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븐의 도시 3
스케이븐의 도시 3
가시다.
'호오? 어떻게 내 기척을 알아차렸지?'
공격해 온 무리는 이곳의 경비병 정도 되는 스케이븐이었다.
공격해 온다고 해서 피해받을 일은 없지만 궁금한 것은 천마잠행을 펼치는 탈로스의 위치를 어떻게 파악하고 또 정확하게 공격하느냐다.
이번 가시는 덧없이 허공을 스쳐 갔지만 다음번의 공격도 탈로스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날아왔다.
'허~ 참? 뭐지?'
탈로스는 긴팔로 판자와 나뭇더미를 잡고 위로 날아올랐다. 그때 다시 가시가 날아왔다.
'그렇군.'
탈로스는 스케이븐이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는지 알았다. 그것은 나무로 된 이 건축물 더미의 진동을 통해 알아차린다는 것을 알았다.
천마잠행이라고 해도 건물을 수직으로 오르니 한 번씩 디딜 곳이 필요하고 내공으로 거의 소리도 내지 않도록 했지만 대신 신체를 수직으로 띄우기 위해서는 도약력이 필요했다.
단지 그 진동을 느끼고 그 위치로 공격해 오는 것이다. 스케이븐도 탈로스의 모습을 볼수가 없었다. 천마잠행에다 그들이 생각하는 수준 이상의 속도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건물은 튼튼한 상태가 아니었다. 탈로스가 마음먹고 후려치면 종잇장처럼 부서져 내릴 것이다.
탈로스는 자신이 향하는 곳에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이곳에 들어온 목적은 하나다. 그 하나가 바로 이 위에 있다는 사실은 뿜어지는 기가 보통이 아닌 자가 두 명이 있다는 것을 진즉부터 느꼈기 때문이다.
가시가 날아왔지만 계속 허공만 갈랐다.
-땡, 땡, 땡, 땡, 땡.
쇠 종소리.
놈들도 침입자를 파악했고 경비인 자신들이 어떻게 할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경보의 종을 울린 것이다.
그러자 탈로스가 오르는 건물 곳곳에서 많은 스케이븐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끔찍할 정도의 쥐 떼가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탈로스는 건물이 그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 쥐 떼는 매우 기민하게 움직이며 건물을 오르는 데 딱 봐도 매우 숙달된, 그리고 이곳 구조를 훤히 꿰뚫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무리 스케이븐이 제집처럼 드나들던 곳이라 해도 탈로스와는 능력 차이가 너무 달랐다.
한 번 발 딛음 하면 수십 미터씩 쭉쭉 솟아 올라가는 탈로스를 따라잡을 수 있는 스케이븐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번쩍! 짜르르륵 쿠쿵!
"엇차!"
대지를 흔드는 천둥소리에 탈로스는 즉시 몸을 틀어 피했다. 시퍼런 전기 줄기가 위에서 떨어져 내리며 방금 탈로스가 있던 자리의 나무를 새까맣게 만들었다.
번개가 얼마나 강력한지 충격으로 나무가 쪼개지기 전에 이미 타서 잿가루로 변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이건 맞으면 좀 아프겠는데? 참 그러고 보니 여긴 유적이 아니었지?"
유적 내부라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이곳은 별개의 세상이다.
그리고 스케이븐은 원래 마족과 마찬가지로 마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할뿐더러 사용할 수도 없다.
다만 워낙 변태 같은 번식력 덕분에 돌연변이가 나타날 확률이 무척 높았고 그런 스케이븐 중에 마나를 흡수해 마력으로 전환하고 원소 마법을 쓰는 녀석들이 간혹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금 번개 공격을 한 녀석도 그들 중 하나일 거다.
탈로스는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번개를 피했는데 올라가다 보니 번개를 쓰는 놈이 마침 보였다.
허리에 이상한 작은 북을 매단 허리띠를 착용한 녀석인데 작은 북을 한 번 내리칠 때마다 등에 멘 쇠막대기 같은 것에서 푸른 번개가 굉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핏
녀석은 힘없이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져 내렸다. 떨어지면서 튀어나온 건물 더미에 몇 번 부딪치더니 까마득히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탈로스가 날린 혈적지가 녀석의 미간을 뚫고 뇌를 박살 내 버린 탓이다.
탈로스는 움직이면서 여러 종류의 스케이븐을 봤다. 그들은 그가 알고 있던 정보에 없는 놈들도 많았다.
가장 하급 일반 보병은 송곳 같은 무기 하나만 사용한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들의 제철 기술이 형편없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스케이븐은 다양한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창병, 방패병, 검, 활, 도끼창, 슬링을 던지는 투석병도 보였다.
이렇게 다양한 스케이븐이 있으면서 최하층 땅개만 전투에 내보낸 것은 인간을 아예 얕잡아 봤던 것이리라.
엘리트를 소비하지 않아도 인간 정도는 최하급 보병이면 간단히 제압할 수 있다고 본 거다.
-휘이이익
드디어 이 건물 가장 가장 위층에 올라선 탈로스는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접시처럼 평평한 곳이며 지붕도 없었다.
