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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허구입니다.
선발투수는 6이닝까지 던지고, 셋업 맨1과 2가 7,8,회를 던진다. 그리고 9회에는 마무리 투수가 올라오는 것이 이상적인 그림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드림팀 신동우. 고등부에선 압도적인 재능으로 타자들을 울린 좌완 투수.
제구력만큼은 유망주 중에선 손에 꼽히는 투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따앙!
[샤크스 1번 타자 시작부터 솔로 홈런을 기록합니다!]
까앙!
[샤크스의 투런 홈런! 오늘 경기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데요?]
선발 투수로 올라온 신동우. 그는 권영수의 플레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포심 패스트볼만 던졌다.
그도 구속과 제구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명을 삼진으로 잡아내긴 했지만, 홈런 2개를 얻어맞고 3점을 내주고 만다. 현재 주자는 1,2루.
“퍽!”
마크 소우즈 감독은 욕을 하며 자기 무릎을 손바닥으로 쳤다. 하지만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수석 코치에게 말했다.
“케쳐한테 아웃코스를 주로 요구하라고 전달해. 아래쪽으로.”
“예.”
“그리고 브레이킹 볼도 던지라 하고.”
“알겠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 아래로 던지면 다른 코스에 비해서 병살이나 땅볼이 유도될 가능성이 높다.
신동우가 잘 던지는 구종 중 하나가 커터. 컨택이 제대로 안 되니 땅볼이 유도될 가능성이 높아서 맞춰 잡기 좋은 구종이다.
수비진을 믿지 못하는 신동우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김두진이나 권영수 같은 구위를 보여주지 못하니 맞춰 잡아야 한다.
“그런데 투수를 내리는 건 어떨까요?”
“1회에 SP(선발 투수: Starting Pitcher)를 내리자고? 흐음. 조금 더 지켜보자고.”
야구에서 3점은 적은 점수 차이는 아니지만, 아직 1회에 불과하다. 포기하기엔 너무나 이르다. 아직은 신동우에게 기회를 주고 더 믿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선발 투수가 가장 위험한 때가 1회다.
1번 상위 타선부터 상대해야 하는 데다가 긴 이닝을 책임져야 하는 선발투수는 처음부터 전력투구하기가 어렵다.
체력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발 투수 대신 1회나 2회까지 불펜 투수가 나가서 중심 타선을 대신 상대하는 오프너 전략도 있다.
하지만 볼펜이 혹사당한다는 단점도 있고, 실력이 떨어지는 불펜 투수가 나갔다가 얻어맞을 수도 있어서 흔하게 사용되진 않는다.
마크 소우즈는 못마땅한 얼굴로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포수와 투수 둘 다 어린 유망주.
2군에서 그나마 싹수 있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시범경기고 하니 경험치를 먹이기 위해 기회를 줬다가 망했다.
‘그래 질 수도 있지. 실수할 수도 있고. 그러면서 크는 거야.’
전설적인 선수 오타니도 항상 잘하진 않는다. NPB에서도, MLB에서도 실수한 적이 있으니까.
야구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투수가 자신 있어 하는 구질이 더 좋은 성과를 낼 때가 있다. 그래서 믿고 맡긴 것인데 더 크게 망했다.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애써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지시를 전달받은 포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투수에게 사인을 냈다.
그리고.
쇄액.
펑.
신동우의 공은 나쁘진 않다. 포수가 요구하는 곳으로 공을 집어넣는다. 134km 체인지업.
조금 더 지켜봐도 괜찮을 듯싶었다.
포수는 커터를 요구했고, 신동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까앙.
[높습니다! 높게 뻗어나가는 타구! 이거 넘어가나요?]
[넘어···갔습니다! 쓰리런 홈런!]
[이야, 이거 기록인데요? 1이닝에 1점, 2점, 3점 홈런이 나왔습니다.]
커터를 예상했던 것일까? 배트에 제대로 맞았다.
신동우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얼굴이 창백해졌고, 결국 마크 소우즈는 심판을 불렀다.
“피쳐 교체!”
***
시범경기는 구단 자체 방송을 주로 한다.
샤크스 중계진은 1회 선발 투수 신동우를 내리는 모습에 분노했다.
[아, 이건 아니죠. 1이닝 솔로, 투런, 쓰리런까지 해내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만루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는데 교체라뇨.]
