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븐의 도시 6
스케이븐의 도시 6
탈로스는 슬쩍 리오니스 앞쪽에 섰다. 그의 시야를 방해하는 것도 있지만 울쑤안의 공격을 비껴가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역시 울쑤안은 탈로스를 직격하지 못하고 검의 회전 반경을 비틀었다.
덕분에 근처에 달려들던 스케이븐이 피를 토하며 까마득히 보이지도 않는 바닥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이거, 이거 정말 변화가 심한 검인걸'
탈로스는 깜짝 놀랐다. 울쑤안의 검은 평범한 무쇠 검이 아니었다.
리오니스가 말한 그림자 검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아마도 어떤 종류의 스킬을 사용한 것 같았다. 분명 손에 들고 있는 검은 하나고 단순히 찌르기 동작을 내질렀을 뿐인데 주변으로 수없이 많은 검이 동시에 날아 들어왔기 때문이다.
무공에서는 헛초를 전개하거나 잔영을 만들어 상대를 속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진짜는 하나다. 잔영 속에서 진짜를 찾아내 막지 못하면 당하는 이치. 하지만 울쑤안이 지금 선보인 기술은 잔영이 아닌 잔영처럼 보인 것 전부가 살상력을 가진 진짜 검이라는 것이다.
마치 수백 자루의 진검을 동시에 찌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 것이다.
탈로스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울쑤안의 스킬에 호기심이 크게 발동했다.
마나를 이용한 스킬도 아니고 마족처럼 우월한 신체 능력에 따른 속도도 아니었다. 울쑤안은 묘한, 탈로스도 알지 못하는 전혀 다른 종류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
이건 탈로스로서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또 하나의 변수다.
"움직이지 마라. 녀석의 목에 감긴 건 보통 밧줄이 아니야. 더 공격하면 이 녀석의 목은 바로 떨어진다."
성력으로 만든 가는 흰 선 하나가 탈로스의 목을 휘감고 있다. 리오니스는 탈로스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그가 협력 제안을 수락한 것은 탈로스가 거부감 없이 사거리 내로 접근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울쑤안의 공격으로 시선이 분산된 찰라 성력의 거미줄 하나를 탈로스의 목에 건 것이다.
자신이 맡은 일은 실로 중대하고 엄청난 임무였다. 스케이븐을 통제하여 영혼 수확을 완성 시키는 거였다. 그들은 영혼 수확 자체를 모를뿐더러 단지 인간과 전투에서 희생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스케이븐을 감쪽같이 속이고 영혼 수확을 성공하게 할 절호의 기회였고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을 터였다.
일거양득.
영혼 수확으로 솔라리스 오군단 전부와 드라고나 전사 2만까지 집어삼키면 솔라리스 왕국 자체는 손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울쑤안을 부추겨 성군과 싸움 붙이면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나 마찬가지다.
이 모든 계획이 눈앞에 미친 난쟁이 한 명 때문에 개 박살 난 것이다. 협력? 어림 반 푼도 없는 소리 당장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다.
그럴 수 없는 것이 차원 문을 열 수 있는 놈은 저놈뿐이니까. 어쩔수 없이 인질로 활용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물론 리오니스가 이렇게 나올 거란걸 이미 예상하고 탈로스는 그의 앞에 선 거였다.
탈로스도 나름대로 착오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예상외로 스케이븐의 능력이 자신이 상상했던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 전 보았던 스케이븐은 평범한 인간형 쥐였다. 마족 정도의 신체 능력을 지닌 평범한 쥐.
하지만 지금 이성을 상실한 사악한 존재는 결단코 만만한 상대가 아녔다.
울쑤안이 있음에도 본능에 삼켜져 날뛰는 이 포악한 무리는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봐라. 이것들을 이용하겠다고? 아서라 녀석들을 제국에 풀어 놓는 순간 인간은 멸족당할 거다."
"쳇, 난 명령만 따르는 군인일 뿐. 그딴 생각은 위쪽에서 정할 일이지."
"이거 풀어, 안 그럼 둘 다 죽어."
울쑤안의 공격에도 미쳐 날뛰는 스케이븐은 한둘이 아니었다. 건물을 타고 오르는 스케이븐은 셀 수조차 없었다.
탈로스는 능숙하게 덤벼드는 스케이븐을 베어 넘겼다.
리오니스는 울쑤안이 막아 내는 것도 한계점을 넘어섰다는 것을 알았다.
이 미친 것들은 죽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충성심보다 살의를 가진 본능이 더 앞서는 놈들이다. 이놈들 앞에서 인질 따위를 논해봐야 의미 없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았다.
리오니스 그 자신도 뭔가 잘못된 거란 것이 느껴졌다. 그는 케이사르의 명령으로 스케이븐과 동맹을 맺고 공동의 적에 대응하도록 유도하는 임무였다.
