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버드의 분노
테드버드의 분노
테드버드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이것은 분명한 인재다. 그것도 자신이 그렇게 믿고 아끼던 제자들의 실수이기 때문이다.
테드버드는 리전의 일로 하루하루 정신이 없었다. 맨시티에서 넘어온 이만 명의 인원. 그리고 특히 리브하르트에서 넘어온 1만에 가까운 인원은 특별 통제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얼마 전까지 반사르 가문에 충성했던 기사들이고 그중에는 강압에 못 이겨 넘어온 자도 적지 않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 교육에 따른 현 상황의 정확한 인식을 인지시키는 거였다.
지금까지 반사르 가문이 저지른 만행과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증거자료까지.
모든 정황을 확실하게 주지시키고 각자 내면의 소리를 끌어 올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했다.
엠버스피어에서 공수한 라이트리움 포션은 각성자에게는 극독이나 마찬가지다.
라이트리움 포션의 존재를 알고 난 다음 테드버드는 매우 불쾌한 감정을 표출했다.
이걸 마시게 하는 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 없다.
물론 진짜 생명을 끊는 것이 아닌 정신적인 사형이지만 말이다.
각성자의 권리, 주어진 권력, 기대감, 우월한 정신적 고취감 그 모든 것을 꺾어 버리는 사실상 정신적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테츠 교주의 명령 또한 마교에서는 절대 어길 수 없는, 라이트리움 포션보다 더 강력한 책임감이 담겨 있다.
지금 리전은 너무나 어수선하다. 침묵의 숲 개간에 매달린 제자들은 잠도 자지 않고 진행 중이었다.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도시의 형태가 만들어지고 있다.
수련보다 노동하는 시간이 많았고 그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제자들도 적지 않지만,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이 고된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리브하르트에서 넘어온 자들의 충성심을 시험하는 일은 너무나 고된 작업이었다.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자들에게는 강제로라도 라이트리움 포션을 마시게 했다.
이건 테츠의 직접 명령이었다.
이 와중에 5군단과 함께 아칸의 치한까지 떠맡아야 했다. 5군단을 제외한 나머지 4개의 군단은 유적지 사령 소탕에 동원됐고 5군단은 아칸 도시 내 치안을 리전의 마교 용병은 도시 외곽 지역을 순찰 감시하는 일을 맡았다.
그 일은 마교제자 중에서도 제법 상위권의 인물들이 맡았다. 대부분의 초급 병들은 리전 도시 노동에 투입되었고 맨시티에서 건너온 자들도 낯선 환경에 아직 어수선했고 리브하르트의 병력은 감시 대상이었다.
테드버드는 믿을 만한 제자에게 도시 외곽 감시를 맡겼다.
그러나 사령이 첨탑 경비에 발견될 때까지 마교 제자들은 그곳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 도시 외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냐는 안일한 생각. 문제는 엘스칼라 유적 내부에서 벌어지는 것이고 문제가 된다면 침묵의 숲이나 그런 외진 곳일 텐데 그곳은 이리 리전이 완벽히 점령하고 있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거고 도시 동쪽은 관개수로가 잘 정비된 농경지고 서쪽도 광활한 벌판에 귀족 사냥터가 몇 개 있을 뿐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목축지라 양과 소 따위 가축의 방목지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 곳을 감시하고 있자니 온종일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며칠은 임무에 충실했으나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곳이기에 당연히 감시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이들은 겁도 없이 대낮에도 술집을 드나들며 시간 때우기를 펼쳤다.
보고도 간단히 아무 일 없음이 전부이니 이들은 나중에는 아예 술집에 자리 잡고 종일 퍼질러 마시며 심지어 여자까지 끼고 놀았다.
각성자이니 피곤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히 적으니 한 번 놀기 시작하면 며칠을 술을 퍼도 끄떡없었다.
그 틈에 악의 기운은 점점 아칸 시티로 다가왔고 마침내 일이 터진 것이다.
더욱이 유적에서 본격적인 전투가 발생했다는 소문에 아칸 시민들은 모두 대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한 상황에서 동쪽 경비를 서던 5군단 초소병이 접근하는 사령을 발견하고 기겁하여 경고의 북을 울렸던 것이다.
아침부터 술을 빨던 애들은 난리가 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이 놀라 튀어 나갔을 때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은 빠짐없이 테드버드에 보고 되었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테드버드는 작전실의 테이블을 박살 내고 뛰쳐나왔다.
첫 번째 제자인 거버트는 그를 스승으로 모신 이래 이처럼 화내는 모습은 처음일 정도로 테드버드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온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였다.
