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과 정보부 (1)
"이번에 서울로 영전하시는 겁니까?"
"그래. 다 염전 관리들이 애쓴 덕분이다"
복강의 총독 박철각은 병자호란 때 넘어온 자였다. 그는 신림에 머무는 그 순간부터 출세에 대한 집작이 대단하여,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기에 미국어 중급을 수료하였고 치안부 관리로 등용되었다.
치안부에서도 실적을 올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많은 수의 범죄자를 잡아들였다. 그 덕분에 미국이 급격히 팽창하고 신도시가 생겨나 자리가 많이 생긴 이 시점에 복강 총독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총독으로서 그가 집중했던 부분은 복강의 생산량 증대였다. 그는 농장 관리, 염전 관리들을 모아 승진을 미끼로 삼으며 생산량을 극대화 시켰다.
특히 복강에 많이 있는 일본인 출신 관리들의 출세욕을 자극했는데 그 전략은 제대로 먹혀 복강은 생산량 모든 부분에서 목표치를 상회하여 박철각은 능력을 인정받았다.
덕분에 복강 총독에 오른지 불과 2년 만에 서울로 다시 불려가 새롭게 구성되고 있는 중앙 정부의 첫 구성원이 될 기회를 얻었다.
"허면... 약속하신 총독 자리는..."
"기다려 보게. 내 서울로 넘어가자 마자 자네를 추천하도록 할 테니"
"감사합니다. 총독님."
박철각은 염전 관리소장 안응수에게 총독 자리를 약속해줬고 염전 관리소장 안응수는 다나카에게 염전 관리소장 자리를 약속해줬다. 나름의 라인인 것이다.
물론 그들의 라인은 박철각이 약속을 지킬 능력이 있을 때 유지되는 것이었다.
'흥! 나 하나 살기도 바쁜데 내가 니들 자리까지 어떻게 책임지나?'
아직 박철각은 중앙정부에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게 아니었다. 중앙은 서울 총독 반스딘과 부총독 홍대수가 꽉 잡고 있었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함양의 월이엄, 미군 총사령관 김덕만, 건설의 로빈등 건흥의 총애를 받는 주요 인물들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실정이었다.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철각이었기에 이제 볼일이 없어진 복강의 관리들의 미래는 관심 밖이었다.
그렇게 박철각이 서울로 떠나고, 자신의 이름으로 새로운 임명장이 올 것을 기다렸던 안응수에게 온 것은 임명장이 아닌 새로운 총독이었다.
새 총독은 함양 출신의 인물로 박철각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를 추천한건 함양 총독 월이엄이었고 중앙에서 그 추천을 수용한 것이었다.
안응수는 중앙의 파워게임에서 박철각이 월이엄에게 밀렸겠거니 하고 이번 기회를 포기했지만, 안응수 아래의 다나카는 그렇지 않았다.
"칙쇼! 이 개같은 조선놈들! 역시 우리를 승진 시킬 마음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완전 당해버렸습니다"
다나카는 자신을 끌어줄 안응수가 그대로 염전관리소장에 머무르고 새로운 총독이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분개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중앙으로 넘어간 총독이 아직 힘이 없어 안응수를 총독에 앉히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들렸지만 그런 것 보다 다나카에게 더 와 닿은 것은 일본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 같은 유리천장이었다.
"평생 타들어가는 태양 아래에서 소금 푸는 노예들에게 채찍질을 하고 살 수는 없다"
"맞습니다."
사실 직접 노동을 하는 노예들 만큼은 아니지만 관리직인 자들도 태양에 오래 노출되며 생기는 각종 피부병과 열사병에 건강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모험을 한번 해보자"
"모험....말씀이십니까?"
"그래. 박철각이 복강 총독으로 지내면서 저질렀던 만행을 중앙 정부에 고하는 것이다"
"어어엇!? 그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것 아닙니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조선인들 속담처럼 그들은 결국 박철각의 만행을 눈감아주고 우리를 칠 것입니다"
"내가 보고할 대상이 조선인 출신이 아니라면?"
"아....!?"
다나카와 오도시도 변방에 있는 관리에 불과 했지만, 소문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중앙에는 조선인 출신이 아닌 색목인 관리들이 많이 있었고 심지어 서울의 총독은 반스딘이라고 하는 색목인이었다.
"사람 사는 곳에 생기는 무리는 다 서로를 견제하기 마련이지 않느냐? 모르긴 몰라도 중앙에서 조선인 출신과 색목인들 사이에 갈등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호오오! 그럴 듯 합니다. 다나카 선배"
"색목인쪽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자에게 바로 이 사실을 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뒷배를 가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습니다. 헌데 서울로 어떻게 갑니까?"
