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않았던 이야기
듣지 않았던 이야기
먼저 말을 연 것은 제이미였다.
"유적에 그런 존재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승리를 거둔 것은 우리만의 능력이 아니야. 오히려 적의 술수에 끌려 들어온 셈인데···. 우드퍼펫인가?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태양을 영원히 못 볼 수도 있었어."
"이것 모두 케이사르 짓이라고 봅니까?"
"물론! 이런 일을 꾸밀만한 능력을 갖춘 자는 주신 제국에서 황제를 빼면 케이사르뿐이지."
"맞습니다. 저희는 오늘도 또다시 아칸을 잃을 뻔했습니다."
궁중 마법사 반헤일런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전후에 벌어질 상황이 난감합니다. 그놈들 시체를 언제 다 처리해야 할지."
"그것도 문제네. 한두 마리가 아니라서 내부에서 소각처리도 힘드니 일일이 밖으로 꺼내 태워야 하는 것도 문제다."
"그래도 기분은 개운합니다. 군은 큰 승리에 도취 되어 있습니다. 이런 승리는 정말 오랜만입니다."
"순전히 우리 힘으로 이뤄냈다면 더 기뻤을 텐데 그게 좀 아쉽구먼."
반헤일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드퍼펫도 놀랍지만, 그들을 전투에 참여시킨 것이 마교 교주라니···."
"그 친구는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야. 워낙 비밀에 싸인 인물이라···."
제이미도 고개를 갸웃했다.
"엘스칼라 유적은 오랫동안 모험가들이 구석구석 안 가본 적이 없을 텐데 그 많은 쥐 인간이랑 우드퍼펫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요?"
"참, 자네들에게 마교 교주의 편지 내용을 말하지 못했군. 읽어들 보게나."
두 사람은 교대로 편지를 읽었다.
"그 쥐가 스케이븐이라는 종족이군요."
편지 내용 대부분이 스케이븐에 관한 내용이었다.
데스월드의 주인이며 사악한 이 쥐들은 땅속 같은 곳에 숨어 지낸다.
즉 땅속에 거대한 지하 도시를 건설하고 살고 있는데 역겨운 냄새와 오염의 장본인으로 엄청난 번식력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인구 조절을 위해 동족 포식까지 서슴지 않는 종족이다.
배신과 이기심의 종족이여 생존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악랄한 근성을 지닌 종족이다.
이들은 군주라는 일인 통치하에 움직이는 사회 조직을 이루고 있으며 현 군주는 이킷 클로니클 울쑤안이다.
울쑤안의 능력은 워락 마스터급으로 뒤틀림의 황혼 저주, 각종 마법 스펠과 주술, 학살 기술 등 다양한 스펙을 자랑한다.
스케이븐은 기본적으로 타협심이 없고 협동심은 제로인 극단적 이기주의 종족이다.
무력을 강자의 자부심이라 여기며 가끔 일기토 신청을 하기도 한다.
적의 목을 베어 등에 매달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극도로 호전적인 종족이다.
"마교 교주는 마치 스케이븐의 나라에 가본 적이 있는 것같이 상세히 묘사해 놨군요. 그의 정체가 더더욱 궁금해집니다. 우드퍼펫의 무력만 보더라도 오군단 정도는 간단히···. 현재로서는 그가 적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 실뿐 대비책 따위도 세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반헤일런의 말에 윌리엄 대공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말 불가사의한 존재다. 처음에는 황제의 개인 줄 알았더니···. 황제가 맨시티를 통째로 마교에 내 준 것도 그의 능력을 먼저 알아보고 회유함이었던 거였네. 역시 늙은 노친네는 눈치가 빨라."
제이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침묵의 숲 그러니까 레이븐크로프트 리전을 아칸 근처에 둔 것도 다 대공의 혜안이 아닙니까?"
"음, 혜안이랄 거까지야. 그냥 절대 강자는 곁에 두는 것이 맞는다는 옛 현자의 속삭임을 따른 것뿐이네."
"덕분에 아칸을 침공한 스케이븐을 소탕하지 않았습니까? 리전도 공격당했다고 들었으나 무사히 막아냈다고 하니···."
반헤일런이 말을 이었다.
"리전과 저희를 동시에 공격한 것은 리전이 저희를 돕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한 조치입니다. 먼저 아칸 동쪽과 반대인 서쪽을 공격한 것은 리전의 핵심 인력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작전이고 그런 다음에 리전 본진을 공격한 것을 보면 아마도 잘 계획된 전략적 행동 같습니다. 케이사르가 한 것인지 다른 누군가 전략을 구상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스케이븐 정도의 세력을 이용했다면 이번 승리자는 절대 저희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네. 지금 생각해도 섬뜩한 기분이 가시질 않아. 이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한발 먼저 움직인 사람 때문에 우리가 모두 살아 있는 거야. 마교에 너무 큰 빚을 지고 말았군."
"마교 교주의 보고대로 스케이븐의 군주가 살아 있는 이상 놈들은 재공격을 가해 올 겁니다."
