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사생활 (3)
서기진의 연구실을 떠난 건흥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이 켜져 있는 도서관을 방문했다. 층고가 높게 설계된 도서관은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열람실을 지나 서고로 향한 건흥은 여러가지 주제별로 모아져 있는 책들을 살폈다.
'이 책들을 모으는 것도 고생이었을텐데 다들 열심히 했구나'
설립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서울대학교였지만 소장하고 있는 도서의 숫자는 여느 유럽 대학 못지않은 수가 있었다.
여러 분류를 차례로 살펴보다 의학 관련 도서가 모여있는 책장에 도착한 건흥은 그곳에서 책을 살피고 있는 한 여학생을 보게 되었다.
'어.....어어?'
여학생의 외모는 이국적이면서도 동양적이었는데 아마 혼혈인 것 같았다. 그녀는 제법 큰 키에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음에도 편하게 입고 있는 옷차림을 뚫고 육감적인 몸매가 드러났다.
그녀의 옆 모습은 오똑한 콧날과 풍성한 머리숱이 청순하면서도 럭셔리한 묘한 느낌을 줬다. 동양과 서양의 장점만 흡수한 것 같은 그녀의 외모를 보는 순간 건흥은 옛날 현대의 티비속 여배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의 이름은 로이나였다. 베네치아 출신의 아버지와 신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고향이 서울이었다.
중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녀는 17세의 나이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고 현재 의과대학에서 공부중인 18세 대학 2학년이었다.
'으음?'
책을 고르고 있던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폴리모프로 모습을 바꾼 건흥이 서 있었는데 무례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또 시작이네..'
어렸을 때부터 주위 남자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던 로이나였기에 이런 일은 익숙했다. 대학교에 입학 한 뒤에도 같은 학과에서 네 다섯명이 그녀에게 고백해올 정도로 그녀는 누구나 알아주는 미녀였다.
고백하는 학생들 중에서 딱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지금은 공부에 더 집중하고 싶었던 그녀였기에 들어오는 고백은 모두 거절하고 있었다.
때문에 대학교 내에서도 그녀는 콧대 높다고 소문이 나 있었는데, 물론 그런 소문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남학생들의 들이대는 행동은 끝이 없었다.
"의과대학교 학생인가?"
"예?"
교수들이 학생에게 말을 걸 때나 쓸법한 멘트로 말을 걸어오는 건흥에게 그녀는 당황했다. 이제 하다하다 이런 이상한 남자들 까지 꼬이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굳은 얼굴 표정으로 그의 물음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괜히 웃으면서 대응 했다가는 잘못된 신호를 상대방에게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시하네?'
건흥은 그녀가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것을 느끼고 이 상황이 재밌어졌다.
'내가 말을 좀 이상하게 걸었나?'
자신의 말투를 점검해본 건흥은 확실히 말투에 문제가 좀 있었구나 싶어 이번엔 조금 다른 어조로 말을 걸었다.
"의과대학교 학생이신가요?"
이번엔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고 만족하고 있는 건흥의 모습과 다르게 그녀는 건흥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시선을 책장에만 주고 있었다.
'내가 이런 짓을 해봤어야 알지...'
건흥이 이때까지 살아온 삶에서 이성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던 기억은 까마득한 옛날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좋은 결과를 얻어 낸 것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성을 유혹하는 데는 재주가 없는 그였다.
자신을 무시하고 책만 고르고 있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는 건흥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무시 당한 것이 기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외모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져야겠다'
어차피 지금 건흥에게 이성을 유혹하는 재주는 필요 없었다. 그런 재주가 없더라도 이 제국 땅에서 아니 전 세계 어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건흥이었다.
결심을 굳힌 건흥은 로이나에게 다가가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어엇!"
그녀는 깜짝 놀라 그의 손에서 팔을 빼내려고 힘을 썼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거 안 놔요?"