바닥은 질 좋은 대리석 같은 돌이 깔려 반질반질했고 매우 매우 커다란 원형의 광장 같은 곳이었다.
하얀 대리석이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중앙에서 12시 방향으로 커다란 의자가 있었다. 의자라기보다는 왕좌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그곳에 앉아 있는 엄청난 덩치의 스케이븐 한 마리의 몸에서 뿜어지는 느낌은 가히 패도적이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느껴졌던 위험한 기척 중 하나가 바로 저 스케이븐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은 갈색의 망토를 걸친 기사 한 명. 물론 인간인데 키 2m 정도로 특히 팔뚝이 굵고 매우 건장한 신체를 가진 중년의 기사였다.
물론 탈로스는 처음 보는 인물이다. 그는 뒷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 주변에 있는 기사들의 가슴에는 분명히 반사르 가문의 문양이 확연하게 보였다.
"어,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구먼."
-찍, 찍, 찍
경계를 서고 있던 스케이븐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무기는 평범한 송곳 따위가 아니었다. 인간이 사용하는 명검 수준으로 바람 가르는 소리가 예사소리가 아니었다.
특히 그들이 걸치고 있는 갑옷 같은 것은 모두 개성이 뚜렷했고 방어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여러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단 놈들도 있었다.
탈로스를 바라보던 기사 몇 명을 아니꼬운 눈초리를 보였다. 당연히 탈로스의 생김새는 가관이었다.
구부정한 허리, 원숭이처럼 긴팔, 얼굴은 곰보투성이에 툭 튀어나온 뻐드렁니, 도대체 씻은 적이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의 부스스한 머릿결.
한 마디로 길을 걷다가 그냥 말발굽에 밟혀 죽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게름뱅이보다 못한 몰골이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어서 빨리 뒈지라고 하는 것이 정확히 보였다.
-휘이이익
스케이븐의 공격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탈로스가 노리는 것은 딱 한명.
말라키의 냄새와 마력을 가장 강하게 뿜어내는 놈이다.
"다크소로우를 노린다. 그를 지켜라."
난쟁이를 비꼬던 기사들은 깜짝 놀랐다. 난쟁이의 움직임이 그들이 상상하는 그것 이상으로 엄청났기 때문이다.
스케이븐의 정예병에 둘러싸이는 것을 보면서 놈의 목숨은 곧 끝이라고 비꼬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으로 휙 지나가 버렸으니.
서둘러 병장기를 뽑아 들었으나 이미 난쟁이의 손에 붉은 피가 철철 흐르는 마법사 한 명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미친!"
"크크큿."
피 냄새에 흥분한 스케이븐 무리가 탈로스 등 뒤에서 덤벼들었다. 기사들도 무기를 빼 들고 덤벼들 태세를 취했다.
드디어 갈색 망토를 입은 자가 뒤돌아섰다. 그에게서 지독한 냄새가 났다.
보통의 인물이 아님을 탈로스는 직감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부류의 인간이었다.
시커먼 턱수염에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인 중년 사내는 허리에 찬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쉬이이익
뒤쪽에서 달려드는 스케이븐은 보통 놈이 아니었다. 송곳 하나 들고 설쳐대는 그런 놈과는 범주 자체를 달리해야 하는 놈들이다.
조금 전 기사가 말한 엘리트라는 것에 통용되는 놈들일 거다. 워낙 번식력이 높은 놈들이라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돌연변이들이 태어나는 것이겠지.
손에 든 마법사의 머리통을 집어 던졌다. 각성자를 확실히 죽이기 위해서는 머리를 자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 어쩔수 없이 다크소로우의 목을 뜯어 버렸다.
그자에서 가장 진한 말라키의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다. 아마도 차원 문을 열 수 있는 자가 분명했다. 그를 죽였으니 이제 이곳의 스케이븐은 더는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을 것이다.
탈로스는 그걸 노리고 앞뒤 안 가리고 마법사부터 처리한 것이다. 물론 그자가 진짜 마법사인지는 모른다. 단지 복장이 마법사라서 그렇게 생각한 것일 뿐.
-슈아아악
어느새 허리춤에서 뽑은 유연한 곡도가 아무 생각 없이 달려들던 방패병의 머리통을 깨끗이 절단했다.
기사들이 보기에 탈로스는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동작이 끊김이 없이 유연하게 흐르는 것이 마치 강물이 흐르는 것과 같았다.
단 한 번도 멈칫한 동작 없이 매끄럽게 스케이븐을 상대하는데, 적이지만 그 움직임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으며 충격에 놀라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도 않았다.
스케이븐의 무기는 무식한 바람 소리를 내며 난쟁이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떨어져 내렸는데 난쟁이는 차근차근 여유롭게 그리고 옆에서 보기에 살짝 땀이 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었다.
피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툭, 툭, 툭.
그가 움직일 때마다 정확히 쥐 대가리 하나씩 바닥에 툭, 툭 떨어지는데 어떻게 잘렸는지 각성자들인 기사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였다.
너무나 쉽게 휘두르는 것 같은데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한 번에 한 대가리씩 에누리 없이 떨어졌다.