먼저 케이사르가 울쑤안과 단독 면담을 통해 그 협정은 이루어진 상태였다. 자신은 케이사르의 밀명을 받고 차원 문을 통해 스케이븐을 통제하고 울쑤안을 묶어 두기 위해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즉 지금 일차적인 투입된 것들은 허드렛일꾼 수준의 스케이븐이고 진짜배기는 아직 이곳 녹스텔라에 묶여 있다.
차원 문을 열어주지 않는 이상 꼼짝할 수 없으니 울쑤안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밖으로 내보낸 스케이븐은 어차피 오군단을 끌어들이는 미끼 역할인 동시에 영혼 수확의 재물용이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솔라리스 왕국을 손에 넣으면 성군과 마주하게 된다. 그때 울쑤안을 풀어 성황을 상대하게 되면 모든 것이 딱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저 미친 난쟁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난쟁이 말로는 영혼 수확은 실패했고 밖으로 나간 스케이븐도 토벌이 된 모양이다. 그렇다는 것은 오군단도 멀쩡한 상태일 거고 계획대로 진행된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거다.
이번 임무는 완벽한 실패다. 이제 남은 것은 살아서 여길 빠져나가는 것뿐. 아니면 눈앞의 난쟁이를 죽이고 자신도 장렬히 폭사하는 것이다.
이번 임무 실패로 어떤 처벌을 받을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최악에는 처형이라는 극형을 받을 수도 있다.
여기서 끝장을 보는 것이 차라리···.
눈앞으로 달려드는 스케이븐을 보는 순간 삶의 의욕이 확 살아났다.
당장 난쟁이를 죽이면 자신도 끝임을.
"울쑤안! 더 이상 공격하면 이놈 모가지가 떨어지는 걸 구경하게 될 거다."
-스스슥
탈로스는 목이 죄어 옴을 느끼며 괴로운 표정으로 허우적거렸다.
"크아아아아아아"
울쑤안의 포효소리가 얼마나 큰지 구조물 전체가 뒤흔들렸다.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그 폭이 점점 커졌다.
"풀라고. 이대로면 둘 다 추락이야."
울쑤안의 고함이 어찌나 강력한지 스케이븐의 움직임이 일시적으로 모두 멈췄다. 놈의 포효에는 지독한 공포가 배 있었다.
그 공포가 스케이븐의 오감을 자극한 것이다. 본능을 넘어서는 공포가 그들을 휘감자 자신도 모르게 신체가 얼어붙어 버린 탓이다.
그때 밑에서 타고 올라오는 스케이븐이 갑작스러운 공포감에 허둥대기 시작하자 구조물은 더더욱 크게 흔들렸다.
"제기랄!"
"무너진다."
-빠직, 빠지직
모두의 입에서 동시에 절망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놈의 성력은 묘한데?'
탈로스는 구조물이 무너지는 것이나 울쑤안의 고함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자기 목을 감고 있는 성력의 능력을 조사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리오니스에 접근해 알짱대 그의 인질로 잡힌 것은 성력을 직접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솔직히 지금 자기 능력이면 칠무신도 능히 제압할 수가 있을 정도다. 리오니스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리오니스에서 알수 없는 무엇이 느껴졌다.
울쑤안의 능력도 상상 밖인데 더 충격은 리오니스의 성력이었다. 고수와 몇수 나눔을 해 보면 상대의 강함을 파악할 수가 있게 마련이다.
싸우면서 느낀 거지만 리오니스의 성력은 뭔가 칠무신이나 성황이나 자신과는 다른 묘한 것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접때 만났던 엘하카드에서 느꼈던 어떤 미증유의 공포일까? 두려움일까? 그런 느낌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미흡한 리오니스 정도는 간단히 제압할 수는 있다. 지금은 새까맣게 몰려드는 스케이븐 전부에 울쑤안까지 상대하기 위해서는 리오니스를 살려 두어야 했다.
차원 문이 있는 곳까지는 도시를 아예 가로질러 가야 하는데 이 많은 쥐 떼를 뚫고 나가는 것은 실로 벅찬 일이다.
탈로스가 아무리 고강해도 쉼 없이 몰려드는 저 많은 쥐새끼를 홀로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인 거다.
어찌 보면 상대를 너무 얕잡아 본 대가일지도 모른다. 아니 대가였다. 왕궁에 나와서 겪는 두 번째로 난감한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엘하카드를 만났던 것이 첫 번째요. 지금 상황이 두 번째다.
-빠각
결국 흔들림을 견디지 못하고 구조물의 가장 중심축이 쪼개지며 거대한 바닥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울쑤안이 고함을 치며 달려든다.
그 뒤로 수많은 스케이븐도 함께 움직였다.
찍찍거리는 소리 때문에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 와중에도 리오니스는 탈로스의 목에 건 성력의 끈을 풀지 않았다.
높이가 높이니만큼 제대로 몸을 가누지 않는다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다.
쥐새끼들이 워낙 찍찍대서 무너지는 소리마저 삼켜질 정도다.
