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사투
치열한 사투
윌리엄은 전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승기는 우리가 잡고 있지만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아. 내부 소탕을 빨리하고 지원 해야 해."
윌리엄이 있는 곳에서는 적의 뒷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성내는 성벽을 방어하는 것만도 벅찬 상황이었다.
상황이 만만치 않다. 지원 병력을 성문 밖으로 내보내려 하지만 은홍의 전사들은 좁은 계단 통로에서 좀처럼 밀고 나오지 못했다.
앞서 싸우는 전사들이 밀고 앞으로 나가며 길을 터야 하는데 워낙 많은 수의 쥐 떼거리가 달려들었기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쥐라고 하지만 거의 성인 남성에 필적하는 키와 덩치를 가지고 있고 이들은 무엇보다 접근전에 아주 특화된 찌르기용 송곳을 무기로 사용하기에 저희들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어도 무기를 사용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한데 전사들은 길이가 긴 검이나 철퇴를 휘둘러야 하므로 기본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이걸 노리고 쥐 떼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한 명에 여러 마리가 몰려드니 전진이 쉽지 않은 터였다.
실버팽이 둠스브링거로 열댓 마리를 한칼에 쳐 죽여도 뒤에 있는 놈이 금세 앞으로 나와 자릴 메꿔 버리니···. 거기다 사체가 보통 걸리적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시체가 쌓여서 밟고 싸워야 하고 또 약삭빠른 놈은 죽은 척하며 누워 있다가 갑자기 기습 공격을 가해 오기도 하는 등 지능적으로도 전혀 딸리지 않는 놈들이었다.
실버팽은 세일럼을 보호하느라 길을 열지 못했고 은홍의 장군 발라크도 앞에 나서 분투하고 있으나 쥐 떼는 그의 열성적인 공격을 단지 몸으로 메꿔 버렸다.
그나마 궁수들이 차근차근 수직 갱도를 파괴하고 있어 쥐 떼의 머릿수는 줄긴 했지만, 성내를 정리하고 밖의 군을 지원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어떻게 하든 밖의 2만 전사들을 끌어 들여야 했다.
윌리엄은 썬더버드를 높게 치켜들며 두 눈을 부릅떴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성력이다.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성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말 못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용기사가 시절 성황 잉그람의 피를 마신 이후 가지게 된 성력의 힘은 거대 용의 목을 단칼에 잘라 버릴 정도였다.
무적이며 막강할 것 같은 이 힘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눠 받은 이 힘의 통제권은 성황 잉그람이 가지고 있으니 성력을 사용하면 잉그람 본인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력을 사용하면 할수록 잉그람의 제어권만 커지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단지 제어권만 아니라···. 한가지 비밀 때문에 윌리엄은 네크로맨서 최후의 전쟁 이후 성력을 사용 안 한 지 벌써 수십 년이 더 된 상태였다.
썬더버드가 비명을 내질렀다.
-빠직 빠직 빠직
썬더버드라는 검명에 맞는 좋은 울림이 터져 나왔다.
하늘을 나는 드래곤을 단 일격에 맞춰 추락시켰던 윌리엄의 무서운 스킬이 발동 준비 상태에 들어갔다.
Stormstrike Blade. 일명 뇌전검.
윌리엄이 잉그람으로 받은 성력의 힘은 뇌전이다.
그의 애병기가 썬더버드라는 것이 그의 이명을 잘 대변해 주는 것이리라.
썬더버드가 샛노랗게 달아올랐다. 하늘 위로 방전되듯이 뻗쳐 나가는 것은 성력의 줄기인데 그 줄기를 타고 뇌전이 빠르게 하늘로 치솟아 올라갔다.
-번쩍
순간 모두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뿜어졌다.
-빠지지직, 콰콰콰쾅!
-찍, 찍, 찌찍
둥그렇게 모인 쥐 떼 한가운데로 광범위 뇌전이 떨어졌다.
먼저 눈이 부셨고 눈을 뜨기도 전에 코를 확 찌르고 들어온 것은 고기 타는 냄새였다.
그것도 아주 바짝 타서 탄 내가 아주 미치게 진동하는 바로 그 냄새였다.
실버팽도 깜짝 놀랐다. 그녀는 허공에서 떨어지는 번개의 향연을 놓치지 않고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천정이 낮아 제대로 위력이 발휘되지 않은 것임에도 단 한 번의 공격에 쥐 떼가 광범위하게 타죽었다. 특히 그들이 손에 들고 있던 송곳 같은 무기가 전도체가 되어 광범위하게 전기가 뻗어 나간 것도 컸다.
실버팽은 윌리엄이 아군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위력을 상당히 낮추었음을 알았다.
적이 너무 많았던 것이 오히려 아군이 피해가 받지 않았던 이유가 되었다.
기회가 왔는데 살리지 않으면 헛된 것이 되기에 실버팽은 세일럼을 힐긋 바라보고는 곧바로 신형을 띄웠다.
