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허구입니다.
9.
5살. 아버지 손을 잡고 야구장에 간 날. 오연식은 야구에 푹 빠져들었다.
그날부터 아버지에게 야구공과 글러브를 사달라고 떼를 썼다.
한 끼 단식 투쟁을 한 끝에 어린이용 야구방망이와 글러브, 야구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오연식이 야구를 시작한 것은.
그리고 지금 타석에 선 오연식은 자신 있었다.
“파이팅!”
“빨리 끝내드려!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우헤헤헤.”
동료들의 응원이 들린다. 피식 웃은 오연식은 자세를 잡았다.
투수는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마운드에 있는 영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첫 공은 지켜보자.’
부드럽다. 간결하면서 물 흐르듯 하다.
하지만 던지는 순간이었다.
퍼어엉!
공이 총알처럼 날아왔다.
오연식는 당황했다. 첫 공은 그냥 지켜보려고 하긴 했었다. 그런데 치려고 했다면 칠 수 있었을까?
‘무슨 구종이지? 커터인가? 투심? 아니면 포심?’
무브먼트가 크진 않았지만, 일순 공이 떠오르는 동시에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볼!”
그나마 다행인 점은 볼이 선언됐다는 것이다.
‘한 번 더 지켜볼까?’
그러나 공을 받은 포수 김태수는 놀란 눈으로 영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심밖에 없다며? 포심 맞아?
처음엔 영점이 안 잡혀서 제구가 안 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살짝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던 공은 다시 아래로 내려앉더니 오른쪽으로 휘었다.
그리고 들고 있던 미트에 그대로 빨려 들어오듯 꽂혔다.
참으로 뭣 같은 무브먼트다. 심지어 구속마저도 빠르다. 아랑고 투수랑 비교할 수 없는 더러운 공을 던진다.
아랑고 투수가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는 폭탄 같은 느낌이라면, 영수는 예상과는 다른 곳으로 날아올 것 같은 착각을 준다.
‘한 번 더 잡아보면 알겠지.’
김태수는 다시 한번 요구했다. 스트라이크 존에 걸친 곳이었다.
사인을 본 영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와인드업에 들어갔고, 김태수는 경악했다.
아니 벌써? 이렇게 빨리 던진다고?
보통은 공을 한번 던지고 나면 약 20초 정도의 간격이 있다.
타자도 준비해야 하고, 포수는 벤치에서 받은 사인을 다시 투수한테 알려주기 때문이다.
투구 간격이 짧다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빨리 투구하는 투수는 처음이었다.
펑!
그리고 이렇게 묵직하면서도 더럽게 움직이다 요구했던 미트에 그대로 꽂히는 공도.
“스트으으으라이크!”
주심의 판정이 시원스럽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자로 잰 듯 1mm의 오차도 없이 공은 완벽하게 미트에 빨려 들어왔다.
공을 받은 김태수는 전율을, 그리고 타석에 선 오연식은 눈을 의심했다.
코치라며?
10년 쉰 사람의 공이 맞아?
이번엔 진짜 치려고 했다. 배트를 휘둘러서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다.
그런데 처음에 던졌던 공보다 구속이 더 빨라져 있었다.
그때 김태수가 다시 한번 사인을 요구했고,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 영수는 팔을 휘둘렀다.
그의 손을 떠나 날아간 공이 미트에 꽂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2스트라이크 1볼.
타자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카운트.
지금까지 던진 공 3번 모두 패스트볼인데 변화구처럼 들어왔다.
이번에도 변화구 같은 패스트볼일까?
확신할 수 없지만,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야구를 많이 쉬었던 만큼 변화구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던 영수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뭘까. 왜 저러는 걸까? 직접 사인을 내려는 것인가?
보통은 포수가 사인을 투수에게 낸다. 혹은 벤치에서 받은 사인을 전달해 주거나.
하지만 경험 많은 투수일 경우엔 직접 포수에게 사인을 내기도 한다.
혹시 포심 말고 다른 변화구도 있는 것인가.
2스트라이크 1볼. 유인구 하나를 던져도 이상하지 않을 카운트였다.
혹은 유인구 하나를 예상하고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거나.
혹은 유인구를 예상하고 포심 패스트볼을 던질 것을 예상하고 다시 유인구를 던진다거나.
혹은···
아 모르겠다.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뇌에 있는 신경이 기름으로 막힌 느낌이다.
머뭇거리는 영수 때문에 오연식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것은 포수 김태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왜 저러지?
마운드에 올라가기 전 구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포심 하나만 던지겠다고 했다. 다른 변화구는 아직 연습이 되어있지 않다고.
그런데.
아직 사인을 내지도 않았는데 영수가 고개를 흔든다. 그리고 고민하는 얼굴을 하다 다 고개를 흔든다.
미친 건가?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세를 잡는다.
지금 던진다고? 아직 사인도 안 냈는데?
미친 것이 틀림없다. 현재 미트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스트라이크 존 한복판.
실수가 아니면 던지지 않는 곳이었다.
어디로 요구할까 고민하다 영수가 미친 짓을 하길래 멍하니 있다 사인을 내는 타이밍이 늦어버렸다.
그런데 왜 영수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보이는 걸까?
어쨌든 공은 받아야 하니 김태수는 긴장한다. 공이 빨라서 집중하지 않으면 포구하기 힘들다.
와인드업에 들어갔고, 지금까지 보여준 것처럼 팔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슈우우우웅.
파앙!
그리고 미트에 쏙 하고 빨려 들어오는 공.
잠시 영수가 미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공 하나는 진짜 더럽게 던진다.
