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료와 기근 (3)
청주를 시작으로 건흥은 충청도 지방의 인원과 재산을 징발해 나갔다. 사람들은 노예로 잡혀 게이트를 넘었고 쓸만한 건축물과 재산도 모조리 미국으로 보냈다.
충청도가 쑥대밭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 한양에 전달된 것은 건흥이 청주를 접수한 시점에서 삼일 뒤였다.
난리가 난 와중에도 제 역할을 하는 파발이 있었고 지난 몇 번의 도깨비 사태를 겪었던 인조는 이 일의 심각성을 곧바로 인지했다.
그는 북방을 지키던 병력을 모두 불러들인 뒤, 수도에 있는 중앙군과 연합시켜 7만의 대군을 준비했다.
그리고 확실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 누명을 쓰고 파직되어 있던 임경업을 복직시키고 그에게 육군 총사령관을 맡기려 했다. 임경업은 병자호란때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고 명나라에 귀순하여 청나라와 싸웠던 맹장이었다.
그러나 결국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 구금되어 있다가 인조를 몰아내려는 모반에 연루되었다는 증언이 나와 조선에서 그의 신변을 요청하였다.
그 요청을 청이 받아들여 임경업을 한양으로 돌려보냈고 현재 조선에 구금되어 있는 상태였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임경업은 심기원의 모반에 연루되어 있는 자 이옵니다!"
"그는 억울하다고 하였소"
"간악한 자라 자신의 죄를 절대 밝히지 않을 것이옵니다!"
인조의 가장 심복이었던 김자점이 임경업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려는 인조의 뜻을 돌려보려 노력했지만 이미 인조는 마음을 정한 듯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허면 좌상은 이 난국을 진정 시킬 수 있는 자를 추천해 보시오"
"소인이 직접 군을 이끌고 도깨비 무리를 소탕 하겠나이다"
"허허..."
인조는 스스로 전장으로 나가겠다는 김자점을 보며 눈을 감았다. 그가 병자호란에서 보여준 부족한 통솔 능력을 다 알고 있기에 절대 그를 보낼 수 없었다.
중요한 결전이었던 토산 전투에서 대패하여 벼슬을 빼앗기고 문외출송 당했다. 그것도 모자라 병자호란에 패배에 대한 도원수로서의 책임을 물어 절도정배(絶島定配)형을 받고 충남 서산군으로 유배까지 당했던 인물이었다.
지금에야 복권 되어 다시 권력에 중심에 들어 왔지만, 그의 통솔 능력이 부족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전쟁은 두 번 기회를 주는 곳이 아니오 좌상. 그대는 이미 호란이 일어났을 때 그 기회를 다 쓰셨소"
"하오면 전하 제가 다른 장수를 추천해 올리겠나이다"
"그만! 오랑캐로도 모자라 이제 도깨비에게 까지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셈인가!"
끝까지 자신을 설득하려하는 김자점때문에 인조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를 치며 그를 내쫓아 버렸고 다른 대신들의 반대를 모두 묵살한 뒤 임경업을 불러 어명을 내렸다.
"본인의 결백함을 증명할 기회로 삼고 최선을 다하라!"
"신 임경업 전하의 명을 받들어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들을 반드시 토벌하겠나이다"
실로 오랜만에 조선 관직에 돌아온 임경업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대신들의 눈총을 뒤로 하고 출병했다.
* * *
임경업이 이끄는 조선군이 금강을 도하하고 있을 무렵 미군은 대전 인근의 징발을 마치고 대둔산 아래로 남하하여 전주로 향하고 있었다.
"보고드립니다. 조선군이 금강을 도하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정찰하고 있을 때 부대의 절반 가량이 도하를 마친 상태였으니 지금쯤 도하를 마치고 남하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대둔산에서 야영을 준비중이던 미군 군영.
덕만의 천막에 척후병이 보고를 와 있었다. 덕만은 조선의 토벌군이 언제 내려오는지 정보를 확인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병대를 보내 정찰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 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적군의 규모는?"
