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리움 포션
라이트리움 포션
에시턴은 최고급 힐링 포션을 직접 가지고 오는 등 손발을 아끼지 않았다.
레노번과 콜베르는 포션 연구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매달렸다.
"다음 사람."
"지금 다음 사람."
"다음."
에시턴은 계속 실어 기사를 날랐다. 테츠는 옆에서 불려온 기사의 관상을 꼼꼼히 검사했다. 대부분 살인범에 강간범에다 악질들이다. 법의 판결을 받더라도 대부분 사형수로 교수형에 처할 놈들이었다.
테츠의 도력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라가 있으므로 그가 보는 상대의 운명은 틀릴 리가 없다. 다만 도력의 사용을 배울 스승이 없을 뿐이지 가진 도력의 양은 이미 신선의 경지에 올랐다고 봐야 한다.
관상도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니다. 도력이 차서 안구에 스며드니 혜안이 열리고 사람의 길흉화복이 저절로 보이는 것일 뿐이었다.
이 방에서 똥줄 터지게 미칠 것 같은 사람은 제라드와 제자들이었다.
하늘 같은 스승이 일꾼처럼 일하는 것은 둘째치고 시체의 가슴을 가르고 피 튀겨가며 심장을 끄집어내는 것을 두 눈으로 계속 바라보아야 했다.
눈이라도 깜박일지라면 테츠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어엇? 스승님!."
"아, 교주님 말대로 우리가 가장 기본적인 것을 놓쳤구나."
"어떻게 되었소?"
"이 자는 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후유증이 큽니다. 확실히 인간으로 되돌아온 것도 맞습니다."
"음, 그럼 더 완벽하게는 만들지 못하는 거요?"
"아닙니다. 아무래도 한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면 완벽한 라이트리움 포션을 제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허, 마녀와 함께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평의회에서 싫어할 텐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마녀보다 라이트리움 포션이 완성됐다는 것에 더 기뻐할 겁니다."
"이제 사람을 더는 죽이지 않아도 되겠지?"
"네, 교주님. 이 배합이면 절대 안 죽어요. 다만 정신착란을 겪거나 무기력증이 심한 아주 나약한 인간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 이곳에 있는 녀석 중 형편없는 녀석들은 그 포션을 먹이도록 하고 나중에 제대로 된 포션은 나머지 녀석들에 먹이도록 하지. 이러면 그들을 풀어 주더라도 못된 짓은 하지 못할 테니."
레노번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포션 덕분에 주신 제국은 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 교주님 덕분입니다. 저와 콜베르는 엠버스피어로 복귀해서 포션을 마저 완성 시키겠습니다."
"말 나온 김에 바로 갑시다. 포션이 하루라도 빨리 완성되어야 하니까. 그 전에 두 분은 옷이라도 갈아입고 갑시다."
"그래야겠습니다. 피 냄새를 풍기며 다닐 수 없으니 콜베르 같이 씻으러 가자."
두 사람이 방을 나서자 테츠는 에시턴을 불러 세웠다.
"당분간 7층의 경비는 셀레스트와 자네가 직접 뽑은 가장 우수한 제자들로 채워 넣고 집중적으로 감시하도록 해. 너는 여기 기사단 중 마교에 가입하여 헌신할 수 있는 인재를 추려내라. 1층에 있는 놈들은 악독한 놈들이니 저 포션을 먹이고 다 쫓아내. 2층에 있는 녀석들은 나중에 완성된 포션을 먹이고 3층에 있는 놈들이 그나마 기사도 정신을 바로 알고 행동하는 놈들이다. 다만 아직도 케이사르에 충성을 생각하는 놈들이 많으니 재주껏 설득하고 회유가 안 되는 놈들은 라이트리움 포션을 먹여라. 평범한 사람으로 되돌아 갈 것이니 그냥 놓아주면 된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에시턴은 힐긋 제라드 일행을 바라봤다.
"저들은 어떻게 처신하시겠습니까?"
"네 제자니 네가 알아서 해야지 그것까지 내가 해 주랴? 맨시티로 보내 1년 면벽 수련시키던지 일손이 부족하면 여기서 직접 벌주던지 네가 알아서 해."
"알겠습니다. 교주님."
테츠가 나가자 에시턴은 땅이 커지라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다짜고짜 제라드 앞으로 가서는 귀싸대기를 후려쳤다.
얼마나 세게 맞았던지 제라드는 크게 휘청댔다.
"이 새끼들이 편한 것만 알아서 오냐오냐했더니 내 얼굴에 똥칠해도 이렇게 하냐? 교주님이 이렇게 화를 낸 것을 본 적이 없다. 너희들이 얼마나 한심한 짓거리를 했으면···."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이놈들 대가리 박고 훈계를 들어라."
제라드부터 전부 돌바닥에 대가리를 박았다.