오연식은 배트를 휘두르지도 못했다. 멍한 얼굴을 보니 눈 뜨고 코 베인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알 수 없다. 이건 사기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나이스 공! 퍼펙트입니다!”
김태수가 외쳤다. 그리고 속으로 확신했다.
이제 초령고는 출루하지 못할 거라고. 오연식은 초령고의 에이스였다. 그가 어쩌지 못한 공을 다른 선수들이 칠 수 있을 리가 없다.
***
영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경기를 보던 모두가 놀랐다.
왜 이렇게 잘 던져?
연습할 때 전력투구가 아니었어?
코치라며? 코치 맞아?
특히 최고야구 PD가 매우 놀랐다. 그의 눈은 찢어질 듯이 크게 떠졌다.
“140km 정도 나오는 것 같지?”
“음. 저 정도 구속이면 140을 살짝 넘기겠군. 그런데 볼 끝은 지금도 참 뭣 같이 던지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구속이 높아지면 제구가 어렵다. 140넘게 던지는데 제구가 완벽하다?
투수들이 부러워할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학생들의 평균 신장이 커지고, 구속도 증가했다.
140은 기본이고 150을 가뿐히 넘기는 괴물 투수들이 하나씩 등장한 지 오래. 157~ 160km를 기록한 투수도 있었다.
대신 그런 선수들의 제구력은 미숙했다. 140은 치기 어려운 공이지만, 초령고 에이스인 오연식이 건드려 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치지 못한 이유는 영수의 공이 좆같기 때문이다. 공이 늦게 떨어지니 140정도의 구속인데 150처럼 뇌가 착각하는 것이다.
거기에 휘기까지 한다.
거기다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왼손 투수 파이어볼러.
160을 던지면 165처럼 느껴졌었고. 170은 제구가 되지 않아서 잘 던지지 않았었다.
던지는 영수도 어디로 향할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 던지는 공은 완벽히 제구가 되는 140대.
오연식이 느낀 감정은 10년 전 타자들이 느낀 감정과 똑같았다.
‘공 좆같게 날아오네.’
물론 던진 공의 숫자가 적기에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수의 피칭이 이어질수록 최고야구 PD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것은 초령고 감독과 조재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둘이 느낀 감정은 달랐다.
감독은 과거 영수가 던졌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서 즐거웠고, 조재우는 찜찜했다.
저 공을 다시 볼 줄이야. 어깨와 팔꿈치를 박살 냈었다. 그걸 확인한 것은 그날 다음 영수가 등판했을 때였다.
분명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왼쪽 어깨와 팔꿈치가 고장 났다는 것을. 이제 야구판에서 영수를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실제로도 후배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다쳐서 더는 야구할 수 없는 몸이라 들었다.
그런데 저 공을 다시 보게 된다니.
고등학생 때 봤던 공보다는 느리다.
그땐 160도 던지는 미친놈이었으니까.
선배 대우를 받고 있지만, 프로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론 프로 세계에도 선후배는 있다. 하지만 프로는 증명하는 자리다.
실력이 없으면 도태되고 만다.
그래서 영수를 접게 한 것이다. 자신이 올라가려면 경쟁자를 치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고 했다.
지독한 새끼.
하지만 조재우도 은퇴한 몸.
재능이라는 산을 넘지 못했다.
31살이다. 야구를 놓은 지 10년이 지났다. 그런데 권영수는 프로 못지않은 공을 뿌린다니.
조재우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2구. 3구. 오연식은 공을 건드리지도 못한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조재우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어쩌면 한국 야구의 역사를 만들 수 있는 한 사람을 끝장낸 것일지도 모른다.
미안했다. 질풍노도의 시기. 어렸을 때 했던 흔한 장난이라고 자위하기엔 마음이 좋지 않다.
그때 영수가 4번째 공을 던졌고, 조재우는 또 한 번 매우 놀랐다.
“구속이 더 빨라졌어!”
“흠. 150가까이 나오겠는데?”
영수는 이날 10개의 공으로 한 명의 타자를 내보내지 않았다.
1이닝 퍼펙트게임이었다.
하지만 승부를 뒤집기엔 점수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
그날 저녁.
초령고는 승리한 기념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집에 들렀다. 운동선수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우기 좋은 메뉴 중 하나다.
“부먹이지?”
“탕수육은 찍먹이지! 그걸 말도 없이 왜 부어!”
“방금 물었잖아. 부먹이냐고.”
“부으면서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당연히 부먹인 줄 알았지. 또 시켜.”
“네가 낼 거야?”
“아니. 이긴 감독님이 내셔야지.”
“아, 진짜! 나 안 먹어!”
초령고 감독의 입이 댓 발 튀어나왔지만. 최고야구 PD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감독님 안 드신단다. 탕수육 먹을 사람!”
“저요!
“저요!”
냄새를 맡은 아이들이 귀신처럼 달라붙었다. 하지만 살벌한 감독의 눈빛에 얌전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거 애들 좀 주지. 먹는 거 가지고 야박하게.”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건 자식들한테도 양보 안 해.”
“자랑이다. 것보다 한 잔 받으시고.”
최고야구 PD는 오래된 친구한테 소주를 따랐다.
“아까 경기 말이야. 그 누구더라”
“우리 애들 끝내주게 잘하지? 누구? 오연식이? 우승은 조금 힘들어도 4강 이상은 올라가고 있다니까? 최고야구도 긴장해야 할걸?”
“그 마지막에 올라온 투수 있잖아?”
“김영웅? 영웅이도 가능성 있지.”
“너희 애들 말고.”
“권영수?”
“어. 그 친구 이야기 좀 들려줘 봐.”
“그러니까···”
권영수의 이야기를 듣는 최고야구 PD의 눈이 반짝였다.
선작과 추천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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