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개척 (3)
"총독님 디에고 입니다"
"들어와라"
스페인령 쿠바의 주도 아바나의 총독실에 해군 제독 디에고가 총독실을 방문했다. 총독 마티아스는 디에고의 이름을 듣자마자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기다리고 있던 방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알아봤는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오거스틴은 타 세력에 넘어간 것 같습니다"
"타 세력? 잉글랜드인가?"
"그건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보낸 함대가 정찰 함대였고 병력 숫자도 적었기에 먼 거리에서 망원경으로만 확인하라 지시했습니다. 확인 결과 원래 오거스틴의 규모보다 훨씬 커져 있었고, 우리측 수송 함대는 사라져 있었습니다"
"아무튼 수송 함대가 돌아오지 않은 것이 사고는 아니라는 이야기군"
"그렇습니다"
쿠바 총독 마티아스는 오거스틴에서 사탕수수를 선적하고 넘어와야 할 갤리온들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자 정찰 함대를 보냈다. 원래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개척지가 파괴될 가능성이었는데 정찰 결과 도시는 멀쩡하다 못해 더 규모가 커져 있었다.
"지금 파견할 수 있는 병력 규모는?"
"카리브 1함대와 2함대 모두 파견 가능합니다"
아바나에 주둔 하고 있는 스페인 함대는 총 4함대였다. 그중 4함대는 편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력이 약했고 3함대는 멕시코로 출동 나가 있는 상태였다.
1함대와 2함대의 구성은 각각 갤리온 20척에 기병 100기 보병 10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두 함대가 함께 출병한다면 기병 200기에 보병 2000명 정도의 규모였는데 멕시코를 평정할 때 사용한 병력 규모가 1500여명 정도 였던 것을 감안하면 쿠바의 전 병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두 파견한다. 어떤 세력이 오거스틴을 장악한 것이든 다시 우리가 뺏어올 수 있도록"
"예. 총독"
마티아스의 결정으로 아바나에 주둔 중이던 스페인 군의 1함대, 2함대가 출병 준비로 분주해졌다.
"화약을 점검해라!"
"돛 상태를 확인하라!"
이 시기 스페인군은 콩키스타도르라 불렸는데 기병은 중갑주를 입은 기사였고 보병은 머스킷으로 무장한 병사들이었다.
기병들은 갑옷과 말을 챙겨 함선에 탑승했고 보병들은 머스킷을 가지고 탑승했다. 2000여명에 달하는 병력이 모두 탑승하고 보급도 확인 되자 메인 마스트의 돛이 펴졌다.
위풍당당한 40여척의 갤리온이 아바나 항구를 떠나 자신들의 개척지였던 오거스틴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 * *
"달달하게 딱 좋군"
"그렇습니다"
서울 관청 식당에서 나와 홍대수, 바스텐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의 메뉴는 설탕을 바른 떡요리였다. 현대에서는 설탕 보다 꿀을 발라 먹었겠지만 아쉽게도 이곳에선 아직 꿀이 없었다.
아쉬운대로 설탕을 뿌려 먹었는데 단맛이 귀한 미국이었기에 맛있게 먹고 있었다.
"주거 개선 작업 들어갔다면서?"
"그렇습니다. 이번에 감주를 병합하며 확보한 벽돌공들을 서울로 데려와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래 벽돌집은 감주보다 서울이 급하지"
현대의 뉴욕 위치에 있는 서울이었기에 겨울에는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 때문에 지난 겨울 나무 집으로 겨울을 나는 신림 백성들이 고생이 많았다.
"엽사쪽은 벽돌집이 필요 없는가?"
"그쪽이 서울 신림 지역보다 더 집이 튼튼해 일단은 서울부터 먼저 작업 들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서울보다 더 위도 가 높은 엽사였지만 기존의 뉴잉글랜드라는 도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상황이 훨씬 나았다.
뉴잉글랜드 주민들이 몇 년을 보내면서 동물 가죽을 깔거나, 이중 구조로 집을 짓거나 하는 나름 강구한 방한 대책들이 있어 지낼만 한 상황이었다.
"듣자 하니 바스텐, 요즘 학교에서 미국어 공부에 매진한다고?"
"아직 갈 길이 많이 멀었습니다"
"그럼 어디 실력 한번 볼까?"
나는 바스텐과 나를 이어주던 통역마법을 해제했다. 그리고 미국어로 대화 해보자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턱짓을 했다.
