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 (3)
하얀 벽돌로 지어진 3층 건물이자 아바나에서 가장 큰 건물인 총독부는 제국군으로 포위되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해군의 포격 범위 밖에 총독부 건물이 있었기에 포탄에 의해 박살나며 무너지는 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밖을 완전 포위하고 조금씩 진입하고 있는 제국군을 막을 수는 없었다.
-탕! 탕!탕탕
총독부 담장을 두고 치열한 총격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제국군의 전투력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기에 쓰러지는 것은 대부분 스페인군 이었다.
"저 놈들은 대체 무엇이냐 말이다!"
"확실하진 않으나 세인트 오거스틴을 우리에게서 빼앗은 자들인 것 같습니다"
스페인은 플로리다 식민지를 빼앗긴 이후 몇 번에 걸쳐 병력과 조사단을 보내왔었다. 물론 그 때마다 건흥이나 미군에 의해 처단 되었는데 아주 소수의 생존자들에 의해 제국의 존재가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으...으으으! 저런 규모의 병력이 움직일 때까지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니!"
"죄송합니다. 저들의 세력권으로 진입 자체가 불가 하여..."
"도데체 전임 총독은 왜 이런 사실을 본국에 보고하지 않았나!"
전임 총독을 욕하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 것은 얼마전 새로 부임한 총독 페드로였다. 그는 인수인계 기간 동안 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혹시 십여년 전 해적들과 전투에서 잃었다는 병력이...."
"그...그렇습니다"
십여년 전 세인트 오거스틴을 수복하기 위해 보냈던 콩키스타도르의 전멸을 총독 마티아스와 부관 디에고는 감췄었다.
아무리 보고서를 잘 쓴다 해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존재들에게 패했다고 한다면, 마치 원주민들에게 패한 것처럼 들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프랑스 유명 해적 장 플뢰리의 해적 선단과 전투하여 병력을 잃었다고 거짓 보고를 올릴 수 밖에 없었다.
"디에고... 지금이라도 저들에 대해서 더 아는 것을 말해봐라"
"죄송합니다만... 저들에 대해서는 저도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플로리다 위쪽의 땅을 차지한 국가라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탕! 탕!탕
"으헉!"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도중 총독부 건물 3층 창에서 수비를 하고 있던 스페인 군이 적의 조준 사격을 맞고 쓰러졌다.
제국의 총탄을 맞은 병사는 머리에 꽂힌 단 한발의 총알에 뒤통수에 구멍이 크게 뚫리며 뒤로 넘어졌다.
"무슨 총이!!"
창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사격을 당하진 않았지만 창을 지키다 총에 맞은 아군이 쓰러지는 모습은 잘 지켜볼 수 있었다.
아군의 사격은 닿지도 않는 거리에서 총을 쏘아대는 적들의 총탄은 살상력이 어마어마 하여 페드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저들의 전투력이.... 엄청납니다... 이곳도 결국 시간문제 일 듯 싶습니다"
디에고는 빠른 속도로 밀려나고 있는 아군 병력을 보며 페드로에게 결단을 내리라는 눈빛을 보냈다.
"일단 이동하자 추후 본국에 제대로 보고해야겠다"
"예. 총독님"
둘 이 이동한 곳은 총독부 가장 중심의 벽난로였다.
"읏차"
디에고가 먼저 벽난로 안으로 들어갔다. 총독실의 벽난로는 그 구조가 특이했다.
벽난로는 굴뚝으로 만 연결 된 것이 아니고 아래로도 쭉 통로가 이어져 있었는데 그곳은 총독부 건물에서 외부로 나가는 비밀 통로였다.
"통로 이상 없습니다. 들어 오십시오"
비밀 통로에는 사다리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한걸음씩 조심조심 이동하지 않으면 3층 건물 아래로 떨어 질 수 있는 위험이 있는 통로였다.
그들은 이 통로를 이용해 도주하여 아바나 남서쪽 파야항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이미 아바나항은 적들이 완전 장악한 상태이기에 쿠바섬을 벗어나려면 그 방법 뿐이었다.
'제발 파야항은 무사해야 할 텐데...'
제국군이 쿠바항만 공격하고 남서쪽의 작은 항구인 파야항의 존재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페드로였다.
그래야 자신이 탈출 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그런 바람이 무색하게 페드로는 자신의 목덜미를 강하게 잡아 채는 우악스런 손길을 느끼고 움직임을 멈췄다.
"뭐...뭐야! 이 새끼 뭐야!? 이거 안 놔?"
"네 놈 잡으러 우리 애들이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개구멍으로 도망가면 쓰나?"
페드로의 목을 잡아챈 것은 건흥이었다.
그는 이 흥미로운 전쟁을 처음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국가의 병력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적들을 물리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니 마치 잘 만든 전쟁영화를 VIP석에서 보는 기분이었다.