[감독이 미국인인데도 기록을 세우려는 선수를 교체하고 있습니다. 이건 전통을 무시하는 지시입니다!]
[지금 1회에 선발 투수가 강판당하는 명장면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크크큭.]
중계하던 해설자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렀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더욱 좋았다.
┖해설도 웃는다ㅋㅋㅋ
┖살다, 살다 이런 것도 보네.
┖드림팀이잖아. 이해해야지. 봐준 것도 모르고 요즘 설치던데 잘 됐어.
┖이게 정식 경기에서 일어났어야 했는데.
┖만루 홈런까지 나왔으면 해외토픽감임.
반대로 드림팀 해설진은 초상집이었다. 해설은 슬쩍 채팅창을 살폈다. 인터넷을 통한 자체 방송 중계라서 실시간으로 팬들이 올리는 글을 볼 수 있었다.
┖ㅋㅋㅋㅋㅋ다시 돌아온 내가 바보지.
┖꿈인가?
┖지금까지 드림팀을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아. 나는 안 보련다. 이거 보다가 암 걸리겠네.
┖오늘은 강제 볼펜 데이네.
┖하아. 권영수나 올려라.
┖정신 나갔음? 졌는데 권영수를 왜 올려. 쉬게 해줘야지.
해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팬들마저 조롱하는 드림팀. 해설은 빠르게 올라오는 채팅창을 무시하고선 입을 열었다.
[선수 교체입니다. 신동우 선수가 내려가고, 공찬수 선수가 올라오네요.]
“아웃!”
공찬수도 초구부터 얻어맞았지만, 중견수가 공을 잡으면서 끝이 났다. 1회부터 6점을 내주고 내려온 신동우는 멍한 얼굴로 더그아웃에 들어왔고, 김두진은 그런 신동우를 위로했다.
“고개 들고 어깨 펴라.”
“선배님···”
“나도 일 년에 여섯 번은 못 한다. 홈런도 얻어맞는다. 넌 이제 한 번 못 했을 뿐이야. 그리고 신인이잖아. 얻어맞아도 돼.”
“감사합니다.”
“기죽지 마라. 투수는 자신감이 생명이다. 자신감이 떨어지면 또 얻어맞는다. 홈런을 맞아도 자신 있게 던져라.”
따듯한 말 한마디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는다. 신동우는 김두진에게 감사함을 느꼈지만.
“경기 끝나면 한승진 선배님이 신동우 위로, 자기 밑으로 다 집합하라는데?”
“커헉!”
“우린 죽었다.”
“하아.”
신동우의 얼굴엔 핏기가 사라졌다.
샤크스의 최근 성적이 좋긴 하지만, 드림팀과 마찬가지로 매 시즌 바닥을 기던 구단. 드림팀은 이번 경기에서 젊은 선수 위주로 구성했다.
‘나까지 못 하면 더 X 되는 거 아니야?’
‘그나마 점수를 내서 만회해야 덜 혼날 것 같은데.’
‘우리라도 잘하자.’
‘이건 기회다! 신동우가 똥 쌀 때 내가 잘하면?’
6점 차이가 나긴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이제 1회 초가 끝났을 뿐이다. 젊은 선수들은 눈을 빛내며 타석에 나갔다.
1번 타자는 삼진.
2번 타자는 배트에 빗맞은 내야 땅볼. 그런데 유격수의 실책 덕분에 1루에서 생존한다.
3번 타자는 볼넷으로 출루했다.
1사 1,2루. 점수를 노려볼 만한 상황이다. 4타석에는 4번 타자 라이언 존슨. 원래는 3번인데 한승진이 빠지면서 4번이 됐다.
“라이언! 한 방 먹여 줘!”
“가라! 라이언!”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라이언. 덩치만 보면 메이저리그 파워형 타자다. 대충 휘두르기만 해도 홈런을 때려낼 것 같은 몸이다.
그는 초구부터 홈런을 노렸다. 풀스윙.
까앙!
“아웃!”
“아웃!”
병살타가 되었고, 마크 소우즈는 고개를 팍 숙였다.
‘퍽! 그만두고 은퇴할까? 내가 왜 어린 선수들 위주로 구성했지? 그리고 라이언은 왜 초구부터 풀 스윙이야!’
