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물결 (4)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북미에서 역사적인 첫 선거가 치뤄졌다.
선거권은 모든 자유민들에게 1인 1표가 주어졌으며 아직 미국어 자격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노예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48개의 주지사 자리는 공화당 30석, 민주당 15석, 사회당 2석, 녹색당 1석으로 돌아갔다. 공화당은 당초 목표했던 40석 보다 훨씬 못 미치는 30석을 확보한 것에 그쳤다.
150자리의 하원의원 선거는 공화당 85석, 민주당 40석, 사회당 18석, 노동당 5석, 녹색당 1석, 청년당 1석에게 돌아갔다. 하원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목표로 했던 100석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그 원인은 아무래도 선거 직전에 터진 민족차별 주의자들의 총기 난사 사건이 컸다. 공화당의 민족주의적 성격과 보수적인 이념을 싫어하던 조선계 사람들이 공화당에 투표하지 않고 민주당이나 노동당등에 투표한 것이다.
그러나 예상보다 못하다 뿐이지 공화당은 명실상부한 미국 첫 선거의 승리자였다. 주지사나 하원의원 모두 절반 이상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전체 차렷!"
백악관에 마련된 당선증 수여식을 위해 이번에 당선된 모든 인물들이 대전에 모여있었다.
붉은색 카펫이 쫙 깔리고 멋들어진 샹들리에가 있는 대전에 오와 열을 정확하게 맞춰 서 있는 당선자들의 가슴은 떨리고 있었다.
-뿌우우우우
웅장한 나팔 소리와 함께 건흥이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황제 폐하께 경례!"
"충성!"
모든 당선자들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건흥에게 경례 했고 건흥도 가볍게 손을 올렸다 내리며 경례를 받았다.
"지금부터 주지사 당선증을 수여하겠습니다. 인디언 자치주 주지사 타마하!"
인디언 전쟁 이후 이로퀴 인디언을 이끌고 자치주에서 자치를 보장 받았던 인디언이었지만 그들도 선거를 하라는 건흥의 지시를 어길 수 없었다.
물론 결과는 정신적 지주이자 최고 제사장인 타마하가 녹색당 타이틀을 가지고 당선이 되었다.
"오랜만이군 타마하. 잘 지냈는가?"
"폐하 덕분에 평화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인디언들을 잘 이끌어 주기 바라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건흥은 오랜만에 보는 타마하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그를 만나니 옛날 점을 봤던 것이 생각났다. 그가 던지는 돌을 조정하는 미지의 존재를 눈치챘던 건흥은 아직 별일 이 없는 것을 보니, 이곳의 신격은 자신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다.
"다음은 서울주 주지사 이현임!"
서울주 주지사에 당선된 이현임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젊은 인재였다. 그는 대학에서 법과 경제를 공부하다 국가를 이끄는 리더가 되고 싶어 정치에 뛰어든 사내였다.
훤칠한 외모와 수려한 말솜씨 덕분에 공화당 내부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키워냈고, 결국에 공화당 서울 주지사 경선에서 간발의 차이로 승리하였다.
"몇 살인가?"
"올해 35입니다"
"오호 젊은 인재로군. 기대하겠다"
"감사합니다. 폐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건흥은 이현임에게 임명장을 쥐어 준 뒤, 어깨를 두드려 줬다. 이에 이현임은 감동해 얼굴이 잔뜩 상기되었다. 황제의 손길이 닿은 자신의 어깨에 온 감각이 집중되는 이현임이었다.
"다음은 복강주 주지사 니시오!"
"엽사주 주지사 램버트!"
주지사들의 임명장 수여가 이어졌다.
건흥은 미국의 새로운 100년을 열어갈 인재들에게 덕담 한마디를 건넸다.
"이상 48명의 주지사 전체 차렷! 황제 폐하께 경례!"
"충성!"
주지사 임명장 수여가 끝나고 그들은 옆으로 이동했고 하원의원들이 임명장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지금부터 하원의원 당선증을 수여하겠습니다. 서울 신림지구 홍익표!"
홍익표는 홍대수의 아들이었다. 아버지의 업을 물려 받아 일찍부터 정치에 뛰어들었으며 공화당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굳힌 상태였다.
"아버지만큼 할 수 있겠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폐하!"
"믿어보지"
건흥은 홍익표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홍대수의 업무처리에 항상 만족했던 건흥이었기에 그의 아들에 대해서도 기대하는 바가 컸다.
