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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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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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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의 세계

DUMMY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은 전례 없는 혼란과 격변의 시기를 맞이했다.

전쟁은 유럽의 경제, 사회, 정치 구조를 송두리째 재편했고, 그 영향은 각국의 운명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특히 패전국인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은 전쟁의 여파를 가장 극심하게 겪었다.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알자스-로렌 지역은 프랑스에 반환되었고, 독일 동부의 포젠과 서프로이센 일부는 폴란드에 할양되었다.

덴마크는 북슐레스비히를 되찾았으며, 벨기에는 에이펜과 말메디 지역을 얻었다.

이로써 독일은 전쟁 중 강제로 병합했던 지역뿐만 아니라, 본래 독일 제국의 영토 일부도 상실하면서 국토가 크게 축소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은 또한 독일이 전쟁의 책임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것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독일은 1,320억 금 마르크라는 엄청난 배상금을 협상국에 지불해야 했다.


군사적으로도 독일은 심각한 제한을 받았다.

군대는 10만 명으로 축소되었고, 공군은 완전히 해체되었으며, 해군 역시 대폭 감축되었다.

더불어 라인란트는 비무장 지대로 지정되어 독일은 프랑스와의 국경을 방어할 능력마저 상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여전히 핵심 영토를 지켰다.

이 조약은 화해라기에는 너무 가혹했으며, 독일의 완전한 회복을 막기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관대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붕괴는 유럽의 지도를 극적으로 바꾸었다.

한때 거대한 다민족 제국으로 중부 유럽을 지배하던 오헝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여러 독립국으로 분할되었고, 이는 민족주의의 부상과 새로운 국가들의 탄생을 불러왔다.

유럽의 오랜 질서는 무너졌고, 제국의 위세는 사라진 채 작은 공화국들만이 남게 되었다.


오스트리아는 생제르맹 조약을 통해 많은 영토를 상실했다.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는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하며 제국의 중심부였던 이 지역을 떠나보냈고, 남부 티롤과 트렌티노는 이탈리아로 넘어갔다.

한때 제국의 중요한 일원이었던 갈리치아는 폴란드의 손에 들어갔으며, 이에 따라 오스트리아는 더이상 중부유럽의 주도적인 세력이 아닌 작은 공화국으로 전락했다.

또한 이 조약은 오스트리아가 독일과 합병하는 것을 금지하여, 오스트리아는 독일과의 연대를 통한 회복조차도 막혀버린 상태였다.


헝가리 역시 트리아농 조약으로 과거 영토의 대부분을 잃어야만 했다.

루마니아는 트란실바니아를 가져갔고, 슬로바키아와 루테니아는 체코슬로바키아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유고슬라비아로 넘어갔다.

헝가리는 전 국토의 약 70%와 인구의 60%를 상실하며 제국 시절의 광대한 영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러한 상실은 헝가리 역사상 가장 큰 국토 축소였으며, 남겨진 국민들에게는 민족적 상실감과 깊은 분노를 남겼다.


이 와중에 탄생한 신생국 체코슬로바키아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로부터 보헤미아, 모라비아, 슬로바키아, 루테니아 등의 지역을 얻어 새로운 국가로 출발했다.

그러나 이곳은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새로 형성된 국경은 그 민족적 경계를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했다.

민족 간 갈등의 씨앗이 남은 상태에서 체코슬로바키아는 불안한 출발을 해야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붕괴로 유럽 중부가 급변한 가운데, 남쪽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탄생하며 발칸 지역의 새로운 질서를 형성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 된 세르비아 왕국을 중심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립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그리고 북마케도니아가 연합하여 남슬라브 민족이 모인 새로운 왕국이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세르비아 왕가가 새로운 왕국을 통치하였지만 다양한 민족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정치적 통합이 쉽지 않았다.


초기의 국명은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었지만, 후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남슬라브인의 땅’이었다.

이로써 발칸 반도는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민족주의가 강하게 대두하던 시기,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발칸의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하며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폴란드는 비로소 독립국의 지위를 되찾았다.