"못 놓지"
그녀의 눈빛이 사납게 변하며 건흥을 향해 앙칼지게 말했지만 건흥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그녀와 자신에게 투명화 마법을 걸었다.
".....!!"
자신의 모습이 투명해지자 로이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흥미롭게 둘을 지켜 보고 있던 근처의 학생들도 갑자기 시야에서 둘의 모습이 사라지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를 좀 해보자고"
건흥은 게이트를 열고 그녀와 함께 그 장소를 벗어났다. 게이트 역시 시야를 차단하는 마법을 사용했기에 도서관에 있던 다른 학생들은 볼 수가 없었다.
"꺄아아악!"
자신의 몸이 투명화 된 것으로도 모자라 건흥에게 이끌려 게이트를 넘었더니 갑자기 나타난 고풍스런 저택의 내부 모습에 로이나는 소리를 질렀다.
"살려 주세요! 누구 없어요?!"
"소용없다."
"......!!"
누구라도 듣고 자신을 구하러 와주길 바란 로이나의 외침이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건 당연했다.
건흥이 그녀를 데리고 온 곳은 백악관에서 가장 은밀한 건흥만의 공간인 그의 침실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침실로 그녀를 데리고 온 이후, 폴리모프를 풀고 본 모습을 그녀에게 보였다. 워낙 황제로서 여러가지 행사에 참여했기에 서울의 백성들은 건흥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화....황제..."
"그래."
로이나는 무섭고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해 봤다. 다른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간을 넘나드는 방금 전의 일은 제국 모든 백성들이 익히 알고 있는 황제의 권능이 분명했다.
"황..제 폐하께 충성..."
그녀는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키며 건흥에게 인사했다.
"의과대학 학생인가?"
"그..그렇습니다"
"이제야 대답 하는 구나... 아까 다른 모습의 나의 물음은 왜 무시하였느냐?"
"그..그건 폐하인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원래 다른 남자들에게는 그런식으로 대응하는 건가?"
"그렇지 않으면 너무 귀찮게 해서..."
"그럴 수 있지"
건흥은 그녀의 대답에 옅은 미소를 짓고는 손짓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로이나는 건흥의 손짓에 따라 천천히 움직여 소파에 다소곳이 앉았다.
"내가 널 왜 데리고 왔다고 생각하느냐?"
"모...모르겠습니다"
"네가 마음에 들었다."
"....!"
건흥은 천천히 상대를 유혹하거나 마음을 얻는 방법 따윈 궁금하지 않았고 해볼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이곳은 자신의 제국이고 모든 것은 황제의 소유였다.
그것은 엄연히 헌법에도 보장되어있는 건흥의 권리였기에 그 권리를 행사하는 데 있어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리 와라"
건흥은 로이나의 턱을 오른손으로 잡아 자신의 얼굴 바로 앞에 가져왔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이고 은은한 과일향이 났는데 그것이 건흥의 남성적 본능을 제대로 일깨웠다.
"제국의 헌법 1조 2항을 아느냐?"
"황제 폐하는 모든 미국인 위에 군림하며, 누구도 황제를 범할 수 없다 입니다.."
로이나는 중등학교에서 배웠던 제국의 헌법을 까먹지 않고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건흥이 지금 왜 자신에게 그것을 물어보는 지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그래. 나는 모는 미국인 위에 군림한다. 그래서 묻겠다. 너는 미국인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그럼 너는 내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마...맞습니다"
"그럼 이제 내 것인 너를 내 품 안에 담겠노라"
건흥은 그녀의 턱을 바짝 끌어 당겨 자신의 입과 그녀의 입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이 느껴졌다.
물론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건흥은 그녀의 입을 열고 입술 보다 더욱 부드러운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으음!'
