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적 (2)
조선 압록강
청군의 침입이 임박한 순간 건흥은 일본 본토를 장악하고 징발하고 있던 맹호사단, 칠성사단 각 2만의 병력 총합 4만의 병력을 압록강으로 급파했다.
일본은 새롭게 미국에서 창설한 비룡사단이 전체적인 징발 업무를 맡게 되었고 추가적으로 필요한 인원들을 미국에서 계속 보내고 있었다.
조선도 규슈에 3천의 병력만을 남기고 정규군 2만 7천과 지방군 3만을 압록강으로 급파했다. 그래서 미국- 조선 연합군의 9만 7천 병력이 압록강에 집결하였으며 청나라의 60만에 비하면 적었지만, 10만이란 숫자 자체는 결코 적은 병력이 아니었다.
"더 깊이 파라! 참호간 연결을 서둘러라!"
적의 정예 팔기군이 돌격하기 전에, 보병 중심의 녹영군 40만이 압록강이 얼어 붙는 동시에 밀려들 것이 분명했다.
그들도 조선의 변화된 화력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있을 것이었기에 정예를 투입하기 전에 머릿수가 많은 한족 병사들을 투입하여 조선의 힘을 빼놓으려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에 대비하여 미군과 조선은 새로운 전술을 준비중이었다.
종심방어
1차 세계대전부터 본격적으로 활용되었던 종심방어작전, 다시 말해 참호전이었다. 건흥은 세계 곳곳으로 세력을 넓힐 미국이 각지의 병력들과 충돌하게 될 경우 최소의 피해로 최대의 방어 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을 고심했다.
참호를 파고 철조망을 깔아 상대방 보병의 접근은 저지하고 아군은 몸을 숨긴 채 화력을 투사 할 수 있는 종심방어 전략은 현재 뛰어난 화력을 가진 미군이 활용하기 제격인 전술이었다.
"그야 말로 땅개가 따로 없습니다"
"야 군소리 말고 땅파라. 곧 들이닥칠 청나라 군의 규모가 60만이 넘는다고 한다"
"와... 60만이면 어느 정도 입니까? 그런 대군과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나도 없어"
강동구와 마선호역시 압록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그들은 지급된 삽으로 사람 2명 정도가 지나다닐 수 있을 만한 참호를 열심히 만들었고 이제 제법 그럴듯한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땅을 파고 있는 강동구와 마선호 옆으로 철조망을 든 병사 무리가 지나갔다. 철조망은 미국에서 제작되어 넘어 온 것으로 둥글 둥글 한 형태였지만 요철 모양이 곳곳에 있어서 무시하고 지나가기 어려웠다.
"적들의 움직임을 최대한 저지할 수 있게 펼쳐라!"
이갑성은 직접 철조망 설치를 점검했다. 어젯밤 덕만 아래 영관급 지휘관들이 모두 모여서 건흥에게 전술 설명을 들었었다.
일차적으로 철조망이 적들의 속도를 낮추고 그 사이에 아군이 사격하는 것이 종심방어의 주요한 부분 중 하나였기에 철조망을 빈틈없이 잘 깔아 두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저건 뭡니까?"
"철조망이다. 적군의 진격을 늦출 수단이지"
"철로 만든 가시덤불 같은 것입니까?"
"정확해"
"이야.... 이거 점점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런 전술은 누가 생각하는 겁니까?"
"말 조심해라 임마. 모두 폐하의 명령 아래 이뤄지는 일이다"
"헙!"
별생각 없이 누가 만든 전술일지 궁금해 했던 마선호는 황제의 이름이 나오자 바로 입을 닫았다. 불경죄로 누군가 잡혀가진 않았지만 제국의 병사들에게 황제는 신과 동격이었다.
마선호도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황제를 따르고 있었기에 말 실수를 한 자신을 자책하며 열심히 땅을 파내려갔다.
"동구야!"
"예!"
땅을 파고 있던 강동구를 이갑성이 호출했다. 그는 삽을 잠시 내려 놓고 후다닥 달려 이갑성에게 다가갔다.
"아무래도 네가 조선쪽 참호에 다녀와야겠다"
"왜 그러십니까?"
"저 상태를 봐라"
이갑성이 가리키는 곳은 미국-조선 연합 전선에서 조선이 담당한 부분이었다. 그곳에 참호는 아직 진척이 느렸고 제대로 완성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았다.
그것은 조선의 병사들이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잘 만들어진 철제 삽으로 땅을 파고 있는 미군에 비해 어디서 주워 왔는지 모를 나무들로 땅을 파고 있는 조선군이었기에 속도에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저... 그러면 저희 담당 지역 참호가 부실해질..."
