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틈 틈
틈 틈 틈
모살라는 안절부절못했다. 여섯 마리나 동시에 사라진 적은 아니 단 한 마리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일전에 마족을 처먹고 죽은 네 마리를 제외하고는···.
오늘 죽은 두 마리도 보충이 된 녀석들이다. 그렇게 먹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도통 들어 처먹는 녀석들이 아니다.
옆에서 동료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관심도 없고 오히려 저희끼리 쑥덕대곤 한다.
이놈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거의 없는 편이다.
"마족이···. 아니면 마왕에게 걸렸나? 그럴 리가 없는데···. 마왕은 보이지 않는지가 오래됐고 마족은 단독 행동을 해. 그리고 놈들은 제각기 세 방향으로 흩어졌어. 한꺼번에 문제가 생길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고. 제기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한동안 안절부절못하던 모그룩은 결국 나머지 일곱 마리를 향해 외쳤다.
"너희 여섯 명 나가서 흔적을 추적해. 어떻게 됐나 확인해 보라고. 너는 남아 있고 나머진 어서 나가봐."
"찍, 찍, 찍."
"잠깐, 이거 한 개씩 들고 나가라 혹시 이상한 상대를 만났다거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벅찬 상대를 만났다면 이걸 마셔 알겠지?"
모살라는 포션 병을 열고 마시는 시늉을 했다.
스케이븐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자신의 허리띠 묶인 작은 가방 안에 포션을 넣고 듣기 거북한 소리를 질러 내더니 밖으로 달려 나갔다.
"뭔가 기분이 찜찜해. 여섯 놈이 동시에 증발했어. 소환수라도 늘려야겠는데?"
***
"뭐야 이건?"
탈로스는 빠짝 말라비틀어진 스케이븐의 허리춤에서 뭔가 알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여섯 마리가 나오는 순간 미행해 흡성대법으로 생명력을 갈취한 뒤였다. 막 태우려고 하는 순간 스케이븐의 허리춤에서 미약하지만 사기가 뿜어져 나왔다.
"포션? 처음 보는 건데?"
다른 녀석에도 같은 포션이 들어 있었다.
포션에서 사기가 풀풀 나오는 것이 보통 포션은 아닌 듯했다.
"오호라. 마족의 내장이나 피를 모으는가 했더니 또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모양인데."
나머지 여섯 마리를 싹 다 흡성대법으로 죽이고 나니 포션 여섯 개가 모였다.
한 병 까서 냄새를 맡아 보니 뭔 썩은 내가 진동했다.
"퉤, 이게 뭐야?"
한 방울 혓바닥으로 맛을 보며 질겁했다.
"마족의 피 맛이 상당히 강한데? 이거는 나중에 콜베르한테 알아봐 달라고 해야지."
콜베르는 이제 레노번의 수석 제자가 되었고 레노번의 배려로 엠버스피어에서 아울에서 지식을 배우고 있다. 콜베르는 우수한 말라키의 피를 타고난 적통 후계자다.
이렇듯 가끔 말라키의 피를 각성한 인간이 역사 곳곳에 등장하고 영웅이 되거나 비참한 말로는 맞는 비운의 인간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들이 각성한 능력에 따른 운명에 따른다.
콜베르의 능력은 매우 탁월하다. 모든 피를 구분하는 것. 순혈 마녀에게는 극상의 인물이다.
다크 시럼 포션에서 마족과 이브리엄의 피를 분리해 내는 즉 피의 유대를 끊어 내는 고유 스킬을 장착하고 있다.
테츠가 그 능력을 이용해 만든 포션이 바로 라이트리움 포션이다. 즉 콜베르 없이는 테츠도 라이트리움 포션은 만들 수 없다. 아울에 지식을 전수 받고 자신의 능력을 키우면 최고의 인재가 될 수도 있는 재목이다.
이미 마교의 제자로 포섭해 놓았고 레노번도 흔쾌히 허락한 상태다.
아마 마교를 통해서 얻는 정보가 상당하므로 제자를 마교 밑에 두는 것도 테일리아드에 이익일 테고 그것도 테일리아드 최고의 두뇌라는 아울 밑에 있으면 더욱더 반가운 일일이다.
탈로스는 최대한 신중히 처리하고 있다.
모살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과연 놈들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그것이 관건이다.
이미 스케이븐 한 마리에 소울 슬립을 걸어 봤으나 의미 없는 짓이었다.
그들은 그저 움직이는 말에 불과할 뿐 지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모살라에는 소울 슬립을 사용할 수 없어 기억을 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문이라도 할수 있지만 놈이 자살이라도 해 버리면 곤란하다.
자살을 막는다 해도 놈이 올바른 정보를 말할 것을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기에 중독된 네크로맨서는 의외로 지독한 놈들이다.
각성자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탈로스가 기다리는 것은 그 부분이다. 녀석을 조여가면 분명히 틈이 생긴다.
