인 동지입니다. 그는 독립운동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자신의 자산을 독립운동에 사용한 바 있습니다. 이는 그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정한 헌신을 가진 동지임을 보여줍니다. 최재형 동지는 조선인 사회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으며, 그의 경험과 능력은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인민위원장으로서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한인사회당, 아니 이제 소련 공산당 산하의 조선 공산당은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인민위원장으로 최재형을 추천했다.

이는 어쩌면 최씨 부자가 조선인을 완전히 장악할 기회였다.

그러나 최재형은 이 기회를 만류했다.

최재형은 자신이 조선 인민위원장을 맡으면 소련 외무장관에 취임한 장남에게 약점이 될까 염려했다.


“저를 추천해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제 아들 최운학 동지가 현재 소련 정부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제가 이 직책을 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제 아들이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는 만큼, 제 역할은 그의 진로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재야에서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이주해온 조선인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최재형이 조선 인민위원장 직을 사양함에 따라 조선 인민위원장 자리는 한인사회당의 당수였던 이동휘에게 넘어갔다.


“최재형 동지의 사양으로 조선 인민위원장 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최재형 동지께서 자리를 사양하신 이유와 그의 뜻을 존중하며, 저는 이 책임을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제가 이 자리를 맡게 된 것은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큰 책임이자 기회로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동지들과 협력하여, 조국의 미래를 밝히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동휘는 바이칼 호수 주변의 이르쿠츠크 공세에서 최운학과 함께 일본군과 싸웠다.

특히 조선 진군 중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볼셰비키 적군에 지원하도록 연설하며 조선의 독립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이러한 업적은 그가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인민위원장으로 선출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음을 보여줬다.


이동휘를 중심으로 한 조선 소비에트 정부는 새롭게 구성된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내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다양한 정책을 통해 조선인들의 안정적인 정착과 사회발전을 이끌어 나갔다.


먼저, 대규모 이주민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정부는 이주민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이주민들에게는 초기 정착 지원금이 지급되었으며, 그들이 새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이 제공되었다.

또한, 농업과 관련된 기술 훈련을 통해 이주민들이 효율적으로 개간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 자치의 활성화를 추진하였다.

각 지역에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자치 기구를 설립하고, 지역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삼강평원의 비옥한 토지를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대규모 곡물 생산을 이루어내고, 이로 인해 지역 경제의 자립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농업 외에도 다양한 산업 분야를 발굴하고 지원하여 경제의 다변화를 이루어 나갔다.


이러한 종합적인 정책들을 통해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은 조선인들이 새로운 환경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지역 사회와 경제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조선 소비에트 정부는 조국의 미래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며,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의 번영을 위한 기반을 다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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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 +2 24.09.13 671 27 12쪽
34 외무장관 페치카 +6 24.09.12 686 28 12쪽
33 소비에트 연방 설립 +2 24.09.11 738 23 11쪽
32 열병식과 적기훈장 수훈 +1 24.09.10 763 24 11쪽
31 철군과 몽골 혁명 +4 24.09.09 812 22 11쪽
30 조선인 이주계획 +4 24.09.08 807 19 11쪽
29 평양 강화 회의 +3 24.09.07 824 23 12쪽
28 한반도 해방 작전 +6 24.09.06 840 14 11쪽
27 개성 방어선 +6 24.09.05 805 23 11쪽
26 평양 전투 +3 24.09.04 818 19 10쪽
25 조선 진군 +4 24.09.03 861 23 12쪽
24 1919년 3월 1일 +3 24.09.02 851 19 11쪽
23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 +1 24.09.02 810 18 11쪽
22 시베리아 임시정부 +2 24.09.01 808 15 11쪽
21 남러시아 백군 +1 24.09.01 778 15 11쪽
20 볼셰비키-폴란드 전쟁 +2 24.09.01 783 17 11쪽
19 볼셰비키 적군 +2 24.09.01 766 18 11쪽
18 독일 혁명 +1 24.08.31 784 16 12쪽
17 러시아 내전 +3 24.08.31 820 17 11쪽
16 시베리아 출병 +1 24.08.31 810 16 11쪽
15 스탈린과 친구들 24.08.30 854 16 11쪽
14 모스크바 천도와 조선의 맛 +2 24.08.30 855 19 12쪽
13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1 24.08.30 831 17 11쪽
12 독립운동가 최재형 +1 24.08.30 846 19 11쪽
11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3 24.08.30 827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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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레닌의 초대 +1 24.08.29 821 17 12쪽
8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1 24.08.29 830 19 12쪽
7 볼셰비키 혁명 +2 24.08.29 852 26 11쪽
6 적위대장 페치카 +1 24.08.29 868 21 11쪽
5 레닌의 러닝메이트 +3 24.08.28 917 20 11쪽
4 볼셰비키 입당과 트로츠키 +3 24.08.28 948 19 11쪽
3 나는 소비에트를 지지한다 +1 24.08.28 992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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