발라크도 크게 고함쳤다.
"지금이다. 밀어붙여라."
앞쪽이 무너지자 은홍의 전사들이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덕분에 뒤에 정체되었던 병력도 일제히 쏟아져 들어왔다.
궁수들은 마지막 수직 갱도를 무너뜨렸고 이제 내성에는 더는 쥐 떼가 지원될 수 없었다.
실버팽의 움직임은 독보적이었으며 서로 죽음을 맞대고 싸우는 와중에도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위대한 사신이었다.
물론 쥐 떼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지만. 실버팽의 둠스브링거가 번쩍일 때마다 수많은 쥐 대가리가 허공 위로 떠 올랐다.
발라크는 쥐 떼의 선두를 완벽히 무너뜨리고 큰 구멍을 뚫어 놓고는 급히 세일럼이 있는 쪽으로 달렸다.
"공주님!"
"장군 지금은 저보다 지휘를!"
발라크의 얼굴에서 노기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말하는 공주의 왼쪽 얼굴이 비참하게 문드러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일국의 공주가 그것도 차기 여왕의 자리에 앉을 인재가 이 지경이 되다니.
발라크의 시선이 실버팽을 향했다.
세일럼의 안위를 책임진 사람은 실버팽이었다. 공주가 이 모양이 되도록 실버팽은 무얼 했는가?
"사라 몰리비안!"
발라크는 순간 분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장군 그녀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라는 최선을 다했어요. 부주의한 제 잘못입니다. 지금 아군끼리 잘잘못을 따질 자리입니까?"
그녀는 쥐 새끼 세 마리의 목을 쳐 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눈앞의 적에 집중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힐러! 힐러를 공주님께 보내라."
발라크도 눈앞의 쥐 떼는 처음 본 것이다. 주신 제국에서 수인형 괴물은 흔하지 않다. 가끔 마녀의 저주가 걸려 수인화 되는 인간의 사례가 보고 되긴 하나 이처럼 군대를 형성할 정도로 끔찍이 많은 경우는 역사이래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아군은 모두 각성자라 그 사기는 비할 바가 없고 당장 마족과 붙어도 갈아 버릴 자신감에 차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쥐 떼의 움직임은 상상 이상이었다. 마족을 웃도는 신체 능력을 갖춘 쥐 떼를 상대로 생각만큼의 전투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벌써 아군의 사망자가 나올 만큼 치열한 전투였다. 발라크가 모범을 보이며 가장 먼저 달려들었고 더불어 은홍의 전사들이 일제히 밀어붙이자 전세는 완벽히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윌리엄이 외쳤다.
"성문을 열어라."
제이미는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어깨 위에 서서 전장을 내려다보며 지휘했다. 특히 헬하운드나 스켈레톤을 마음먹은 대로 제어할 수 있어. 적재적소에 투입하거나 적을 교란해 아군의 후퇴를 도왔다.
특히 거대한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위력이 가장 컸다. 쥐 떼들은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우리 쪽에게서는 통각의 맥박이나 기마대를 이용해 쇠사슬로 다리를 걸어 넘어뜨릴 수 있으나 이 쥐 떼는 그러한 위력을 가진 기마 부대가 없는 오로지 알 보병인 상태였다.
물론 그들이 어느 정도 무기 체계를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깊이 10m 이상의 수직 갱도를 타고 오르려면 맨몸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무기도 무겁지 않고 허리에 찰 수 있는 1m 조금 더 되는 새끼손가락 굵기의 송곳이 전부인지라 신체에 가해지는 무게도 거의 없었다.
신체 능력이 탁월해 자기 몸무게 정도는 팔 힘이 아닌 새끼손가락 정도의 힘으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으니 수직 갱도를 타고 오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갱도를 파 놓았는지 모르지만, 이것들은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마다 자이언트 스켈레톤이 휘두르는 거대한 검에 의해 범위 내 쥐 떼는 모조리 쓸려나갔다.
특히 이 쥐 떼는 사령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겁도 없이 날뛰니 오히려 몰아붙이기에 훨씬 쉬웠다.
고개를 돌려 보니 뒤쪽은 거의 정리가 다 되어 간 상태고 성벽의 궁수가 모두 뒤돌아 서 있다는 것은 내성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거였다.
즉 병력의 도움은 더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저 뒤쪽에서 접근하는 그 무엇이다. 그들은 분명히 쥐 떼와 싸우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들이 아군인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교 교주가 그렇다고 했으니 그럴 것이다.
이 전투 어쩌면 우리의 승리로 끝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지금 자신이 한마디 하면 3만이 넘는 이 병력이 일제히 움직일 거다.
제이미는 침착하게 대처하고 있다.