"니네가 제일 진척이 빨라. 군소리 말고 다녀와"
"알겠습니다"
이갑성의 말대로 강동구가 속해 있는 대대의 작업 속도가 가장 빨랐다. 의욕적으로 앞장서서 참호를 파는 강동구 덕분이었다. 이갑성도 강동구의 그런 에너지를 알기에 그를 보내는 것이었다.
"중대 주목!"
"주목!"
이갑성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강동구는 중대원들을 주목 시켰다.
"우린 지금부터 조선쪽 참호 공사에 지원간다"
"예? 그래도 됩니까?"
"사단장님 지시다. 다 연장 챙겨라"
사단장님의 지시라면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다. 다들 내키지는 않지만 연장을 챙겨 조선쪽 참호로 이동했다.
"오 이게 누구십니까. 강대위님 또 뵙는군요"
"별장님 안녕하십니까"
강동구가 중대원을 이끌고 도착한 조선 참호에는 안혁손 별장이 있었다. 그도 정신없이 참호를 파고 있어서 온 얼굴이 흙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확실히 도구가 부실하긴 하구나...'
강동구의 시선이 안혁손 손에 들려있는 곡갱이로 향했다. 딱 봐도 날이 부실해 제 구실을 하지 못할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별장인 그에게도 저런 도구가 보급되니 그 아래는 안 봐도 뻔했다.
"참호 건설 지원 나왔습니다"
"허허... 이거 죄송해서..."
안혁손은 강동구가 왜 지원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도 주변을 계속 살피면서 훌륭하게 방어진을 완성 시키고 있는 미군에 비해 지지부진한 속도를 보이는 조선군의 방어진 건설 속도를 보며 꾀나 민망했었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별말씀을 얼른 끝내보지요. 흩어져서 조선군을 도와 참호를 판다. 실시!"
"실시!"
병력들을 다 보내고 강동구는 자신도 안혁손의 옆에 붙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 삽은 보급으로 나온 겁니까?"
"그렇습니다. 한번 써보시겠습니까?"
"그래도 되겠습니까?"
"하하 이게 총도 아니고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강동구는 슬쩍 악혁손에게 삽을 건네고 그가 땅을 파는 것을 지켜보았다. 안혁손은 힘이 장사라 한번의 삽질에 흙더미를 엄청나게 파내었다.
"정말 튼튼한 도구입니다. 힘을 주는 족족 다 받아 들이니 이런 도구라면 못 팔 땅이 없겠습니다"
"허허 별장님 힘이라면 못 팔 땅이 없어 보입니다"
-깡!깡!
신나게 땅을 파고 있던 안혁손의 삽이 암석층에 부딪혀 불똥이 튀었다.
"큰 암석층이 있습니다. 곡갱이질로 깨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 봅시다..."
안혁손이 곡갱이질로 깨뜨리려 한 암석층을 본 강동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거 곡갱이로 절대 안됩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강동구는 안혁손을 잠시 쉬게 한 뒤, 미군 진형으로가 포병을 섭외 해 왔다. 그 포병은 심지에 불을 붙여 폭파 시키는 탄을 가져왔다.
투척용 진천뢰와 비슷한 형태의 탄은 안에 쇳조각 대신 화약을 가득 채운 것이었다. 물론 니트로글리세린을 채운 다이너마이트에 비하면 초라한 폭발력이었지만, 암석층을 뚫어내기에는 충분했다.
-콰아아아앙!
폭탄이 터지며 암석층에 균열을 만들었고 이후 안혁손과 강동구는 돌 덩어리를 들어내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미국은 참으로 대단한 나라이오... 이렇게 뛰어난 기술을 가졌으니.. 읏차!"
"모두 황제 폐하의 은덕이지요"
"폐하께서 우리 조선까지 굽어 살펴 주시니 정말 천만다행인 것 같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밀려오는 청군에 또다시 백성들이 고통 받았을 것이오"
"폐하께서는 조선을 남의 나라라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다 한 가족처럼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돌 덩어리들을 옮기며 안혁손과 강동구는 황제의 위대함과 감사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법 시간이 흐른 뒤, 강동구의 중대 외에도 미국에서 참호 공사를 마무리한 인력들이 대거 조선쪽으로 넘어와 일을 도왔다.
"빈틈 없이 망을 설치하라!"
그리고 이갑성은 조선쪽 참호 앞에도 철조망을 빈틈없이 설치했다. 종심방어가 제대로 이뤄 지려면 한쪽 측면이 뚫려서는 안되었다.
압록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방어 전선에 조선도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모두 한마음으로 준비해야 함이 옳았다.
-우우우웅
작업이 한창 진행 되고 있을 무렵 참호 뒤에 게이트가 열렸다.