"밀항해야지"
"아...! 그러면 이곳에서 도주해서?"
"그래. 어차피 우리를 감시하는 인력은 없다. 적절한 시기에 탈출해 서울로 가는 배에 훔쳐 타야 해!"
다나카와 오도시는 서울에 숨어 들어갈 계획을 세우며 밤을 다 보냈다. 그들은 머리를 굴려 디테일하게 작전을 세워가면서 이 계획이 성공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만큼 박철각이 복강에서 저지른 만행은 심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최대한 증거를 수집해서 가자. 그래야 확실하게 그들을 설득 시킬 수 있다."
다음날부터 다나카와 오도시는 각종 공문서를 빼돌리기 시작했다. 문서들은 박철각이 앞으로 뒤로 지시했던 모든 사항들을 증명해줄 문서였다.
-청나라 출신 노예 사망 기록
-복강지역 어린 여자 노예 성착취 기록
박철각이 행한 일들 중 흠이 될만한 것이라면 모두 모았다. 그렇게 일주일 간 충실히 자료를 수집한 다나카와 오도시는 복강에서 서울로 소금을 운반하는 배에 몰래 타는데 성공했고 대서양을 거슬러 유유히 서울로 올라갔다.
* * *
"복강의 염전 관리들이라고 했나?"
"예. 전하 다나카라고 합니다"
"오도시라고 합니다"
다나카와 오도시는 서울에 밀항 한 다음, 총독 관저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탄원서에 있는 증거들로 인해 반스딘은 곧장 둘의 신변을 확보했고 심문했다.
'이러한 문제가 지방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실 복강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지방 곳곳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독점적인 권력을 가진 총독이 자신의 권력을 임의로 사용하는 사례들이 많이 생겨났고 반스딘은 이 사항이 심각한 문제라 인식하여 바로 건흥에게 보고를 올렸다.
일본에서도 대규모 약탈을 행하고 미국에 넉넉한 식량을 확보한 뒤, 오대호에서 낚시를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건흥에게 반스딘의 전령이 도착했다.
보고를 받은 건흥은 곧장 서울로 넘어왔고 다나카와 오도시를 눈 앞에 두게 되었다.
"자네들이 올린 보고서 잘 읽어 보았네. 미국어 실력이 아주 좋더군."
"감...감사합니다. 전하"
건흥은 삐뚤한 글씨로 열심히 미국어를 적어 올린 그들의 보고서를 보니 재밌었다. 마치 초등학생의 일기 쓰기를 검사하는 느낌이 이럴까? 싶었다. 최대한 쉬운 단어로 작성되어있는 보고서였지만 그 안에 내용은 절대 순수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박철각이 노예들을 몰아 붙여 생산량을 늘리라고 지시했다?"
"그렇습니다"
"너희들의 생각에... 모두 나의 소중한 자신인 노예들을 총독이 함부로 대하게 해서 큰 손실을 입힌 것이고?"
"그렇습니다"
"또 어린 여자 노예들을 숙소로 끌고 가서 성착취를 했고?"
"예. 전하"
"그리고 여자 노예들이 임신을 하면 살인멸구 했다. 맞나?"
"그렇습니다. 전하"
"반스딘"
"예. 군주님!"
다나카와 오도시의 보고서를 읽고 그들을 심문한 건흥이 바로 옆에 기립해 있던 반스딘을 불렀다. 반스딘은 건흥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박철각이 곱게 죽지는 못하겠구나 싶었다.
"박철각은 지금 어디 있나?"
"서울에 지급된 자택에 있습니다"
"데려와"
"예. 군주님!"
박철각은 새롭게 개편될 미국 중앙정부의 행정 관료로 승진해 올라왔기에 현재 서울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치안부 손에 이끌려 서울 총독부에 오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절대 아닙니다! 모두 거짓입니다. 전하!"
"거짓이다?"
"그렇습니다. 전하"
총독부로 압송 되어온 박철각은 연신 억울함을 호소했다. 증거는 모두 조작된 것이며 자신은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그래? 그럼 자네의 머릿속을 내가 한번 봐도 되겠는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머릿속을 살펴본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건흥은 무릎을 꿇고 있는 박철각 앞에 섰다. 박철각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몸이 덜덜 떨렸다.
미국의 국민 모두는 건흥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은 박철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들라"
"저...전하.."