훈계는 장장 한 시간 동안 쉼 없이 계속됐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지 에시턴은 씩씩댔다.
"모두 일어나! 씻고 옷 갈아입고 올 동안 여기 '피'한 방울 남김없이 청소하고 사체는 화장하되 절대 한꺼번에 태우지 말고 한 명씩 정성 들여 화장하고 유골 수습 후 기사의 의장에 따라 장례를 치러 주어라.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어휴. 아니 평소에 일 잘한다고 칭찬을 그렇게 했더니 이렇게 한 방에 사람을 골로 보내 버리다니. 제라드 힘든 일일수록 네가 스스로 나서야 제자들에 모범이 되는 것이다. 귀찮고 더러운 일은 피하고 제자들만 시키면 누가 널 존중하겠느냐? 교주님은 그것을 일깨워 주심이다."
"오늘 배움이 컸습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라이트리움 포션이 곧 완성된다. 이제 여차하면 포션 먹이고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어.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새겨듣겠습니다."
에시턴이 나가자 제라든 양손으로 자기 얼굴을 쓸어내렸다.
"교주님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 줄 오늘 처음 알았다. 평상시 제자들에 그렇게 잘 대하시더니 화내시니까 세상 누구보다도 두려운 사람이 되는구나."
"저흰 청소부터 하겠습니다. 또 화내시는 걸 보느니 저희가 고생하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그 말이 맞는 말이다. 넌 물 떠오고, 너흰 걸레로 쓸만한 것들 가져와. 너희 둘은 화장터 불 올려 달궈놓고. 어서, 자 빨리 움직이자고."
테츠는 엠버스피어로 떠나기 전 레노번과 콜베르를 데리고 7층에 올랐다.
"그들은 이것을 세이크릿 패스라고 하더군."
"일종의 이동진 같습니다."
"현자의 말이 맞아. 다른 차원으로 가는 이동진 같은데 모두 파괴되어 복구가 힘들지만, 이 한 곳은···."
테츠가 가리킨 곳은 붉은 피로 얼룩져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레노번은 몇 가지 마법을 시도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마법진도 피로 그렸는데 그 위에 다른 피를 끼얹어 도식을 지우려 했군요."
"콜베르 피를 분리해 낼수 있겠니?"
"다른 피라면 얼마든지요. 마법진 위에 뿌려진 피를 걷어 내면 되는 거죠?"
"그렇다."
콜베르는 튀긴 '피'한 줄기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바짝 말라 흩뿌려진 피가 점성이 생기더니 콜베르의 손바닥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콜베르는 모인 피를 다시 마법진 위 흩어진 피 위로 쭉 깔았다가 다시 당기면서 한 방울 한 방울 튀긴 것까지 모조리 빨아 당겼다.
이 피는 총사령관 아바리엘의 피였다.
피를 싹 다 걷어 내자 예의 이동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노번이 잠시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의도적으로 이어진 선을 끊어 놓았습니다. 끊어진 곳을 연결하면 이동진이 작동할 것 같습니다."
"음, 같은 생각이야. 여기서 가동하면 반대편에서 바로 알수 있지. 베레트가 도망치면서 그곳 사람들에게 이곳의 일을 알렸을 테니까 저쪽은 감시가 심할 거다. 우리가 급한 것은 전혀 없어. 시간을 넉넉히 주어 녀석들이 조금 안도한 뒤에 움직여도 충분하지."
***
테츠는 레노번과 콜베르를 데리고 엠버스피어로 되돌아왔다.
딱 일주일 후 에르제베트의 도움으로 진정한 라이트리움 포션이 완성되었다.
"한가지 빼고는 시험은 다 끝냈습니다."
"한 가지?"
"정상적으로 돌아온 사람이 부부 관계를 통해 자손을 만들 수 있는지는 아직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음, 그것도 중요한 건데···. 그 또한 시험 해 봐야 하니 적절한 인원을 골라서 보내 주겠네."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당분간 포션에 대해서는 입조심들 합시다. 적들은 몰라도 아군의 사기 또한 떨어뜨리는 물건이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평의회 보고도 늦출까요?"
"허허, 그건 보고해도 좋소. 레노번과 콜베르가 수고한 것인데."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혹, 마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 소리 듣는 것은 아니겠지? 하하."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들은 포션이 완성되었다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질 테니까요."
테츠는 수만 명분의 라이트리움 포션을 가지고 리브하르트로 돌아왔다.
악한 자라고 즉결 처분하지 않았다. 에시턴은 능글맞은 목소리로 이곳에서 살아나가고 싶으면 그냥 포션 하나 마시고 나가라고 말했다.
1층에 머물고 있던 기사들은 단 한명도 예외 없이 모조리 포션을 마시고 리브하르트로 넘어와서는 제 갈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물론 이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각성자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며칠 뒤 문두스 뒷골목에서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집단 구타당해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따금 문두스에서 문제를 일으킨 자들이 나왔는데 여지없이 경비에 잡혀 감옥에 수감 됐다.