게이트에서는 수레를 끌고 나오는 미군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가져온 것은 오늘 저녁에 병사들을 먹일 음식들이었다.
"식사 준비하라!"
"식사 준비!"
식사 준비 명령이 내려지자 미국, 조선 가리지 않고 병사들은 신나서 복명복창했다.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그들의 허기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점심은 비교적 적게 제공 되었기에 풍족하게 제공되는 저녁 식사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식사 하고 나머지는 내일 하시지요"
"조금만 더 하면 마무리 될 듯 한데"
"잘 쉬어야 잘 싸울 수 있지 않습니까? 얼른 가시지요"
강동구의 말에 안혁손도 못 이긴 척 움직였다. 식사는 모두 미군에서 담당하고 있었고 풍족하게 제공되었기에 엄격하게 식사 받은 인원과 그렇지 않은 인원들을 구분하지 않았다.
때문에 굳이 미군 진형으로 넘어가서 식사할 필요가 없었고 조선군 참호 근처에서 작업하던 강동구의 부대원들은 그곳에서 바로 식사를 받아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선군들과도 어울렸고, 미국어와 조선어는 상당히 유사했기에 부자연스럽지만 어느 정도 의사소통하며 식사시간을 가졌다.
오늘의 메뉴는 조선인들의 입맛도 고려한 불고기였다. 미국 중부 대농장에서 키워낸 소고기로 만들어진 불고기는 간장으로 양념 되어 조선인의 입맛에도 딱이었다.
식사를 하는 것은 병사들 뿐만이 아니었다.
지휘소에 마련된 간이식당에서 조선과 미국의 지휘부가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식사가 참으로 맛이 좋습니다"
"많이 드십시오"
김석주는 불고기와 흰쌀밥을 한숟갈 크게 뜨면서 말했다. 그 모습을 덕만이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신도 식사를 했다.
"병사들에게도 제가 먹는 것과 같은 식사가 나가더군요"
"미군은 계급에 상관 없이 모두 같은 식사를 합니다"
"놀랍습니다. 이렇게 많은 병사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미국의 보급 능력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폐하의 은총으로 미국땅에서 나는 곡식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양이 대단하여 미국인들이 마음껏 먹고도 항상 남습니다"
덕만이 말하는 은총은 질소비료였다.
질소비료와 미국 중부의 대평원의 만남은 폭발적인 식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그 식량들은 미국 자유민과 노예들을 모두 배불리 먹이고도 남았다.
"오늘 참호 작업이 거의 마무리 되었습니다. 내일은 포병들을 후방에 배치할 계획입니다"
"저희도 최대한 서둘러 미군의 속도에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처럼 수시로 미군에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군. 제가 조선 백성들을 대신해 이렇게 고개 숙여 마음을 표현하겠습니다"
"이러지 마시지요.. 폐하께서는 조선과 미국은 한 가족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족을 돕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김석주가 식사를 하다 말고 일어서 덕만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덕만이 엉거주춤 일어나 함께 고개를 숙인 뒤, 손사레를 치며 그에게 말했다.
-스으으
그 때,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불쑥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보자 마자 덕만이 허리를 곧게 세우고 오른손으로 절도 있게 경례했다.
"충성!"
덕만이 경례하는 모습을 본 다른 제장들도 상황을 파악하고는 곧바로 식사를 멈추고 절도 있게 경례했다.
"고마워 하고 있다니 다행이군"
서로간의 훈훈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자리에 건흥이 모습을 드러냈다.
종심방어진을 쭉 둘러본 건흥이 본인도 식사를 하기 위해 지휘부 간이식당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건흥은 가볍게 손을 올리며 덕만 이하 장교들의 경례를 받았다.
"내 밥도 좀 퍼봐라"
"옛 폐하!"
배식을 하고 있던 병사가 건흥의 명령에 식사를 떠서 준비했다.
"앉아 앉아 식사들 해"
불고기를 한입 먹으며 건흥이 손짓과 함께 모두 앉으라고 말하자. 다들 자리에 착석했다.
"이봐 김석주"
"예 폐하"
"우리가 이번에 많이 고생하고 있는 것 알지?"
"뼛속 깊이 은혜를 새겨두겠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어영부영 다시 당파싸움이나 하고 그러면 내 기분이 어떻겠냐?"
"조선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절치부심하겠습니다"
"그래, 한번 믿어보겠다"
건흥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석주에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식사 시간에 김석주는 건흥의 눈치를 보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잘 모를 것 같은 상태였다.
그래도 김석주는 기뻤다.
조선을 이렇게 각별하게 생각해주는 미국이라는 강한 나라와 끝없는 능력을 가진 황제가 있기에 병자호란의 비극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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