"바...반갑습니드아.... 제... 이룸문 봐쉬퇜 이비다"
"오오오!"
발음은 굉장이 어눌했지만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는 바스텐이 기특했다. 나와 홍대수는 크게 반응해주며 그의 기분을 기쁘게 했다.
"다른 말 할 수 있는 건 없나?"
"나..는 ..자뢍스런... 미쿡인 이비다"
"이야..."
이후에도 바스텐의 복습시간이 이어졌고 나는 그의 노력에 큰 박수를 보냈다. 그래도 중요한 대화는 아직 불가능 했기에 다시 통역마법을 걸었다.
"자네의 솔선수범으로 뉴암스테르담 출신들의 의식이 변화할 걸세. 정말 잘했다"
"감사합니다"
바스텐은 네덜란드 정부의 함대를 손쉽게 제압하고 선원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건흥을 보자마자 '이제 영원히 미국인으로 살아야 하는 구나!' 하고 느꼈다. 이왕 미국인으로 살 것이라면 제대로 자격을 갖추고 사는 것이 좋겠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고 망설임 없이 학교에 입학했다.
그의 입학으로 다른 뉴암스테르담 출신 사람들도 상당수가 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아직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미국어 공부를 거부하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시간 문제라 생각했다.
"로빈이 또 다른 신도시 건설에 투입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무한이 마무리 되었으니 이제 새 도시를 건설해야지"
무한에 징발 되어온 명나라 인원들 중 목수도 몇 명 있었기에 그들이 농사 대신에 건설 작업에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로빈과 목수들이 몸을 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로빈에게 휴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텍사스만 방향에 있는 템파베이 쪽에도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미 건흥이 템파베이 쪽에 들러 그 주변 기반 공사를 마쳤고 지금은 로빈이 대규모 인원이 숙식을 해결할 건물들을 건설중이었다.
"이번에도 명국에서 인원을 데려오실 계획이십니까?"
"이번엔 일본에서 징발 할 계획이다."
중국계 인원들을 너무 많이 밀집 시켜 놓으면 위험 요소가 있을 수 있었다. 이미 감주와 무한에 명나라 출신 인원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템파베이 지역까지 명나라 출신을 거주 시키면 남부의 정체성이 위협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조선인을 또 데려오는 건 마음에 걸렸기에 나는 일본에서 인원을 징발해 템파베이 쪽에 정착 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동북아시아 세력 균형을 위해서도 그게 좋지'
최대한 실제 역사와 비슷하게 흘러가게 하기 위해선 세력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좋았다. 물론 중국이라는 나라가 인구 좀 빠진다고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동북아시아 세력 간의 균형을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치안부 활동은 어떤가? 범죄는 잘 관리되고 있나?"
"그렇습니다. 최근 재판이 몇 번 있었습니다."
"어떤 사건이었나?"
"출신 성분에 의한 차별 사건, 절도 사건 등이 있었습니다"
지난번 백정과 양반의 사건처럼, 아직도 신분을 들먹이며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사건들이 종종 발생했다. 아무래도 평생을 신분제 사회에서 살아오다 보니 그 고정관념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엄벌주의로 확실히 처벌해라"
"예. 군주님"
치안부는 인원은 대부분 뉴암스테르담 출신 인원들이었다. 그러나 범죄가 생기는 곳은 아무래도 인구가 많은 신림지역이었기에 조선인들의 관념에 백인들이 자신을 억압한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홍대수가 나서서 중재 역할을 잘 하고 있었고 종종 내가 서울에 등장했기에 조선 출신 인원들이 가질 수 있는 불만이 잘 다스려 지고 있었다.
-띠이이잉
"으음?"
식당 옆 방에 있는 회의실에서 알람 소리가 울렸다.
"아무래도 손님이 온 모양이다."
나는 식사를 마무리 하고 일어서 회의실로 이동했다. 회의실에는 여러 개의 유리 구슬이 있었는데 각각 정해진 대서양의 해역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잉글랜드, 네덜란드, 스페인의 함선이 언제 침입할 지 알아야 했기에 나는 엽사, 서울, 함양, 감주, 무한 도시 앞바다에 탐지 부표를 띄워 놓았다.
부표가 적의 침입을 감지하면 바로 회의실의 해당 부표와 연결된 유리 구슬이 알람을 울리게 장치되어 있었다.