"아마도 그렇겠지. 하지만 놈들도 이번 전투로 손실이 어마어마할 걸세. 덕분에 우리는 재정비 시간을 벌 수 있어. 마교 교주가 놈들의 본거지를 찾아내겠다고 했으니 어쩌면 역으로 우리가 먼저 공격할 수도 있겠지."
반헤일런이 나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드퍼펫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이번 만남은 간단한 인사치레로 끝났지만, 솔라리스 왕국과 확실한 우호 관계를 증명하는 서류 정도는 오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음, 그들을 초빙하는 것은 실례되는 문제일 수도 있고 또 마교 교주와 관계된 이상 그의 의견도 들어볼 필요가 있네. 엘카르 여왕이 마교 교주의 부탁으로 직접 전투에 참여할 정도면 여왕이 마교 교주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는 것일세. 그러니 마교 교주의 주선이면 평화 협정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맺을 수 있을 걸세. 제이미 백작."
"말씀하십시오. 대공."
"자네는 일단 세일럼 공주에게 가 보게나. 그녀의 상처가 심상치 않아. 왕궁의 술과 고기를 내어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공주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피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가장 우선순위로 공주를 돕겠다고 전하고."
"알겠습니다."
"반헤일런 자네는 리전에 다녀오게. 그곳도 심한 전투를 치렀으니 자네 눈으로 직접 상황을 보고 보고 해 주게. 빈손으로 가지 말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아낌없이 지원하도록 하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
"사망자 명단과 부상자 명단을 작성해. 위중한 환자 우선으로 돌봐 주고. 나머지는 이 냄새 나는 것들을 모두 치우도록."
리전으로 복귀한 테드버드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리전의 피해는 크지는 않지만, 전투에서 사망자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터라. 걱정 반 기대 반이었는데 상대적으로 제법 많은 수의 아군 사상자가 나왔다.
그 태반이 비각성자인 제자들이어서 테드버드의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그리고 적의 작전에 아무 생각 없이 말려든 자기 지휘력에 큰 회의를 느꼈다.
갑자기 아칸이 공격받는다고 단지 그 정보에 혹해 핵심 인력을 빼내 동서로 나뉜 것은 가장 큰 패착이었다.
실제 아칸의 동쪽과 서쪽을 공략한 것은 유인책에 불과했다. 네크로맨서 몇 명과 분대 정도 되는 기사무리가 사령을 소환해 마치 거창한 공격을 하는 것처럼 연기한 것이다.
실제는 모두 리전의 본대를 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가 핵심 인력이 밖으로 빠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본대를 공격한 것이다.
그 간단한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 분이 차고 자신에게 화가 났다.
더욱이 더 화가 난 것은 테츠는 이 모든 정황을 단번에 꿰뚫어 보고 엠버스피어에 있는 세렌과 칼멘 등을 미리 데려온 것이다.
엠버스피어에서 넘어온 이 괴물 같은 녀석들이 없었다면 훨씬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은 분명하다.
특히 철가면을 쓴 사내의 무력이 칼멘과 버금갈 정도였다고, 그의 전투를 본 마교 제자들이 한결같이 칭찬해 마지않았다.
물론 세렌의 활약이 독보적이었고 그녀는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살육의 맛을 제대로 느꼈고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칼멘을 데리고 유적 지하로 달려갔다.
테드버드는 무력감이 온몸을 휩쓰는 것 같았다. 이미 테츠로부터 무림맹이 마교로부터 떨어져 나간 일종의 새로운 조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 책임감이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무림 맹주라는 직위를 받았을 때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인간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다음번 테츠를 만나면 맹주 직함을 내려놓을 생각이다. 리전이 아니라 그냥 마교의 한 분파로 남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맨시티는 인구포화 상태로 다른 지역이 필요했으니까.
제자들이 정신없이 쥐 새끼의 사체를 치우고 있을 때 반헤일런이 찾아왔다.
유적 내부에서 승리 소식은 이미 전해 들은 상태였다.
소식을 듣기 전까지 제자들을 다시 정비해서 비밀 통로로 지원을 나갈 생각이었다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행동을 멈췄다.
물론 그전에 세렌과 칼멘은 자신들이 먼저 지원 가겠다고 뛰쳐나갔지만 말이다.
반헤일런과 리전의 피해 규모와 전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고 윌리엄 대공이 보낸 지원 물품을 인계받았다.
그리고 테드버드도 아직 보고 받지 못했던 이 요망한 쥐 새끼의 정보에 관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엄청난 번식력이라는 것이 걸립니다. 이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리는군요."
"그렇습니다. 저희도 대비책에 머리를 모으는 중입니다. 마교 교주께서 놈들의 본거지를 찾아내는 중이라 하니 그에 대한 준비 겸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저희도 함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교를 건드린 놈들에게는 절대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는 것이 저희 교리니까요."
"물론입니다. 놈들 따위에게 자비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럼 저는 이만 일어서겠습니다. 피해가 크지 않아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모두 왕궁에서 신경 써주신 덕분입니다."
"과한 겸손이십니다. 하하."