"지금 네 놈에게 가장 근접한 3개의 분대가 있단 말이지...? 누가 가장 먼저 도착할 지 궁금하지 않나?"
"뭐라고 씨부렁 거리는 거냐! 이것 놓아라! 디에고!"
"예! 총독님"
아무리 몸부림 쳐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 하는 건흥에게서 벗어날 수 없자 페드로는 크게 소리 지르며 디에고를 불렀다.
디에고는 비밀통로에서 나와 건흥의 손에 단단히 잡혀 있는 페드로를 보게 되었고 곧바로 자신의 등에 메달려 있던 머스킷을 건흥에게 조준했다.
-탕!
디에고의 총탄이 건흥의 몸으로 날아들었지만 이내 공중에서 멈춰 섰다.
".......!?"
그 모습을 본 디에고와 페드로 둘 다. 이 상황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평생을 살면서 저렇게 총 알이 공중에서 멈추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허허 그런 구식총으로 우리 애들을 어떻게 상대하겠냐. 너도 이리 와라"
".....!"
건흥은 염력 마법을 사용해 디에고도 끌어당겨 제압했다. 목덜미를 잡고 있기 귀찮아져 둘 다 공중에 띄웠다.
"사...살려주시오! 살려만 준다면 내 비밀금고를 알려주겠소"
디에고는 건흥에게 제압 당하자 자신의 비밀금고를 언급하며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비밀금고라는 말에 페드로가 움찔하며 노려봤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십년 넘게 아바나에서 일한 디에고는 총독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부관이었다. 총독이 장교라면 그는 부사관 같은 존재로 이곳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영향력이 있는 자였다.
그랬기에 당연히 총독 몰래 따로 주머니를 차고 있었다. 언젠가 은퇴하고 모아 둔 돈으로 아바나 외곽에 대농장을 지어 왕처럼 누리면서 사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 꿈을 이루려면 지금 건흥이 자신을 풀어줘야 했다.
"시끄럽게 떠들기는... 조금만 기다려라 우리 애들이 거의 다 왔다"
그러나 디에고의 말은 건흥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의 말을 들을 마음이 없던 건흥인지라 통역마법을 걸지도 않았었다.
"이 개새끼야! 살려 달라고! 내가 금과 은을 준다니까!"
건흥이 자신의 말을 무시하자 디에고가 악다구니를 썼다. 그런 모습을 보며 페드로도 이에 질세라 뭐라뭐라 소리치며 건흥에게 말했다.
"입 닫아라"
건흥의 손에서 피어오른 검은 기운이 두 갈래로 갈라져 디에고와 페르도에게 각각 쏘아졌다.
"크억!"
검은 기운은 상대를 마비 시키는 마법이었는데 생체 활동에 필요한 호흡을 제외한 모든 신경이 마비되었다.
결국 둘은 하늘에 둥둥 뜬 채로 말도 못하고 이 상황을 그저 바라 만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털썩
건흥은 총독실의 소파에 앉았다. 푹신한 촉감의 의자는 고급스러운 보석과 은으로 장식이 되어있는 사치의 끝판왕 같은 물품이었다.
-탕! 탕탕! 탕!
아군이 뇌우를 쏘는 소리가 매우 근처에서 들려왔다. 이제 거의 총독실 근처까지 병력들이 진입한 것 같았다.
"자...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소파에 비스듬히 몸을 눕히고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건흥은 하늘에 떠 있는 오늘의 우승 트로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둘은 건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 는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그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지는 알 수 있었다.
"진입한다!"
활짝 열려 있는 총독실 문을 가장 먼저 넘은 병사는 눈 앞에 보이는 이 비정상적인 모습에 멈칫 했던 것도 잠시였다.
소파에 앉아있는 사람은 그가 얼굴을 알고 있는 존재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제국의 하늘 같은 존재였다. 곧바로 총을 등에 돌려 매고 오른손을 들어 절도 있게 경례했다.
"황제 폐하께 충성!"
"너 이름이 뭐냐?"
"강동구입니다!"
가장 먼저 총독실에 진입한 강동구의 뒤를 이어 다른 병사들도 총독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도 공중에 사람이 떠 있는 기이한 모습에 고개를 갸웃 하다가 이내 강동구가 절도 있게 경례를 하고 있는 대상을 보자 마자 모두 총을 놓고 오른손을 눈썹 위에 가져다 대었다.
"황제 폐하께 충성!"
"충성!"
총독실 입구를 가득 메운 병사들이 모두 건흥에게 경례하자 건흥은 가볍게 손을 들었다 내려 놓으며 그들의 경례를 받았다.