이틀···.
"아니 이놈들이 단체로 미쳤나?"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알수가 없다.
나머지 스케이븐 여섯 마리도 오리무중이다. 단 한 마리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잃어버린 여섯 개의 포션은 무척이나 아까웠다.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님을.
모살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상관의 추궁에 대한 두려움과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묻어난 표정이다.
추하게 굽은 꼽추가 등불 아래 긴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
-뿌드득
결국 이빨을 갈던 모살라는 남아 있는 한 마리를 힐긋 거리며 바라봤다.
뭔가 알수 없는 두려움이 모살라를 휘감아 돌았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내었다. 산장 주변으로 달빛을 받아 빛나는 해골바가지들이 서성댄다.
누가 침입하면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마왕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지?"
"넌 여기서 기다려."
고민을 해봐야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모살라는 통나무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간다.
마녀나 네크로맨서나 지하로 들어가는 걸 왜 이리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들키지 않고 은밀하게 행동하는 것에는 지하가 제일일지도.
이 굴은 스케이븐이 뚫어 놓은 것이다. 이놈들에게 인간 땅의 부드러운 흙은 젖은 모래보다 파기 쉽다. 그냥 땅 위를 도로로 걷는 속도로 땅속을 헤집고 다닐 정도다.
단단하고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굴을 따라 조금 들어간 모살라는 신단 앞에 섰다.
여기는 아주 큰 공터로 인간 백 명이 들어가도 될 정도로 넓다.
공터 중간쯤에는 무릎 높이로 솟은 둥그런 평지가 있는데 아마도 소환진이나 마법진을 그리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모살라는 품 안 안에서 작은 뼈다귀 여러 개가 매달린 펜던트를 꺼내 원안에 올려놓았다.
허리에 찬 작은 단검을 꺼내 손바닥을 베자 붉은 피가 타고 흘러 내렸다.
피는 뼈다귀 위에 떨어져 내렸고 모살라는 집중하여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바닥 아래서 소환진이 발동하고 밝은 빛을 뿌렸다. 불빛이 사라졌을 때 모살라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환진이 다시 빛을 발했고 상당수의 스케이븐 무리를 이끌고 모살라 나타났다.
그의 얼굴빛은 붉으락푸르락 오만상 찌푸려져 있었다. 실수하여 주인에게 심한 추궁을 당한 듯한 시종의 얼굴 모양새였다.
스케이븐의 숫자는 적어도 오십 마리는 되어 보였다.
"날 따라와라. 곧 날이 밝을 것이다."
모살라는 스케이븐을 산장 밖으로 집합시켰다. 희뿌연 새벽안개와 함께 동이 터오고 있었다.
"여긴 인간이 없는 곳이다. 마주치는 인간은 모두 마족이라고 보면 된다. 아니 마족이든 뭐든 상관없다. 무조건 죽이고 시체를 가져와라. 들었다시피 절대 먹지 마라. 너희 먹이는 따로 마련해 두겠다. 그리고 너희 동료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의 흔적을 찾는 놈들 또한 발견 즉시 시체를 들고 와라. 알겠지? 먼저 돌아오는 녀석에게만 푸짐한 먹거리를 준비해 놓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절대 인간을 먹지 마라. 너희들에게는 마족과 인간을 구분할 능력이 없어. 괜히 처먹다 뒈지지 말고 알았지? 이건 울쑤안의 명령이다. 명심해."
"찍, 찍, 찍."
"찍, 찍."
새로운 환경에 달가운 스케이븐들은 두 팔을 들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어차피 쥐 찍찍대는 소리지만.
"다섯 놈씩 뭉쳐라. 그리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출발한다. 가라. 가서 증거를 가져와."
"참, 상대하기 껄끄러운 놈이 있을 것이다. 그놈을 만나면 포션 마시는 거 잊지 말고."
모살라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숲속으로 달려가는 스케이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곧 그들이 이번 일의 문젯거리를 해결하거나 실마리를 가지고 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제아무리 마왕이라고 해도 다섯 마리를 동시에 상대할 수 없을 거고 더군다나 페이탈리퀴드 포션을 가지고 갔으니··· 불안정해도 효과는 끝내 줄 테니까. 내 인생 최고의 역작이 될 물건인데 여섯 개나 잃어버렸어."
***
탈로스는 흡성대법으로 다섯 마리를 동시에 끌어 올리며 섭취했다.
"이래서는 간에 기별도 안 가네. 가만있자 마지막 다섯 마리는 데리고 좀 놀아봐야겠네."
-휘리릭
탈로스는 바람을 타고 단번에 숲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건너가 버렸다.
-탁
그는 다섯 마리 스케이븐 앞으로 뛰어내렸다.
"어이, 어디들 그리 바삐 가시나?"
분명 스케이븐 언어다.
스케이븐은 잠시 주춤하더니 말했다.
"인간 우리 말 안다. 울쑤안 말했다. 우리와 친한 인간 헤치지 않는다."