마교 교주가 성벽을 등지고 방어에 치중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밀어붙이면 붙이는 거고 아군의 사기도 상당히 올라 있는 상태다. 그들 또한 제이미를 힐긋힐긋 올려 보는 것이 어서 돌격 명령을 내려 달라고 하는 눈빛이란걸 제이미도 잘 알고 있다.
사령이나 헬하운드가 날뛰어도 쥐 떼의 수는 막강하다. 자이언트 스켈레톤에 쓸려 가는 것만도 상당할 텐데 좀처럼 줄지 않는다.
실로 공포스러울 정도의 머릿수다.
"방패의 벽을 더 굳건히 하라. 한 마리도 통과시키지 마라."
확실히 방패병의 방패 파비스는 전신을 가리는 방패라 쥐 떼가 뿜어내는 가시털도 독이 가득한 침도 효과적으로 방비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아군 사상자를 내지 않는 가장 효율적인 운용방안이다. 내부에서 날뛰던 것들은 거의 정리가 다 되어 간 상태다.
방어에 치중하고 막고 있으면 뒤쪽에서 알아서 처리해 들어오니 확실히 마교 교주의 판단이 옳다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아군의 사망자가 거의 나지 않고 있다. 만약 돌격 명령을 내리면 승리는 빨리 가져올 수 있겠지만 아군의 사상자는 상당히 나올 것이다.
성벽을 등 뒤로 방어만 하고 있으면 저쪽에서 알아서 좁혀 올 테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승기에 도취하여 웅성거리는 부대가 점점 흔들리고 있다. 곧이라고 달려 나갈 기세인 거다.
그때 성문이 열리고 안쪽에서 대군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복장으로 지원을 온 드라고나 왕국의 전사들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선두에 선 발라크는 자시의 키 만한 대검을 휘두르며 군단의 방패병 뒤로 바짝 붙었다.
발라크는 한 명의 기사 단장으로부터 현재 상황에 대해 간략한 보고를 받았다.
팽팽히 유지되는 방어벽은 1군에서 4군까지 모든 방패병이 총동원되어 단단하게 쌓고 있고 방패를 뛰어넘어 오는 쥐새끼는 창병에 의해 단번에 꿰뚫렸다.
요행히 창병을 피해 뛰어내리더라도 대기 하고 있던 검사에 의해 목이 날아갔다.
발라크는 고개를 들어 자이언트 스켈레톤 어깨 위 제이미를 향해 고함쳤다.
"길을 터시오. 우리가 선봉에 서겠소. 단숨에 밀어붙여야 하오."
"무슨 말씀인 줄 알고 있습니다. 길을 여는 것은 제가 정할 겁니다. 모두 대기하라."
성내는 거의 정리가 끝나 가고 있었다. 살 타는 냄새 때문에 모두 인상을 오만상 쓰고 있다.
통구이가 된 쥐 떼의 시체에서 아직도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고 이곳은 지하라 냄새가 쉬이 빠지지도 않았다.
그만큼 윌리엄 대공의 스킬 위력이 대단했다. 성력의 힘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생각하는 실버팽도 적지 않게 놀랐다.
발라크는 답답한 마음에 강제로라도 길을 열고 싶었지만 자신의 군대가 아닌 이상 다른 방도가 없었다.
"저들은···."
성벽 위는 평정이 되었고 깃발병도 제자리를 찾았고 궁수도 다시 뒤돌아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윌리엄도 노르딕도 섣불리 다른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시야에도 이제 이상한 자들이 잡혔다.
그들은 괴이한 외모로 인간을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닮지 않은 것도 있고 또 거대한 저 나무는 무어란 말인가? 걸어 다니는 나무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고 주신 제국 역사를 통틀어 그 어떤 역사책에도 기록된 적이 없는 존재였다.
윌리엄은 돌격 명령을 내리려고 하다가 제이미가 만든 방어진을 보고 바로 제이미의 뜻을 이해했다.
"제이미 백작의 포진은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거군요."
노르딕도 제이미의 의도를 알아봤다.
"음, 저들이 우릴 돕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쓸데없이 움직여 사망자를 내지 않는 것이 옳다. 제이미의 판단은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이다."
"저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제이미가 저런 행동을 했다면 뭔가 있었나 보군. 궁수를 준비시켜 적 머리 위로 포격을 가하라 이르게. 통각의 맥박이 동이 나도 좋으니 화력을 집중시키게."
"알겠습니다."
노르딕이 휘파람을 불며 머리 위로 오른손을 빙글빙글 돌리자 단장 한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궁수는 통각의 맥박을 매단 화살을 조준하라."
노란색 깃발이 세 개 올랐다. 그것을 본 제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빨리 사령과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좌우로 빼냈다.
그와 동시에 성벽 위에서 쏘아낸 화살이 한여름 소나기처럼 쥐 떼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 작가의말
글 올리는 시간대를 약간 변경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24에서 01시 사이로 정해 놓고
야간 근무 생활 패턴을 경험해 보고
다시 시간을 정할 생각입니다.
오늘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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