건흥이 박철각의 턱을 잡아 들어 올리자 두려움에 잔뜩 움츠러든 모습의 얼굴이 보였다. 흔들리고 있는 박철각의 동공은 무심한 눈을 한 건흥과 마주쳤고 그 순간 건흥의 눈이 노란색으로 쭉 찢어졌다.
-시이이이이
요사한 소리를 내며 마치 뱀의 눈처럼 변한 건흥의 눈을 바라본 박철각의 동공이 완전히 풀렸다.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 흰색만 드러났으며 코와 입에서 조금씩 거품이 맺혔다.
건흥이 지금 박철각에게 건 마법은 정신 제압이었다. 흑마법 최상위 기술 중 하나로 아무리 독한 첩자라도 버텨낼 수 없었으며, 오직 마법적인 금제로만 저항할 수 있었다.
"충성스런 대답을 할 준비가 되었나?"
"....예...."
"노예들이 죽더라도 근무시간 연장을 지시했나?"
"..예"
"노예 숙소에서 소녀들을 데려와 사욕을 채웠나?"
"...예..."
"임신한 그녀들을 죽여 증거를 없앴고?"
"...예.."
건흥의 물음에 박철각은 모두 진실만을 답했다. 다나카와 오도시가 고해 바친 죄목들 중 상당수가 사실이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었다. 재산과 뇌물 관련 일부 의혹들은 허위였다.
요약하자면 재산 축적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승진과 성욕에 미쳐있는 자였다.
"그러면 네가 죽인 노예 소녀가 몇 명이나 되는가?"
".....이백은... 넘습니다"
그가 총독으로 지낸 2년 동안 2백명의 소녀를 성착취 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죽어나간 것이었다.
모든 심문을 마친 건흥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아무런 말 없이 잠시 생각을 정리한 건흥은 반스딘에게 명을 내렸다.
"박철각은 감옥에 가둬라. 그리고 형벌을 내릴 날을 잡도록"
"예. 군주님"
건흥이 말한 형벌은 팔다리를 모두 자르고 생명을 연장 시켜 모든 이들이 그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볼 수 있게 하는 것 이었다.
박철각은 복강에서 그 형벌을 당하게 될 예정이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복강의 최고 권력자였던 그는, 이제 미국 국법의 위엄을 세우고 국민이 가져야 할 충성심을 교육할 교보재가 된 것이다.
"저 놈들도 죄를 짓긴 했지만, 내부 고발을 했으니 목숨을 살려줘라. 그리고 복강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 발령해"
"예. 알겠습니다"
박철각의 명령이었다고는 하나 그들 역시 죄를 지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내부 고발을 했으니 그 죄는 상쇄 시켜주고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다나카와 오도시는 그것에 안심하여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반스딘을 만나 이 사실을 고하려고 했던 그들에게 건흥이 나타난 순간부터 일이 너무 커졌다 싶어 불안했던 그들이었다.
게다가 눈 앞에서 복강의 절대권력 박철각이 건흥의 손짓 몇 번에 자신의 죄를 술술불고, 오체불구가 되어 형벌을 받게 될 모습을 상상하니 두려움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두 번 다시 헛짓하면 안되겠다!'
다나카는 박철각을 굴복시킨 건흥의 사술이 자신에게도 펼쳐질까 노심초사 했었다. 왜냐면 자신 역시 지은 죄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건흥은 둘을 돌려보내 줬다.
"이런 일이 몇 개 더 있다고?"
"그렇습니다. 지방 곳곳에서 총독이나 관리들이 권한을 남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두를 내보낸 둘은 미국의 현 상황에 대하여 논의하기 시작했다. 권한을 남용하는 관리를 방치하면 미국을 병들게 할 것임이 분명했기에 대책이 절실했다.
"지방을 감시할 행정력의 부족이군..."
"그렇습니다"
"중앙 정부 구성을 서둘러야겠다. 그리고 지방을 감시할 기관이 필요하다"
"즉각 계획을 세워 보고하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직접 하지."
건흥은 지방을 감시할 감사 기능과 정보를 수집할 첩보 기능을 함께 가진 기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훗날 미국이 더 커지면 둘을 분리한다 하더라도 인력이 부족한 지금은 한 기관이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했다.
"그 기관에 필요한 인력도 내가 충원 할 테니, 행정 일을 볼 인력만 선발해 놓아라. 그리고 새로 지어지고 있는 수도에 이들이 머무를 공간도 계획에 넣으라고 로빈에게 지시해"
"예. 군주님"
감사와 첩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인력!
뛰어난 기동력과 적절한 무력, 그리고 정보수집을 위한 위장 능력까지 다 갖추고 있는 인력이 필요했다.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웠지만 건흥이 직접 키워낸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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