"서울 공업지구 호시노!"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난 호시노는 결국 당선되었다.
그는 다른 누구보다 건흥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하는 사람이었다.
"내 덕에 목숨을 구한 녀석이군"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름이 호시노 였던가?"
"그렇습니다!"
"호시노 정치인으로서 네 어깨가 무겁다. 너는 수백만의 일본계 미국인들이 내 나라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죽기를 각오하고 일해야 할 것이다 알겠는가?"
"명심하겠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법을 어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고. 자칫 잘못된 길로 가려는 자들이 있으면 과감하게 도려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과감하게 도려내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호시노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실제로 황제가 과감하게 민족차별주의자들을 도려내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폐하의 뜻에 어긋남이 있는 자들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건흥은 큰 소리로 대답하는 호시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고 자리로 돌려보냈다.
"서울 베니스지구 피셜록!"
호시노 다음으로 호명된 자는 제국은행 은행장 피셜록이었다.
"뭐야? 은행은 어쩌고"
"은행장은 후임에게 물려 줬습니다 폐하"
"정치에 뜻이 있었나?"
"경제와 정치는 뗄 수 없는 관계 아니겠습니까? 제가 의회에 들어가 경제에 관련된 법안을 가다듬고 발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믿어 보지"
건흥은 피셜록에게 임명장을 전달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피셜록은 이미 제국에서 손꼽히는 부자였지만, 그는 좀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싶었기에 민주당에 가입했다.
그는 공화당에서 주장하는 국가주도형 하향식 경제발전을 극도로 혐호 했기에 의원이 되어 반드시 공화당이 경제 관련 법안을 멋대로 제정하는 것을 막을 생각이었다.
'경제는 정부가 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 맡겨야 해!'
은행장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피셜록은 경제는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움직이고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특정인이 완벽하게 컨트롤 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다.
경제는 시장에 맡겨야 모든 것이 제대로 굴러간다고 믿었기에 다수당이 되어 각종 규제를 남발할 것 같은 공화당을 막아야 제국 경제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상 150명의 의원 전체 차렷! 황제 폐하께 경례!"
"충성!"
하원 의원들에 대한 임명장 수여도 끝이 나고 건흥은 가벼운 격려의 말을 전하기 위해 다시 단상 위로 올랐다.
"먼저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당선된 자네들 모두에게 축하의 말을 건낸다. 우리 미국은 세계 최고의 군사력, 세계 최고의 경제력을 손에 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허나 그것이 달성 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세계 최고의 정치력이다"
"우리가 아무리 천혜의 자연환경과 많은 인구, 수준 높은 기술을 가졌더라도 부패한 정치와 무능력한 지도자는 군사, 경제, 외교, 사회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다."
"오직 청렴한 정치와 뛰어난 지도자만이 미국을 진정한 세계 최고의 국가로 만들어줄 수 있다. 나는 자네들이 세계 그 어떤 나라의 정치인들 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기에 잘하리라 믿는다. 함께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 보자 이상."
건흥의 짧은 연설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들렸다.
"전체 차렷! 황제 폐하께 경례!"
"충성!"
임명장 수여식이 끝나고 연회가 이어졌다. 백악관 연회장에 모인 당선인들은 샴페인 한잔씩을 손에 들고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같은 정당끼리만 대화 나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정당과도 의무적으로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정당은 다르지만 동반자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건흥의 의도였다.
연회도 끝나고 백악관 일정이 마무리 된 후 모든 정치인들은 내일부터 임명된 관료들을 대신해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첫 발걸음을 무사히 뗐다.
* * *
황도에 위치한 국립묘지
건흥의 지시로 설립된 국립묘지의 첫번째 주인공은 반스딘이었다.
상처를 입거나, 병이 든 것은 마법으로 고쳐 줄 수 있었지만, 노화로 인한 자연사는 막아 줄 수 없었다.
건흥의 마법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는 엄연히 신이 아닌 인간이었기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릴 방법은 없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나를 만나 평생을 미국에 헌신하였으며...."
건흥은 반스딘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한 뒤, 그가 얼마나 미국에 큰 역할을 해왔는지 언급했다.
이에 이 자리에 모인 반스딘의 가족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 일했던 홍대수 이하 관료들까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곳에 편히 잠들기 바라겠다."