관중석에서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십 중 십구 욕이다.
“아깝네. 넘길 수 있었는데.”
“?”
베테랑이어서일까? 라이언 존슨은 신동우와는 달리 뻔뻔한 얼굴로 들어왔다. 그래. 잔뜩 기가 죽어서 의기소침해 있는 것보단 낫다.
1회가 끝나고, 2회 초에는 다행히 추가 실점을 내주지 않으며 마무리되었다.
“자자, 이번에 점수 한번 내자. 드림팀 파이팅!”
수석 코치가 그라운드로 나가는 타자를 독려했다. 가만히 있던 마크 소우즈도 한 마디 덧붙였다.
“이번에 점수 못 내면 한승진하고 한방에서 잘 줄 알아!”
그 순간 타석과 대기 타석에 향하는 타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무조건 친다!’
‘죽어도 친다!’
유망주. 잃을 것이 없는 타자. 기록이 없으니 상대 팀은 정보마저 없다. 자신감 하나만 가지고 타석에 올라간 염석진은 투수를 노려봤다.
샹크스 투수는 구위 좋은 정통파 우완 투수. 포심,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를 던진다.
상태 투수 정보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타격 자세를 잡는다. 초구는 일단 지켜본다.
볼. 2구는 스트라이크.
침착하게 지켜본다. 투수의 투구 수를 빼는 것도 경기에 도움이 된다.
3구도 스트라이크. 투수가 유리한 볼 카운트. 이번엔 변화구를 던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투수가 자세를 잡는다. 지금까지 던졌던 자세와 똑같다. 하지만 무언가 느낌이 미묘하게 다르다.
끝까지 투수를 노려본다. 투수의 팔이 채찍처럼 휘둘러지고, 공이 총알처럼 날아온다. 얼핏 보기엔 포심 패스트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감각을 무언가가 간지럽게 건드린다. 그의 경험상 이건 포심이 아니라고 말한다.
공이 살짝 떨어지는 것을 생각해서 배트를 휘두른다. 예상대로 홈 플레이트 부근에 도달하자 공이 횡으로 떨어진다.
따앙!
정타다. 공을 맞히자마자 배트를 집어 던지곤 미친 듯이 뛴다.
“달려!”
“나이스! 잘한다!”
1루를 보자 코치가 손을 흔든다. 공은 어디쯤인지 모르겠지만, 속도를 올린다. 죽어라 달린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2루 근처에 도달하자 몸을 아끼지 않고 날렸다. 한승진 선배와 한방에서 자느니 다쳐서 입원하는 게 낫다.
“세이프!”
“우오오오!”
심판의 콜을 들은 염석진은 베이스를 밟고선 홈런이라도 친 것처럼 어퍼컷 세레머니를 하고 포효를 질렀다.
더그아웃에선 마크 소우즈 감독이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
1회 6실점을 할 때까지만 해도 경기를 포기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마크 소우즈. 헌데 젊은 선수들이 끈질기게 따라붙더니 8회 8:8 동점을 만들었다.
어린 선수들의 재능이 생각했던 것보다 훌륭하다.
“괜찮은데?”
“드림팀은 약하지 않습니다.”
마크 소우즈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동우 대신 올라갔던 공찬수는 진작에 교체됐다. 현재 마운드에는 6번째 투수.
“공 몇 개째지?”
“27개입니다.”
슬슬 교체해 줘야 할 타이밍이 됐다. 원래는 볼펜을 이렇게 많이 돌릴 생각이 없었는데 선발 투수가 빨리 내려온 탓에 벌떼 야구가 됐다.
그때 갑자기 드림팀 관중석이 시끄러워졌다.
“권영수! 권영수!”
“믿을 맨 권영수!”
관중들이 권영수를 응원하기 시작한 것. 시범경기라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모두가 권영수를 외치니 그 소리가 작지 않다.
‘1이닝 정도는 나가도 괜찮겠지.’
이길 가능성이 없어 보여서 권영수를 내보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8:8 추격하는데 성공.
권영수를 내보내고 괜찮을 것 같다. 마크 소우즈는 볼펜에 전화했다.
“제이디! 쿡켱수 나갈 수 있어?”
“기다려요.”
잠시 후.
“언제 불러주나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선작과 추천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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