"자네들은 간발의 차이로 2등이야. 1등은 강동구라는 이놈이지. 이리 와서 우승 트로피를 수령해라"
"예! 폐하"
강동구는 트로피라는 말 뜻을 몰랐지만 턱 짓으로 스페인인들을 가리키는 건흥의 움직임을 보고 눈치 빠르게 알아차렸다.
강동구가 페드로에게 다가가자 하늘 높이 떠있던 페드로가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이 자가 이곳의 총독이구나!'
강동구는 고급스러운 옷에 화려한 장신구, 그리고 전투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페드로의 모습을 보고 그의 신분을 바로 알아차렸다.
물론 총독들이 모두 페르도 같은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이 중남미를 개척하는 초기 때만 하더라도 대부분 장군형의 총독들이 직접 전투를 지휘했기에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가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안정된 식민지에 중앙에서 파견된 페드로 같은 인물은 전투와는 거리가 먼 관료형 인물이었다.
'뭘 꼬나봐?'
강동구가 눈 높이가 거의 같아진 페드로에게 다가갔을 때 페드로는 마치 경고하는 것 처럼 눈을 위협적으로 뜨고 강동구를 노려봤다. 마치 '네 이놈! 내가 누군지 아느냐?'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허나 강동구는 그런 위협을 신경도 쓰지 않는 인물이었다.
-꽈악!
강동구가 페드로의 단발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으로 당겨와 앞으로 내밀며 모두에게 똑바로 보이게 내밀었다.
"적 우두머리의 신병을 확보했다!"
"와아아아아!"
강동구가 페드로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며 크게 소리쳤고 총독실에 모인 병사들 모두 크게 소리치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건흥도 마치 아이들의 재롱을 보는 아버지의 미소를 띄며 흐뭇하게 강동구를 바라봤다.
* * *
"어린아이들은 좌측으로!"
"아녀자는 우측으로!"
아바나를 완전 점령한 제국군은 포로 분류 작업이 한창이었다.
총독부를 점령 하기 전까지는 곳곳에서 저항이 격렬했지만, 페드로가 잡히고 손과 목이 묶인 채 아바나 곳곳에 끌려다니자 사기가 떨어진 스페인군들은 모두 항복하였다.
스페인군이 항복하며 포로로 잡히기 시작하자 숨어있던 민간인들도 모습을 드러냈고 제국군은 모든 인원을 끌어내어 전체적으로 재분류를 하고 있었다.
"폐하. 보고드리겠습니다"
페드로가 강동구에게 머리채 잡혔던 그 총독실에 덕만과 최항이 건흥을 접견하고 있었다.
"아군 사망자 56명 부상자 104명 발생하였습니다. 적군은 추정 사망자 7600여명 정도이며..."
아무리 압도적인 화력이라도 아군 사망자가 발생하기 마련이었는데 시가전에서 적의 총탄을 맞은 자도 있었지만 상륙하는 과정에서 실족사 한 병사들이 많았다.
"포획하고 있는 민간인들의 숫자는?"
"현재 20만명 내외입니다. 추후 아바나 외곽으로 징발 범위를 늘려갈 경우 더 늘어 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좋다. 이곳을 정리하고 통제하는 것은 서울에서 넘어올 자들에게 맡기고 자네들은 다음 작전으로 넘어가라"
"예 폐하. 내일부터 동쪽으로 육군을 이끌고 진격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육군과 속력을 맞추며 주변 섬들을 정리하겠습니다"
쿠바는 납작하고 길게 생겼는데 지금 제국이 점령한 아바나는 섬의 북서쪽에 있었다. 아직 섬의 동쪽은 스페인 군이 곳곳에 주둔하고 있었기에 육해군이 동시에 기동하면서 차근차근 점령할 생각이었다.
"그래. 내일부터 다시 치열하게 싸우고 오늘은 한 잔 하자"
건흥은 페드로의 와인저장고 가장 깊숙한 곳에 있던 포르투산 와인을 가져와 덕만과 최항에게 한잔씩 따라줬다.
"감사합니다 폐하"
포르투산 화이트 와인은 그 맛이 깔끔했다. 이런 술 맛은 아직 제국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다. 와인을 마시자 유럽에 대한 욕심도 슬쩍 생기는 건흥이었다.
"술 맛이 어떠냐?"
"너무 좋습니다"
"남에 것을 빼앗아 마시기 때문에 더 달콤한 것이지 안 그러냐?"
"그렇습니다 폐하"
"앞으로 이가 썩어 빠질 때까지 달콤함을 즐겨보자"
"예! 알겠습니다!"
덕만과 최항의 우렁찬 대답과 함께 셋은 기분 좋게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스페인의 땅을 취한 것도 기분이 좋고, 깔끔한 포르투 와인에 취하는 것도 기분이 좋았던 건흥의 손이 계속 술병으로 향했고, 그 모습을 본 최항이 눈치 빠르게 페드로의 와인저장고에서 추가로 와인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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