비록 소련에 패전하며 동부 영토의 일부를 잃었지만, 대신 서쪽으로 독일의 포젠과 서프로이센 일부를 차지하면서 발트해로 나아가는 길을 얻었다.

이 지역은 '폴란드 회랑'이라 불리는 좁은 지대였다. 이 회랑은 폴란드가 바다로 진출할 수 있는 중요한 경로였지만, 독일 본토와 동프로이센을 단절시킴으로써 독일과의 긴장 관계를 심화시켰다.


한편,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단치히는 국제 연맹의 관리 아래 '단치히 자유시'로 남아 있었다. 이곳은 독일인이 95%를 차지하고 폴란드인이 5%를 차지하는 도시로, 폴란드가 바다로 나아가기 위한 관문 역할을 했다.

하지만 독일인이 대다수인 단치히를 폴란드에 직접 합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단치히는 독립된 자유시로 유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치히는 실질적으로 폴란드군이 주둔하며 폴란드의 영향 아래 있었다.


폴란드 정부는 단치히 항구의 경제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단치히와 폴란드 회랑을 완벽히 장악하여 폴란드의 통제 아래 두고자 했다.

이를 위해 소련에서 추방된 폴란드인 800만 명은 정부의 인도를 따라 폴란드 회랑 지역으로 이주했다.

특히 폴란드 정부는 단치히 자유시로도 많은 폴란드인을 이주시켜 이 도시를 폴란드인의 도시로 만들 야망을 드러냈다.


오스만 제국 역시 전쟁의 패배로 그 영토 대부분을 잃으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오스만 제국의 영토는 승전국들에 의해 철저히 분할되었고, 그 결과 중동 지역의 지형 또한 크게 바뀌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중 비밀리에 체결한 사이크스-피코 밀약에 통해 중동을 분할했다.

이 밀약에 따라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위임통치하게 되었고, 영국은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라크에 대한 통제권을 얻었다.

이로써 두 나라는 중동에서 각각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며 식민지화했다.


그러나 중동의 이권을 둘러싼 경쟁은 영국과 프랑스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도 오스만 제국의 영토 분할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패배를 틈타 서부 소아시아, 특히 스미르나(현재의 이즈미르)를 포함한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군대를 파견했다.

그리스는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탈리아 역시 남부 소아시아의 일부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오스만 제국의 해체 과정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리비아를 이미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차지한 바 있었지만, 제국의 붕괴와 함께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려 했다.

이탈리아는 전후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영토를 독식하는 것을 경계하며 적극적으로 영토 분할에 가담했다.


이뿐만 아니라 전쟁 직후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도 협상국에 의해 점령되었다.

협상국은 콘스탄티노플을 공동으로 관리했고, 오스만 제국은 사실상 제국의 상징적 권위를 잃은 상태였다.


이런 오스만 제국의 몰락 속에서도 터키(튀르키예) 본토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무스타파 케말(훗날 케말 아타튀르크)이 주도한 저항 운동은 협상국의 압박에 맞서기 시작했다.

케말은 앙카라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고, 독립전쟁을 벌여 터키의 주권을 회복하고자 했다.

이러한 민족주의 운동은 결국 오스만 제국의 붕괴 속에서 터키 공화국의 탄생을 준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오스만 제국의 패배는 단순한 영토 상실에 그치지 않고, 제국의 역사적 종말을 가져왔다.

중동은 영국과 프랑스의 위임통치 아래 들어갔고,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소아시아에서 새로운 이권을 확보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콘스탄티노플마저 연합군의 손에 넘어가면서 오스만 제국은 사실상 그 존재를 잃었지만, 그 자리를 대신해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새로운 터키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전쟁을 통해 승전국들은 식민지 확장을 노렸고,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독일의 영향력을 몰아내며 그들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확장했다.

비록 일본은 러시아 내전에 개입했다가 소련에게 패배해 조선 식민지의 일부인 함경도를 잃었지만, 그 대신 중국의 산둥반도를 장악하고 독일의 태평양 식민지를 접수하며 아시아에서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며 독일의 식민지들을 분할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아프리카 식민지인 카메룬, 토고, 남서아프리카 등을 차지하며 자신들의 제국을 확장했다.