"5만이상 10만 이하로 추측됩니다"
"조선이 동원할 수 있는 전 병력이군"
현재 1천5백 수준의 미국군이 상대하기에 조선의 병력은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러나 보고를 하는 척후병도 보고를 받는 덕만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뛰어난 무기가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주인인 건흥이 함께한다면 수백만이 몰려와도 두렵지 않았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이동하여 그들에게서 거리를 벌린다. 전하께서 돌아 오실 때 까지 절대 전투를 해서는 안된다."
"예. 알겠습니다"
덕만의 천막에 모여있는 부장들은 고개를 숙이며 덕만의 명령을 받았다. 현재 건흥은 로빈과 함께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미국에 돌아가 있는 상태였다. 약속된 날짜로는 내일 오후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건흥은 자신이 부재일 경우 절대 전투를 피하고 회피하라고 덕만에게 명령했고 덕만은 그 명령을 철저히 수행하며 작전에 임했다. 지금까지 각 고을을 징발 할 때 건흥과 함께 전투하고 건흥이 떠나면 이동을 하거나 야영을 하며 전투를 피했다.
대둔산에서 야영을 마친 다음날 미군은 조선군의 추격을 피해 덕유산 방향으로 이동했다. 조선군도 꾸준히 척후병을 보내고 있었기에 미군의 이동을 눈치채고 추격해 오고 있었다.
미군이 덕유산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고 약속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건흥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전하께서 조금 늦으시는 것 같습니다"
"워낙 바쁘신 분이시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우린 우리 일을 하면 된다. 산으로 올라가자. 고지를 먼저 점령해 높으면 날이 어두워져도 적들이 기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덕만은 부대를 이끌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건흥이 오지 않으면 미군은 보급도 되지 않았다. 현재 미군이 먹는 군량은 이틀치만 휴대하고 있었다.
이틀에 한번은 건흥이 들러 게이트를 통해 군량과 식수, 탄약을 공급해주고 있었다. 여러모로 건흥이 없으면 제 구실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야영을 준비한다!"
해가 거의 떨어지고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자 더 늦기 전에 덕만은 야영을 준비했다. 병사들은 소대별로 모여 식사를 준비하는 동시에 천막을 쳤다. 그러면서 조선군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고지에 있었기에 먼 거리까지 시야가 확보된 미군의 가시 범위에 조선군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도 해가 떨어지자 이동을 중지하고 진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보고드립니다. 조선군이 덕유산 인근을 포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 있는 곳에 본진을 두고 좌측과 우측에 병력을 산개 시켰습니다"
"예상된 움직임이다. 일단 오늘 밤 야습에 주의해야 한다. 척후들은 교대로 밤을 지켜야 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척후가 인사를 하고 물러간 뒤 덕만의 천막에 모여있던 부장들 중 한 명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전하께 무슨 큰일이 생긴 건 아닐런지요..."
"곧 오실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린 우리의 일을 하면 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최선의 방비를 해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 땅인데 제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줘야지요"
"좋은 자세다"
건흥이 오지 않아 다들 걱정이 많았지만, 사기는 나쁘지 않았다. 지금 덕만의 천막에 모여있는 부장들은 수년 전 이로퀴와 전쟁을 하던 순간부터 함께 했던 자들이었다.
그동안 인디언들과 교전 하면서 끊임없는 승전을 경험한 자들이기에 자신감이 충만했다. 물론 체계적인 정규군과 교전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갈 때 가더라도 한 명이라도 더 데리고 가겠다는 마음가짐을 하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더 고지로 올라간다. 고지로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우린 시간을 더 벌 수 있다"
정상적인 전술이라면 나오기 어려운 작전이었다. 고지에 포위되면 보급이 막혀 고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군은 어디에 있던 건흥이 보급을 해 줄 수 있었다.
오직 건흥의 도착만 기다리는 부대였기에 나올 수 있는 전략이었다.
그날 밤 조선의 야습은 없었다. 적을 몰아 뒀으니 서두를 것이 없는 조선군이기에 나온 결정이었다. 날이 밝음과 동시에 미군은 덕유산 위로 더 올라갔다. 그러자 조선군도 포위망을 구축한 뒤 미군을 따라 덕유산을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반나절 산을 오르다 보니 미군은 거의 정상 부근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 동안 침착함을 유지하던 덕만도 조금씩 애가 타기 시작했다.