신들린 듯한 움직임에 너무나도 깔끔하게 적을 처리해 나갔다.
신기에 가까운 솜씨에 조금 전까지 비웃었던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고 그 자리를 서서히 두려움이 채우기 시작했다.
그들 사이에서 떠도는 난쟁이의 소문은 한둘이 아니었다. 난쟁이 탈로스와 또 다른 한 명 모그룩에 걸린 현상금만 해도 3대는 충분히 먹고 살 정도니까.
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는 쥐 대가리의 숫자가 늘어가면 갈수록 입안에 침이 마르고 입술이 바짝 탔다.
그들은 자신의 마법사가 어떻게 멱이 따였는지 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 목이 자기 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차츰 공포감이 스며 나왔다.
-툭
잠깐 사이에 마지막 스케이븐의 머리가 떨어졌다. 난쟁이는 다른 곳은 보지 않고 무엇을 펴들고 있었다.
기사들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새다.
탈로스가 읽고 있는 것은 조금 전 목을 뜯었던 마법사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책이었다.
책이라기보다는 직접 자필로 적어 놓은 기록지였다.
그것은 스케이븐의 언어를 제국의 언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었다.
탈로스는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번역본을 읽어 갔다.
기사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주변으로 피 냄새가 진동한다. 그렇지 않아도 냄새가 많은 놈들인데 피 냄새까지 섞이니 각성자로서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탈로스라고 했던가? 제 발로 혼자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그 기개는 높이 사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겠지."
갈색 망토를 걸친 중년의 검은 수염 사내는 의외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탈로는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고 오로지 번역본을 읽는 데 집중했다.
갈색 망토뿐이 아니다. 저 멀리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거대한 스케이븐 한 마리.
탈로스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두 명의 기척 중 하나가 바로 이 스케이븐이었다.
얼굴이라고 할까 대가리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투구 대신 어떤 동물인지 모를 거대한 두개골을 쓰고 있었다.
거대한 덩치는 성인 남자 서너 명이 어깨를 밟고 섰을 때의 높이와 같았다. 왼쪽 허리에는 가시가 돋친 긴 쇠망치이며 오른쪽에는 도끼를 닮았지만 검과 같은 형태의 기이한 무기를 차고 있었다.
어깨와 목에는 뭔지 모를 화려한 장신구가 가득 걸려 있고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탈로스가 자신의 동족을 학살하고 있음에도 표정도 변하지 않았고 어떤 몸짓도 취하지 않고 있다.
-탁
탈로스가 책을 덮는 순간 아래 바닥에서 괴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아아앙"
-꽈직! 빠각
바닥 대리석이 박살이나 사방으로 흩날리며 그곳에서 거대한 대가리 하나가 툭 솟아올랐다.
저기 앉은 스케이븐과 비슷한 덩치의 괴물 쥐다.
누렇게 뜬 거대한 앞니 하나가 평범한 스케이븐의 대가리 크기였다.
"스닉치다."
기사 중 한 명이 그렇게 외쳤다. 목소리에는 어떤 확신감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스닉치라."
방금 본 번역본에 적힌 내용을 보면 폭풍의 스닉치, 죽음의 사신, 살인의 달인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한 마디로 살인 기계였다.
거대한 덩치에 완력은 평범한 스케이븐은 감히 앞에 서지도 못할 정도이다.
"이놈도 돌연변이인가 보네. 이런 놈들이 밖으로 안 나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겠네."
중년 기사는 쓰러져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마법사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탈로스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이 마법사 다크소로우를 죽였다.
무엇 때문에? 마법사라고 해서 골라 죽인 것은 아닐 거다.
다크소로우는 차원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하지만 그를 죽인다고 해서 이미 열린 차원 문은 닫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죽여 버림으로써 차원 문을 닫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그런데 왜 탈로스는 급히 다크소로우를 죽인 것인지 중년 사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벌써 상체를 빼낸 스닉치는 거대한 양팔을 휘둘러 탈로스를 공격했다.
탈로스는 스닉치의 주먹을 피해 살짝 점프하더니 스닉치의 오른쪽 어깨 위로 날아내렸다.
그리곤 오른손으로 슬쩍 스닉치의 왼쪽 관자놀이를 치는 것이 보였다.
-우당당당탕! 콰땅. 콰당.
그걸로 끝이었다. 바닥에서 상체를 반 이상 빼냈던 스닉치는 고개를 푹 꺾더니 아래로 끝없이 추락해 버렸다. 떨어지며 건물 나뭇등걸에 부딛쳐 나무 빠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스, 스닉치가!"
기사들은 아예 얼어붙었다. 그들은 스닉치가 어떤 괴물이며 어느 정도 완력을 가졌는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던 터였다.
그들이 일말의 기대했던 스닉치가 어이없게도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지니 어찌 상상되지 않는다.
저 인간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때 중년 기사가 물었다.
"내가 이들의 우두머리인 걸 알면서 왜 마법사를 먼저 죽였지? 그를 죽이면 차원 문은 영원히 닫을 수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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