2층에 있던 부류도 대부분 포션을 마시고 자유를 찾아 나갔다. 게 중에 의심하는 이도 적지 않았으나 포션 한 병과 자유를 바꾸는 데 깊은 생각을 할 필요는 없었다.
3층에 수용된 인원은 그나마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이들이었기에 에시턴은 신중하게 이들을 설득했다.
케이사르가 아칸에서 일으킨 참극과 다시 문두스에서 제2의 참극을 벌이려 했던 일. 엘스칼라 유적과 침묵의 숲에서 사령을 이용한 침략 행위 등 케이사르의 죄목을 일일이 예시로 들며 정말 기사도를 생각한다면 아칸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할 것인지 결정하라고 종용했다.
에시턴의 노력은 좋은 결실을 거둬 마교에 입교하는 기사들이 늘어갔다.
그러나 그들이 에시턴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마교 교주의 면담에서 고배를 마시는 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악한 것이 아니라 충성심이 강해 아직 반사르 가문에 대한 충성심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사도에 미쳐 있는 부류에 고지식한 사람들도 꽤 된다.
한번 섬긴 주인은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다는 부류 말이다.
테츠는 이런 부류들은 마음을 고쳐먹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아낌없이 라이트리움 포션을 선물로 주었다.
"정확히 58,221,585명입니다."
"음, 근 6천 가까이 되는구먼.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수네."
"나머지 인원은 포션으로 정상인이 되었음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마교 제자들에게 조심하라 이르게 이 포션이 악용되면 그 피해를 우리도 보니까. 누가 몰래 음식에 타면 골치 아파져."
"철저하게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입조심도 하고 소문이 퍼지면 각성자는 마교를 잠재적 적으로 인식할 거야. 당장은 오비디언스 샤우트 때문에 숨을 죽이겠지만 해결 방안을 찾게 되면 마교는 공공의 적이 될 테니."
"교주님 그 전에 각성자의 숫자를 확 줄이면 어떻겠습니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야.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나중에 손이 더 가. 특히 케이사르 이놈은 오비디언스 샤우트 때문에 숨어 버려서 더 골치 아파. 지금 라이트리움 포션이 알려지면 녀석은 더 깊이 숨어 버릴 테니까."
"포션을 마신 자들은 자신이 각성자의 힘을 잃었다는 것을 눈치챌 텐데요?"
"알아. 그렇다고 그들 모두를 입막음할 정도 우린 악독한 집단이 아니잖아."
"물론입니다. 다만···."
"그 정도는 괜찮아. 우리가 일부로 소문만 내지 않는 정도라면 충분해. 그 전에 굴 앞에 연기를 피울 거니까."
"교주님은 이곳에 계속 머무실 생각이십니까?"
"여기 사프란의 성 꽤 괜찮지 않아? 나름 비밀 요새로 써먹기에도 좋고 쓸만한 피난처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래 인원이야. 인원이 너무 부족해. 침묵의 숲 개간에도 인원이 필요하고 문두스에서 에시턴 자네 기다리느라 목을 빼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렇다고 이곳 인력을 충당하기에는 맨시티는 관리가 안 돼서 더는 사람을 빼내지 못해."
"저기, 그럼 사막에서···."
"그렇지, 가용 인원이 마족뿐이긴 한데. 조만간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봐야겠어. 라그도 슬슬 준비되어 가고 있는 것 같으니···. 어차피 한 번은 치러야 할 일이야. 이 세계에 융합하느냐 마느냐는 그들의 결심에 달렸지."
"저기, 교주님 당분간이라면 여길 제라드에게 맡기려고 합니다."
"그놈 정신은 차렸어?"
"차릴 뿐이겠습니까?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 한다고 뉘우치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가장 늦게 자고 가장 일찍 일어나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알았어.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해 두 번 하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죄야."
"물론입니다. 교주님."
"7층에 나머지 마법진은 확실히 지웠지?"
"그렇습니다. 교주님이 남겨 놓으라고 한 것 빼고는 모조리 지웠습니다."
"7층은 감시 인원을 제외하고 절대 출입 엄금하라 이르고 감시 인원도 이동진 열 보 이내로는 근접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해 두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그리고 군사에게서 보고서를 올리라는 통보가 있었습니다."
"아, 그건 내가 하지. 마침 메흘린과 이야기할 것도 있으니까."
"네, 그럼."
테츠는 탁자 위에 사령쥐를 올려놓고 필기도구를 꺼냈다.
자신은 메흘린의 입술 움직임만 봐도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듣지만, 메흘린은 아직 서툴기 때문에 가끔 종이에 글자를 적어 보여 줘야 했다.
그가 막 사령쥐에 피를 먹이려 하는데 갑자기 사령쥐가 부르르 떨며 먼저 반응이 왔다.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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