카메룬은 프랑스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프랑스령 카메룬으로 편입했고, 영국은 서부의 작은 부분을 차지해 나이지리아와 연결된 영국령 카메룬을 형성했다.

토고 역시 두 강대국에 의해 분할되었는데 프랑스는 토고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영국은 서부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다.

남서아프리카는 독일의 지배에서 벗어나 영국의 위임통치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 지역은 현대에 나미비아로 알려져 있으며, 영국은 남아프리카 연방을 통해 그곳을 관리하게 되었다.

이처럼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 식민지를 분할하여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채웠으며,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경계선은 전쟁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게 되었다.


세계는 이런 정치적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혼란도 겪고 있었다.

특히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공산주의가 전세계에 파급되었다.

노동자 계급은 전후 경제 위기와 실업률 급증으로 인해 불만이 극에 달했고, 이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적, 공산주의적 운동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새로운 국제 질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 결과 ‘국제연맹’의 설립이 추진되었다.

이 구상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14개조 평화원칙'에 기반한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겪은 그는 국제 협력 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했다.


국제연맹의 주요 목적은 국가 간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며 외교적 해결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또한 경제 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통해 상호 신뢰를 강화하고 영구적인 평화를 추구했다.

이 기구는 무력보다는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중시했다.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국제연맹 창설 회의가 파리에서 진행되었으며, 소련의 외무장관 표트르 페치카도 이 역사적인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파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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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이후의 세계 NEW +3 9시간 전 293 13 11쪽
36 신경제정책과 누진세 +8 24.09.16 638 28 11쪽
35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 +2 24.09.13 713 27 12쪽
34 외무장관 페치카 +6 24.09.12 711 28 12쪽
33 소비에트 연방 설립 +2 24.09.11 761 23 11쪽
32 열병식과 적기훈장 수훈 +1 24.09.10 784 24 11쪽
31 철군과 몽골 혁명 +4 24.09.09 832 22 11쪽
30 조선인 이주계획 +4 24.09.08 827 19 11쪽
29 평양 강화 회의 +3 24.09.07 844 23 12쪽
28 한반도 해방 작전 +6 24.09.06 862 14 11쪽
27 개성 방어선 +6 24.09.05 828 23 11쪽
26 평양 전투 +3 24.09.04 837 19 10쪽
25 조선 진군 +4 24.09.03 888 23 12쪽
24 1919년 3월 1일 +3 24.09.02 868 19 11쪽
23 극동 소비에트 공화국 +1 24.09.02 828 18 11쪽
22 시베리아 임시정부 +2 24.09.01 825 15 11쪽
21 남러시아 백군 +1 24.09.01 798 15 11쪽
20 볼셰비키-폴란드 전쟁 +2 24.09.01 802 18 11쪽
19 볼셰비키 적군 +2 24.09.01 784 19 11쪽
18 독일 혁명 +1 24.08.31 804 16 12쪽
17 러시아 내전 +3 24.08.31 838 17 11쪽
16 시베리아 출병 +1 24.08.31 833 16 11쪽
15 스탈린과 친구들 24.08.30 875 16 11쪽
14 모스크바 천도와 조선의 맛 +2 24.08.30 875 19 12쪽
13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1 24.08.30 852 17 11쪽
12 독립운동가 최재형 +1 24.08.30 865 19 11쪽
11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3 24.08.30 848 16 11쪽
10 레닌의 초대 (2) 24.08.29 871 18 11쪽
9 레닌의 초대 +1 24.08.29 843 17 12쪽
8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1 24.08.29 853 19 12쪽
7 볼셰비키 혁명 +2 24.08.29 874 26 11쪽
6 적위대장 페치카 +1 24.08.29 892 21 11쪽
5 레닌의 러닝메이트 +3 24.08.28 942 21 11쪽
4 볼셰비키 입당과 트로츠키 +3 24.08.28 973 20 11쪽
3 나는 소비에트를 지지한다 +1 24.08.28 1,021 22 11쪽
2 러시아 제국군 대위 최운학 +3 24.08.28 1,092 24 11쪽
1 수저가 없는 아이 +1 24.08.28 1,15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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