한데 추락하는 속도가 조금씩 줄고 있다. 거대한 바닥이 점점 부서져 나가고 있었다.
인제 보니 쥐새끼들이 달려들어 뜯어내 덩치를 줄이는 동시에 자신을 몸을 던져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고 있는 거였다. 이것이 한두 마리가 아니고 수백, 수천 마리가 떨어지는 바닥을 향해 한꺼번에 부딪쳐 오니 추락 속도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었다.
물론 부닥친 놈들은 그 뒤로 곧장 아래로 추락해 떨어져 내렸다. 울쑤안의 명령에 조금의 망설임 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스케이븐의 무서움 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무거운 돌덩이를 맨몸으로 처박아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다니 참으로 황당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수도 없는 희생이 이어졌지만, 그 누구도 아니 그 어떤 스케이븐도 불평하는 놈이 없었다. 이것이 이들에게는 당연한 처사였고 평범한 일상인 것이다.
수틀리면 동족끼리 잡아 먹는 판국에 이런 짓거린 우스운 행동에 속한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녀석들은 며칠 먹을 풍족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을 뿐.
-쿠쿵
미친 듯이 떨어지던 바닥층이 중간 정도에서 걸렸다. 이걸 떠받치고 있는 것은 구조물이 아니라 스케이븐의 몸뚱이다.
"이봐, 지금이 기회인 것 같은데?"
탈로스의 말에 리오니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달리기 잘해?"
"너보다는 충분히."
"50보 이상 뒤처지지 말라고 목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말보다 행동이지."
탈로스가 튕기듯이 뛰어내리자 기겁한 리오니스가 따라 뛰어내렸다. 자칫하여 인질을 잃으면 그 순간 자신도 죽은 목숨이다.
"작은놈은 절대 죽여선 안 돼! 큰놈만 죽여. 작은놈은 건드리지 말고."
뒤통수에서 고래고래 고함치는 스크런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슬쩍 훑어본 번역본 덕분에 스케이븐의 간단한 대화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리오니스는 만약에 무사히 탈출하면 그 즉시 탈로스의 목을 베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탈로스가 무언가를 하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탈로스는 자기 목에 걸쳐진 성력을 통해 도력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도력이란 생소한 기운을 리오니스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새까맣게 몰려드는 스케이븐의 무리는 두 사람을 질리게 했다. 탈로스야 당연히 경공을 발휘하여 요리조리 공격을 쉽게 피해 아래로 치고 달릴 수 있는데 리오니스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는 성력으로 그물을 만들어 앞면으로 펼쳤다. 그것에 걸리는 스케이븐은 잘레 썰려 나갔다.
'오호라? 저놈 저렇게 성력을 사용해도 전혀 무리가 가지 않는 모양이네?'
칠무신도 지속해서 성력을 사용하는 것을 꺼린다.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이브리엄이 인간의 신체에 머물지 못하는 단적인 이유다. 인간의 신체가 성력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저번에 대결한 엘하카드도 결국 전투 도중에 도망치듯 물러난 것은 인간의 신체가 견디지 못하고 붕괴했기 때문이다.
칠무신은 아이 때부터 단련했기 때문에 그 정도 전투력을 보이는 것이고 탈로스는 내공이라는 초유의 기공이 성력과 합쳐졌기 때문에 신체에 무리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공력을 배가시키는 형국이 되었다.
즉 성력과 내공 거기다 각성자의 신체가 결합하면 반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세렌의 전투력이 눈에 띄게 늘어가는 것도 다 그 이유에서다. 테츠의 성력을 받은 사람이 무공을 수련하면 할수록 끝없이 강해지는 원리이다.
'거의 다 되어 간다. 조금만 더 하면···.'
리오니스도 당연히 소울 슬립의 거스르는 저주가 걸려 있었다. 그걸 해제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였다. 지금까지 일부러 잡혀 준 것도 그것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누군가 소울 슬립을 방어하는 주술을 만들었다. 머릿속을 헤집으면 그 즉시 뇌가 폭발해 버린다. 아마도 소울 슬립을 가장 잘 아는 네크로맨서 몰레이그의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탈로스가 아는 몰레이그의 지식으로는 어림없는 것이다. 누군가 조력자가 있거나 다른 어떤 경로를 통해서 굉장한 지식을 얻었을 수도 있다.
리오니스가 성력을 가졌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소울 슬립을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성력은 대상의 피에 녹아 있다. 대상이 충격을 받으면 성력은 본능적으로 대상을 방어한다.
소울 슬립의 대 방어술이 우세한지 성력의 방어력이 우수한지 곧 판가름이 날것이다.
또 한 가지 더 방비하기 위해 도력까지 흘려 넣고 있다.
리오니스의 머릿속만 들여다볼 수 있다면 모든 실타래가 어쩌면 싹 다 풀어질 수도 있다. 그걸 노리고 지금 리오니스의 인질 흉내를 내는 거다.
뒤에서 울쑤안이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고 있다.
넘어야 할 또 하나의 무서운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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