'정녕 전하께 무슨 일이 생기신 건가?'
"전하께서 오셨다!"
덕만이 심각하게 고민에 빠져있던 그 때 하늘을 날아오는 건흥을 발견한 병사가 크게 소리쳤다. 덕만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대둔산 방향에서 날아오고 있는 건흥이 보였다.
"오래 기다렸느냐?"
"아닙니다."
"비료 공장을 마무리 짓고 오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다"
건흥은 로빈과 신도시를 건설하는 틈틈이 비료 공장을 건설해 나갔다. 암모니아 생성 설비를 다룰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기에 쉽사리 공사 중단을 하지 못하고 날을 새며 작업에 매달렸다.
때문에 덕만과 약속한 날짜를 맞추지 못했던 것이었다. 암모니아 생산 설비를 공장에 제대로 설치한 이후에 바로 조선으로 넘어와 덕만의 부대를 찾았다.
"오다가 보니 우리를 조선군이 포위한 상태이더구나"
"그렇습니다. 교전을 피하고 산 위로 병력을 이동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잘했다. 일단 보급부터 하자"
"예. 전하"
건흥이 게이트를 열자 병력들이 빠르게 게이트 안으로 이동했다. 게이트가 연결 된 곳은 서울에 있는 미 육군 군영이었다.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탄약을 보급 받는 것이었다.
건흥 때문에 미군은 본진과 교전 지역을 오가는 기상 천외한 보급을 하고 있었다. 사실 교전이 끝나고 미군을 서울로 데려와 휴식 시킨 뒤 다시 게이트로 이동 시켜 전투를 할 수도 있었다.
허나 그렇게 하면 군대가 쌓는 경험이 반 이하로 줄어들게 된다. 병력이 이동하고 야전에서 잠을 자는 과정에서 쌓이는 경험도 엄청났다. 언제까지 미군이 건흥의 품 안에만 있을 수 없기에 꼭 배워야 하는 부분이었다.
전 부대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이후 건흥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조선군이고 뭐고 좀 쉬고 처리하자'
신체가 재구성 되어 피로를 느끼는 것이 현저하게 줄어든 건흥이었지만 현재 일주일 째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시차가 정 반대인 미국과 조선에서 번갈아 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조선이 낮일 때는 덕만과 함께 군을 이끌고, 미국이 낮일 때는 로빈과 함께 도시를 건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 시간에는 비료 공장을 건설하는데 시간을 썼다.
아무리 건흥이라고 해도 조금은 잠을 자야 했다. 수명이 거의 무한대로 늘어나긴 했지만 신격이 아니었고 엄연히 유기체로서 활동하는 존재였다.
"적군이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임경업이 이끄는 조선군은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격이 되어버렸다.
"도깨비 도깨비 하더니.... 그게 사실이었나 보군"
미군이 떠난 자리에 도착한 임경업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정말 그들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하산한다!"
사라지긴 했지만 조만간 다시 온다면 이 근방일 것이라 예측한 임경업은 덕유산 인근에 진을 치고 주변을 꾸준히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조에게 장계를 올려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장계를 읽은 인조는 임경업에게 수색을 중지하고 한양으로 돌아올 것을 명령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북방을 안정 시킬 군대가 자리를 오래 비워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7만의 대군을 이끌고 있는 임경업을 믿지 못해서였다.
인조의 명을 들은 임경업은 조금도 주저 없이 회군했다. 반역 혐의 때문에 청나라에서 조선으로 송환 된 자신이었기에 여기서 회군을 지체하면 그 즉시 반역자가 되는 것이었다.
'전하께선 나를 어떻게 하실 것인가..?'
아무런 소득 없이 한양에 도착한 임경업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원래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자신이기에 임무가 끝난 지금 신변이 애매해졌다. 그가 생각하기에 본인에게 일어날 최선은 유배였고 최악은 참형이었다.
'차라리 도깨비에게 물려갔으면 더 좋았으련만...'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상념에 빠져있는 임경업은 성문을 지나 도성으로 입성했다. 입성과 동시에 그는 의금부로 압송되었다. 아무래도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모양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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