"무한 앞바다로군"
"무한이면.... 스페인의 함대 이겠군요"
"다녀오겠다"
"예. 군주님"
"예. 전하"
공손하게 인사하는 둘을 뒤로 하고 나는 무한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무한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언덕으로 순식간에 이동한 나는 위풍당당하게 무한을 항해 진입하고 있는 스페인 1함대와 2함대를 볼 수 있었다.
* * *
"저런 도시가 있었나?"
"없었습니다."
"불과 몇 달 만에 저런 규모의 개척지가 세워진 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1함대와 2함대를 이끌고 오거스틴을 향해 항해하던 디에고는 플로리다 반도를 지나면서 무한을 발견했다.
분명 스페인이 세운 개척지인 오거스틴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오거스틴 보다 큰 규모의 개척지가 발견되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울창한 밀림이었던 곳에 말이다.
"항로를 틀어라. 저 도시에 들러야 겠다"
"예! 전 함대 항로 변경! 좌현으로 틀어라!"
디에고의 명령에 스페인 함대는 진행 방향을 북쪽에서 서쪽으로 틀고 무한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디에고는 점점 더 충격에 빠져들었다.
'분명..... 정글이었던 곳인데... 저런 규모가 가능하다고? 그리고.... 처음 보는 건축 양식이다.'
흐릿하게 보이는 건물의 모습이 신대륙에서 익히 볼 수 있는 건물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논은, 벼 재배지를 거의 처음 보는 디에고에게 더 생소한 광경이었다.
"제독님 하늘에 뭔가 있습니다!"
"......!?"
메인 마스트 꼭대기에서 무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선원이 소리쳤다. 그 소리에 디에고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는데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사람인가? 어떻게 하늘에...?'
하늘에 유유히 떠 있는 것은 건흥이었다. 건흥은 이들 함대가 무한으로 다가오는 동안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었다. 하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모두 죽인다'
아직 미국은 건흥 없이 자신의 나라를 지킬 힘이 전혀 없었다. 정식으로 군대를 창설한 것도 아니라 정규군이 없는 나라였다. 그래서 당분간 외부의 위협은 모두 건흥이 제거해 줘야 했는데 지금 들어오는 스페인 함대도 마찬가지였다.
'노예의 각인을 사용하기엔 인원이 너무 많다.'
이미 혼백을 거의 다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들을 노예로 부릴 순 없었다. 그렇다고 포로로 잡아두고 관리할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츠르르르르
건흥이 손을 움직이자 검은색 구체가 생겨났다. 미국에서 수차례 등장 한 적 있는 산 자를 언데드로 만드는 그 구체였다.
"죽어서 내 백성이 되어라"
건흥의 명령이 내려오자 검은색 구체는 수백개로 갈라져 스페인 함대를 향해 쏘아졌다.
"끄아아아악!"
함대의 선원들은 제대로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구체에 직격 당해 해골 병사가 되기 시작했다. 옆에서 동료가 해골 병사가 되는 것을 보고 공포에 질려 도망가기 시작하는 병사들도 많았지만 구체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총을 쏴라!"
-탕! 탕!
1함대에 구체가 진입해 그들을 해골 병사로 만드는 것을 본 2함대 쪽 지휘부는 건흥을 향해 사격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 어떤 총알도 건흥의 몸에 닿을 수 없었다.
"이쪽으로 날아온다!"
"피해!"
얼마 지나지 않아 1함대의 대부분의 선원들이 해골병사가 되어버렸고 이제 새로운 희생자를 찾는 구체들이 2함대로 날아들었다.
-풍덩!
구체에 공격 받는 것보다 바다에 빠지는 게 낫다고 생각한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구체는 하늘이건 바다건 상관없었다.
-까득까득
구체는 바다 속으로 병사들을 따라 들어갔고 필사적으로 헤엄치는 병사들의 등에 꽂혔다. 그리고 바다속에서 해골병사가 된 자들은 점점 바다 아래로 가라앉다가 음차원의 공간으로 역소환 되었다.
그들은 추후에 건흥이 불러 냈을 때 다시 땅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히이이잉
1함대와 2함대에 살아있는 인간은 없었다. 모두 해골병사가 되어 건흥의 명에 복종하는 언데드가 되었다.
그리고 기사들이 탑승하게 될 군마들이 변해버린 주인들의 모습에 당황하며 갑판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배가 더 생겼군"
건흥은 미국의 물류를 더 원활하게 해줄 새로운 갤리온 40여척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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