감시 역할을 지시했던 제자는 여섯 번째 제자 시온이었고 시온은 소속 제자 중에서 엄선해 선발한 인원에게 감시 역할을 맡겼다. 하지만 보고 위주로 간단히 처리해 버렸고 자기 제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제자를 너무나 믿었기에 한 행동이지만 지휘관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크나큰 실수이기도 했다.
시온은 고개가 좌우로 크게 돌아갈 만큼 싸대기를 수십 대나 맞았다.
단 한 번도 제자에게 손찌검해 본 적이 없는 테드버드에 맞았으니 시온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거버트 넌 셋째와 넷째를 데리고 서쪽을 맡아라. 둘째 세실은 이곳에 남아 부대를 정비해라 별도의 명령이 있으면 즉시 부대를 출병시킬 준비를 해 놓고 대기해. 다섯째와 여섯째 일곱째는 나를 따라 동쪽으로 간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폭발한 테드버드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부덕함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동쪽 성벽에 도착하자마자 제자들에게는 다른 명령 없이 홀로 말에 오르더니 성문을 열고 돌격해 들어갔다.
다섯째 에디와 여섯째 시온, 막내 일곱째 이완은 어찌할 줄을 몰라 허둥댔다.
그들은 테드버드의 저 행동에서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완! 너는 스승님을 도와 사령과 맞서라. 분명히 말하건대 스승님을 보좌하는 거다. 네가 먼저 나서서 일을 만들지 말고!"
"맡겨 주십시오. 다섯째 사형. 그럼 먼저 갑니다."
이완은 성벽 아래로 뛰어내려 묶인 말의 고삐를 풀고 올라탔다.
"시온 넌 제자들을 규합하여 전투준비를 해. 죗값은 나중 일이다. 지금 무엇이 중요한지 알지? 홧김에 그네들 즉결 처분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사형, 교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죠. 제자들의 잘못은 곧 그들을 가르치는 스승의 잘못이라고. 이 모든 실수는 제 잘못입니다."
시온이 고개를 푹 숙이자 에디가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지금 스승님이 분노하신 것도 그 때문인 거다. 자기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신 거야. 이럴 때일수록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해. 난 5군단 단장과 의논하여 성벽 방어에 중심을 둘 테니까 넌 제자들 정비해서 사령 소탕을 시작해."
"그럼 빨리 움직이도록 하죠."
시온이 천마비행으로 성벽 위에서 단숨에 바닥으로 날아내리자 열댓 명이 무릎을 꿇은 상태로 대가리를 바닥에 처박고 있었다.
시온은 그들에게서 술 냄새를 맡았고 순간 허리에 찬 검을 빼 들었다. 검 손잡이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네놈들을 믿었다. 믿었기에···."
"시온 시간이 없다. 나중에! 나중에!"
성벽 위에서 에디가 내려다보고 고함을 내질렀다.
검집에 검을 다시 집어넣은 시온이 외쳤다.
"이 새끼들아, 술 깨고 나면 너희들 다 죽을 각오 해. 이번 전투에서 공을 못 세우면 참수시켜 버릴 거다. 어서 움직여!"
테드버드는 거칠 것이 없었다. 자이언트 스켈레톤이 거대한 검을 휘둘러 와도 테드버드는 신기에 가깝게 말을 몰았다.
그는 먼젓번 침묵의 숲에서 자이언트 스켈레톤과 싸웠던 적이 있고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을 얻은 것은 테츠가 리전에 머물 때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소환해 놈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동선까지 몸에 익혀 놓았었다.
덩치가 덩치인 만큼 완력은 무식하나 빠르기는 눈에 훤히 보일 정도였고 놈의 움직임을 예측만 하면 간단히 피할 수도 있었다.
태양의 검 콜라다는 현 맨시티 수석 대장장이 윌슨의 윗대 스승이 벼려낸 잉겔리움으로 만든 명검이며 윌리엄 대공이 용기사로 활동했을 때 잠시 사용했던 명검이다.
이 검 아래 목이 잘린 용이 수십 마리가 넘는다는 전설의 명검이다.
처음부터 테츠가 작정하고 키운 사람이 테드버드였다. 테츠는 그의 답답한 정의만 신봉하는 기사도 정신을 보고 무림 맹주를 떠올렸다.
정도 무림계에서 지고한 존경을 받았던 천설문 문주 검성 북당오를 말이다.