백악관에서 시녀들과도 종종 키스를 해왔던 건흥이었지만 로이나는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너무나 달콤하여 온 몸에 쾌락이 퍼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긴 세월을 살아온 건흥이었기에 여자 경험도 많았는데 과연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하아...하아"
너무 오래 이어진 키스 때문에 참았던 숨을 몰아 쉬는 로이나의 호흡이 매우 거칠어 졌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불끈 솟아 오름을 느낀 건흥은 더 이상 참을 수 가 없었다.
침대에 거칠게 그녀를 내동댕이 친 건흥은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그녀의 몸을 세차게 껴안았다.
뜨거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다. 볕이 좋은 위치에 건흥의 침실이 있었기에 커튼을 치지 않은 창밖으로 따스한 햇빛이 들어왔다.
"으으응....."
로이나는 햇빛에 눈을 떴다. 그녀는 어젯밤 일어난 일이 다 꿈이지 않을까 했지만, 테이블에서 신문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건흥을 보는 순간 꿈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어 났느냐?"
"예. 폐하...."
로이나는 건흥에게 고개를 숙이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던 그녀였는데 너무나 넓은 방이기도 했고 문이 여러개 있었기에 어느 것이 화장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왜?"
"화장실을...."
"하하... 저 문이다"
건흥의 손짓에 따라 화장실으로 걸어가는 로이나는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걷기가 힘들었다.
'원래... 이런 것일까?'
어젯밤 건흥은 새벽까지 로이나를 재우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를 겪어본 그녀는 처음에는 고통만이 느껴지는 그 순간을 이 악물고 버티기만 했었다. 물론 계속 고통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횟수가 늘어날 수록 그녀도 처음 느껴보는 쾌락에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다.
겨우 볼일을 보고 다시 침대로 돌아온 로이나는 자신의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건흥이 일어서서 로이나에게 다가왔다.
"어젯밤 무리해서 몸이 아픈가 보구나"
"괜..찮습니다..폐하"
"괜찮은데 화장실 가면서 넘어 질뻔 하느냐?"
"순간 힘이 빠져서..."
"하하"
건흥은 치유 마법을 사용해 그녀의 몸에 활력을 채워 줬다.
새하얗게 빛나는 신비로운 빛이 건흥의 손을 떠나 자신에게 날아오자 로이나는 매우 놀랐지만 이후 그 빛이 자신의 몸에 닿는 순간 피로했던 몸에 활력이 도는 것을 느끼고는 이것 또한 황제의 권능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 어디 살고 있느냐?"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대학 공부는 재미있느냐?"
"의학 공부를 하는 게... 흥미에 맞습니다."
건흥은 그녀에게도 커피 한잔을 타 건네면서 말을 걸었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면서 그녀와 이야기를 하는데 성적인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그녀와 대화만 하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이거... 완전히 빠진 건가?'
로이나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건흥은 백살이 넘은 늙은이의 불타는 사랑이 참으로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젊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너는 내일부터 이곳에서 지내라"
"예?... 하지만..폐하 이곳은 황도라... 학교까지 거리가.."
제법 건흥과 대화를 나눈 시간이 길어져서 일까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뜻을 이야기 하며 건흥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주저했다.
"서울대학교로 이어지는 영구 게이트를 만들어주겠다. 기숙사에서 강의실 가는 것보다 더 빨리 갈 수 있게 해주지"
"아...알겠습니다. 폐하"
"이곳에 네 방도 만들어주마. 네 방을 원하는 데로 꾸밀 수 있도록 해주겠다"
"가..감사합니다"
"돈도 쓰고 싶은 데로 다 쓸 수 있도록 해주겠다."
"감사합니다.."
"그것 말고 또 필요 한 게 있으면 말만해라. 다 해 주겠다."
"감사합니다...폐하"
감사하다고 말하며 수줍게 고개를 숙이는 로이나의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건흥은 그런 그녀를 염력 마법으로 천천히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너는 이렇게만 있으면 된다 알겠느냐?"
"예..."
건흥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로이나를 품 안에 끌어안았다. 이에 그녀도 팔을 뻗어 건흥의 단단한 가슴에 머리와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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