"앙? 그려? 난 안 친해."
한 놈을 흡성대법으로 빨아 당겨 미라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을 보며 네 놈이 혼란스러운지 서로 찍찍댄다.
"난 네놈들 싫다고 했어."
또 한 놈을 끌어당겨 섭취하자 세 놈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으라차."
가장 맨 앞서 먼저 달려드는 놈을 백로마현 뒤돌려 차기로 날려 보낸 다음 뒤따르던 녀석들 가슴 위로 파천수라장을 한 대씩 때려 넣었다.
설명은 길어도 동작은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세 마리는 수십 보나 튕겨 날아가 나뒹굴었다.
당연히 힘 조절을 한 탈로스다.
"뭐해? 안 덤비고?"
세 마리는 눈구덩이에서 고개를 빼더니 다시 달려든다. 예의 무기인 쇠꼬챙이까지 마구 휘두른다. 열 살짜리 아이가 동네 골목에서 또래 상대를 향해 막대 나무 검을 휘두르는 모습과 거의 똑같았다.
-퍽, 퍽, 퍽
한 주먹씩 처맞은 스케이븐들은 가장 큰 특징인 툭 튀어나온 앞니가 허공으로 휘날렸다.
"찍!"
엄청난 고통에 얼굴을 싸잡는다.
그때 한 놈이 허리에 찬 가죽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옳지 그렇지 그걸 마셔."
모살라가 말했던 페이탈리퀴드 포션이다.
그걸 보고 옆에 있던 두 마리도 잽싸게 포션을 마셨다.
"찍, 찍!"
갑자기 목 언저릴 양손으로 잡고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한다. 상당한 고통이 뒤따르는 모양새다.
"찍. 찌. 크. 크큭. 크아아악"
쥐 소리가 변했다.
-우두둑. 우둑. 우두둑
뼈마디가 이탈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근육이 울퉁불퉁 치고 솟아 올라온다.
안 그래도 시뻘건 눈빛이 더 시뻘겋게 변했고 온몸의 털이 가시처럼 곤두서기 시작했다.
괴로움에 비명을 질러대는 것은 갑작스럽게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뼈가 이탈하는 고통 때문으로 보인다.
내부의 신경조직 및 근육이 일차로 부풀어 오르고 접합된 뼈마디가 빠져나가며 그 뒤로 다시 뼈가 커져서 접합이 맞춰지는 원리였다.
덩치가 두 배는 커졌고 눈빛에서 붉은 안광이 줄줄이 뿜어졌고 입에선 침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녀석들은 들고 있던 쇠꼬챙이 무기는 들지도 못했다.
대신 손톱이 자라 웬만한 단검보다 더 크고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그리곤 미친 듯이 탈로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도약했는데 눈은 물론 꽁꽁 언 흙바닥이 덩어리 채 뒤로 튕겨 날아갈 정도였다.
폭발적인 스피드로 돌진해 왔다.
"일종의 광전사 포션인가? 사기가 짙어. 저거 통제 못할 것 같은데?"
탈로스는 천마잠행으로 살살 공격을 피하며 스케이븐의 상태를 살폈다.
"이성은 아주 상실했고··· 보자, 또 그냥 본능에 지배된 상태고 능력은 세 배 정도 상승했네. 이 정도면 각성자 열 명은 순살 할 정도겠는데?"
공방이 계속됐지만 그 정도로는 탈로스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가 없었다. 스케이븐은 더욱더 미쳐 흥분하여 날뛰었다.
입에서 침이 폭포수처럼 휘날렸고 눈에서는 붉은 안광이 연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팔합, 구합, 십합···."
탈로스는 공격하지 않고 피하기만 했다.
"크아아아. 크악."
스케이븐은 더욱더 괴로워 날뛰었다. 그럴수록 힘, 스피드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완전히 버서커네. 생명력을 깎아서 그냥 일시에 쏟아붓는구나. 미친 포션을 만들었어."
"크아아아악"
-빵!
커다란 폭발음.
머리통이 발차기에 맞은 수박 터져 나가듯이 폭발해 버렸다. 혹시라도 핏방울이 튈까 봐 탈로스는 잽싸게 물러섰다.
"딱 백 호흡쯤인가? 역시 통제를 못 하네. 미완 작품이군."
곧이어 나머지 두 마리도 대가리가 터져 나가 버리고 뒤로 발라당 나자빠졌다. 그런데 뒷다리는 계속 움직이며 마구 땅을 팠다. 머리는 터져 버렸는데 몸의 근육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움직이고 있는 거였다.
"여하튼 사악한 짓은 아주 멋들어지게 하는구나. 이놈들 구제할 가치도 없는 녀석들이야."
- 작가의말
내일은 제 생일이라서 저녁에는 가족과 오붓한 한 잔을...
하필 크리스마스 담 날이 생일이라
하루 일찍 태어날 걸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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