테츠는 살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기사도 정신에 정의를 충실히 따르는 그의 성정이 정도 무림 맹주로 제격이라고 생각했고 될수 있는 한 정도의 무공만 엄선해서 공들여 제대로 가르쳤다.
움직임을 뻔히 알고 있는 자이언트 스켈레톤은 테드버드에는 덩치 큰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콜라다가 움직일 때마다 잘린 뼈마디가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뒤따르던 막내 이완은 입을 떡 벌렸다.
늘 자상하고 같이 웃어주고 수련 할 때도 실수해도 화내는 법 없이 틀린 부분을 꼼꼼히 짚어 주던 스승이었다.
물론 제자들끼리 속삭이는 말 중에 마교에서 세렌 장로가 제일 강하다. 그다음이 테드버드 장로다. 아니다 엘빈 장로가 더 뛰어나지 않을까? 글쎄 알프레드 장로의 양수검은 위력이 너무 엄청나서···.
제자들끼리는 서로 자기 스승의 실력이 낫다고 콧대를 세우기도 한다.
이완도 테드버드의 실력을 믿어 의심한 적은 없지만, 그의 진정한 실력을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은 솔직히 없었다.
눈앞에서 갈려 나가는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보면서 스승의 진정한 능력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날 더러 보좌하라고?'
이완은 자신이 나서 괜히 방해하는 것이 더 죄송스러운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테드버드의 검법은 독보적이었고 명검 콜라다와 어우러져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식도로 파 다듬듯 쑴펑쑴펑 썰어 대고 있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그의 승마 실력이다. 사람은 각성자이지만 말은 평범한 군마다. 그것도 오랜 세월 함께해 정이 든 개인 말이 아닌 성벽에 묶여 있던 누가 주인인지도 모르는 군마를 몰고 마치 자신이 직접 두 발로 뛰어다니는 것처럼 환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자이언트 스켈레톤 한 마리를 갈아 버린 테드버드는 말 안장 위로 뛰어 올라섰다.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말 안장 위에 서도 중심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차압!"
큰 기합과 함께 천마비행으로 치솟아 오른 테드버드는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정강이를 디딤돌 삼아 차고 오른 뒤 다시 무릎뼈를 힘껏 차고 솟구쳐 갈비뼈 안쪽을 통과한 뒤 어깨뼈 위로 솟구쳐 올랐다.
설명은 길지만, 그의 행동은 이완이 눈 한 번 깜박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상태로 내달려 단숨에 목을 잘라 버리니 자이언트 스켈레톤은 달리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앞으로 엎어졌다.
"세상에!"
자신은 아직 흉내도 내지 못할 움직임이다.
쓰러지는 스켈레톤 위에서 곧장 다시 달리는 말 안장 위로 뛰어내려 착지하니 그 모습에 이완은 혀를 내둘렀다.
자신의 뒤에서는 제대로 준비한 마교 제자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때 앞서 달리던 테드버드의 고함이 들렸다.
"이완 이놈들 소환하는 네크로맨서가 근처에 있을 거다. 그놈부터 잡아!"
"네, 스승님."
이완은 힘껏 박차를 가하며 내 달렸다.
"쳇, 넌 너무 느려. 차라리 내 다리가 더 빠르겠다."
이완은 말의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대로 안장을 박차고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바닥에 착지한 이완은 곧장 바람에 밀려가듯 대지 위를 미끄러지듯이 내달렸다.
마교 제자들은 이미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충분한 연습을 통해 경험을 단단히 쌓아 놓은 상태였다.
테츠는 적이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소환해 올 걸 알고 제자들에게 틈틈이 대응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테드버드가 이어 받아 맹훈련을 시켜 놓았다.
거대한 사자에 맹독을 지닌 말벌 수백 마리가 달라붙는 격이다. 말벌의 침은 지독했다.
사자가 아무리 흉포하게 몸부림쳐도 민첩한 말벌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다섯 기의 자이언트 스켈레톤이 속절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테드버드의 제자들은 기본적으로 검술에 특화 되어 있다 보니 대부분 직계 제자들은 잉겔리움 날을 가진 검을 사용한다.
잉겔리움의 날카로움은 사령 따위가 견딜 수 없었다. 각성자의 완력에 내공까지 겸비하니 거대한 자이언트 스켈레톤도 무 자르듯 잘라 낼 수 있었다.
맹렬한 기세로 달리는 시온의 뒤를 따르는 사고 친 제자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시온 장주의 말대로 공을 세우지 않으면 뒷감당이 안 되는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저 앞에서 미친 듯이 적을 학살하는 테드버드 맹주의 모습에 숨이 턱턱 막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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