***
스케이븐 침략 한 시간 전의 상황
"서둘러라. 서둘러. 놈들의 공격이 곧 시작될 거야. 그 전에 반드시 완성 시켜 놔야 한다. 만약 실패하면 우리 목숨은 없는 거라고 봐야 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말고 완성하라고."
반대머리의 중년인은 손에 든 설계도와 직접 시공하는 작업자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다그친다.
그의 얼굴 위로 드러난 초조한 기색은 시간에 쫓기는 사람이 흔히 짓는 그런 표정이다.
다급함이 가득 묻어난 얼굴로 작업자를 닦달하고 있다.
"아니 그러면 좀 더 일찍 시작하지, 닥치고 난 다음 이렇게 닦달하면 어쩌라는 거야."
"그렇게 말이야. 아니 미리미리 설치해 놓으면 어디 목숨이 날아가나?"
"검술 연습이 아니라 망치질이라니. 환장할 일이군."
작업자 또한 평범한 작업자가 아니다. 작업복 대신 입고 있는 것은 기사의 갑주였기 때문이다. 검 대신 망치를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이곳은 어둠이 짙게 깔렸고 하늘도 보이지 않는 지하의 어느 한 곳이었다.
반대머리 사내는 설계 도면을 내려다보면 만들어지는 실제 건축물과 비교해 가며 이리저리 지시를 내렸다.
그런 그의 등에는 무언가 둥근 것이 든 커다란 보따리를 사선으로 메고 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지 몇 번씩 등 뒤로 넘겼다.
살짝 뚱뚱한 체격의 이 중년인은 허리를 쭉 펴고 고개를 좌우로 까닥까닥 이며 몸을 풀었다.
"어이, 저쪽 오른쪽 비계가 조금 틀어졌는데? 저대로 작업하면 나중에 작업물이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기울어지게 돼"
반대머리는 깜짝 놀라 설계도를 내려다 보가 갑자기 인상을 딱딱히 굳히고 뒤돌아섰다.
"넌 뭐냐?"
"뭐긴 뭐야 지옥에서 올라온 사신이지."
반대머리는 머릿속에 충격적인 내용이 떠올랐다. 현상금이 아니라 모가지에 걸린 액수가 어마어마한 긴팔 난쟁이 새끼.
아칸에서 이놈이 벌인 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곤욕을 치렀던가.
그 긴팔 난쟁이가 눈앞에 있다.
"이런 망할 놈의 새끼. 잘 걸렸다. 네 모가지에 걸린 현상금이면 이런 짓 따위 할 필요가 없지."
반대머리는 설계도를 던져 버리고 허리에 찬 롱소드를 힘차게 뽑아 들었다.
발검 속도를 봐서는 놈은 각성자다. 그러니 이렇게 큰소리는 치는 거다.
-뻑
"우웩!"
하지만 어쩌라···. 눈앞의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맞닥뜨려서는 안 되는 괴물인 것을···.
반대머리가 엎어지는 것을 보고 작업하던 작업자들도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그 열두 명 모두 각성자이며 검 자루에는 반사르가의 문양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열두 구의 머리가 구르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각성자이기에 확실하게 죽음을 내리기 위해서는 머리를 자르는 것이 가장 보편화된 사실이다.
탈로스는 긴팔을 휘젓듯이 한번 흔든 것이 전부인데 열두 명의 머리가 동시에 잘려 나갔다.
탈로스는 혀를 몇 번 차고 쓰러져 엎어진 반대머리에게로 다가갔다.
"이놈 머리에도 소울 슬립 저주가 걸렸겠지?"
핵심 인물에 소울 슬립을 걸면 그 즉시 과부하가 걸려 뇌가 폭발하는 저주가 걸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몰레이그인지 누군지 모르지만, 소울 슬립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그렇다고 정보를 못 캐낼 탈로스가 아니다.
"어이, 이 친구야 정신 차려. 우리 둘이 심도 있는 대화를 해야 하니까."
반대머리는 정신을 후딱 차렸고 주변을 둘러보니 바닥은 온통 피로 적셔져 있고 잘린 열두 개의 머리가 이곳저곳에 뒹굴고 있었다.
어깻죽지 위로 왕 소름이 쭉 타고 올라오는데 저절로 두 다리에 힘이 쭉 풀려서 잠시 휘청이기까지 했다.
"조심해 이 친구야. 이 정도로 겁먹으면 어찌할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반대머리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더위나 추위를 거의 느끼지 않는 각성자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는 것은 제한 없는 공포가 그를 휘감고 있다는 거였다.
"난 말이야. 너희들 몸에서 뿜어지는 오라를 보면 너희가 저지른 죄의 무게가 얼마인지 견적이 딱 나와 버리거든. 죽은 저 새끼들 오라 색깔이 싹 다 까매. 까만 게 뭔지 알지? 얼마나 악독한 짓을 저질렀으면 오라 색깔이 시커메.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연쇄 살인마도 이 정도는 아니거든. 근데 우짜지? 네 색깔이 젤로 시커멓네?"
- 작가의말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기존 11시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11시에 글이 올라 오지 않는다고 해도
늦어도 12시까지는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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