건흥의 말이 끝나고 반스딘의 관이 파여진 땅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가족들은 오열했다. 그러나 이것이 자연의 순리였다. 100년이 되지 않는 시간을 살다 죽어야 하는 세상은 법칙을 평범한 사람들은 거스를 수 없었다.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나고 백악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건흥은 홍대수와 월이엄을 불렀다.
"자네들 후임은 정했는가?"
"그렇습니다"
"잘했네. 반스딘은 비록 갑작스럽게 내 곁을 떠나갔지만, 자네들에게는 휴식을 좀 주고 싶다. 이제 업무는 내려 놓고 한적한 휴양지에서 푹 쉬는 것도 좋겠지..."
"미국령 멕시코에 날씨도 좋고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홍총리님 혹시 칸쿤이라는 곳 아닙니까?"
"맞습니다. 월장관도 그곳을 아십니까?"
"저도 은퇴하면 거기서 휴양을 하려고 했었지요"
"이렇게 또 마음이 통하는군요"
"낄낄 둘이 그 곳에 가 있으면 내가 시간을 내 한번 놀러가지"
"폐하가 오시면 마음껏 즐기실 수 있도록 저희가 잘 준비해 두겠습니다"
"하하하 좋아 좋아"
은퇴는 아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시원한 일이기도 했다. 본인들의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것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동안 최선을 다했고 개척촌에서 출발한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들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둘을 돌려 보내고 백악관으로 들어온 건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새로운 비서실장 윤호선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부터 비서실에 들어와 일했으며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 때문에 반스딘이 후계자로 점찍어 두고 있던 자였다.
"오후에 일정이 있나?"
"뉴턴님께서 연구성과 보고를 위해 알현을 신청하셨습니다."
"그래? 이미 백악관에 도착해 있는가?"
"그렇습니다. 응접실에서 대기중이십니다"
"식사 하면서 보고 듣게 식당으로 데려와라"
"예 폐하."
오전에 반스딘 장례식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에 건흥은 식사를 하며 뉴턴과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백악관 식당은 많은 주방장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어서 건흥이 언제고 식사를 하겠다고 하면 바로바로 준비가 될 수 있었다.
"폐하 뉴턴이옵니다"
"여기 앉아라"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진 식탁 앞에 앉은 뉴턴은 보고를 위한 자료는 잠시 옆으로 두고 건흥과 함께 식사하기 시작했다.
"너도 이제 적은 나이도 아닌데 결혼 소식은 없느냐?"
"아.... 연구에 바쁜 지라.... 여성을 만날 시간이.."
"시간이야 네가 내면 되는 것 아니냐? 누가 들으면 연구 성과 내라고 내가 협박하는 줄 알겠다"
"하하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요"
"뭐 그건 그렇고 오늘은 어떤 성과가 났기에 바쁜 네가 백악관까지 온 것이냐?"
"다름이 아니라..."
뉴턴은 한쪽으로 치워 뒀던 보고서를 들고 공손히 건흥에게 내밀었다.
"내연기관 연구 성과 보고를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말해봐"
"하위언박사가 개발한 크랭크축, 실린더등을 이용해 가솔린 엔진을 개발했습니다. 개발에는 저와 하위언을 비롯한 많은 박사들이..."
뉴턴이 내민 보고서에 그려진 그림은 가솔린 엔진이었다. 이미 등유로 동작하는 엔진을 개발한 적이 있는 그들이기에 가솔린 엔진이 개발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아주 좋다. 그럼 이제 슬슬 석유 확보에 나서야겠구나 그렇지?"
"그렇습니다. 가솔린 엔진을 소형화 시키면 폐하께서 말씀하신 자동차를 만들 수 있으며 전 국민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게 될 때 석유 소모량은 엄청날 것입니다"
"석유 회사를 설립해야지. 너도 지분을 좀 나눠 줄 테니 투자해라"
"감사합니다 폐하."
뉴턴은 이미 제국의 손꼽히는 부자였기에 그의 자본금은 엄청났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주식 투자에 번번이 실패했던 그였지만, 이 세상에선 건흥의 도움으로 투자에 거듭 성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막대한 돈을 벌어 들일 것이 분명한 석유 회사에도 초기 투자자로 참여할 수 있게 해줬으니 그는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공짜는 아니야. 조건이 있다"
"무엇입니까?"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라. 너의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줘야지. 그래야 네 자식들도 나를 위해 일할 것 아니냐?"
"최...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뉴턴은 그냥 투자 안하고 결혼도 안하면 안되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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